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환영진이 일그러지고 내부가 아주 잠시 드러나는 순간, 진무와 명세찬, 은위단의 무인들이 동시에 쏘아져 들어갔다.
“내 돈 내……놔…… 응?”
진무는 진법의 안쪽으로 뛰어듦과 동시에 보이는 족족 박살 내고 금고를 털어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더 이상의 행동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자신들을 공격해 올 경계 무인들을 예상했건만, 보이는 것은 그저 흔하디흔한 촌락.
짚을 엮어 덮은 지붕과 흙을 개어 세운 벽을 가진 집들이 포도송이처럼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곳곳에서 보이는 화광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사방을 가득히 채워 흐르고 있다는 것과.
노인, 아이, 청년, 아낙…….
어느 촌락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몽롱한 표정으로 진무 일행을 바라본다.
그런데 뭐지, 이 냄새는?
진무가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리고 잠시 잠깐 진무와 명세찬이 만들어 내었던 환영진의 틈이 메워지자, 연기의 흐름이 멈추고 농도가 더해져 조금 전까지 보이던 모든 것을 가려 버렸다.
“흡!”
자욱하게 깔린 연기의 냄새를 맡은 명세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 이 냄새는?”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냄새.
“모두! 호흡을 멈춰라!”
명세찬의 목소리에 그의 주변에 있던 은위단의 무인들이 급히 호흡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천주님, 대마입니다.”
“……!”
대마(大麻). 진통 효과를 가지고 있으나 그 양이 과하면 환각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는 약초.
그리고 눈앞의 사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을을 가득히 채운 양?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웅!
진무가 일휘를 휘저어 연기를 물려 내고.
“공간을 확보해. 연기를 마시지 마라!”
진무의 외침과 함께 은위단의 조장들이 손과 무구를 휘둘러 연기를 물려 내 보지만 금세 채워지는 것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크으으…….”
그 와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기스러운 소리.
“크아악!”
진무가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부엌칼을 든 아낙이 뛰어들었다.
퍼억!
가볍게 때려 제압한 진무가 얼굴을 찡그린다.
여인의 눈동자는 시뻘겋게 변해 있었고, 거품 같은 침을 쉴 새 없이 흘리며 진무를 향해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이게 대체?”
정상이 아니다.
사람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진무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
“죽……인……다…….”
사방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흉악한 살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져 온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세뇌된 것처럼,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퍽, 퍼퍽! 퍽!
“천주님!”
명세찬이 진무의 주위에 있던 촌락의 주민들을 쓰러뜨리고 진무의 앞으로 다가왔다.
“천주님, 이상합니다.”
“무슨 소리냐?”
“대마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것이 섞여 있습니다. 묘하게 살심을 일게 하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명세찬의 말에 진무의 눈이 일그러진다.
환각을 일으키는 대마.
그 안에 뒤섞여 살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체불명의 독.
“…….”
진무가 호흡을 멈추고 자신이 들어온 환영진을 바라본다.
설마 환영진을 부수는 것이 살의를 끌어 올리는 독진을 발동시키는 장치였나? 환영진으로 내부를 감춘 것은 함정을 눈치채지 못하게 함이었고?
젠장, 성급했다.
진무가 진을 부쉈을 때 분명 연기에 흐름이 생겼다. 그렇다면 내부에서는 반응하지 않아도 외기의 흐름에는 반응한다는 뜻.
또한, 진무 일행으로 인해 환영진 내부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진이 발동되어 독기가 연기에 스며들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환영진이 파훼되면?
진법이 해제되고, 외기를 만난 농도 짙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이 정도의 농도라면 삼도평의 분지 전체가 자욱한 연기로 뒤덮일 터.
그렇다는 것은.
“…….”
진무의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고, 움켜쥔 주먹 안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살심이 동하고 환각에 취해 버린 정무맹의 무인들은 마을 사람들을 적으로 착각해 살육을 자행할 것이다. 그리고 종내 서로가 죽고 죽이게 되겠지.
독과 환각에 취해서.
“이것이냐…….”
정무맹이 궁의 근거지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일부러 흘린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위해서. 삼도평에 지옥도를 만들어 놓기 위해서.
깡! 까강!
은위단의 조장들이 마을 주민들을 맞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가 너무 많다.
마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되는 주민의 수는 삼천에서 사천.
환각에 취해 미친 이들의 수가 그 정도라는 뜻이다.
명세찬이 함께하고 있지만, 상대는 악착같은 살기를 머금고 다가왔고, 이쪽에서는 그들을 죽일 수 없으니 조금씩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진무가 점점 더 자욱해지는 연기를 뚫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물체를 바라본다.
아이.
예닐곱은 되었을까?
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날카로운 비수가 쥐어져 있다.
“천주님!”
공격해 온 주민들을 다치지 않도록 제압하고 있던 명세찬이 아이를 바라보느라 움직이지 않고 선 진무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진무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푸욱!
아이의 손에 들린 비수가 진무의 허벅지에 박히고, 짜릿한 고통과 함께 피가 번져 나온다.
상처가 생겼으나 아프지 않다.
몸의 아픔보다 마음속에 간직된 아픔이 더욱 크다.
진무의 머릿속을 맴도는 과거의 기억들.
진무, 아니 혁련무강이 너무도 어렸던 시절.
거리의 부랑아였던 혁련무강은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을 낳자마자 강보조차 싸지 않고 버렸으니까.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아 배수의 망꾼이 되어야 했고, 어렵사리 모은 돈을 뒷골목 무뢰배에게 빼앗겨야 했다.
몰래 숨긴 돈을 들켜 죽도록 맞아야 했고, 폐가 찢어지도록 헐떡이며 도망쳐야 했다.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지만, 그때마다 늘 힘 있는 어른들에게 이용만 당해야 했다.
그래서 독해졌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했고, 빼앗기지 않아야만 했다.
친구라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해야만 했고, 동료라 믿었던 이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것이 진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었고 살아온 삶이다.
자신을 버렸던 부모. 자신을 이용해 먹은 어른들. 힘없는 아이에게 한없이 냉혹한 시대.
그런데…….
눈앞의 아이가 웃는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환하게 웃는다.
으드득.
진무는 턱 언저리에 근육이 선명하게 잡히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고.
“너의 이 작은 손에 칼을 쥐게 한 놈들…… 내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마.”
진무는 허벅지에 비수가 박힌 그대로 아이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청량한 선기가 피어올라 진무의 몸을 푸른 빛으로 감쌌다.
퉁.
가볍게 발출한 선기가 아이의 머리를 울려 놓자 아이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고, 핏발이 가라앉는다.
정신을 차린 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멍하니 진무를 바라봤다.
“잠시, 아주 잠시만 자고 있거라.”
진무는 이전에 지어 본 적 없었던 친절한 미소를 지어 아이를 안심시키고 수혈을 짚었다.
힘없이 고개를 꺾으며 이내 쌔근쌔근 잠들어 버린 아이를 바닥에 눕힌 진무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을을 바라본다.
“위험합니다.”
명세찬이 급히 달려와 소매를 떨치자 진무를 향해 살기를 품고 모여들던 이들이 모조리 밀려 났다.
“세찬.”
“예!”
“제압만 해라.”
“…….”
명세찬에게 부탁과도 같은 당부를 한 진무가 가슴 가득히 머금은 분노를 담아 선기를 밀어 내고 묵룡혼원공을 단전에 담는다.
휘리리리리.
급격하게 피어오른 그의 사기에 회오리와 같은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그의 주위에 자욱하던 연기를 흩어 낸다.
선기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자면 일단은 연기부터 처리해야 한다.
더 이상 환각과 살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쿠우웅!
강하게 디딘 두 발이 대지를 깊이 파헤치고, 진무의 몸에서 일어난 묵룡기가 그의 전신을 감싸고 솟구친다.
채기법의 부작용인 산공을 치료하기 위해 취했던 자소단이 그의 내공을 한없이 높여 놓았고, 이미 한번 가 보았던 길이라 깨달음 없이 단계를 뛰어넘은 묵룡혼원공은 더없이 정순해져 진정한 묵룡을 불러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이 휘도는 그의 손을 따라 묵룡기가 흐르고, 원을 그리며 휘저어진 양손이 중단에 이르러 반 자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본다.
휘휘휘휘.
두 손이 바라보는 곳의 중심.
그곳에 진무의 묵룡혼원공이 모조리 뽑혀 나와 머물기 시작하자 마치 태풍의 중심이 된 듯 대기가 회오리치며 빨려든다.
치지직, 치지지직!
점점 더 거대해져 가는 검은 구체가 진무의 힘으로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되었을 때.
진무의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검게 물들고, 입가에는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개새끼들…… 찢어 주마!”
자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 올린 진무가 온 힘을 다해 구체를 하늘을 향해 밀어 올렸다.
쿠우우우!
구체가 대기와 충돌하며 거친 소음을 만들어 내고, 머금은 회오리에 대기가 비틀어진다.
쿠아아아!
진무의 기운이 더해지자 솟구친 구체가 구속하던 줄을 끊어 낸 것처럼 쏘아지며 긴 꼬리를 달고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하늘을 물어뜯어 찢어 내는 광룡(狂龍), 천교열(天咬裂).
우우웅!
삼도평의 분지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뒤흔들렸다.
광룡이 포효하며 벌린 입에 허공에 펼쳐져 있던 거대한 진법의 막이 갈가리 찢어지자, 마을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던 연기가 빨려들 듯 세차게 솟구쳐 오른다.
쿠우우우.
옅어지기 시작했다.
연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마을의 전경이 드러나고, 환영진으로 인해 차단되었던 외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마을 곳곳에서 살심에 취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찢고, 베고, 자르고.
한 장의 지옥도와 같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가 묵룡혼원공의 모든 기운을 토해 내듯 사용하며 생긴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천주님!”
명세찬이 다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하며 명문에 손을 대고 자신의 기운을 주입하려 했다.
“괜……찮아. 이까짓 것.”
“…….”
그의 손을 뿌리친 진무가 재빨리 단전에 양의를 담는다.
사기가 물러나고 청량한 기운이 돌자, 심신이 편안해지고 온몸에 다시금 활기가 넘쳐 흐른다.
“후우…….”
가볍게 몰아쉰 숨과 함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진무의 눈에 정광이 넘쳐흘렀다.
“세찬!”
“예.”
“죽이지 말고 제압만 해. 될 수 있으면 마혈을 짚어라.”
“알겠습니다.”
진무의 부탁에 명세찬이 급히 대답하고 연기가 사라져 환하게 드러난 사람들을 향해 소매를 펄럭이며 나아갔다.
명세찬의 학창의가 그의 손과 발을 따라 휘날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제압당해 쓰러지고, 호흡이 자유로워진 은위단의 조장들도 이전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무리하게 묵룡혼원공을 끌어 올려 입은 내상을 선기로 보듬던 진무가 문득 주변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기운에 의아함을 품는다.
“응?”
수가 많다.
이제껏 느껴지지 않던 기운이 환영진이 걷히기 시작하면서부터 확연히 느껴졌다.
설마? 적인가?
진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 외부의 전경을 바라본다.
“어?”
진무의 시선이 닿은 곳에 보이는 익숙한 옷차림과 익숙한 얼굴들.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듯 진무를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사숙!”
가장 먼저 입을 뗀 것은 청상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무 도장?”
이번엔 제갈산산이다.
그녀의 옆으로 사방관에 청의를 입은 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진법을 해제하려 했던 모양이다.
얼떨떨한 표정이다.
파훼하지도 않았는데 진법이 저절로 걷히고 진무가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진무 도장!”
이번엔 반가움이 가득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외치는 호현개.
그 뒤로 개방의 거지들이 잔뜩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소매에 매화 문양이 선명한 화산의 제자들.
토수와 행전을 차고 있는 종남의 무인들과, 앳된 얼굴에 혈기 방장해 보이는 용봉관의 무인들까지.
정무맹이다.
벌써 반나절이 지난 모양이었다.
역시 사람이 욕심이 과하면 안 된다. 금원보 서른 개를 찾으러 온 것인데, 또 남 좋은 일만 해 줬잖아. 젠장,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