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우와!”
황신은 눈앞에 번쩍거리는 비수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반들거리는 이 검은 자태하며, 예기마저 감춘 은밀한 첨단이란.
더욱이 뾰족한 비수 뒤쪽에 연결된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어 알맞은 파지감이 느껴지는 나무 손잡이.
아, 아름답다.
당장이라도 목구멍을 뚫어 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
좌판에 물건들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던 상인이 황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놈은 뭘까?
구경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왜 저 가죽에 구멍을 뚫는 한 뼘 길이의 송곳을 들고 저리도 감탄하는 것일까?
더욱이 제 품에서 쇠꼬챙이 같은 것을 빼내서 이리저리 비교까지 해 보고 있다.
미친놈인가?
쫓아 버려야겠다.
아까부터 저놈이 차지하고 앉은 통에 벌써 몇 사람이 그냥 가 버렸다.
상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는 황신을 향해 화를 내려고 일어났다.
“저리 꺼…….”
퍼어억!
“……?”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눈앞에 있던 황신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거친 욕설.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이! 몇 번을 불렀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바람에 직접 찾으러 온 진무였다.
“내가 부르면 오라고 했지! 어? 어?!”
황신을 미친 듯이 밟아 놓고 씩씩거리는 모습에 상인이 질려 버린 표정을 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게 아주 갈수록 개판이네. 기껏 수련까지 시켜 줬더니. 니가 오늘 진짜 뒈져…… 응?”
“…….”
우두둑 소리 나게 주먹을 꺾던 진무가 황신이 손에 꼭 움켜쥔 물건을 발견하고 눈을 치켜떴다.
“뭐냐, 그 무척이나 쓸모없어 보이는 송곳은?”
“…….”
진무는 허리를 약간 숙여 송곳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평소 쓰는 비수와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확실히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끝이 뭉툭한 것은 둘째 치고 검은색을 띠는 재질이라면?
진무는 아예 황신의 손에서 송곳을 뺏어 들고 주의 깊게 살폈다.
“허!”
색깔을 입힌 게 아니라 통짜 묵철(墨鐵)이다. 저 멀리 운남에서만 생산된다는 우수한 광석.
예전에 구야자가 다루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저딴 송곳을 그 비싼 묵철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째서 저런 물건이 이런 곳에서 발견된 건지는 더 모르겠지만.
예기를 숨겨야 하는 은신자가 쓰기에는 매우 적합한 물건이다.
더욱이 비수를 다루는 황신에게는 더없이 좋은.
“설마 갖고 싶은…….”
맞네.
저 눈빛. 당과 쳐다보는 다섯 살짜리 꼬마의 눈빛.
저 새끼도 욕망이란 게 있었구나. 뭐 무인이라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 줘?”
“……!”
그렇게 처맞아 놓고 황신이 벌떡 솟구쳐 일어나 반짝거리는 눈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내 참. 애도 아니고, 그 고된 수련을 거쳐 온 놈이.
진무는 헛웃음을 치며 상인에게 물었다.
“얼마요?”
진무의 물음에 상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딱히…….”
상인이 송곳의 재질을 모르는 게 확실했다.
알았다면 저런 난감한 표정을 지을 리가 없지. 송곳에 쓰인 묵철의 양이라면 못해도 금 반 관의 값어치는 될 것이 분명한데.
“은 두 냥.”
“……예?”
진무의 선수에 화들짝 놀란 상인이 곧바로 횡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젠장, 이런 반응이면 한 냥만 부를걸.
“가져가십시오.”
혹시나 말을 바꿀까 생각했는지 상인이 냉큼 거래를 수락했다.
지가 이익인 줄 알겠지만, 금 반 관짜리를 은 두 냥에 샀으니 진무로서는 엄청난 이득을 본 셈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한 냥이 아까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자.”
진무가 은 두 냥과 교환한 송곳을 건네자 황신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것을 받아 품에 소중히 갈무리한다.
어이구, 입 째지겠다, 째지겠어.
그래도 선물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진무는 애처럼 기뻐하는 황신을 보며 환하게 마주 웃었다.
그래, 그렇게 좋아하니 충분히 부려 먹어 줄 수밖에.
“황신.”
“…….”
“살펴볼 놈이 있다. 나이는 약관 전후. 눈이 가늘고 왼쪽 턱 언저리에 옅은 칼자국이 있다. 머리카락은 어깨 정도까지 내려왔고, 키는 나와 비슷한 정도.”
황신의 눈동자가 전에 없던 열의로 타오른다.
“뒤따르는 놈들이 다섯. 뛰어난 은신자들이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위치만 확보해. 주점 거리에 있는 소월(小月)이라는 곳에서 기다리겠다.”
황신이 각 잡힌 인사로 복명하고 몸을 날렸다. 진무가 사 준 송곳을 힘차게 꺼내 들고.
* * *
황신에게 일거리를 던져 준 진무는 뜨끈한 물에 몸을 씻고 모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황신이 떠난 지 한 시진. 대충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자신의 곁으로 접근하는 황신의 기운이 느껴졌다.
황신, 이 호랑이 같은 녀석. 생각만 했는데 나타나는구나.
은밀하게 다가온 황신은 마치 처음부터 진무의 옆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찾았어?”
“시장 외곽의 천막촌입니다.”
“천막촌?”
황신과 처음 진마평으로 들어올 때 보았던 곳이다.
진마평이 마적 소굴이긴 해도 사람이 사는 하나의 도시다. 잘사는 놈이 있으면 못사는 놈도 존재하는 법. 천막촌은 도시의 외곽에 존재하는 부랑자촌 같은 곳이다.
“거기서 뭘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있던데요.”
“……왜?”
“예? 그건 저도 모르죠.”
“…….”
먹을 걸 나눠 줘? 살수가?
격은 좀 떨어지지만, 차라리 부랑자촌의 사람들에게 착취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살막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오랫동안 사신으로 평가되어 왔고, 중원 살수들의 조종으로 군림해 온 무시무시한 단체다.
오죽하면 살막이 노린 대상은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겠는가.
은위단이 정보를 모으는 데 최적화되었다면 살막은 적진에 숨어들어 주요 인물의 모가지를 따 오는 데 특화된 놈들이다.
즉,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라는 소리다.
근데 뭐? 부랑자촌을 도와줘?
그럼 그 털보 놈의 돈을 훔쳐 갔던 것이? 설마. 살막이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진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일어났다.
그래, 고민해 봐야 머리만 아프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일단 만나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가자.”
“……예?”
“응?”
“……저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요?”
“근데?”
“……예?”
“니들 임무 중에 몇 날 며칠 안 씻는 거 익숙하잖아. 따라와. 기껏 찾은 놈들이 딴 데로 새 버리면 곤란하니까.”
진무는 황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휘적휘적 주점을 나가 버렸다.
“…….”
아니……. 그럼 처음부터 같이 찾든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힘없는 전령 따위가 천주가 간다는데 안 따를 수도 없는 일이다.
지는 다 씻어 놓고…….
망할, 천주 개……라는 욕이 요즘은 아주 생활이 되어 가는 황신이었다.
* * *
주점을 나온 진무는 곧장 천막촌 인근에 도착했다.
먼 거리도 아니었거니와 건물 위로 달려왔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막촌의 중앙에 피워진 모닥불.
그 주위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 황신에게 찾으라 했던 사내가 보였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아무리 봐도 살수라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흠, 일단 대화라도 해 봐야 하나?
어차피 살막이 있다는 하심곡의 위치도 알아야 하니.
“황신.”
“……?”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마라.”
“……?”
황신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사이 진무는 천막촌을 향해 걸어갔다.
사내를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미세한 살기가 피부를 따끔하게 찔러 온다.
황신이 그를 느낀 것인지 매섭게 주변을 경계했지만, 절대 나서지 말라던 진무의 명이 있었기에 묵묵히 따르기만 했다.
살기는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던 다섯 명의 은신자의 것이 분명하다.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뭐, 진무나 황신 정도가 되지 않으면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그들의 위치가 대충 어디에 있는지도 느껴지지만 일단은 참아야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심곡의 위치니까.
뭐, 물어봐서 말 안 하면 한 놈씩 줘 패서 토해 내게 하면 될 일이고.
“여어!”
사내의 근처로 다가간 진무가 친근하게 손을 흔들며 부르자 모닥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진무를 발견한 사내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제 뒤를 밟으신 게 맞았네요.”
담담한 녀석, 놀라지도 않는다.
“그래.”
“어째서죠?”
“궁금하기도 하고, 물어볼 것도 있고.”
“…….”
진무가 사내의 앞에 앉자 그가 잔잔한 눈길로 진무를 바라본다.
어린놈이 제법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
“하심곡이 어디냐?”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다섯 명의 복면인들이 진무와 황신의 목에 칼을 겨눴다.
황신은 매서운 기세를 뿜으면서도 따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굳이 명이 아니더라도 그들 정도로는 진무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말해 봐. 어디냐니까?”
“…….”
빙긋이 웃는 진무의 모습에 이제껏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사내의 눈동자에 조금은 놀란 빛이 스친다.
이자……. 분명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다섯 명의 살수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면서도 웃는다.
이런 경우 딱 두 가지였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 만용을 부리는 것이거나, 이런 것들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자신감이거나.
사내로서는 둘 중 어느 쪽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사내가 슬쩍 손을 들어 올리자 겨누었던 칼이 물러나고, 복면인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대담하신 분이군요.”
“뭐, 종종 듣는 소리긴 하지.”
피식 웃는 모습에 사내가 마주 웃는다.
“그런데 어째서 제게 그걸 묻죠? 차라리 마적들의 소문을 쫓아 보시는 게 더 빠를 텐데요?”
“아, 처음엔 그런 생각으로 찾아왔지.”
“…….”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니가 살막인데?”
“농담이 심하시군요.”
“농담이라니. 확신인데.”
“무슨 근거로요?”
사내의 물음에 진무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잠영수와 모묘법은 살막밖에 모르거든.”
사내의 표정이 굳는다.
동시에 짙은 살기가 싸늘하게 뻗어 나와 진무의 몸 주위에 가득하게 자리를 잡았다.
“저런, 안타깝네요. 그걸 알아보시는 바람에 수명이 단축되게 생겼으니.”
“오래 살고 있긴 하지.”
팔십 년에 삼 년 정도 더 살았으니까.
“근데, 너 말이야.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다.”
진무가 피식 웃는 순간 사내는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미 사내가 진무를 위협하기 위해 발출했던 살기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진무의 기운에 짓눌려 압살당하듯이 흩어져 버렸다.
사내의 동공이 잘게 떨린다.
“당신…… 대체…….”
“나? 살막을 되찾으러 온 사패천주. 일단 지금은 혁련무강의 전인으로 활동 중이고.”
“……!”
물어보니까 대답해 준 건데 토끼처럼 눈이 동그래져서 놀라기는.
어째 기껏 신분을 밝히면 다들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당신이 사패……천주라고?”
“왜? 뭐 잘못됐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쯧, 하여간에 말로 하면 다들 믿지를 못해.”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하얗게 웃는다.
“자, 그럼 어떻게 믿게 해 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