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진무가 생소한 말에 의아해하다가 맨 끝에 있는 종학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요?”
“아, 무당에 이런 광경은 없을 터이니 익숙지 않으시죠? 일과를 배정받는 겁니다.”
“일과요?”
“예. 매일 조를 구성해 광석을 캐러 가야 해서요.”
“…….”
참 직관적으로다 쉽고 빠르게 이해되는 대답이긴 하다.
근데 니들 도사 아니야?
아무리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직접 안에 들어가서 캔다고?
수련에 매진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광부냐?
종학의 대답에 진무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계단 위에서 명을 내리는 장로 정란의 말이 이어진다.
“자, 요 며칠 천웅방의 일로 생산량이 줄었다. 제자들은 평소보다 더욱 열과 성의를 다하도록 하고, 종한이 맡은 사 광구가 불안정하다고 들었다. 무너져서 인부들이 다치지 않도록 축대를 다시 한번 점검하라!”
“예! 장로님.”
마치 전쟁이라도 나가는 듯이 기세 좋게 대답하는 일대제자들.
“자, 그럼 광석 채취에 나가는 제자들은 한데 모이거라.”
정란의 지시에 세 명의 일대 제자가 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아마도 그놈의 급급여율령이나 뭐, 위험한 광산 일에 나가는 것이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법주라도 외우는…….
“안전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짝짝짝!
“…….”
그건 또 뭐냐?
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주문은 도대체 뭐냔 말이다.
게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주문을 외우고는 다 함께 손뼉까지 친다.
“자, 해산!”
정란의 외침과 함께 줄지어 서 있던 일대제자들이 한꺼번에 흩어졌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공동이었다.
“오! 거기 진무 도장 아니신가?”
일대제자들이 각자의 위치로 가고 난 뒤, 남은 진무 일행을 알아본 정란 장로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지난밤에는 잘 주무셨는가?”
“예. 뭐, 덕분에.”
“허허, 다행일세. 어떤가? 공동의 아침을 본 소감은?”
“생소하네요, 많이.”
“그럴 테지. 이 시간의 무당이라면 수련을 하거나 외부의 일을 논의해야 하는데 말이야.”
“예.”
“허허, 하지만 이는 우리 공동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네. 삼 광구와 사 광구에서는 꽤 중요한 광물이 나오거든. 우리 공동의 주요 재원이라네. 하여 매일 제자들이 조를 짜 돌아가며 인부들을 관리하고 있지.”
말인즉슨 삼 광구, 사 광구에서 유달리 비싼 광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좋은 정보다.
진무는 나중을 위해서 머릿속에 삼과 사를 잘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정사대전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천우명에게 전해 줘야…… 아니, 적생에게 전해 줘야겠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 두 곳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그나저나 이른 시간부터 어쩐 일인가? 좀 더 쉬지 않고.”
“아, 장문인을 뵙고 청을 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래? 하면 함께 들어가 보세.”
“예.”
* * *
광성전은 장문인의 거처이자 공동파의 핵심 전각이었다.
공동의 전설에 그 옛날 황제였던 헌원씨(軒轅氏)가 공동산의 광성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기에 그런 이름을 지은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전각의 내부에는 광성자를 상상해 만든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목상이 장문인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벽면에 그와 관련된 일화들을 그린 그림들이 즐비했다.
“으핫핫핫! 어서 오시게!”
진무가 들어서자 정심이 예의 그 커다란 웃음으로 전각을 쩌렁쩌렁 울리며 맞이했다.
“아침은 먹었는가?”
“아직…….”
“하면 우리와 같이하지.”
“예.”
정심이 광성전의 일을 보는 이대제자에게 명하자, 잠시 후 진무 일행의 식사까지 준비가 되어 들어왔다.
역시나 비싼 오채자기에 담겨 오는 산해진미.
아침부터 더럽게 호사스럽게도 처먹는다. 황제도 저렇게는 안 먹겠다. 다 먹을 수 있는 양이기는 하냐, 저게?
“왜 안 먹나?”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던 당세령이 의아하게 물었다.
“그냥.”
지난밤에 너무 많이 먹었다.
이제는 음식에 자르르 도는 기름기만 봐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아서 쉬이 젓가락을 놀릴 수 없었다.
이놈들을 반드시 가난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으핫핫핫! 지난밤에 너무 많이 먹은 모양이군. 내 아침은 간단하게 전복죽이라도 준비하라 이를 것을…….”
정심의 표정 하나하나에 우쭐함이 서려 있었고, 말 하나하나에는 자랑이 듬뿍 묻어 있다.
전복이라니?
대관절 바다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산중에서 전복죽이 웬 말인가? 그게 다 ‘우리 잘산다네.’ 하는 자랑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내가 무당에서 왔다는 것을 아주 잊었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알기는 하냐고, 이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부유한 도사 놈아?
어쨌든 한 접시에 한 젓가락만 가져다 대도 배가 부를 호사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차가 들어왔다.
그것 역시 그 비싸다는 서호 용정(龍井)이었다.
이젠 좀 부럽다.
사패천주일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래, 정란 사제에게 들으니 내게 청이 있다고?”
“예.”
“무슨 청인가? 공동의 제자들을 구해 준 자네의 청이라면 내 어찌 거절하겠는가? 어서 말해 보게. 내 광산을 내어 달라는 말 이외에는 다 들어줌세. 특히 삼 광구와 사 광구는 좀…….”
그건 됐다.
어차피 나중에 힘으로 뺏을 거니까.
진무는 차를 홀짝이는 당세령과 운암을 슬쩍 쳐다보았다.
“응? 왜?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야?”
알겠으면 나가라.
무언으로 긍정을 뜻하자 눈치 빠른 당세령이 아쉬운 듯이 진무를 휙 째려보고는 운암을 불렀다.
“운암 도장.”
“예?”
“무당과 공동 간의 비밀 이야기라도 있는 듯하니 우리는 이만 나가죠.”
“아, 그럴까요?”
“네. 나가서 그 아침에 했던 도인 양생술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외간 남자에겐 배울 수 없다고 하더니 이랬다저랬다 제 생각을 쉽게도 바꾸는 여자다.
하지만 오히려 그쪽이 편했다.
“그래. 나가서 그거라도 배워라. 운암 세세하게 잘 가르쳐 줘.”
진무의 말에 운암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까요?”
모처럼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진무가 부탁한 일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은 듯했다.
둘이 장문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간 뒤.
정심과 마주한 진무가 뒤늦게야 입을 뗐다.
“장문인.”
“응?”
“혹시 선대께서 무당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봉인했다든지…….”
그 물건이 무엇인지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진무는 최대한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청성에서는 마치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조사전에서 조각을 얻었고, 곤륜에서는 풍환이 알고 있었다.
하면 공동의 장문인이라고 모르라는 법도 없었다.
어쩌면 풍환에게 전해진 것처럼 공동의 조사 중 누군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진무가 두 곳 도문에서 얻은 것은 태극요결이었다.
운공 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양의심공 후반부의 핵심이 아니던가.
후반부는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전반부의 주해본이었다.
진무는 아무런 단서 없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경험한 뒤였다.
청성은 빼더라도 곤륜에서 풍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서가를 며칠이나 샅샅이 뒤졌지 않은가?
일단 물어보고 모른다면 그때 가서 공동산을 뒤엎어서라도 찾아보면 될 일이다.
“무당의 물건?”
“예.”
“이 사람. 으핫핫핫! 내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못하였네.”
“그래도 잘 생각해 보시면.”
“생각하고 말고도 없어. 자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우리 공동의 세속 지향성을 무당에서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무당이 좀 금욕적인가?”
그건 그렇다.
공동과는 다르게 사치와 향락 대신 절제와 검약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도사들의 뜻이 서린 곳이 바로 무당이었다.
공동이 부러운 거야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뿌듯하다.
“같은 오대도문이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무당과 공동은 교류가 매우 드물었지.”
“그렇습니까?”
조금 실망한 표정이 된 진무가 다시 한번 물었다.
분명 오대도문에 나뉘어 봉인되었다고 했고, 다른 곳에서 이미 찾은 바 있다. 공동에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단지 정심만 모를 뿐, 필시 누군가는 알고 있을 터였다.
“백 년 전의 장문인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입니다. 잘 떠올려 보십시오.”
“백 년? 으핫핫……하……하……험험. 미안하네. 웃는 게 습관이 되어 놔서.”
진무의 진지한 표정에 정심이 웃음의 끝을 흐리고 표정을 바꾼다.
“백 년 전이라면 사 대 전의 장문인이신 무령 조사님이 공동을 맡고 계실 때인데……. 음, 그분이 남긴 것이라.”
정심이 슬쩍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살피는 꼴을 보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는 모양이었다.
“혹, 원로분들 중에는 그때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없을까요?”
“원로분들?”
“예. 제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서요. 남겨진 물건은 반드시 찾아야 하구요.”
“음…….”
“허락해 주시면 제가 찾아뵙고…….”
진무의 말에 정심이 난감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허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원로분들 중에 본산에 남아 계신 분이 없어 그러네.”
“……예? 그 무슨?”
원로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응당 죽을 때까지 본산에 남아 후학들이 문파를 잘 운영하는지 살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도하는 것이 선대의 덕목이 아니던가.
“우리 공동파의 원로분들은 따로 본산에 기거하지 않으신다네. 일선에서 물러나 속세의 본가로 내려가 여생을 즐기시지. 큰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청하지 않는 터라.”
“속세로 내려가셨다고요?”
“그렇다네. 오랫동안 문파를 위해 고생을 하셨으니 당연한 일이지.”
당연하단다. 도사가 속세로 내려가서 정착하는 게.
이런 속세에 찌든 놈들 같으니!
“그리고 우리 공동은 오랫동안 도문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오신 그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살아 계신 동안 모든 생활비를 지원하네. 그분의 자손들까지 말일세.”
할 말이 없다.
속세로 내려보낸 것도 모자라 그 돈까지 감당한다고?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자네가 그분들을 전부 찾아다닌다면 아마도 족히 일 년은 걸릴 것인데…….”
망할 놈의 도문 같으니. 뭐 이딴 게 도문이라고.
그리고 나는 왜 공동에서 새 삶을 얻지 않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자네의 부탁이니 내 모든 분에게 서신을 띄워 여쭤보겠네.”
“그, 그래 주시겠습니까?”
도움이 될 단서를 기대했던 진무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당연한 일일세. 자네는 우리 공동의 은인이 아니던가? 내 서둘러 처리하겠네. 으핫핫핫!”
정심이 큰 웃음으로 다독였다.
힘내라는 듯이.
하지만 이미 식어 버린 용정차만큼이나 돌이킬 수 없이 힘이 빠진 진무가 혹시나 몰라 다시 부탁했다.
“하면 그때까지 제가 공동파의 곳곳을 살펴봐도 될까요?”
“그건 당연한 일이네. 필요하면 출타도 자유로이 해도 되네. 삼 광구와 사 광구만 빼고.”
“…….”
이 자식이 끝까지.
그딴 거 필요 없다, 이 자식아!
어차피 나중에 다 내 거야!
뭐 어쨌든 원로들에게 소식을 보내 본다 하니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동 안을 마음껏 돌아다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니.
이곳저곳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아, 그래. 망할 삼 광구와 사 광구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