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근데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직접 나설 수는 없고.
일환이야 괴충 놈과 같은 편이니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고 해도 얻는 게 없으니 싸우려 들지 않을 것이고.
체력을 회복한 소동보와 황신에게 맡기면 몸에 바람구멍을 시원하게 뚫어 놓을 테니 제쳐 두고.
“……왜 그러세요?”
진무와 시선이 얽힌 각출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흐음, 딱 좋네.
안 그래도 저놈 특기가 개 패는 무공이렷다.
그래, 각출 너로 정했다.
“각출아.”
“……예?”
“나는 너를 믿는다.”
어울리지 않게 온화한 눈빛.
말 속에 담긴 믿음과 신뢰.
아, 이 미친 괴물 천주가 갑자기 왜 이러지?
“저기 시끄러운 새끼 보이지?”
아까부터 모두가 보고 있었다.
“가서 조지고 와.”
“예? 제가요?”
응, 니가요.
진무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기 전에 몇 가지 알려 주마. 첫 번째, 너의 타구봉법이 발전하려면 폐력취변이라는 핵심을 기억해야 할 거야.”
“……?”
폐력취변(廢力取變).
힘을 버리고 변화를 취하라고?
아니 그럼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할 텐데?
각출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진무가 혀를 찬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 힘을 빼면 속도는 빨라지고 변화는 더 많아진다. 가랑비도 맞다 보면 흠뻑 젖는 거야. 쓸데없이 일격에 적을 쓰러뜨리려 하지 마. 허점만 생기니까.”
“……!”
“그리고 두 번째, 니 손에 들린 그거.”
진무의 말에 각출이 손에 들린 청죽봉을 힐끔 쳐다본다.
“대나무는 잘 휜다. 잊지 마.”
“……아!”
괜히 후개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각출이 금세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다.
구타의 형식을 취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몸 안의 기혈을 자근자근 풀어 주는 육체적 가르침 이후 처음 육성으로 전해진 진무의 가르침이었다.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각출에게 화답하듯이 진무가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세 번째.”
푸석.
가볍게 오므라든 손안에서 바스러져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돌의 잔해.
꿀꺽.
각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른침을 삼켰다.
“지면…… 하늘이 왜 노랗게 보이는지 알게 해 줄게.”
“옙!”
“자, 이제 가 봐.”
담담한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각출이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청죽봉을 움켜쥔 채 나섰다.
“괜찮을까요? 가르침을 바로 구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새 정이 좀 들었는지 소동보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작게 물었다.
“안 괜찮으면 뒈지겠지.”
“그, 그……렇군요.”
그게 할 소리냐?
지가 가서 싸우고 오라고 시킨 주제에 무슨 파리 목숨 논하는 것도 아니고…….
와중에 다시 앉아서 턱까지 괴며 구경하려는 진무의 모습에 소동보가 질린 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각출을 바라본다.
“어이, 거기!”
“……거, 거기?”
당장에라도 막고 있는 마령대의 무인들을 베어 버리려 살기를 피우던 괴충의 눈가가 황당하다는 듯 일그러진다.
자신을 향해 대나무를 들고 다가오는…… 거지? 개방?
중원의 무인 따위가 어찌?
지금까지 화가 나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괴충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진위 옆을 찬찬히 살핀다.
한 무리의 사람들.
손만 대도 죽을 것 같은 민초 일가와 곱상하게 생긴 어린 꼬마, 잘생긴 멀대.
그리고 검은 피풍의를 입고 턱을 괸 채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어느 모로 봐도 육동천 약강지부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
“설마 전부 중원……인? 하!”
괴충이 찌푸려진 눈으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중원 놈들을 살려서 대전각 안으로 들인 것도 충분히 어이없을 일이건만, 이건 아무리 봐도 극진히 모시는 꼴 아닌가. 와중에 마령대주란 놈은 나 몰라라 뒤로 물러나 있어?
“허, 이런 미친놈들이 감히 중원의 잡것들을 끌어들였다, 이거지.”
생각할수록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이, 일환. 이게 지금 뭐 하자는 짓이지?”
“…….”
“중원 놈을 만났으면 당장에 채석장 노예로 보내든지, 아니면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모시고 있어?”
괴충의 힐난에도 일환은 말없이 얼굴만 굳히고 있었다.
“아, 알겠네. 알겠어. 어쩐지, 나를 못 들어오게 막더니.”
“…….”
“그래, 꼴에 육동천에서 두 번째로 강한 고수라고 내 밑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게지. 내 밑에 들어올 바에는 중원과 손을 잡고 마교를 배신하겠다, 뭐 이런 건가?”
“…….”
괴충의 입에서 배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잠자코 있던 일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뭐야? 찔리나 보지?”
“…….”
“그럼 어디 설명해 봐라. 개방 소속으로 보이는 이 거지새끼는 뭔지.”
괴충의 말에 일환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사실 아직 진무 일행의 정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어렴풋이 중원에서 온 무인임을 알고 있었으나 하도 처맞은 통에 무서워서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과 마령대는 패배와 함께 그의 힘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세력이 아닌 한 사람에게 당한 것이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미친놈……. 중원과 결탁한 마인에 대한 처결이 무엇인진 알고 있겠지?”
“…….”
“중원 놈들과 함께 모조리 죽여 주마.”
괴충이 살기로 가득한 눈을 번뜩이자 일환이 일그러진 얼굴로 급히 진무를 살핀다.
“호오? 죽여 주겠단 말이지?”
느긋하니 턱을 괴고 있던 진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눈매가 가늘어진다.
엿 됐다.
직접 나서지 않고 거지 놈을 내세웠을 때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잘 지내다가 가고 나면 그만인 것인데 저 멍청한 괴충 놈이 지금 있는 대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육동천주보다 상위의 고수일지 모르는 괴물이었다.
나중에 천산에 요청해 추격대를 파견하면 모를까, 지금은 안 된다.
까딱하다가는 육동천 지부가 피로 물들 수도 있는 일이다.
“괴충……. 말을 가려서…….”
시종일관 괴충을 째려보는 틈틈이 진무의 눈치를 살피던 일환이 진땀을 흘린다.
“야, 시끄러운 새끼. 말은 다 끝났냐?”
“…….”
순간 상황을 정리한 것은 각출이었다.
한 장의 거리를 두고 청죽봉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각출이 시퍼런 독기를 뿜어내며 괴충을 노려봤다.
“하, 정말 어이가 없군. 시끄러운 새끼? 빌어먹을 거지새끼 따위가 감히 나 괴충에게?”
“뭐든 간에! 내가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러니까 그만 씨부렁거리고 이리 좀 와 봐.”
“…….”
거지의 찰진 말투와 건방진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모습에 괴충이 말문이 막힌 듯이 코를 벌렁거리며 스멀스멀 분노를 피워 올린다.
괴충을 막고 있던 마령대의 무인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를 살피자 일환이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길이 열리고…….
폭발하는 괴충의 분노.
“이런 개자식! 죽여 버리겠다!”
파앙!
일 보를 내디디며 높이 솟구친 괴충의 곡도가 섬뜩한 마기를 머금고 거칠게 휘둘러진다.
각출은 그 모습을 보다 말고 고개를 돌려 진무를 힐끗거렸다.
스윽.
웃으며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진무.
죽이겠다고?
하긴 저 괴물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각출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청죽봉을 힘껏 움켜쥔다.
허공에 뜬 괴충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품은 채 곡도를 수직으로 그어 오고 있었다.
그래, 부모 잘 만난 애새끼치고는 대단한 기운이네. 자랑할 만하다.
근데 너 그거 아냐?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맞는다는 게 뭔 뜻인지?
황신, 소동보…… 그리고 나.
우린 다 알아.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나한테 맞으면 그 정도까진 아닐 테니까.
스윽.
자세를 낮춘 각출이 청죽봉을 움직인다.
취릿.
힘을 빼고 최대한 속도에 집중하니 청죽봉이 부러질 듯이 휘어지며 잔상을 만들어 낸다.
파아앙!
하나에서 수십으로 변했던 청죽봉이 사선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따라 빠르게 솟구친다.
따아앙!
대나무와 곡도의 충돌이 만들어 낸 거친 파열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흥! 이까짓 죽봉(竹棒)!”
괴충이 막힌 칼에 힘을 가하자 오히려 힘을 뺀 각출은 곧장 뒷걸음질 쳐 물러난 뒤 허리를 젖히며 칼을 밀어 낸다.
스걱.
기운이 담겨 있음에도 청죽봉의 윗부분이 사선으로 잘려 나가고, 괴충이 칼이 각출의 가슴 위를 스쳤다.
하지만 피한다고 다가 아니었다. 지나갔던 칼이 당기는 힘을 따라 각출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슷! 스스슷!
수십 가닥으로 갈라진 검기에 각출이 풀쩍 풀쩍 뛰어다니며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칼이 지나간 자리마다 옷이 잘리고 상처가 남는다.
완전히 수세에 몰린 각출.
저 정도까진 아닐 것인데?
자신들이 가진 은신과 살수의 무공을 동원한다면 몰라도 각출의 무공은 황신과 소동보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피하는 데만 급급한 모양새인 걸까.
“짜식……. 그래도 좀 달라지긴 했네.”
“……?”
도대체가 인성이 어디까지 글러 먹으면 이 상황에서 웃으며 저딴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둘 중 하나가 나섰으면 벌써 끝날 일을 가지고…….
아니, 그리고 맞기 싫어서 나선 사람이 저 정도로 고전하고 있으면 걱정이라도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저놈의 개천주는 측은지심이라는 게 아예 없는 건지 뭔지.
소동보와 황신은 도통 진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방이 이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각출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진무의 그것과 닮아 보인다.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에 밝혀진 홰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는 웃고 있었다.
심지어 수십 초의 공격에 노출되어 다급히 도망쳐 대면서도 점점 짙어지기까지 하는 미소.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괴충의 칼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각출의 몸에 닿지 못하는 반면 각출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져 있었고, 어지러웠던 보법 또한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느리기는……. 이제 대충 알아챈 모양이네.”
“…….”
황신과 소동보는 여전히 의아함을 지우지 못한 듯했으나 진무의 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언뜻 난잡할 정도로 비틀거리기에 행로도 없고, 정형화된 투로도 없어 보이나 그것이 바로 매질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걸인의 걸음, 개방의 피추보(避捶步)였다.
힘을 버리고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한 각출이 드디어 제 실력을 온전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법이 저 정도면 타구봉법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런 망할 자식이!”
초식이 더해 갈수록 상처가 늘어야 할 각출의 몸에 몇 수 전부터 아예 칼이 닿지도 않게 되자 괴충의 분노가 더욱 강해진다.
벌써 수십 초.
지부장의 직책으로 약강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어야 할 자신이 고작 거지 따위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하압!”
기합성과 함께 끌어 올린 마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너울거리고 눈에서는 혈광이 토해져 나왔다.
그 모습에 각출의 눈빛이 변한다.
무인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신의 실력이나, 그 이전에 평정심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법.
자랑할 만큼 강하지만, 분노해 날뛰기 시작한 괴충의 모습은 그저 힘 좋은 개새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되었다. 비로소 네놈이 개가 되었으니 이제 보여 주마.
개 잡는 최고의 무공이 바로 타구봉법이니라!
파아앙!
괴충의 마기를 피해 멀찍이 물러났던 각출이 힘껏 지면을 박차고 곧장 뛰어들었다.
슈아악!
달려드는 각출을 향해 괴충의 칼이 거칠게 횡격으로 베어진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으로 꽉 찬 각출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횡격에 이어 직도가 떨어지고, 곧이어 그물 형상의 검기가 덮쳐 왔지만, 각출은 요리조리 피해 내며 순식간에 괴충의 근처까지 접근했다.
“이노옴!”
쿠아아아!
마기를 머금은 칼이 수직으로 떨어져 각출의 머리를 노린다.
후우웅!
부딪힌 지점에서 일어났어야 할 파열음은 더 이상 없었다.
각출은 가공할 기운이 실린 칼을 쳐 내지 않고 맞붙은 그대로 흘려 방향을 비껴 놓았다.
“……!”
흘려진 곡도가 땅바닥을 때리게 되자 괴충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오른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은 각출의 청죽봉이 충분히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잇몸까지 드러내며 히죽 웃은 각출이 가볍게 움켜쥔 청죽봉을 움직인다.
휘휘휘휘!
바람 소리와 함께 청죽봉이 버들처럼 휘어지며 타구봉법이라는 희대의 절학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사나운 개가 뛰어듦에 대갈통을 후려쳐 꾸짖으니 당두봉갈(當頭棒喝)이라.
뚜아악!
“크악!”
두개골이 빠개지는 충격에 괴충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 꼴사나운 인상이 채 펴지기 전에 개새끼의 어깨를 짓눌러 밟아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게 하니 곧 압견구배(壓肩狗背)였고.
“크윽!”
각출의 발에 짓눌려 바닥에 처박힌 괴충이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수를 준비하며 청죽봉을 높이 쳐든 각출.
자, 이제 맞고 입을 다물어라.
후아아악!
하늘이 청죽의 푸른 빛무리로 물든다.
타구봉법의 마지막 절초.
천하 개새끼들을 모조리 때려잡는 천하무구(天下無狗).
보이는 모든 곳에 자리 잡은 청죽봉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목표 없이 떨어져 내린 푸른 섬광은 괴충은 물론 주변의 바닥까지 모조리 두들겼다.
그 한 방 한 방이 소나기처럼 강하진 않았으나 변화는 시선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모든 곳을 메울 정도로 가득했다.
두두두두두!
“크엑! 크아아악!”
괴충의 몸과 땅을 가리지 않고 작렬하는 타격이 쌓이고 쌓여 비명을 만들어 낸다.
각출은 마음에 가득한 울분을 토해 내기라도 하는 양 미친 듯이 웃어 젖히며 몽둥이찜질을 내렸다.
진무에게 맞아 왔던 모든 설움과 울분, 실력이 달려 나이 어린 소동보와 황신을 형님으로 모셔 온 그 원통함.
“으아아아아!”
온 힘을 다해…… 뒈져 버려라! 이 마교 자식아!
나는 개방의 후개였으며!
무풍개 양소방의 제자이자!
걸신의 삼위체라는 지고한 체질을 타고난 개방의 각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