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50
450화 방법이 있긴 한데 (3)
백요란은 묘화방에 찾아온 검후 소소를 앉혀놓고 차부터 내왔다.
“운화차(雲華茶)입니다. 한 번 드셔보시지요.”
소소는 찻잔을 움켜쥔 채 한참을 살펴보았다.
푸른 찻물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구름 꽃을 연상케 했다.
차향은 씁쓸함 속에 달콤함이 동시에 느껴졌으며, 머릿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청량했다.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귀한 차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윽고 한 모금을 음미한 소소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렇게 진한 풍미는 처음 느껴보는군요. 지금껏 마셔본 차 중에서 단연 최고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우리 그이가 마셔보고 싶다고 하여 어렵게 구해놨던 거니까…….”
“그 귀한 걸 왜 제게 대접하시는 건지요?”
백요란이 서글픔이 서린 씁쓸한 미소로 답했다.
“이제는 마실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소소는 백요란의 반응에서 영문을 알아채고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런……. 그리운 이가 고인이 되셨나 봅니다. 제가 눈치 없이 상중에 찾아왔군요.”
“아닙니다. 그런데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요?”
“영로초와 한빙석이 필요합니다. 구할 수 있을지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아마 이 근방에서는 저희 묘화방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니까요.”
백요란이 물건을 찾기 위해 일어서자, 소소가 기쁜 마음으로 양손을 모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는지요?”
“저희 묘화방에서 그 물건을 구매했던 가격이 도합 은자 백오십 냥이었습니다. 귀하신 분이시니, 원가에 드리지요.”
그 순간 소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자 백오십 냥이면 서민 한 명이 평생을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금 그녀가 그런 자금을 소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예? 그, 그렇게 비싸다고요?”
“희귀한 재료들이라 저희도 각 하나씩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검후님의 신용은 잘 알고 있으니, 나중에 계산해 주셔도 됩니다.”
소소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재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아……. 고맙습니다.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백요란이 벽면의 찬장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두 가지 물건은 마기를 제어하는 용도로 사용할 때 같이 쓰이지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혹시 무례가 안 된다면, 어느 분께 사용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검후께서 직접 재료를 구하러 오실 정도면 아주 귀한 분 같은데.”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던 소소는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천유회의 양괴 장로님입니다. 무림의 영웅들인 음양쌍괴 중 한 명이지요.”
그 순간 찬장을 뒤적거리던 백요란의 몸이 얼음처럼 ‘뚝’ 정지했다.
마치 점혈이라도 당한 것처럼 움직임이 없자, 소소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장주님?”
“지, 지금 누구라 하셨습니까.”
“양괴 장로님이요. 장주님도 아시지요? 워낙 유명하신 분…….”
“그이는 죽었습니다! 고인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이건 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잠시 멍한 얼굴로 있던 소소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 명예를 걸고 맹세하건대, 아직 살아 계십니다. 영로초와 한빙석은 은신처에서 치료 중인 그분께 꼭 필요한 물건들이고요.”
검후와 같은 무림의 명사에게 있어서 명예는 천금보다도 무겁다.
그런 그녀가 명예를 걸고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터.
갑자기 백요란의 뒷모습이 흐느끼기라도 하듯 들썩이기 시작했다.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었던 소소는 조용히 기다려보았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난 뒤.
그녀가 천장에서 작은 상자 두 개를 꺼내와 탁상 위에 슬쩍 올려두었다.
“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이를 꼭 살려 주십시오.”
왜 자꾸 양괴 장로를 그이라고 지칭하는 것일까.
소소는 사연이 궁금했지만, 그런 사적인 부분까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의 말이 바뀌기 전에 우선 재료부터 취해야 할 터.
“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조하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자리를 뜬 백요란은 벽면에 감춰진 비밀금고를 열더니 이것저것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그녀가 가져온 물건들은 무척 놀랄만한 것들이었다.
“저희 묘화방에서 보유한 영약들입니다. 깨어나는 대로 전부 먹이십시오.”
“이 비싼 것들을 말입니까?”
백요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지금 그이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저 그게…….”
소소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정신을 잃은 유진산은 한참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침상에 눕혀진 그는 그야말로 숨만 쉬는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그리고 지금 소무와 연설화 부부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나 유일한 방법은 천령대법뿐이야.”
소무가 아내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역시 다른 방법은 없겠지. 근데 대법을 펼치려면, 꽤 많은 공력을 쏟아부어야 할 텐데 괜찮겠어?”
“원래는 여섯 명의 절대고수가 모여서 함께 시도해야 해. 하지만 우리 둘이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음. 거기에 우리 딸내미까지 힘을 보탠다면 걱정할 건 없겠군.”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연설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얘는 언제 돌아오려나.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다롱이가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어머니!!”
검후의 목소리였다.
후다닥 달려온 소소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왜 돌아왔어?”
“뭐 놓고 간 거라도 있어?”
소소가 비단 보따리 하나를 쓱 들어 올리며, 방긋 웃어 보였다.
“내가 누구예요? 이미 다 구해 왔죠.”
그러고 보니, 등 뒤에도 천에 싸인 뭔가를 메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장난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어떻게 벌써?”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소소는 천유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쌍룡창을 손쉽게 얻고, 묘화방에서 무료로 재료를 구한 일들까지.
얘기를 다 듣고 난 소무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돕고 있으니, 아무래도 결과가 좋을 것 같구나.”
“네, 빨리 시작하자고요.”
유설을 만나서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다른 방법으로는 그를 깨울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일가족은 조심스럽게 유진산을 안고, 잔디가 깔린 마당으로 나갔다.
천령대법의 지휘는 과거 마교의 고위직을 역임했던 연설화의 몫이었다.
“대법을 시행하기 전에 우선 영로초를 먹이고, 한빙석의 기운을 단전으로 밀어 넣어야 해.”
그녀의 지시에 소무와 소소가 재료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내가 영로초를 맡지.”
“그럼 나는 한빙석!”
소무가 유진산의 입을 벌려 영로초를 먹이는 사이, 소소는 한빙석을 내공으로 녹이고는 냉기(冷氣)를 그의 단전에 강제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쌍룡창을 움켜쥔 연설화는 창날을 바닥에 ‘푹’ 꽂고는 진(陳)을 그려 나갔다.
츠츠측-! 츠츠츠측-!!
바닥에 기괴한 문양이 완성될 때쯤, 때맞춰 부녀도 준비작업을 마무리했다.
“어머니, 장로님의 몸이 얼어붙고 있어요.”
영로초와 한빙석의 영향 때문인 듯했다.
마치 한겨울에 동사한 동물처럼 유진산의 전신은 딱딱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하얀 서리까지 맺히고 있었지만, 연설화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로 죽을 사람은 아니니까.”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그녀는 영석이 박힌 쌍룡창의 날을 유진산의 단전 부근에 포개어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다롱이를 지그시 응시했다.
“지금부터 다롱이는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릴 지켜줘. 잘못하면 다 죽을 수 있어.”
다롱이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주변을 쓱 둘러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신수의 포효에 산짐승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치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새들의 지저귐조차도 들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일가족은 유진산을 가운데 두고, 품(品)자 형태로 마주 앉았다.
“지금부터 둘 다 내 말을 잘 들어. 딱 한 번만 설명해 줄 테니.”
소무와 소소 부녀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세의 고수들이 아니던가. 깨달음을 지닌 소무와 소소의 이해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내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소무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얘기했던 순서대로 공력을 불어넣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순서가 한 번만 어긋나도 끝장이야.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셋의 호흡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거야. 불어넣는 공력의 양도 정확해야 해.”
“그래서 성공률이 낮다는 거군.”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시전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가 되어 대법을 펼쳐야 한다.
상상 이상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어지간한 고수는 시도조차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대법이 성공할 때까지 멈춰선 안 돼. 만약 중간에 중단하면, 양괴 장로는 즉시 사망하게 될 거야.”
“그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고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거야?”
그 순간 소소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소무를 바라보았다.
“저한테 아주 중요한 분이라고요. 아버지는 자신 없으시면, 다롱이랑 같이 뒤에 계세요. 어머니랑 둘이 할 테니.”
“어허, 딸? 서운하게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런 건 내 전문이다. 세상에서 아버지의 집중력을 따라올 사람은 없다고.”
“확실하죠?”
“그럼! 만약 내가 둘보다 먼저 포기한다면, 다롱이를 형님으로 모시마.”
그의 아내인 연설화도 각오를 다지며 호흡을 골랐다.
“흥, 어디 두고 보겠어.”
“저도 지지 않을 거예요.”
할아버지를 잃고 서럽게 울던 유설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소소였다.
반드시 그를 꼭 깨워서 손녀에게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 그럼 어서 시작하자고.”
각오를 다진 셋은 전면으로 한 손을 내밀며, 중심을 향해 공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대법이 시작되자 유진산의 전신으로 기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쌍룡창에 박힌 두 개의 영석이 반응을 보이며, 영롱한 빛을 자욱하게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무리는 그의 모공을 통해 몸에 흡수되었다가, 코와 입을 통해서 빠져나오길 끊임없이 반복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유진산의 몸 안팎에서는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일가족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안에 잠재된 마기가 요동을 쳤지만, 다행스럽게도 강렬한 한기가 그것을 억눌러 주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이 지루하고 고된 작업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걸리든 이들 일가족은 그가 깨어날 때까지 결단코 포기하지 않을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