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진무와 양소방이 안내된 곳은 적생을 위해 마련된 군사부의 회의실이었다.
직접 차를 내온 적생이 양소방에게 먼저 권했다.
“용정(龍井)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요, 용정이라고?”
“예. 무풍개 어른을 대접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으나 서호의 것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서, 서호!”
양소방이 과장되게 놀란 표정으로 찻잔을 잡았다.
“핫핫, 이거 사파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이야. 과연 사패천의 총사이시오. 이 거지의 입이 모처럼 호사를 누리겠소이다.”
“별말씀을…….”
“허허, 그나저나 존함이 어찌 되시오?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함자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낱 서생에 불과합니다. 제 누추한 이름자가 귀하신 분의 귀를 어지럽힐까 저어됩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사패천의 총사를 아무나 한단 말이오? 앞으로 만날 일이 많은 듯하니 부를 수 있게 위명(僞名)이라도 알려 주시오.”
“그럼, 그저 총사라 불러 주십시오.”
둘을 바라보던 진무가 피식 웃고 만다. 겉으로는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한 대화였으나 그 속에는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치열한 공방이 숨어 있었다.
하긴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니 궁금해할 만도 했다.
이름을 거듭 묻는 걸 보아하니 아마 작정하고 털어 보려는 거겠지.
그의 삶을 털다 보면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될 것이고, 재수가 좋으면 약점이라도 하나 얻어 쥘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진무로 인해 휴전 중이나 사패천은 여전히 정무맹의 적이 아니던가?
“어르신, 그런데 뒤의 저 친구는 누굽니까?”
진무가 적생을 위해 화제를 돌렸다.
“어?”
진무로 인해 적생과의 대화를 차단당해 버린 양소방이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각출을 불렀다.
“각출아.”
“예.”
“와서 무당지검께 인사 올리거라. 나이는 너보다 어리나 무당을 대표하는 영웅이니 예를 다해야 할 것이다.”
양소방의 말에 각출이 다가와 공손하게 진무에게 허리를 숙였다.
“각출입니다.”
“진무요.”
“…….”
조금 더 예의 바른 태도를 기대했기 때문일까?
숙였던 상체를 세운 각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자신의 인사에 마주 고개도 숙이지 않고 고작 손이나 슬쩍 들다니.
정파에 알려진 진무는 하늘이 내린 영웅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보니 말투며 행동이 파락호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번에 들인 내 제자일세.”
“제자요? 바쁘신 분이 그런 것도 키우십니까?”
“말 말게. 방주가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와서는 위협까지 하는 통에 아주 혼이 났다네.”
“코뚜레라도 꿰인 모양이네요.”
“코뚜레? 핫핫, 옳네, 옳아. 암 코뚜레가 맞지. 맞아.”
진무의 심드렁한 말에 양소방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각출은 진무의 그런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무당지검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고작 약관을 조금 넘은 나이에 불과한 자가 고수면 고수지 감히 개방은 물론 정파의 큰 어른인 무풍개에게 저따위로 말하다니.
불쾌한 기색으로 물러나던 각출이 진무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싫은 티를 팍팍 내며 고개를 홱 돌렸다.
“…….”
어쭈, 이 새끼 봐라. 감히 나한테 그따위로 눈깔을 떠?
각출의 눈빛에 살짝 꼬라지가 난 진무가 빈정거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제자가 성깔이 좀 있네요.”
“이해하게. 우리 개방도들이 좀 그런 감이 있질 않은가. 그래도 내 제자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후개였던 아이라네.”
“후개요? 쟤가요?”
진무가 짐짓 놀란 투로 말하며 웃자 각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진무도 진무인데 스승이 저놈에게 너무 저자세이지 않는가?
“쓸 만한 아이일세. 실은 자네와 친분을 만들어 주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친해지라고?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아주 열심히 노력해 보도록 하죠.”
그래, 친해져야지. 암.
원래 우리 나이에는 서로 주먹다짐도 오고 가고 그러면서 친해지는 것이 아니던가?
나중에 날 야린 죄를 물어 단단히 후회하게 해 주마. 그러고 나서 너를 거지 노예 이 호로 삼을 것이다, 이 양소방 제자 놈아.
머지않아 올 즐거운 미래를 그린 진무가 각출을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어찌 된 일이신가요? 적진에.”
“이 사람아, 적진이라니? 휴전 중이니 적은 아니지. 그리고 자네가 직접 연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
아, 그랬지.
썩을, 완전 잊고 있었네.
“실은…….”
양소방이 옆에 묵묵히 앉아 있던 적생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군사가 자네의 의중을 알아보라 했네.”
“의중이요?”
“그렇네.”
“…….”
“마침 총사도 함께 계시니 묻겠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뭘요?”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사패오왕은 분명 자네를 수장으로 여기고 있네. 여기 총사 분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
역시……. 이놈의 영감탱이가 눈치를 챘구나.
하지만 차라리 잘되었다.
양소방의 말투를 보니 내가 아주 사패천의 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안 그래도 이제부터 어찌할까 조금 고민스러웠는데 아주 등을 떠밀어 주는구나.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아예 사패천주로 공인될 수도 있겠어.
자, 그럼 어디 미끼를 던져 거지 한 마리 낚아 볼까?
“글쎄요. 그렇지 않아도 사패천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무당의 제자인 제가 어찌 사파인들의 수장 자리에…….”
진무는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티 안 나게 양소방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이 사람! 뭐가 고민이란 말인가? 저들이 원하면 그리하는 게지.”
“……예? 그건 아무래도 좀. 일단은 손님 신분으로 있겠다 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총사님?”
진무는 적생에게 의견을 구하는 척하며 넌지시 신호를 보냈다.
“……그……게.”
망설이는 듯한 눈빛으로 서두를 끌던 적생이 긴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하아, 사실 무풍개 어른의 말씀처럼 저희도 걱정입니다.”
“예?”
“사패오왕은 물론 저도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좀 전에도 보셨듯 무당의 제자가 사패천주가 될 수는 없다시면서 한사코 거절하시는 통에…… 진무 도장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고…… 더욱이 저희가 은혜를 입은 마당에 강권을 하기도 그렇고…… 다들 제게 설득을 해 보라며 난리도 아닙니다.”
“아, 아니, 그랬단 말입니까? 어쩐지, 내 안 그래도 밖에서 진무를 대하는 사패오왕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여겼더니!”
적생의 말에 양소방이 반색하면서 흥분한다.
잘한다, 잘해! 아주 죽이 착착 들어맞는구나!
에헤라~디야, 물이 들어오니 노를 저어라!
진무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이 사람 진무 도장! 당장에 저들의 권유를 받아들이게.”
“하지만…….”
“대군사께서 나를 보낸 게 바로 그 때문일세.”
“예?”
“자네가 저들의 수장이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면 설득하라고 말이야.”
“……아. 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제가 사패천을 도운 것은 사실이나, 사패천은 사문의 원수나 다름없습니다. 제 스승님께선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계셨고요.”
어찌 모를까?
그 스승을 위해 오랜 시간 병 수발을 들었던 것이 진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양소방이다.
“이 사람아, 어찌 이리 답답한가? 과거는 과거일 뿐일세. 이전에 어떻게 엮인 관계건, 이제 자네가 사패천의 주인이 되어 계도한다 생각해 보게. 그만한 공덕을 누가 쌓을 수가 있겠는가? 자네야말로 정사 연합의 구심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일세. 부디 용단을 내려 주시게.”
양소방의 말에 진무가 고심하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음, 말씀은 알겠습니다. 허나 이런 중차대한 일을 저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스승님께 여쭙고 장문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장문…… 음…….”
진무의 말에 청산유수처럼 나불거리던 양소방의 입이 그제야 잠시 멈춘다.
하지만 이미 다 올라온 물고기였다. 뜰채만 가져다 대면 끝이다.
“당장 채비하게.”
“예?”
“무당으로 가세. 장문인의 허락을 받고 나면 내 맹주께 아뢰어 정무맹 예하 모든 문파에 이 사실을 공표하게 하겠네.”
“……갑작스러운 말씀에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제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암, 줘야지. 하나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네. 다시 말하지만 자네의 결정으로 정사의 무림이 역사에 없는 화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네. 이는 만생(萬生)을 평안케 하라는 무당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야.”
흥분해 외치는 양소방을 향해 진무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세상 떠나가라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연했다. 북진에서 신분 세탁을 훌륭하게 했더니만 이제는 제발 사패천주가 되어 달라 통사정을 하지 않는가?
* * *
다음 날, 적생에게 미리 교육을 받은 사패사왕이 제법 그럴싸한 연기로 당장에 즉위식을 거행하겠다며 난리를 쳤다.
일이 생각보다도 더 순조롭게 진행되자 속으로 쾌재를 부른 진무는 한껏 꾸며 낸 난처한 표정으로 수락의 의사를 비치면서도, 즉위식만큼은 무당의 허락을 얻고 난 뒤에 올리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 가증스러움을 알 길 없는 양소방이 침까지 튀겨 가며 진무를 칭찬해 대는 통에 각출은 몇 번이고 귀를 후벼야만 했다.
사패천에 기거하기 시작한 양소방과 각출이 유례없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사이, 진무는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생.”
“예.”
“늦었지만 받아라.”
진무가 양소방으로 인해 깜빡 잊고 있었던 보자기를 적생에게 내밀었다.
“이건…… 허억!”
보자기를 열자마자 우르르 나오는 엄청난 양의 재물에 적생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보태 써. 그렇다고 흥청망청하지는 말고.”
“아, 암요, 암요! 벌써 산서상회를 맡은 유장이 상단의 이득분을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었는걸요.”
그리 말하면서도 적생은 보자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음, 당분간 상단에서 나오는 이득은 산서상회의 영역을 넓히는 데 사용하라고 해.”
“영역을요?”
“그래. 이번에 정무맹으로 가게 되면 장기적인 휴전을 주장하고 연합체의 구성에 대해서 말할 거야.”
“아!”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다시 갈라지게 될 거야.”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어? 진짜?”
“예.”
“…….”
“휴전을 하게 되면 문파들이 자체적으로 세력권을 확장하기 어려워지겠지요. 정파와의 마찰을 일으키기는 껄끄러울 테니까요.”
“……어.”
“해서 상계로 눈을 돌리시는 것이 아닙니까?”
“……아…… 어.”
“상계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해 자금을 비축해 놓으면, 후에 휴전이 끝나고 난 뒤에도 큰 문제 없이 전쟁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맞아.”
무서운 놈. 몇 마디 하지도 않았구만 귀신같이 잘도 알아채네.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잊었어? 나 무당지검이야. 그리고 이놈 저놈 잔뜩 끌고 가면 저들에게 오히려 위화감만 느끼게 할 뿐이다.”
“음, 하면 소동보와 황신만이라도 데려가십시오.”
“걔들을 왜?”
“천주님의 수발을 들 사람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아이들 제법 실력이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하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면 원래 남들보다 빠르게 느는 법이니까.
“소동보는 살막을, 황신은 하오문을 이어받을지도 모를 아이들입니다.”
황신은 모르겠고, 소동보는 살막의 소막주니 당연하다.
“……뭐, 좋아. 그러지.”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예?”
“산서상회가 영역을 넓힐 때 말이야.”
“……?”
“웬만하면 단강구 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진무의 말에 적생이 빙긋이 웃었다. 그곳에 무당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양소방 불러. 출발하게.”
“벌써요?”
“쇠뿔은 단김에 빼는 법이지.”
“알겠습니다.”
그날, 다섯 필의 말이 사패천을 떠나 호북성을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