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황각수는 섬찟함을 아득히 넘어 버린 눈빛에 두려움을 느끼고 열심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거리가 멀어지기는커녕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저자는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내 뒷걸음질이 더 빠른데.
“이, 이놈들아! 무엇 하느냐! 막아. 막으란 말이다!”
혼비백산한 황각수가 미친 듯이 외쳐 대자 전장 호위들이 진무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칼을 들고 양팔을 펼친 채 덤벼드는 모습에 새타령이 절로 떠오른다.
온갖 잡스러운 새 새끼 같은 것들이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강제로 찍어 먹게도 해 줬는데 말이지.
난 황각수면 충분하다.
사기를 친 놈은 저놈이니까.
니들은 뭐, 살려는 주마.
진무의 펼쳐진 손이 가볍게 허리춤에 당겨진다.
쿵!
이제껏 그래 왔듯 거칠게 내리밟은 진각이 바닥을 깊숙하게 파헤치며 박히고, 허리에 당겨졌던 손이 강맹하게 뿜어지며 아름다운 초식을 그려 낸다.
서른여섯 번의 변화.
중원최강의 격공장이라 불리는 무당의 면장.
그 연환이 멈추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절세의 장법이 수백 개의 잔영과 함께 달려드는 적들에게 작렬했다.
빡! 빠바바박!
구타음이 전장 내부를 진하게 울리고 소리 하나마다 한 사람의 호위 무인이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니들 따위한테 뭘 내공까지 쓰겠냐.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콰직! 쩍!
“…….”
수하들이 숨통을 틔워 줄 것이라 생각했던 황각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른이나 되던 수하들이 눈 몇 번 끔벅이기도 전에 반도 채 남지 못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마치 잡초를 뽑듯이 한 놈 한 놈 때리고 있었다.
멱살을 잡고 따귀를 후려갈기며, 짓밟고, 으깨고.
빡! 빠바박!
날것의 구타음이 흥겨운 장단을 만들 때마다 자신이 맞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극도의 공포가 전신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부러져 덜렁거리는 팔은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 진회루! 서둘러야 해.”
그것이 구명줄이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설마하니 관인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필경 그곳까지만 도망치면 이미 뒤로 손발을 맞춘 태양명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었다.
생각과 동시에 황각수는 팔을 덜렁거리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회루를 향해.
“어이구, 우리 고객님께서 많이 바쁘신가 보네. 아직 이자도 붙기 전인데 막 튀시고. 이 새끼, 잡히면 아주 뒈질 줄 알아라!”
우우웅!
진무가 처음으로 내력을 일으키자 세찬 기파가 만들어져 그의 옷자락을 찢어 낼 듯이 펄럭인다.
꾸우-웅! 콰아앙!
지르밟은 일 보에 전장 바닥이 터져 오른다.
몇 남지도 않은 전장 호위 무인들이 솟구친 지면의 파편에 얻어맞고 모조리 튕겨 나갔다.
파앙!
그와 동시에 진무의 신형이 제비가 물을 차고 날 듯 전장 벽면을 깨부수며 질주했다.
슈아아악!
* * *
황각수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골목만 돌면 진회루다.
자신을 살려 줄 동아줄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막 어귀를 돌려 하는 순간 섬찟한 살기가 뒷덜미의 솜털을 오소소 돋게 만들었다.
“으헉!”
황각수는 사력을 다해 뛰던 속도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콰아앙!
골목을 구성하던 담벼락이 거칠게 터져 나갔다.
“허쭈, 요것 봐라? 피했네.”
“……!”
악귀가, 사신이 벌써 근처까지 다가왔다.
진무의 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황달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누렇게 떠 버린 황각수가 다시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거 새끼, 정말이지 약이 살살 오르게 하네. 구타 부르는 재능 하나는 기가 막혀, 아주.”
진무가 자신이 터트려 놓은 골목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눈치 하난 빠른 쥐새끼.
제법 감이 좋은 녀석이다.
정확히 허벅지를 향해 지풍을 날렸는데 그걸 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운도 좋지.
괜히 민가에 피해만 입힌 꼴이 되지 않았던가?
그래, 이건 순전히 네놈 때문이다.
네놈이 피하는 바람에 죄 없는 민가가 피해를 보았으니까 나중에 반드시 변상하게 만들 테다.
쿵!
내디뎌진 일 보와 함께 진무가 다시 황각수를 뒤쫓는다.
십 장, 칠 장, 오, 사, 삼, 이……
일!
순식간에 줄어든 거리.
“잡았다, 이 사기꾼 새끼.”
뻐억!
진무의 발이 황각수의 등짝을 찰지게 걷어찼다.
“끼에엑!”
요상한 소리를 내며 달리던 속도 그대로 꼬꾸라진 황각수가 볼썽사납게 앞구르기를 했다.
오지게 멀리도 도망쳤어. 그건 칭찬해 주마.
진무가 황각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끝내서는 안 된다.
감히 이 몸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 한 놈이다.
내가 개처럼 벌어서 전장에 맡긴 황금 열 관을 날름 처먹으려 했던 놈이다.
화가 무척이나 많이 나지만, 세게 때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살살 패자.
적어도 거치 염병을 떤 십 년 치 복리 이자는 챙겨 줘야 하니까.
“으으으…….”
겁에 질린 황각수가 주저앉은 채로 열심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괴, 괴물…….”
괴물?
이런 사기꾼 새끼가 누구 보고 그딴 잡스러운 말을.
턱.
진무가 황각수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성한 팔로 도망치려 손톱으로 땅바닥을 마구 긁으며 기어 보지만 어림도 없다.
“일단 도망은 못 가야겠지?”
뿌드득!
손안의 발목이 거칠게 돌아가고.
“끄아아악!”
황각수의 비명이 관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지나던 행인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지만 상관없다.
진무는 지금 분노로 딱 눈 앞만 뵈는 상태였다.
도사의 신분이고 나발이고, 이런 새끼는 다시는 사기를 치지 못하게 조져 놓아야 했다.
아무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어디 감히 피 같은 내 돈을.
그거 청우가 온 힘을 다해 들고 뛰었던 황금이야.
넌 일단 그 노력을 무시했어.
“사, 살려…… 주……세요.”
황각수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어우, 야. 안 죽여.
살인자도 아니고.
내가 이래 봬도 지금은 도사거든. 생명 하나는 소-오-중하게 여긴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도사한테는 또 의무라는 게 있어요, 계도와 갱생이라는 의무가.
그러니 어쩌겠냐. 너 같은 말종이라도 바른길로 이끌어야지. 떡이 되도록 패고 사지를 부러뜨려서라도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해야 도리인 거야.
어디 보자, 일단 네놈의 문제는 도사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사기를 치는 그 입이겠구나.
꾸욱.
진무가 황각수의 턱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끄으으…….”
턱이 빠질 정도로 강하게 조여 오는 아귀힘에 황각수가 절망에 가까운 표정으로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이 냄새.
진무의 찌푸려진 시선이 그의 하반신으로 내려갔다.
흥건히 젖은 아랫도리.
옷을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은은한 지린내와 함께 바닥을 적신다.
뭐 이렇게 담이 약해?
무공을 꽤나 익힌 듯해서 그나마 버틸 줄 알았건만.
갑자기 흥이 확 식는다.
쌓아 줄 이자가 한참이나 남았지만, 약한 놈을 괴롭히는 것에는 취미가 없다.
툭! 털썩.
진무가 떨치듯 손을 놓자 황각수의 몸이 바닥에 허물어진다.
그 꼴사나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가 황각수의 앞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야.”
“…….”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났거든? 사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데, 그건 또 좀 그렇잖아. 황금 열 관…… 아니, 이자 한 관에 수고료 한 관 포함해서 열두 관. 이렇게까지 말로 해 줄 때 내놔라. 한 푼이라도 모자라면 그땐 진짜…….”
“……!”
날도둑놈 같으니.
와중에 말로 했단다.
내 팔 꼬라지 안 보이냐?
다리 부러진 건? 처맞아서 온통 피멍이 들고 부어오른 건?
뭔 이자가 한 관이나 되며, 뭔 수고료를 붙인단 말인가? 제 놈이 대체 무슨 수고를 했다고?
어찌 보면 당연한 억하심정에 불쑥 입을 열려던 황각수는 진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딱 다물었다.
그의 양 눈에 일렁이는 차디찬 한기와 광포한 살기에 뇌가 관통당하고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알아들었냐?”
진무의 위협에 황각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일신의 영달?
그따위 것이 목숨보다는 소중할 리 없다.
더 반항했다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잘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돌아가 볼까?”
진무가 황각수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리려는데.
“멈추어라!”
“……?”
시기적절하게 터져 나오는 방해꾼의 목소리.
진무가 고개를 돌려 귀청 떨어지게 소리를 지른 인물을 고까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관인?
진무의 눈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던 진무라고 해도 관인의 복색 정도는 알고 있다.
가슴의 운안흉배를 보았을 때 서안을 총괄하는 지부가 틀림없다.
“네놈은 뭐 하는 놈이길래 대로변에서 이따위 소란을 부리는 것이냐?”
관인의 꾸짖음과 동시에 창을 든 군병들이 진무를 둘러싼다.
일이 더럽게 꼬인다.
하필 관병이 나타날 줄이야.
하지만 관무불침의 예가 있다.
민가에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하는 중이다.
이놈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돈을 날름 처먹으려 한 사기꾼이 아닌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사기꾼을 갱생시키는 중이오.”
“사기꾼?”
관인의 눈초리가 진무의 손에 들린 사내를 향한다.
“황…… 총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한 친근한 목소리다.
하긴 전장은 관에서 통제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노옴! 감히 동림전장의 본점 총관을! 어서 그 손을 놓지 못하겠느냐?”
관인의 외침에 진무의 한쪽 눈이 찌푸려진다.
관인은 다름 아닌 서안부 지부 태양명이었다.
동림전장의 초대를 받아 진회루에서 연회를 즐기던 중에 바깥의 소란을 듣고 나온 참이었다.
“잘 아시는 사이인 모양이오?”
“당연한 소릴! 서안부의 수장인 내가 황 총관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
“내 황 총관과 약속이 있어 진회루에서 기다렸으나 늦도록 오지 않아 궁금하였던 참인데. 니놈이 감히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호통을 치며 침을 튀겨 대는 태양명의 모습에 진무의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간다.
그들이 있는 곳은 서안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진회루였다.
말하자면 기루다.
관과 전장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해도 기루에서 만난다고?
술은 당연할 것이고, 기녀는 말할 것도 없을 터인데.
오밤중도 아니고, 엄연히 해가 중천인데 말이지.
어디 보자, 이쯤 되면 각이 싹 잡히네.
내 눈을 절대로 속일 순 없지.
딱 봐도 뒤 봐주고 뇌물 받아 처먹는 아주 오손도손한 유착 관계인 거야, 둘이.
그러고 보니 운안흉배 새끼, 생긴 것부터 썩 훌륭하게 탐관오리 상이다.
볼때기에 욕심살이 주렁주렁 늘어진 것이 어찌나 그럴싸한지.
결국, 황각수 저 새끼는 관을 등에 업고 맘 편히 거들먹거리며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 왔다는 거다.
“뭣들 하느냐! 어서 황 총관을 모시거라!”
차자작!
태양명의 명령에 군졸들이 일제히 창을 앞으로 뻗어 진무를 위협했다.
이것들 봐라?
눈매가 가늘어진 진무가 주변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일을 벌이는 자가 무림인이 확실한 경우 관무불침을 아는 관인이라면 상황부터 파악해야 한다.
어째서 그를 때렸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그리고 형식적으로나마 요청을 해야 한다.
일단은 조사해 볼 테니 놓아 달라든지.
그런데 곧바로 무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만약 사패천주였다면 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사파는 정파뿐 아니라 관과도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으니까.
창을 겨눈 순간 모가지를 전부 뽑아 버렸을 테지.
이 새끼들, 내가 무당 도사라는 사실이 니들 목숨을 살렸다.
하지만 황각수를 놓아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아직 돈을 받지 못했으니까.
진무가 관인들을 무시하고 동림전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태양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저, 저놈이! 고작 무뢰배 따위가 감히 관부 수장의 말을 무시해? 뭣들 하느냐! 놈을 포박하지 않고!”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관인들이 창을 겨눈 채로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 오던 그때, 진회루를 빠져나온 또 하나의 인영이 훌쩍 뛰어들어 진무의 곁을 지키듯이 막아섰다.
“진무 도장!”
운암이다.
진회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가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나왔다가 진무를 발견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째서 관군과?”
의아해하면서도 운암은 관군을 향해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충성스러운 녀석 같으니.
하지만 너의 등장으로 상황만 복잡해졌구나.
만약 관군이 막는다면 죽이진 않더라고 불구 정도는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암이 보고 있는 앞에서 명색이 명망 높은 정파의 도사가 되어서 관부의 인물들과 드잡이를 할 수는 없었다.
“이놈들! 감히 네놈들이 관을 무시해? 저놈들을 지금 당장…….”
하지만 한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무림인들이 대놓고 관에 대항한다 생각한 태양명이 대번에 속을 긁어 온다.
“하찮은 무뢰배 놈들!”
충분히 참으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잘못이 없는데 어째서 핍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고작 유착 관계에 있는 놈을 두들겨 팼다는 이유로?
진무의 의협심(?)이 또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
탐관오리 새끼.
내 돈을 털어먹으려 했던 사기꾼과 한배를 탄 새끼.
쿠우우우…….
참았던 화가 끓어오름과 동시에 진무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일어나 사방으로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