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43
웰컴 투 NBA 143화
#143. 트레이드 (1)
올스타전이 끝나고.
포틀랜드로 복귀한 나는 한국에서 날아온 세 방송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김시온 선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아하하. 그럼요. 기자님도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작년 3월의 광란을 앞두고 날 취재하러 미국에 방문했던 조연호 해설위원.
‘야구 여신’ 최연서 스포츠 리포터.
그리고 농구 광팬인 것으로 유명한 남자아이돌, 스포까지.
세 사람은 이란 특별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얼마 전부터 미국에 방문해 있었다.
LA에서 방송 분량을 촬영한 뒤, 오리건으로 이동해 나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일정의 마지막 코스라고.
‘그러고 보니, 3월의 광란이 벌써 작년 이맘때쯤의 일인가?’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시간 참 빨라.
긴 생머리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최연서 아나운서가 물었다.
“김시온 선수,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요즘 인기 최고인 농구 여신을 기억 못할리가요.”
“어머! 호호호.”
한때는 야구 여신으로 인지도를 얻었던 최연서지만.
한국에 본격적으로 농구 붐이 불기 시작한 지금은 재빠르게 농구계로 환승.
농구 여신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동료 아나운서들이 절 그렇게 부러워한다니까요. 그 김시온 선수의 첫 인터뷰를 딴사람이라고.”
“하하. 그런가요?”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최연서 아나운서.
옆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188cm의 훤칠한 미남이 덜덜 떨며 손을 내밀었다.
“김, 김시온 선수!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사진 촬영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얘는 왜 이렇게 손을 떨어?
저혈압인가?
“물론이죠. 스포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실명인 최지훈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최지훈…… 그러니까 스포 씨는 최근 한국에서 한창 뜨고 있는 5인조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남자들에게는 딱히 인지도가 없는 친구지만.
‘NBA의 광팬인 것으로 그나마 좀 알려져 있다지.’
평소 주 포지션이 스몰 포워드라서 예명을 스포로 지었다던데, 그래서인지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의 짭 소리를 듣고 있다던가.
“사실 처음엔 에릭으로 지으려다가, 같은 예명을 쓰는 선배님이 계셔서 포기했어요.”
“에릭이요? 설마 마이애미 히트의 에릭 스포엘스트라?”
“어억!”
내 질문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최지훈 씨.
“역시 김시온 선수! 이걸 알아봐 주시다니! 사실 그 분을 존경해서 예명을 따온 거거든요!”
“아 예. 그러세요…….”
스포가 그 스포였어?
두 사람이 오늘의 비주얼 담당이라면, 진지한 인터뷰를 진행할 사람은 조연호 해설자였다.
“반갑습니다, 김시온 선수.”
“예, 기자님. 작년에 뵙고 이렇게 또 뵙네요. 해설 잘 듣고 있습니다.”
조연호 해설자는 최근 내 경기의 한국어 중계를 맡고 있는 농구 기자.
아마 한국에서 NBA에 대해 가장 조예가 깊은 인물일 거다.
특유의 직설적인 발언으로 농구 팬들에겐 호불호가 갈리지만, 대한민국 농구 협회의 근시안적 행정과 어설픈 일 처리를 비판할 용기가 있는 몇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전 생에서 내가 협회와 대립할 때 은근히 내 편을 들어 주기도 했지.’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정이 간달까.
나도 지금부터 꾸준히 조연호 해설자 같은 인물을 내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언젠가 내가 ‘그 일’을 저지를 때, 국내에서 날 대변하는 목소리가 하나라도 더 늘어날 테니깐.
“마이클 조던을 만나셨다고요?”
“예. 올스타 주간에 나이키 주관 행사에서 만났는데, 조던 브랜드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죠. 샬럿 호넷츠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도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고요.”
“오오오! 김시온 선수. 부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제게…….”
“이건 비방용이라,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아아앗! 이번에도 또!”
짙은 탄식을 터트리는 조연호 해설자.
조던과 나눈 이야기는…….
뭐, 나중에 또 꺼낼 기회가 있을 거다.
대신 한국에서 썰을 풀 만한 정보는 몇 개 풀어 줄 필요가 있겠다.
“그럼 혹시 이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얼마 전에 구단 스태프한테 들은 건데, NBA 사무국이 시애틀 수퍼소닉스의 부활을 추진한다는 소문 있잖아요? 그게 실은…….”
“오옷!?”
조연호 해설자가 부리나케 귀를 기울인다.
한창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데.
덜컹!
사복 차림의 거한들이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온다.
“뭐야, 기자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인가?”
“킴, 이 사람들은 다 누구야?”
그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세 사람.
스포가 되살아난 마이클 잭슨이라도 영접한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와! 데미안 릴라드! 유서프 너키치! 스펜서 딘위디! 토니 앨런!”
졸지에 카메라 앞에 앉게 된 블레이저스의 동료들.
릴라드가 익살맞은 얼굴로 말한다.
“킴이 어떤 동료냐고요? 루키 주제에 제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건방진 친구죠.”
“장난이 아니지. 저번엔 나한테도 뭐라고 하더라니까?”
“어머! 호호호.”
“데임, 너크. 제발 제 이미지 좀 생각해 주시죠.”
두 사람의 말에 냉큼 한마디를 거드는 스펜서 딘위디.
“맞아요. 저번엔 제가 그깟 레이업 한 번 흘렸다고 하루 종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는데…….”
“스펜서, 입 안 닫아요? 그게 뭔 자랑이라고.”
“그, 그래.”
릴라드, 너키치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나와 입사 동기 격인 스펜서 딘위디나 ‘사부님’ 토니 앨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낯간지러운 일에 익숙하지 않은 토니 앨런이 떨떠름하게 엄지를 척 세운다.
“왓썹 코리안 팬즈. 아이 러브 킴취, 삼굡살, 앤드 소맥.”
“네?”
“으하하핫!”
“김시온 선수?”
이걸 하란다고 진짜 하네.
당황한 얼굴이 된 토니 앨런.
“뭐, 뭐야? 애송이. 네가 한국 기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라며?”
“진짜 할 줄은 몰랐죠. 큭큭큭!”
웃음꽃이 피는 인터뷰 자리.
내 올스타전의 마지막 일정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시온 선수, 오늘 다시 뵙게 되어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시, 시온아! 내 SNS 팔로우하는 거 잊지 마!”
“예, 지훈이 형.”
“그래 우리 시온이 동생! 다음에 또 보자! 꼭!”
스포 씨…… 그러니까 최지훈 씨가 이쪽을 바라보며 열렬히 손을 흔든다.
자신이 나보다 한 살 위라며 대뜸 형이라고 부르라던데.
이것 참…….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털털한 친구였지.’
어쨌건 연예계 인맥을 만들어 둬서 나쁠 건 없…… 나?
다른 두 사람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이, 최연서 아나운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 연서 씨는 당장은 한국에 안 들어가신다고요?”
“네. 두 분은 곧바로 귀국하실 예정이지만, 저는 일정이 있어서 주말까진 LA에 머무를 예정이에요. 방송사에게 받은 유급 휴가라고 치죠. 호호호!”
“그거 좋네요.”
내게 악수를 청하는 최연서.
“김시온 선수, 그럼 앞으로도 NBA에서 파이팅해 주세요!”
“예. 연서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별생각 없이 악수를 나누는데, 손바닥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지?
어느새 내 손에는 돌돌 만 하얀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후후. 언제든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예?”
내게 눈웃음을 보이며 멀어지는 최연서 아나운서.
그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돌돌 말린 종이를 펴 보았다.
“……허.”
그 안에는 최연서 아나운서의 전화번호와 카X오톡 ID가 적혀 있었다.
아마도 공적으로 쓰는 번호가 아니라, 사생활 용도겠지.
“갔냐?”
“예.”
끼익! 문을 열고 다시 휴게실로 들어오는 동료들.
동료들은 내 손에 쥐인 쪽지와, 복도를 걸어 나가는 최연서 아나운서를 번갈아 보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봐 킴, 너 그거 혹시……?”
“예. 아마 그런 것 같네요.”
“휘유~! 과감하네.”
“한국인들은 좀 더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
휘파람을 불며 최연서 아나운서의 뒤태를 감상하는 너키치.
그 건달 같은 모습에 동료들은 부모님의 못 볼꼴을 본 아이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우웩. 제발 바깥에서 그러지 좀 말자.”
“뭐가 문제야? 이건 NBA 스타에겐 일상이라고. 너희도 인X타 메시지 받아 본 적 없어?”
“몇 번 있기는 하지.”
“나도.”
“그래! 조금 즐기며 산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고.”
그 말대로 NBA 선수들에게 이런 유혹은 일상적인 일이다.
이번엔 한국인이라는 점이 다소 특이했을 뿐이지, 몸 좋고 돈 많은 운동선수에게 관심을 갖는 이성들은 미국에도 숱하게 많으니까.
“혹시 여자 친구가 있는 걸 몰라서 이런 걸까요?”
“에이, 그럴 리가 있나. 네가 신시아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고 했잖아?”
“예. 그렇죠.”
그럼 진짜로 그렇고 그런 의도란 이야긴데.
사실 나도 예전에 몇 번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내 사생팬을 자처하는 일반인도 있고, 지역에서 유명한 화류계 여성도 있었다.
‘심지어 꽤 유명한 패션모델이나 팝스타도 있었지.’
물론 답장을 보내진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꾸깃!
종이를 대충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자, 유부남인 토니 앨런이 장하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잘 생각했다. 쓸데없는 추문을 만들어서 좋을 건 없지.”
“애초에 그럴 생각 없었다니까요.”
“살짝 망설인 건 아니고? 아아! 가엾은 신디. 한 떨기 애나벨 꽃 같은 그녀는 지금도 이 일을 모르고 연인을 기다리며……!”
“스펜서, 이 인간이 진짜 한 대 맞을라고……!”
“아악! 헤드락 걸지 마!”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던 너키치가 묻는다.
“아깝진 않냐? 꽤 미인이던데.”
“아깝기는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배경화면인 신시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매력적으로 꾸민 모습이 아니라,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픽업트럭의 운전석에 앉은 사진.
최연서 아나운서의 인X타에 올라오는 원피스 사진처럼 포토숍 보정 따윈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짜식, 좋다고 웃기는.”
그 모습에 피식 웃는 동료들.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
“음…… 나 없이도 잘 살아갈 사람이라서요.”
“엥? 그게 이유라고?”
그게 이유가 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아해하는 너키치.
나는 굳이 더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충분한 이유가 되지.’
해바라기는 햇빛을 받지 못하면 금방 죽어 버리거든.
신시아는 그런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 나와 헤어져도 꽤 오랫동안 우울해하겠지만, 결국에는 미련을 접고 다시 자신의 인생을 당차게 살아갈 타입이지.
현역 NBA 선수를 연인으로 둔 지금도 쓸데없는 사치를 부리거나, 내 인지도를 이용해 자신이 소속된 밴드를 홍보하려 하지 않는 모습만 봐도 그건 명백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사진첩을 넘기자, 얼굴에 검은 오일이 묻은 채로 자동차를 정비하고 있는 신시아가 내 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내게 신시아는 해바라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서로가 대등하며, 서로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신시아가 훨씬 예쁘잖아요? 솔직히 비교도 안 된다고 보는데.”
“흐음…… 인정.”
엄격한 심사관이 된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최연서 아나운서가 전통적인 동양 미인이라면, 신시아는 훨씬 서구적 미인상에 가깝다.
내가 괜히 한국 팬들에게 마이어스 레너드에 이은 블레이저스의 2번째 승리자로 불리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어디서 꼬리를 흔들고 있어.’
스포츠 리포터란 직종만 아니었으면 별 매력도 없는 주제에.
* * *
같은 시각.
블레이저스의 단장, 몬테 맥네어는 단장실에 홀로 앉아 초조한 얼굴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르르릉!
“예, 맥네어입니다.”
“단장님,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왔습니다. 바로 연결해 드릴까요?”
“15초만.”
“예?”
“15초만 더 기다렸다가 받아 주세요. 이쪽이 아쉽다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맥네어는 탁자를 두드리며 시간을 잰 뒤.
“큼큼.”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아 들었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GM 맥네어입니다.”
그가 GM으로서 추진하는 첫 번째 트레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