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육동천을 뺏어?
괴뢰가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별 시답잖은 어린놈이 자신을 향해 헤죽거리고 있었다.
와중에 마령대주 일환이라는 놈은 뒤로 물러선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칼의 손잡이를 잡고 주위를 경계한다.
“허, 이거 참…….”
괴뢰가 장탄식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목소산을 바라봤다.
“이보게, 수석장로.”
“예.”
“혹시 쟤들이 나를 위해서 깜짝 연극이라도 준비한 걸까?”
“…….”
“봐 봐, 고작 열 명이야. 그런데 나에게서 육동천을 빼앗겠다는군.”
“…….”
눈동자가 죄 가려질 정도로 볼살을 올려 기괴하게 웃는 괴뢰의 모습에 목소산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러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의 몸에서 짙게 피어나는 심상치 않은 마기.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말이야 우스갯소리쯤으로 내뱉고 있으나 오랫동안 육동천을 다스려 온 괴뢰가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을 도발해 온 재수 없는 표정의 무인과 그에게 달라붙은 듯한 일환의 모습만으로 충분했다.
이쯤 되면 약강지부 자체가 넘어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터다.
하물며 오랫동안 칠동천의 땅을 탐내 온 괴뢰였으니 당장에 눈앞의 인물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을 터.
그가 곧바로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그들 사이에 자신이 아껴 마지않는 늦둥이 아들 괴충이 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얼굴 가린 쟤는 분명히 내 새끼가 맞는 것 같은데……. 예쁜 내 새끼가 선물까지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 이 아비를 배신할 리도 없고.”
목소산이 답을 하지 않자 괴뢰가 말 위에 앉은 제 아들을 쳐다본다.
슛!
미세한 파공성과 함께 괴충의 얼굴을 감고 있던 천이 무언가에 잘려 나간 것처럼 벗겨진다.
“…….”
눈을 부릅뜨고 괴뢰를 바라보는 아들.
얼마나 맞은 것인지 양쪽 눈은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고 머리카락은 망나니처럼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를 누가 저리 만들었을까?”
“…….”
진무는 나긋나긋한 어조와는 반대로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한 채 무거운 걸음을 내디디는 괴뢰를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괴뢰가 제 아들을 구하려는 것쯤이야 알겠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괴충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기도 하고.
덕분에 육동천의 중심부까지 힘들이지 않고 온 데다 계획대로 괴뢰를 마주했으니 새삼 그가 아들내미를 구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그래, 모처럼 눈물겨운 부자 상봉인데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좀 있으면 둘 다 비슷한 모양새로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인데 그 정도 아량이야 못 베풀 것도 없다.
그 사이 목소산이 조심스럽게 몸을 조금 더 뒤로 물렸다.
상황이 좋지 않다.
괴뢰의 강함이야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일환은 괴뢰 다음의 고수.
그가 고개를 숙인 젊은 놈이 그보다 약할 리는 없을 것이니, 만약 저 둘이 합공이라도 해 온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동천주의 거처에는 경계 병력이 없었다.
나선의 방어진을 굳게 믿기도 했고, 워낙에 주변을 잘 믿지 않는 괴뢰가 암살을 우려해 자신의 거처에 아무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처 밖에서 지키고 있는 호법대에 적의 습격을 알려야만 했다.
턱.
“……?”
스윽.
“……!”
목덜미에 차갑게 와 붙은 날 선 쇠붙이.
“어차피 당신이 안 불러도 싸움이 시작되면 다들 듣고 몰려올 것 아닌가? 그러니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등 뒤가 뜨끔해지는 것과 동시에 귓가에 들리는 스산한 목소리. 어, 언제?
목소산을 제압한 것은 환영미리보를 펼쳐 은밀하게 접근한 소동보였다.
그러고 보니 일환과 함께 온 이들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재수 없는 표정의 사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나, 곱상한 놈과 거지는 소년을 호위하듯 감싸며 물러나 있었고 일환과 마령대는 잔뜩 긴장한 채 괴뢰를 멀찍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구, 내 새끼. 이 상처 좀 보게.”
괴뢰가 제 아들을 말 위에서 들어 내린다.
“쯧쯧, 마혈이랑 아혈이 제압되어 있었구나. 어쩐지 예의 바른 네가 아비를 보고 인사조차 하지 않더라니.”
괴뢰가 괴충의 혈도 몇 곳을 어루만진다.
“…….”
하지만 뭔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지 자꾸만 빨라지는 손길.
시간이 갈수록 괴뢰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눈동자에 맺힌 분노가 소용돌이처럼 품어졌다가 뻗어 나왔다.
“뭐가 잘 안 되나 봐?”
“…….”
“그 뭐냐, 니가 약해서 그래, 약해서. 그놈 그거 내가 직접 점혈했거든.”
그 말에 괴뢰의 고개가 진무를 향해 뻣뻣하게 돌아간다.
이죽거리는 만큼이나 약을 올리듯이 빙글거리며 웃는 진무의 모습에 괴충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진다.
기괴한 웃음은 악귀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고, 투실한 볼살에는 눈으로 드러나 보이도록 근육이 진하게 잡혀 있었다.
“풀어 줘?”
“……네놈, 뭐냐?”
“나? 말했잖아. 육동천을 빼앗으러 온 사람이라고.”
“…….”
지랄 맞게 헤실거리는 꼴이 한없이 경박하다.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곳도 아닌 육동천 안에서.
“……감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따위가.”
“에이, 피 마르면 죽어.”
“…….”
뿌드드득.
한마디를 지지 않는 진무의 말에 어금니를 세차게 갈며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괴뢰가 시선을 옮겨 일환을 쳐다본다.
“이게 네놈의 선택이더냐?”
“…….”
“고작 이런 애송이 때문에 나를 배신했단 말이지.”
괴뢰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그때껏 침묵을 지키던 일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배신은 동천주께서 먼저 하였소.”
“뭐?”
“나는…… 능력도 되지 않는 자의 아래에 있고 싶지 않소.”
“…….”
“그것이 이유더냐? 내 아들의 밑에 있으라 해서?”
“…….”
“나의 명령이었다. 네놈이 주인으로 모셔 온 이 괴뢰의 명령이었어.”
“지금 나의 주군은 저분이오.”
보란 듯이 일축하는 일환의 대답에 타오르던 괴뢰의 분노가 오히려 싸늘하게 식는다.
한없이 가라앉은 분노와 함께 넘실거리며 피어오르던 마기가 무섭도록 잠잠해지고, 북풍보다 시린 한기가 그를 대신했다.
“오냐, 너의 선택을 존중해 주겠다. 다만 그 결과는 죽음일 것이다. 나를 떠나 주군으로 삼은 저 애송이와 함께 갈가리 찢어 산야(山野)에 뿌려 주마.”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모습에 일환이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춘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이젠 무당지검에 대한 소문이 모두 사실이기를 믿어 보는 수밖에.
“어이, 뚱땡이 노인네.”
“…….”
“왜 걔한테 화풀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진무가 다시 끼어들자 괴충이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본다.
“대충 부자 상봉도 끝난 거 같고, 옛 수하와 회포도 푼 것 같군.”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 자식이…….”
“그런 소린 자주 들어서 이젠 놀랍지도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입 놀릴 줄도 몰라서는, 쯧쯧.”
“…….”
“일단 니 소중해 마지않는 아들부터 좀 치워. 괜히 휩쓸려서 뒈지면 가슴 아프잖아?”
진무의 말에 괴뢰가 눈을 매섭게 치뜬다.
“에헤이, 사람 그렇게 보는 거 아니야. 나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니 아들 인질로 잡고 위협이나 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라.”
“뭐냐?”
“지금부터 싸움은 너와 나만 할 거야. 진 놈은 깨끗하게 물러나는 거지.”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어차피 니네 집 안방인데 더 유리한 조건 아냐?”
“…….”
“어때? 할 거야 말 거야?”
괴뢰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
멍청한 수석장로 놈은 벌써 적에게 잡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판이니 다른 선택은 없었다.
“좋다. 그렇게 하지.”
“현명한 선택이군.”
괴뢰의 결정에 진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의 약속은 꼭 필요했다.
만약 집단전으로 가게 되면 앞으로 진무의 세력이 되어야 할 육동천의 무인들을 모조리 죽여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자, 다들 들었지? 그럼 모두 물러나. 이건 이제부터 우리 둘만의 싸움이니까.”
그 말에 소동보가 목소산을 놓아주고 물러났고, 동시에 진무와 괴뢰를 제외한 이들의 위치가 갈렸다.
괴뢰의 뒤편으로 괴충과 목소산이 자리했고 진무의 뒤로는 황신과 아이들, 그리고 일환과 마령대가 가 섰다.
“애송이 놈. 감히 나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알게 해 주마.”
“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지금부터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두가 물러난 중심에 선 진무과 괴뢰.
서로를 노려보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였으나, 분위기는 상이했다.
포악한 기세로 양팔을 넓게 펴 원래보다 더욱 커 보이는 괴뢰와 산보를 하듯 여유 만만한 진무.
“자. 그럼 일단 간단하게 인사부터 나누어 볼까?”
진무가 자세를 취하자 괴뢰가 곧바로 주먹을 휘둘러 온다.
쩌어엉!
무인 사이에 인사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강맹하게 뻗어 오는 괴뢰의 주먹과 그를 화답해 막는 진무의 손짓이 내뿜는 기세에 사방의 벽이 쩌렁쩌렁 울린다.
동시에 살짝 밀려나 몸을 세우는 괴뢰의 양손이 허공을 빠르게 휘저어지고.
“……?”
괴뢰의 손을 바라보던 진무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한다.
열 손가락이 모두 펼쳐진다?
솨아아악!
“……!”
무언가 목 뒤를 섬찟하게 만드는 위협에 진무가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파락.
짐승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양 뜯겨 나풀거리는 앞섶.
젠장, 꽤 비싼 옷이었는데.
“크크크, 제법 감이 좋구나. 그걸 피하다니.”
“…….”
고개를 든 진무가 괴뢰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늘어뜨리듯 펼친 양손과 활짝 펼쳐진 열 개의 손가락.
그리고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땅바닥에 남은 미세한 흔적.
그렇군.
꼭두각시, 괴뢰.
분명 그의 손끝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고 투명한…… 아마도 은사?
진무가 피식 웃었다.
“애도 아니고. 나랑 실뜨기라도 하자는 거냐?”
“흥,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자.”
“그래? 뭐, 좋아.”
별안간 진무가 손을 쭉 뻗는다.
슈우웅! 턱.
그의 손이 만들어 낸 경기에 황신이 들고 있던 일휘가 검집에서 빠져나와 진무의 손에 잡혔다.
“어쨌든 무기를 꺼냈으니 일단 무기로 붙어 볼까.”
“제법 눈이 좋았다만, 이미 늦었다!”
파앙!
괴뢰가 득달같이 몸을 내쏘며 활짝 펼쳤던 양손을 빠르게 교차한다.
짜자자작!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손끝에 달린 은사가 격자를 만들며 진무를 찢어발긴다.
하지만 잘린 것은 잔상. 허공으로 솟구쳐 몸을 거꾸로 세운 진무가 빠르게 일휘를 뻗었다.
“흥!”
고개를 쳐든 괴뢰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쳐들자 열 줄기의 은사가 일제히 솟구친다.
스아아!
“…….”
촘촘하게 엮인 기의 그물에 진무가 뻗었던 일휘를 당겨 잡으며 빠르게 휘저었다.
땅! 따다다당!
고작 실임에도 강기가 담겨서인지 묵직한 반탄력이 느껴졌고, 그 힘으로 도약한 진무가 멀찍하게 뛰어올라 바닥에 내려앉았다.
두 번의 격돌.
그 정도면 괴뢰의 무공에 대해 알기에는 충분했다.
“흠, 칼은 괜히 꺼냈네.”
“……뭐?”
뭐긴.
니 특기가 은사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라면 나는 근접전으로 싸워 주겠다는 거지.
“황신!”
아무렇게나 일휘를 던진 진무가 주먹을 움켜쥐고 곧바로 지면을 거칠게 밟는다.
쿠웅! 파아앙!
거친 진각이 땅을 뒤흔듦과 동시에 진무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