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
슈아아악!
“크핫핫핫!”
신이 난 웃음소리가 마찰음과 함께 눈 덮인 마종지로를 쏜살같이 지나갔다.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그 꼴을 보며 말없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지금 다른 곳도 아니고 마교에서, 그것도 마종지로에서 썰매 타기라는 기상천외한 개짓을 벌이다니.
“저런 개…….”
누군가의 입에서 나지막이 터져 나온 욕설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아니 천산은 중원인의 놀이터로 치부될 곳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내도록 메아리쳐도 모자랄 곳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니.
그리고 대체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눈썰매를 타고 쾌속하게 내려가는 진무는 둘째 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뒤쫓는 그의 수하들.
술래잡기도 아니고, 다 자란 성인들이 우르르 썰매 꽁무니를 쫓는 모습은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천산의 가장 아래쪽에 당도해서는 쉴 틈도 없이 곧장 다음 행동이 이어졌다.
“뭣들 하고 있어?”
“…….”
마종지로의 끝자락에서 멈춘 진무가 뒤늦게 도착한 수하들을 향해 짜증을 부리자 열심히 달려와 숨을 헐떡거리던 이들이 누구랄 것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도와달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몰랐다.
어쩐지 표정이 너무 온화하고 말투가 너무 부드럽더라니. 그때 눈치채고 바쁘다며 토꼈어야 했는데.
“자, 빨리 줄 잡아! 쉬고 있을 시간 없어!”
진무의 채근에 청상과 청우, 황신과 아이들이 마지못해 썰매에 달린 줄을 각자 잡아 몸에 걸었다.
“자, 출발!”
“…….”
대체 뭐가 저렇게 혼자 신났단 말인가?
아니지, 날 법도 하지. 저 인간이 한 거라곤 썰매 탄 것밖에 없으니까.
이젠 몇 번째인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힘들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체 이게 지금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와중에 썰매를 뭘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오르내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무게가 늘었다.
썰매에 탄 건 진무 혼자였고 끄는 사람은 여덟이나 되는데 슬슬 팔다리가 빠질 것만 같았다.
“이 자식들이! 내공을 쓰란 말이야!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
이미 쓰고 있다.
그것도 한계까지 끌어 올리다 못해 고갈될 지경이었다.
“사형…… 이젠 정말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
“사형이 사숙께 좀 말씀드려 주면 안 될까요?”
청우의 볼멘소리를 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청상을 바라보았다.
하물며 이들인들 이곳저곳에서 혀를 차며 바라보는 눈초리를 모를 리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민망함에 낯이 벌겋게 달아오를 지경이었으나 청상은 절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사숙께서 이러시는 건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리 즐거워하시지 않는가.
“청우야.”
“예?”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설마 밤이야 새우시겠느냐. 이제 내일이면 결전에 임하셔야 할 터인데…….”
“하지만 힘들어도 너무 힘든데요? 이러다가 살이 빠질 것 같아요.”
“…….”
체력이 한계까지 다한 청우가 제 살까지 들먹여 가며 울먹였으나 청상은 그거야말로 개중 반가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청우는 도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뚱뚱하니까.
머쓱하게 모른 체를 하는데 황신이 다가와 청상을 밀어제치고 청우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런 돼지 새끼. 너만 힘드냐?”
“…….”
“덩치는 산만 한 게…… 얼른 안 끌어? 그놈의 살점을 씨발 전부 잡아 뜯어서 썰매 끌기 전에 몸무게 좀 줄여 줘?”
지쳤기 때문일까?
악에 받친 욕설에 더해 퀭하니 귀기마저 토하는 황신의 눈빛에 청우가 울상을 한 채 꾸역꾸역 줄을 당겼다.
꾸우욱, 꾹.
무려 여덟 명이 온 힘을 다해 당기자 썰매가 다시 천산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달려라, 이것들아! 천산설묘의 고기를 먹은 값어치를 하란 말이다!”
“…….”
채찍만 안 들었을 뿐 숫제 개 썰매나 다름이 없었다.
내려올 때는 제 혼자 신나서 내려오고 올라갈 때는 사람들 끌게 하고.
표정까지 더럽게 신난 게, 이러다가 보따리라도 하나 쥐여 주면 아주 기분이랍시고 중원 전역을 돌면서 안에 든 걸 뿌리고 다닐 기세였다.
나중에 혹시나 개 썰매를 타고 다니는 놈이 있으면 반드시 멱을 따 버리리라.
개들은 무슨 죄냔 말이다, 개들은.
“크하하핫! 힘을 내라! 어서 달려!”
개선장군처럼 외쳐 대는 목소리에 썰매를 끌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개천주…….
미친 천주…….
망할…… 사숙…….
소가 없으면 사람에게 멍에를 씌워 논밭을 갈게 할 인간 같으니.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한다.
매일 사람 괴롭히는 방법을 연구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무공을 떠나 그 분야에서만큼은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이 아닐까?
차라리 북리도천과 싸우다가 등선이나 했으면 좋겠다.
“으핫핫핫!”
진무의 웃음소리와 함께 죽을 둥 살 둥 천산을 오르는 개, 아니 사람 썰매.
“…….”
모두가 혀를 차는 와중에 천마동을 나온 북리도천이 멀리서 그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허, 이거 참.”
북리도천의 감탄사에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던 마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는 원래 화를 내야 정상인데 감탄을 한다고?
감히 천산을 능멸하는 저 모습을 보고?
“얼마나 되었더냐?”
“예?”
“저 수련을 한 지 얼마나 되었냐는 말이다.”
“예? 수련…… 수련이요?”
말까지 더듬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마강의 반응에도 북리도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수련이라니?
어쨌든 물었으니 답할밖에.
“수하들 말로는 지난 닷새간 하루에 두 시진씩은 꼭 저러면서 놀았다고…….”
“두 시진…….”
마강의 말을 되씹는 북리도천의 눈 주위가 파르르 떨렸다.
모두의 눈에는 그저 미친 짓으로 보였겠지.
하지만 진무가 하는 그 미친 짓은 북리도천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마강.”
“예.”
“너라면 몇이나 가능하겠느냐?”
“예?”
“지금 이곳에 저 녀석과 내공을 겨룰 만한 인물은 나뿐이다.”
“…….”
“해서 녀석은 썰매를 이용해 적절한 상대를 만들었구나. 여덟의 내공이 하나로 모여 썰매를 끌게 하고, 저 녀석은 그 힘을 고스란히 버티고 있어.”
“……?”
“천근추, 아니 만근추라 불러도 좋을지 모를 기예를 무려 두 시진이나 유지를 하고 있단 말이겠지. 내공을 쪼개고 또 쪼개 가면서.”
“……!”
그제야 북리도천이 말하는 바를 이해한 마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 보니 진무가 앉은 썰매를 끌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내로라하는 고수다.
설령 저 썰매가 강철로 제작되었다고 한들 고작 한 명 태우고 오르는 일이다. 원래라면 저들 중 한 사람으로도 충분할 터.
그러나 저들은 여덟이나 붙어 끌면서도 곧 죽을 것처럼 힘겨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공까지 사용하는데도.
“저런 식으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다니. 참으로 괴이한 수련법이기는 하나 대단하구나.”
“…….”
“개개인은 약하나 저들 여덟의 내공을 온전히 모은다면 능히 나를 넘어설 터.”
“하면?”
“그래, 놈은 이미 나를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해 수련하고 있다는 뜻이다.”
“…….”
“와중에 이기어검까지 수련하고 있구나.”
마강은 북리도천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이에서 반짝이는 물체.
“저건!”
진무의 검, 일휘였다.
검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썰매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웃고는 있으나 분명 제 놈이 가장 힘들겠지.”
“…….”
“양의심공…… 분명 기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무공이다. 하지만 저렇게 쉼 없이 선기와 사기를 바꾸어 가며 사용할 수 있다니,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구나.”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북리도천의 모습에 마강은 그저 눈만 끔벅거렸다.
중대한 결전을 앞두고 고작 썰매나 타며 논다고 여겼건만, 제 나름대로 수련하는 중이었다니.
천재라는 이들이 벌이는 기행은 때때로 미친 짓으로 여겨지곤 한다.
상식의 파괴.
지금의 진무가 그러했다.
“역시 피가 끓게 하는 놈이다. 그래, 저 정돈 되어야지. 내 마지막을 맡기자면…….”
흥분이 가득 차오른 눈을 한 채 몸을 돌린 북리도천의 귓가에 진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핫핫핫!”
썰매가 다시 천산의 아래를 향해 쏜살같이 미끄러졌다.
올라갈 때는 고랑이 생길 정도로 깊게 파이면서도, 내려갈 때는 조금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오직 북리도천뿐이었다.
“내일이 기대되는구나. 무척이나.”
“…….”
“가자! 이번엔 너도 들어오너라. 육제와 너까지 모두 상대해 놈과의 싸움을 후회 없이 준비할 것이다.”
생을 통틀어 가장 기쁜 표정을 지은 북리도천이 천마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인정한 맞수가 남겨 놓은 전인.
과연 놈은 몸을 회복하자마자 쉬지 않고 날을 예리하게 벼리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잘라 주기 위해서.
* * *
멀리 산자락에 자욱하게 낀 운무를 뚫고 올라온 붉은 빛이 천산에 닿았다.
쌓인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고 세상이 점점 더 환해지는가 싶더니, 끝내 약속된 날이 밝았다.
권좌를 놓고 벌어지는 일전.
모두가 뜬눈으로 지새우고 일어나 연무장을 채우는 가운데, 진무는 해가 완전히 떠 눈이 반사하는 빛에 눈이 부실 정도가 되어서야 진무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마교에서 준비한 때깔 고운 옷까지 입으니 한결 태가 났다.
밥도 꼭꼭 씹어 먹었다.
“사숙, 전령이 왔습니다.”
“북리도천은?”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준비가 덜 되었다고 전해.”
“…….”
일찍부터 당도한 염왕대의 전령이 이미 모두가 모였음을 알렸으나 진무는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몰랐다.
“주군, 벌써 세 번째 전령입니다.”
“북리도천은?”
“나와 계신다 합니다.”
“그래? 그럼 준비해 볼까?”
“…….”
능서현이 말이 있고서야 진무가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하지만 서두를 생각은 절대 없어 보였다.
일휘를 어깨에 걸친 진무가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
“사숙, 네 번째…….”
“이제 간다고 해.”
진무는 더는 북리도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싸움이란 것은 그런 거다.
니들은 조바심이 나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은 몇 합으로 끝나지 않는다.
천하제일이라는 그 네 글자의 칭호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몇 시진이 될 수도 있고 며칠이 될 수도 있는 싸움이다.
가장 길게 싸운 게 삼 주야였던가?
진무가 판단하기로 북리도천과의 자신의 실력은 백중지세.
이전의 삶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자부하는 진무였지만 분명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싸움에 내공의 많고 적음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시 한순간의 실수가 승패를 판가름하겠지.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최적의 상태로 놈과의 싸움에 임하는가였다.
머뭇거려서도 안 되며, 급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남들에게는 여유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진무는 최강의 상대를 마주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싸우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최대한 여유를 부려 들끓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북리도천도 마찬가지이리라.
아직 대면하지도 않았으나 이미 그들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조바심을 느껴 준다면 승리의 운이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기회를 줄 테니까.
저벅.
진무가 드디어 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설원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북리도천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진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으며 다짐했다.
후회 없이 싸울 터다.
혹여 아주 작은 승패의 틈에 빠져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