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궁에 의해 강압적으로 연합되었던 이동천의 생존자들까지 합류함으로써 무려 다섯 개의 동천이 참가한 연맹이 천산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길고 긴 대열이 산천을 채우고, 무수한 발걸음이 지축을 진하게 울렸다.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지고 승리를 기원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으나 진무는 더러운 기분을 지워 낼 수가 없었다.
마교에 들이닥친 환란에서 사람들을 구한 영웅.
원하지 않았던 칭송이었다.
타인의 목숨으로 일구어진 그런 것 따위는.
무거워진 마음에 진무가 짜증 섞인 마음에 일휘를 휘둘렀다.
따아악!
“크윽!”
별안간 날아온 타격에 대열의 가장 선두에서 걷고 있던 갈성혁이 제 머리를 움켜쥐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 왜?”
“…….”
진무가 바로 뒤에서 눈썹을 팔자로 휜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빨리 안 걸어? 이게 뒈질라고?”
“…….”
급기야 팔까지 걷어붙이는 진무의 모습에 갈성혁이 눈을 슬며시 깔고 고개를 돌려 걸었다.
마도육제, 갈성혁.
북리도천의 곁에서 신처럼 군림해 온 그가…… 포승에 묶인 채…….
망할, 길 안내라니.
어차피 관도로 갈 거면서.
갈성혁이 혹여 진무가 듣기라도 할까 봐 속으로 투덜거리며 땅바닥을 구르는 돌을 찼다.
“각출아.”
“……?”
“속도가 늦다. 선두가 좀 더 빨리 걸어야겠지?”
쉬이익! 빠바바박!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한마디에 곧장 매질이 날아왔다.
이상한 뼈다귀를 든 놈.
진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아오는 매질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오한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함께 왔던 소신녀님은 또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무지막지하게 맞아서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달리다시피 걸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가 갈성혁은 너무도 서러웠다.
오냐, 이놈들 빨리 걸어 줄 것이다. 아니, 아예 달려 주마.
최대한 빨리 천산에 도착해서 네놈들을 단죄하고 말리라.
천산이 돕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문을 동원해서라도 지금 대열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갈성혁이 시퍼런 안광을 발하며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각출아.”
“……!”
“빠르다. 뒤에서 못 쫓아 온다.”
쉬이이, 빠바바박!
……제기랄.
정말이지 서럽기 짝이 없다.
다 뒈져 버렸으면…….
갈성혁이 진무의 강제에 의해 필요도 없는 길 안내를 시작한 지 이틀째.
내공을 금제 당한 채 무려 오백 리를 걷느라 발이 온통 부르텄으며, 다리도 끊어질 듯이 쑤셔 왔다.
두두두두.
막 그들이 오동천의 북방에 있는 오로목제를 넘었을 때였다.
멀리서 한 떼의 인마가 먼지구름을 만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설마? 본산의?
갈성혁의 희망 가득한 눈동자가 염원을 담아 반짝였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모습.
달려오는 말 위에서 펄럭이고 있는 저 깃발에 쓰인 글자는…… 오(五)? 오동천?
“연맹주님이 어느 분이시오?”
“…….”
희망을 짓밟힌 갈성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데 황신과 아이들이 진무의 앞을 막아서며 눈을 매섭게 빛냈다.
“오동천에서 어쩐 일이요?”
“연맹주님을 뵙고 싶소.”
답을 해 온 거구의 무인이 우렁차게 외치자 황신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니들은 뭐냐?”
“……연맹주시오?”
“어, 난데?”
말 위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내뱉는 진무의 말에 거구의 무인이 급히 말에서 내려 꿇어앉았다.
“저는 오동천 마풍군을 이끄는 천일국입니다. 단우강 님의 전언을 받아 왔습니다.”
“단우강?”
천일국이라는 자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능서현이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재빨리 답했다.
“십이동천주입니다. 동천주들 중 최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흐흠.”
그러고 보니 처음 신강에 왔을 때 들은 적이 있었다.
마교 서열 십일 위의 고수.
천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인물이라던가?
오동천의 무인이 그의 명령을 받고 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미 그쪽에 붙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가 전할 말이라니?”
“단우강 님께서 동천의 경계 지점에서 연맹주님을 기다리겠다 하셨습니다.”
“경계 지점이면 싸우자고?”
“아닙니다. 대화를 원하십니다.”
“…….”
웃기는 놈일세.
그럼 제 놈이 직접 올 일이지, 어쭙잖게 수하를 보낸단 말인가?
제 놈이 무슨 북리도천도 아니고.
어쨌든 그게 뭐든 간에 상관없다.
오동천을 지나 곧장 십이동천을 뚫으면 바로 천산이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자신의 앞을 막아선다면 부숴 버리면 될 일이었다.
“좋아. 만나 보도록 하지.”
“안내하겠습니다.”
“뭐 하러, 우리한테도 제법 쓸 만한 길 안내꾼이 있는데.”
“길 안내……?”
슬쩍 눈길을 주는 진무를 따라 천일국의 시선이 옮겨 가자 갈성혁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알아보면 어쩐단 말인가?
개쪽도 이런 개쪽이 없다.
용조수를 펼쳐 냈던 철제 손톱은 진무가 재수 없다며 모조리 뽑아 버렸고, 흐른 땀이 분과 함께 뒤섞여 얼굴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노인……이군요? 길을 잘 아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다. 못 알아봤다.
“갈성혁.”
“갈…… 예?”
“갈성혁이라고. 내 길잡이. 마도육제, 그놈.”
“…….”
망할 놈, 굳이 밝힐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이미 갈성혁을 찬찬히 뜯어본 천일국의 표정은 황당함을 넘어 경악에 가까웠다.
“위치가 어디라고?”
“신원(新源)입니다.”
“신원이라…….”
단우강이 있다는 곳의 이름을 들은 진무가 피식 웃었다.
참으로 절묘한 이름이 아닌가?
신원(新源), 새로운 근원.
모든 것이 뒤바뀌어 새롭게 시작되는 곳.
“좋군. 회합이 있기에는 딱 좋은 이름이 아닌가? 출발하지.”
고개를 끄덕여 웃은 진무가 쪽팔림에 몸부림치는 갈성혁을 바라봤다.
따악!
“큭!”
“뭐 하냐! 가자는 말 안 들려? 귓구멍을 뚫어 줄까? 각추…….”
“갑니다! 가요!”
각출의 이름이 불리려 하자 갈성혁이 퍼뜩 걸음을 걸었고 대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일국이 멍하니 선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도육제 중 한 사람인 갈성혁이 저런 처참한 몰골로 길잡이 노릇이라니…….
와중에 몸 여기저기가 퍼런 것이 분명 구타를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연맹주라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신원에 모여 있는 이들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성혁을 서슴없이 패는 저런 괴물과 협상을 하려 하다니…….
* * *
일, 오, 십일, 십이.
네 곳 동천이 만나는 곳, 신원.
그곳은 천산으로 가는 방향의 동측 길목이나 다름없는 도시였다.
단우강은 남부 연합이 결성되었을 때, 남은 동천에 연판장을 보내 뜻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와 협상을 해야 한다.
그가 자신들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동맹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천산으로 가는 길목을 막을 것이다.
“단 천주, 괜찮을까요?”
“…….”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천산의 좌측을 다스리는 십동천주 장황이었다. 비단 그 하나뿐 아니라 나머지 동천주들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소문에 이동천을 습격했던 그 괴물 놈의 무위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알아본 결과 전 이동천주 백천립이 십 초도 버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자를 죽인 인물인데…….”
“맞습니다. 모두들 들으셨지 않습니까? 그와 협상을 하려 했던 네 곳 동천의 주인이 협공을 했음에도 죽이지 못했어요.”
“도리어 죽었지요.”
팔동천과 구동천의 주인들도 말을 보태자 단우강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멍청한 놈들.
뜻을 모으고 함께하자 했을 때는 그리 반색을 하더니.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단우강이 십이동천주들 중 가장 강한 무위를 가지고 있다곤 하나 동천주들 사이에서나 그렇다.
진무라는 자가 소문처럼 강하다면 자신과 십이동천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지배당하든지 유린당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진무가 동천주 넷을 죽이고 남부의 연합을 결성했을 때, 단우강은 서둘러 서부의 동천주들을 소집하고 세력을 결집시켰다.
와중에 이동천의 혈사가 있었으나 천산이 침묵했기에 그들 역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을 테니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생각했다.
전쟁은 남부 연맹의 손으로 돌아갔고, 이제 그가 오고 있다.
“걱정 마시오.”
“…….”
“그가 소문처럼 강하다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좋은 일이 아니겠소? 함께 천산을 밟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오.”
“그야 그렇지만, 그가 우리의 협상안을 수용할까요?”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가 가진 전력이 무려 일곱 동천의 힘입니다. 이동천의 전력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으니 저들이 가진 것은 모두 넷. 그리고 동천주라고는 능서현과 괴뢰뿐이지 않습니까?”
“…….”
“이제부터 그들은 천산을 상대해야 하니 우리가 가진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야 합니다만…….”
단우강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된 표정이었으나 우려는 여전했다.
“놈과 협상은 제가 할 터이니 다른 분들께서는 묵묵히 힘만 실어 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우리는 단 천주님만 믿겠소이다.”
“암요, 응당 그리하셔야지요. 자, 놈이 경계를 넘었다고 하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다들 정신을 바짝 차립시다.”
“예!”
동천주들이 단우강을 중심으로 결의를 다지던 와중에 꽤나 먼 거리에서 진동이 느껴져 왔다.
“놈이 거의 온 모양입니다. 자, 다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봅시다.”
단우강이 앞서고 세 명의 동천주들이 그 뒤를 따라 전각의 밖으로 향했다.
멀리서 거대한 대열이 뱀처럼 계곡을 휘어 돌며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이내 그 선두가 신원의 초입에 도착했다.
연맹주를 맞이하러 갔던 천일국이 다가오려다가 저지당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멀어서 그 표정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 가까이 다가오자 보이는 모양새가 너무도 희한했다.
맨 앞에서 포승에 묶여 터벅터벅 걷다 말이 멈추자 풀썩 주저앉은 노인.
산악에 사는 소수 부족처럼 흰색 줄로 위장을 하고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로 시퍼런 멍이 얼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포로인가?
그런데 노인이 입고 있는 옷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흙이 묻어서 볼품없어 보였지만, 어디선가 본 것임이 분명하다.
다가오는 진무를 바라보는 다른 동천주와는 달리 단우강은 기묘한 모습의 노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웬 잘생긴 사내가 물주머니를 내밀자 반색을 한 노인이 주머니를 빼앗듯이 받아들고는 벌컥이더니 얼굴에 들이부었다.
그러자 때가 조금씩 벗겨지고 조금씩 그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얼굴…… 분명…….
“푸하! 이제야 좀 살겠구만.”
노인이 사막에서 샘이라도 찾은 듯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단우강의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 뜨였다.
아, 아니, 대체 왜 저 양반께서?
저런 행색을 하고, 포승에 묶여서 저기에 계신단 말인가?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다면 분명 갈성혁이 분명한데…….
대체 왜?
“나를 보자고 했다고?”
그사이 말을 몰아 다가온 진무가 단우강을 비롯한 동천주들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동천주들은 단우강을 향해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마음속으로 열띤 응원을 보냈고.
갈성혁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아 버린 단우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그…… 그게…….”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 아냐?”
“아, 그것이…….”
젠장, 갈성혁의 저런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당당하게 나설 수가 없었다.
왠지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