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무월루 인근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근의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무 일행이 청양상단주 금적산과 주루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
“저건 또 뭐야?”
뜬금없이 공사척이 나타났다.
공사척은 제갈세가에도 제법 알려진 고수였다.
뒷골목 무뢰배이기는 했어도 현기에 이르러 도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고수였고, 흑사방과도 연이 닿아 있었다.
단강구 제갈분가에서도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나서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사소한 일로 빚어질 수 있는 흑사방과의 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진무 일행이 금적산과 불법적인 일을 자행한다면 그 앞을 막는 자가 누구일지라도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금적산이 진무 일행을 죽이려 한다? 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비인 제갈무린이 중얼거렸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무당의 일대제자 진혜.
그리고 그의 가문 우가장.
우가장은 진혜를 대제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진무를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사형제끼리 살인 청부라? 무당의 꼬라지가 아주 잘 돌아가는군.’
제갈근이 한껏 비웃던 그때,
갑자기 진무가 튕겨 나와 피를 토하더니, 건물이 통째로 무너졌다.
그리곤 공사척과 싸우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외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늦었어?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했잖아. 아, 내상만 아니었어도.”
뭐?
제갈근은 진무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진무 일행이 물러났고, 공사척은 매서운 기세를 뿌리며 노려보기만 했다.
“자 그럼, 뒤를 부탁할게.”
“…….”
충분히 물러나 제갈근을 스쳐 지나며, 진무가 매우 친근하게 눈을 찡긋거렸다.
‘이, 이놈이 설마?’
이용당했다. 자신들이 있음을 깨닫고, 도망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공사척을 자신에게 떠넘긴 채.
이런 개자식이!
“이공자. 어찌할까요?”
“…….”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는 제갈근에게 청화대 무인이 물었다.
“망할.”
그 사이 무월루에서 도망친 진무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헉, 헉……. 젠장, 진짜 엿 될 뻔했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바닥의 바닥까지 긁어서 짜낸 공력으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 어지럽기까지.
하지만 일단은 달려야만 했다.
“사숙, 한데 어째서 도심으로 오십니까? 차라리 인적이 드문 산으로.”
청상의 물음에 진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멍청하긴.
등하불명(燈下不明)이랬다. 자고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놈들은 그들이 적의 소굴과 같은 단강구의 도심 안으로 도망쳤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무당으로 가는 길목이나 뒤지고 있겠지.
급한 대로 도심에 위치한 객점에 방을 구한 진무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공사척, 금적산. 이 개새끼들. 그리고 우가장?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후레자식들이 감히 내 목숨을 노려?”
어떻게 살아난 목숨인데.
우가장은 모르겠고,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험에 빠트린 금적산이나 공격해 온 공사척은 절대 가만둘 수가 없었다.
“청우! 청상!”
“예, 사숙.”
“요상단 가지고 있지?”
“예.”
“전부 다 꺼내!”
“…….”
요상단은 내상을 다스리는 환약의 일종이었다.
진무는 청상과 청우가 품에서 꺼낸 요상단 열 알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사, 사숙. 그걸 전부 다?”
청상이 당황스러워했지만, 열 알이고 백 알이고 상관없다.
최대한 빨리 회복을 해서 공사척을 친다.
잠? 휴식? 지금 그딴 거 하게 생겼어?
지금쯤이면 제갈세가가 물러나고 공사척이 자신들을 찾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진무는 사파 무인들의 생리를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추격하는 것은 딱 하루.
그 안에 찾지 못하면 분명 도망칠 것이다.
범을 잡을 때는 반드시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상처 입은 짐승만큼 무서운 것이 없고, 더욱이 진무의 뒤에는 무당이라는 어미까지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루는 내상을 회복하기에는 무척이나 촉박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무는 오랜 기억을 뒤져 한 가지 방법을 끄집어내었다.
광혈참혼기공(狂血斬魂炁功).
일시적으로 몸 안의 내기를 폭발시켜 사용하는 혈도술 중 하나였다.
본래 가진 내공을 사용하는 방법이니 정공이니 사공이니는 상관없다.
기혈을 폭주시키고 혼을 잘라 낸다고 할 만큼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런 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이 새끼들. 목 깨끗이 닦고 기다려라, 살아서는 세상 구경 못 하게 해 줄 테니.”
분노가 더 컸다.
이미 삼킨 요상단 열 알이 엄청난 열기를 뿜으며 단전을 충동질하고 있었다.
* * *
“이런 멍청한!”
퍼억!
던져진 벼루가 제갈근의 머리에 맞고 산산이 부서졌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지만 제갈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라? 그놈들을 도와줘? 같이 죽여 버려도 모자랄 판에?”
밤이 깊은 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제갈무린의 노성이 제갈세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청화대의 무인 스물을 이끌고 진무 일행을 감시하던 제갈근은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진무의 도주를 도와주고 말았다.
공사척과의 무의미한 대치는 한 식경 넘게 이어졌고, 서로가 경계하며 물러나고 난 뒤에는 진무 일행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망할 놈이…….’
제갈근은 제갈무린의 불호령을 들으며 턱이 부서져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버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놈들을 찾겠습니다.”
“찾아? 무얼?”
“놈들을 찾아서 공사척이 죽일 수 있도록…….”
순간 제갈무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자 제갈근은 자신이 단단히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보았나.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게냐! 뭐? 공사척이 죽일 수 있게? 네놈이 지금 고작 뒷골목 무뢰배를 도와서 무당의 제자를 죽이겠다는 말을 할 참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소자의 말은.”
“닥쳐라!”
“…….”
제갈근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급한 마음에 실언을 해 버리고 말았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구나.”
“아버님, 그게 아니라.”
“닥치라 했다.”
“…….”
“밖에 모 대주 있는가!”
제갈무린의 부름에 가주실 밖에서 기다리던 청화대주 모익상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놈을 당장 거처로 데려가라.”
“아버님…….”
“듣기 싫다. 명이 있을 때까지 거처에서 근신하라! 한 발짝이라도 나섰다가는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것이다!”
정말로 잔인한 아비였다.
무당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청화대의 무인까지 내어 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더니, 실수하는 순간 단칼에 내쳐 버린다.
하지만 제갈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말을 보탰다가는 아비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썩 꺼지거라!”
서슬 퍼런 축객령에 제갈근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가주전을 빠져나왔다.
‘진무, 망할 무당파 도사 놈. 모든 게 네놈 때문이다.’
두 번.
한번은 굴욕을 당했고, 또 한 번은 이용당했다.
그로 인해 기껏 얻은 아비의 신임마저 잃어버렸다.
“꼴을 보니 또 아버님께 혼이 난 모양이지?”
모익상과 함께 가주전을 빠져나온 제갈근을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
비꼼이 담긴 목소리의 주인.
제갈근의 배다른 형이자 단강 제갈분가의 대공자 제갈각.
“형님을 뵙습니다.”
“치워라. 마음에도 없는 인사.”
“…….”
제갈각의 반응에 고개를 숙인 제갈근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쯧쯧, 멍청한 자식. 소 뒷발에 쥐를 잡는가 싶더니. 하긴 천한 놈이 그 쉬운 감시조차 제대로 해낼 리가 없지.”
폭언에 가까운 제갈각의 말에 제갈근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익숙했다.
늘 그래 왔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세가를 떠나 도문에 귀의하는 것이 어떠냐? 무당의 제자를 살려 줬으니 기꺼이 받아 줄 터인데.”
“…….”
“멍청한 놈.”
제갈각이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제갈근을 일별하고 집무실 쪽으로 다가갔다.
“아버님, 각입니다.”
“들어오너라.”
제갈각이 집무실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제갈근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뿌드득!
“두고 봐라. 내가 어찌 소가주가 되는지. 네놈이 언제까지 그 잘난 대가리를 빳빳이 들 수 있을지.”
불이 이글거릴 정도로 집무실을 매섭게 노려보던 제갈근은 거처로 돌아갔다.
* * *
단강구 야시장이 위치한 외곽 골목에는 제법 규모 있는 장원 하나가 위치해 있었다.
무법의 세계 속에 살며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척파의 본거지였다.
그들이 수많은 범법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숨지 않는 것에는 무수한 뇌물과 흑사방이라는 거대한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이 다가오는 시각.
화롯불이 켜진 거대한 장원에는 다수의 인원이 빠져나갔음에도 평소보다 많은 인원으로 채워져 있었다.
뒷골목 부랑아, 배수, 도둑까지.
공사척은 단강구에서 자신의 힘이 미치는 모든 이들을 동원했다.
무공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무 일행의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백여 명에 가까운 숫자가 동원되었고, 혹여 그들과의 싸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공사척은 자신의 수하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을 추격에 참여시켰다.
진무라는 무인이 제법 실력이 있어 보였으나 내상을 입은 채이니 그들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도 연락이 없단 말이냐!”
“예. 아직 찾지 못한 듯합니다.”
“이런 멍청한 자식들 같으니!”
공사척이 홧김에 옆에 있던 화로를 걷어차 버렸다.
한아름은 될 듯한 청동화로가 거세게 쓰러져 바닥에 불을 쏟아 내었다.
제갈세가의 청화대가 물러간 이후 공사척은 자신이 완전히 속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장 수하들을 무당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보냈다.
밤? 그딴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도주해 무당으로 가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이었다.
무당 제자의 목숨을 노렸다.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무당의 도사들이 떼거리로 나타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동문의 죽음에 엄청나게 집요함을 보이는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당장은 도망친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쫓겨 다닐 게 뻔한 일이었다.
한 가닥 연을 맺고 있는 흑사방이 그의 뒷배이기는 했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분명 그들은 무당과 분쟁을 만드느니 그 끈을 잘라 버리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무조건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든 찾아서 죽여야만 했다.
공사척은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곽기!”
“예. 두목.”
“지금 즉시 우가장을 찾아가라. 무당의 제자들이 도주했음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라.”
“우가장에서 도와줄까요?”
“흥, 우리가 다치면 놈들도 무사할 리 없다.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추격하는 인원은 많을수록 좋다.
더욱이 우가장의 무인들이라면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다.
자신의 수하들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리라.
“서둘러라.”
공사척의 명령에 곽기가 다급히 뛰어나갔다.
그 순간,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
장원의 정문이 통째로 터져 나가고 공사척의 명령을 받고 나갔던 곽기가 피떡이 된 얼굴로 튕겨 날아왔다.
“뭐, 뭐냐?”
“무슨 일이냐?”
별안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모두가 어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야, 버젓이 장원까지 있으니 찾기도 쉽고 좋네.”
빈정대는 말과 함께 자욱한 먼지를 뚫고 세 명의 사내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히 걸어 들어왔다.
진무, 그리고 청상과 청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