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무영의 입에서 놀람이 터져 나오자 학창의의 사내, 명세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가부자. 가짜 공자를 일컫는 말로 사파인이면서 학창의를 입고 다니는 명세찬을 비꼬는 말이었고, 당연히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 하지만 너무 젊은…….”
“쟤가 원래 동안이야. 관리를 잘해서.”
진무의 미소.
그의 말이 없어도 무영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금세 깨달았다.
명세찬의 얼굴은 악귀처럼 변해 있었고, 한계를 넘어 버린 기세에 학창의가 찢어질 듯이 펄럭이고 있었으니까.
“이 호로 새끼가! 뭐 가부자? 어디서 가짜래? 나 사도서생(邪道書生) 명세찬에게!”
거친 욕설과 함께 넓은 소매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에 잡힌 서책이 거칠게 휘둘러져 왔다.
고작 서책 따위로?
무영은 재빨리 칼을 그었다.
까아아앙!
분명 서책이었는데 오히려 그의 검이 튕겨져 나가고, 부딪힌 곳에서 쇳소리와 함께 엄청난 반탄력이 무영을 덮친다.
동시에 유령처럼 희뿌연 흔적을 남기며 측면으로 파고든 명세찬의 또 다른 손이 무영의 옆구리를 둔탁하게 파고들었다.
쩌어억!
일장을 고스란히 맞으며 떠올랐다가 땅바닥에 처박혔던 무영이 곧바로 몸을 세우려 했다.
“우웩!”
비틀거림과 함께 토해 버린 검은 핏물에는 내장의 부스러기마저 섞여 나왔다.
고작 일장이었으나 실려 있는 기운은 무영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영이 고고하게 뒷짐을 지고 진무의 앞을 막아선 명세찬을 경악에 가득 찬 눈동자로 바라본다.
분명 그저 서책이었는데? 어찌 고작 종이에 이만한 기운을 담는단 말인가?
“아, 깜박했네. 그 책 한철로 만든 거다. 하오문이 돈이 좀 많거든.”
자신을 공격한 명세찬보다 진무의 이죽거림에 짜증이 난다.
“하, 한철이라고?”
이런 개 같은.
가부자가 사패오왕 중에서도 가장 미친놈이라더니 설마하니 서책을 무기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쇠붙이 중 손꼽히는 강도를 가진다는 한철이라니.
“…….”
뭐가 어찌 되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사의 경계가 명확한데, 어찌하여 하오문주인 그가 무당지검을 돕는단 말인가? 도대체 무당지검 저 망할 놈이 무엇이기에.
무영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무언가를 놓쳤다. 양의심공 말고도 다른 중요한 것을 빼먹은 것이 분명했고, 이는 반드시 알려야 했다.
만에 하나 정사가 연합이라도 한다면 궁의 계획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 자명했다.
수하들은 그들과 함께 온 자들에 의해 이미 죽은 뒤다. 아니, 살아 있다 해도 그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판단을 내린 무영은 곧바로 도주를 감행했다.
몸을 돌린 순간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온 발 하나.
퍼어억!
어느새 움직인 진무가 무영의 얼굴 중앙을 거칠게 걷어차 버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도망을 치려고?”
무영이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진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명세찬과 은위대의 무인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퍽! 콰직, 콰직.
“요 새끼! 쥐새끼 같은 새끼! 망할 새끼! 사람이 지쳐 있는데 공격을 하는 쌍놈 새끼!”
“…….”
누가 지쳤다고?
이미 정신을 잃었는데 쉬지도 않고 짓밟아 대면서?
명세찬과 은위대는 한참 전부터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개입 여부를 고려하던 차에 터져 나온 묵룡아.
어찌 모를까? 한창때의 혁련무강이 호적수 북리도천과 자웅을 겨루던 그때, 적염제 북리도천이 가진 최강의 무공인 염화(炎火)의 불꽃을 지워 버린 그것을.
사황 혁련무강의 전인이 틀림없다. 아니, 지금 눈앞에서 이미 제압해 놓은 습격자 중 한 놈을 미친 듯이 짓밟아 대는 모습은 그냥 혁련무강 그 자체다.
그런데 어째서 무당지검이란 말인가? 정무맹의 젊은 영웅이 어째서…….
명세찬이 눈을 끔벅이는 와중에.
“후우, 후우……. 이 새끼가. 모처럼 강자를 만나서 분위기 좀 잡아 볼랬더니.”
겨우 분풀이가 끝난 진무가 피떡이 되어 버린 무영을 버려 두고 고개를 돌린다.
“어이, 세찬이.”
뭐지? 이 반갑기 그지없는 인사는?
말투까지 배운 건가?
더욱이 성격이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시간마다 변하는 저 모습까지도.
화냈다가 웃었다가, 아주 지랄에 염병을…….
“세찬아, 안 들리냐?”
“……예에?”
따져 물어야 하는데. 니가 어째서 묵룡기를 사용하느냐고 물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젊은 무인의 부름에 이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뭔가 압도당해 버린 듯한 느낌에 명세찬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진무를 노려보는데.
“오랜만이다.”
뭐가? 언제 봤다고?
“도와준 걸 보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
“천주께서 적한테 뒈지게 처맞고 있는데 말이지, 간도 크게.”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송곳니를 슬쩍 드러내며 웃는 그 모습에 명세찬은 등줄기로 소름이 쭉 돋아 오르는 것만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내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거든? 할 이야기가 많은데, 듣는 귀가 많으니까 저쪽으로 좀 갈까?”
“……예에.”
분명 무당지검인데.
그 진무라는 도사 놈이 분명한데. 도대체 뭘까?
어째서 저놈의 말에 꼼짝도 할 수가 없단 말인가.
“어이! 니들은 거기 그놈 안 뒈지게 잘 데리고 있어. 물어볼 게 좀 있으니까.”
진무의 말에 습격자들을 정리하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위단의 부단주 외목이 눈을 찌푸렸다.
어린놈의 새끼가 언제 봤다고.
하지만 명세찬이 따로 제지를 하지 않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명(?)을 받은 외목과 은위단의 조장들이 자근자근 짓밟혀 정신을 잃은 무영을 구속하는 사이, 진무와 명세찬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아래로 향했다.
나무 옆 바위에 대충 아무 곳에나 걸터앉은 진무가 명세찬을 향해 피식 웃는다.
“그만 째려봐.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
“눈 깔라니까?”
사전 주의를 주었음에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명세찬의 모습에 진무가 한숨을 내쉰다.
“아깝네. 공후가 있었다면 설득이 빨랐을 터인데.”
“……?”
“하다못해 우명 그 멍청이라도 있으면…….”
슬쩍 꺼낸 말에 명세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 온다.
물론 진무가 의도한 바다.
마음 같아서는 일단 줘 패서 좋은 분위기를 형성한 뒤에 말해 주고 싶지만, 지금 진무는 꽤 많이 지쳐 있었다.
또한 머리 회전이 빠른 명세찬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오문의 수장인 그가 천웅방 전투에 대해서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원공후와 천우명을 거론했으니 대충 머릿속에서 그들이 확보한 정보와 지금 자신을 대입시켜 이야기를 짜 맞추고 있을 것이다.
“…….”
진무의 예상처럼 명세찬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개소리로 치부했던 소문.
천웅방의 전투에서 천우명과 싸웠다는 무당의 도사, 천우명은 그 싸움 이후 철검단과 함께 천웅방에 붙어 버렸다.
일단 거기서 생기는 의문.
천우명이 진무를 묵룡의 전인으로 인정한 것인가?
확률 높은 추측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전대 천주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천우명의 결정을 납득할 수가 없으니까.
“머리 대충 다 굴린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알겠지?”
“……천웅방. 당신이? 정말로 묵룡의 전인이라고?”
명세찬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재차 확인하듯이 묻자 진무가 빙긋이 웃었다.
표정을 보니 대충 다 아는 눈치면서 묻기는.
자, 그럼 이제…… 아, 근데 이 새끼한테 어설프게 둘러대 봐야 역효과만 날 게 뻔한데. 일단 납득할 때까지 물러나지도 않을 거고.
게다가 생각해 보면 우명이나 공후나 이놈이나…….
에라, 모르겠다. 자소단이 시급하니까 일단 각색 없이 간다.
* * *
“신!”
은위단 부단주 외목이 반가운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황신을 향해 다가갔다.
황신이 외목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고생했다.”
외목의 말에 황신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언제부터 따라다닌 거냐?”
슥슥.
황신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자를 그리자 외목이 한숨을 푹 쉰다.
“너 아직 묵언 중이냐?”
“…….”
그 말에 황신이 제 가슴을 쓱 하고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너도 참. 하여간 문주님 명이라면 정말 끔찍이도 지키는구나. 하긴 네 말투가 좀…… 그렇기도 하지만.”
외목의 말에 황신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째려보았다.
“됐다, 됐어.”
손을 휘휘 저은 외목이 멀찍하게 떨어진 명세찬과 진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무 멀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진무가 말하고 명세찬은 듣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명세찬이 숨이 넘어가는 듯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자 은위단의 무인들은 궁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하게 선 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명세찬의 얼굴.
놀람을 넘어선 경악.
그에 반해 진무는 팔짱을 끼고 담담히 말하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다.
“거참,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 거지?”
외목이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황신을 슬쩍 쳐다보았다.
황신은 들리지 않을까? 초감각에 가까운 청력의 소유자니까.
“황신, 무슨 대화기에 문주님이 저렇게 놀라시는 거냐? 대충 표정을 봐서는 묵룡의 전인이 맞는 것 같은데.”
외목의 말에 은위단의 무인들이 황신의 옆으로 몰려들었다.
“말해 봐. 무당지검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지.”
외목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황신을 채근했다.
사실 황신도 좀 궁금했다.
하지만 한참을 귀를 쫑긋거리던 황신이 고개를 저었다.
기막을 쳐 둔 것이 분명하다.
“안 들려?”
“…….”
황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외목이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젠장, 너무 멀어서 독순술도 안 먹히고. 그나저나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죽겠네. 듣기로는 정파가 차세대 영웅으로 여길 정도로 공명정대한 협사라던데.”
외목이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조장 대궁이 의아하게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문과는 뭔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음. 뭔가 좀 전대 천주님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할까? 특히 사람 패는 느낌이 어딘가 비슷한 것이.”
외목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긴 하겠네요. 저런 인물이면. 사실 전대 천주님은 너무 막 나가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했지.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예. 뭐…….”
“황신, 니가 보기엔 어땠어? 한 며칠 같이 다녀 봤잖아?”
“…….”
그 말에 황신의 머릿속에 다른 건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리 적이라곤 해도 종려군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던 피도 눈물도 없는 그냥, 그냥 개…….
역시나 생각을 말자.
오한에 소름에, 아주 몸져누울 것 같으니까.
* * *
“그, 그런 게 가능하다니. 천우명, 그 양반이 가져온 게 진짜로 불로초였다고요? 그냥 뒈지…… 아니 돌아가시기에 멍청한 위인이 괜한 사건 하나 일으킨 것이라 생각했는데.”
명세찬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을 끔벅거린다.
“한데 도사라니…….”
명세찬이 진무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힘드셨겠습니다. 그 성격에.”
“…….”
원공후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알려 준 세 번째 인물. 명세찬이라면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었다.
근데 그 성격은 어떤 성격을 말하는 거냐?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명세찬을 째려봤지만, 그는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너무도 놀랐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비밀이다.”
“암요. 비밀 하면 하오문! 하오문 하면 비밀입니다! 그리고 아마 말해도 믿는 놈이 없을 겁니다. 미쳤다고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명세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까.
아마 진무가 명세찬이 하오문주가 될 수 있었던 일들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미치긴. 아마 네가 말하면 누구나 다 믿을걸. 네 말은 제법 신뢰도가 높으니까.”
“그, 그럴까요?”
“그래. 어쨌든 내 비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잘못해서 거지새끼들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으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정사마의 주인이 되실 생각이시라니……. 알겠습니다. 하는 김에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비롯해 앞으로 천주님의 행적에 대해 조작을 좀 해 두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행여 비밀을 알게 되는 놈이 있으면 제가 책임지고 혀를 뽑고 사지를 잘라 들개 밥으로 주도록 하겠습니다.”
혀를 뽑아? 사지를 잘라서 들개 밥으로 준다고?
이런 잔인하기 짝이 없는 녀석 같으니. 어찌하여 나이가 먹어도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인가.
역시 너는 언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진정한 사파인이구나.
진무가 그를 기특하게 여기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얼굴을 찡그렸다.
당장에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다. 이 말 저 말 다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버린 것이다.
“세찬.”
“예?”
“호법 좀 서라.”
“……왜요?”
왜요는, 지금 안 하면 단전이 작살나니까 그렇지.
진무는 적당한 장소를 찾자마자 좌정을 했다.
명세찬을 설득하는 동안 슬슬 빠져나가던 내공은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많이도 빠져나갔네.
진무는 머뭇거림 없이 품에서 옥갑을 꺼내 열었다.
“매화 문양의…… 옥갑…… 서, 설마, 자소단?”
명세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중에 진무가 자소단을 사탕처럼 입에 털어 넣고 운기를 시작했다.
“허! 무당지검이라더니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셨기에 화산의 자소단까지 가지고 계신 거지? 훔치기라도 한 건가? 화산의 진산기보를?”
왠지 천주라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명세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사이 진무는 자소단의 기운을 천천히 흡수해 나갔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진무는 자소단의 영기를 흡수해야만 했다.
채기법의 남용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으나, 서둘러 묵룡혼원공의 성취를 높여야 했다.
종려군, 그리고 그녀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궁의 무인들.
새로운 놈들이다.
북리도천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