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대놓고 죽이겠다는 말에 허윤은 잠깐 멍해졌다.
“이제야 옥상옥의 뜻을 알겠구려. 하나 말하지 않을 수 없소. 귀하의 운세를 보아…….”
“또, 또, 또. 끼어들지 말라니까 또 끼어든다.”
임옥운이 인상을 썼다.
“허 선생, 그거 안 좋은 버릇이야. 내가 길일 봐 달라 했지, 운세 봐 달라 했어? 나한테 복채 더 뜯어내려는 거야? 점쟁이는 점만 쳐야지, 자꾸 주제넘게 이래라저래라 하면 제 명에 못 산다? 허 선생이 내 남편도 아니고 월봉 주는 맹주도 아니잖아. 한 번 더 점괘 어쩌고 하면 혼나. 알겠지?”
허윤을 마치 애 다루듯 하는 말투였다.
허윤은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점괘 얘기는 하지 않겠소.”
“아이구, 착해라. 진작 그래야지.”
“대신 복채는 다시 가져가시오.”
“응?”
허윤이 동전을 임옥운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곤 말했다.
“시체에겐 복채 안 받소.”
그 말에 손현과 화산파 고수들은 얼굴이 굳었다.
임옥운은 잠깐 멍한 표정으로 허윤을 보다가 씩 웃었다.
“아이, 귀여워라. 점괘 얘기하지 말라니까 어떻게든 끝까지 하고 싶어서.”
돌연 임옥운이 눈에 살기가 스쳤다.
임옥운을 시체라고 불렀을 때 이미 예상된 일이었지만, 손현이나 화산파 고수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핑―!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렸다.
하나 그 전에 허윤은 벌써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땡!!!
놋쇠 종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윤의 머리에 맞고 튕긴 동전이 바닥에 푹 박혔다.
임옥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의 손이 보이지도 않게 흔들렸다.
피잉! 핑핑!
땡! 땡!
허윤은 연속으로 두 번까진 머리로 막았으나, 세 번째는 어디로 날아오는지 알면서도 막기 어려웠다.
해서 겨우 목을 틀어서 피했다.
세 번째 동전은 허윤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갔다.
순간적으로나마 동전이 목에 박히는 광경을 보았기에 허윤은 오랜만에 간담이 서늘했다.
임옥운이 깔깔 웃었다.
“아유! 돌머리! 소문대로네. 두 번을 맞히고도 못 죽였잖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 길거리 점쟁이가 무림맹 서열 육 위랑 맞먹는다면 누가 믿겠니?”
허윤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게 웃긴 일이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이외까!”
“어머, 어머. 허 선생은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이려 들면서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그게 같소? 부인은 모쪼록 길거리 점쟁이의 경고를 무시하지 마시오.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렸소이다!”
“꼬장 부리지 마, 노인네도 아니고. 무림맹에 허 선생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 많아.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그제야 손현과 화산파는 한숨을 돌렸다. 임옥운이 그만둔다고 했으니, 오늘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을 것이었다.
상인들은 뭔가 벌어진 건 느꼈으나,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임옥운은 곧 화산파와 떠났다.
그 와중에 손현이 힐끗 허윤을 돌아보더니, 그들을 먼저 보내곤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임 당주님의 운세가 좋지 않은가요?”
“그렇소.”
손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허 선생은 임 당주의 말씀대로 하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오?”
“나찰선자는 빈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허 선생이 그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말을 지킬 겁니다.”
“나찰…… 선자?”
아니, 아니. 빈말을 한 적이 없다니.
지금까지 쏟아 낸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전부 진심이라고?
의심스러워하는 허윤의 눈초리에 이해한다는 듯 손현이 말했다.
“그녀가 생각 없이 내뱉은 듯한 그 수많은 말들은 모두 진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속내를 전부 드러내지는 않고 산다.
약간의 거짓말과 적당히 가식이 섞인 감정 표현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는 얘기도, 미소 뒤에 비수가 숨었다는 얘기도 다 같은 맥락에서 나온 표현이다.
한데,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고 산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소.”
매일 부딪치고 싸우고, 매 순간이 가시밭길 같을 것이다.
누군가 앙심을 품어 등 뒤에서 칼 맞을 각오도 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그런 의문에 대한 손현의 대답은 단순했다.
“나찰선자는 그래도 되니까요.”
“허…….”
“적어도…… 허 선생께서 귀인이 아닌 것 같은 귀인이라 칭한 말과, 그가 오면 왜 더는 돌이킬 수 없다 하였는지는 알겠군요.”
허윤은 궁금해졌다.
“손 군사는 정말 저 부인이 대종사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요?”
“글쎄요. 누구도 단독으로 마도의 한복판에서 대종사를 죽일 순 없을 거라 생각해요. 시도한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더 크겠지요.”
“그 말인즉…….”
“나찰선자가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뜻입니다.”
아!
이것이었다.
화산파와 종남파가 벗어날 수 없다는 점괘가 나왔던 이유가.
그들은 나찰선자를 도우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방해가 된다고 한 거구려.”
무림맹은 화산파와 종남파를 끌어들여 싸움을 하려 하고, 허윤은 말렸다.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끼어들지 말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손현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허윤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허 선생은 운세가 좋지 않다 했지만, 해볼 만할 거예요. 지난번 작전으로 마도군의 전력이 상당히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그게 문제요.”
“예?”
“그렇게 됐기에 오히려 무림맹에서 마도를 선제공격할 뜻이 생긴 것이잖소.”
“하지만 좋은 기회이긴 하지요. 서역에서 마도의 원군이 온다 해도 그사이에 최소한 섬서에서는 밀어낼 수 있을 테고요. 또 정파가 모두 결집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죠.”
“이 상황을 아직도 전초전으로 보고 있소?”
“이것이 마도의 모든 전력이 아니듯, 우리 또한 지금이 정파 전체의 결집된 전력이 아니지요. 양쪽에서 그 힘이 모두 모이면 그때야말로 둘 중 한쪽은 끝입니다.”
손현이 말을 하고 나선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지만요. 고집 센 무림인들을 하나로 움직인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죠. 일차 정마대전에서도 그 전에 마도가 밀려서 싸움이 끝났으니까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소. 어쨌든 내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거구려. 그게 무림맹의 뜻이고.”
허윤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해하면 죽여 버린다고까지 한 이상, 무림맹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됐다.
옥상옥.
허윤이 개입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은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젠 허윤이 원래 하려 했던 일이라도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
잠시 생각하던 허윤이 말했다.
“일전에 내게 도움을 준다고 한 게 기억나시오?”
“물론입니다.”
“그거, 지금 좀 부탁드려야겠소.”
손현이 난색을 표했다.
“지금은 상황이 좀…….”
“지금이 제일 필요한 때요.”
허윤은 다른 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손현에게 말했다.
“서안을 떠나지 않는 상인들은 좋지 않은 일에 엮이게 될 거라고 소문을 좀 내 주시오.”
손현은 허윤의 생각을 읽으려는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리 사이에 빚은 없는 거요.”
“알겠어요.”
그러곤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눈인사를 하며 서둘러 경공을 펼쳐 화산파를 따라갔다.
그렇게 그들이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윤은 한참을 지켜보았다.
자신을 무림맹 서열 육 위라고 밝힌 인물이 공공연히 허윤을 죽이겠다 말했고, 직접 손을 쓰기까지 했다. 그건 즉 무림맹의 뜻이 그렇다는 의미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이 허윤을 적대하고 있다!
그것을 눈치챈 상인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지금, 무림맹이 완전히 대놓고 마도를 치러 간다 선포한 거 맞지?”
“그런데 왜 무림맹이 백도맹을 내치려 하는 거야? 같은 정파잖아?”
마음이 복잡해진 상인들이 참지 못하고 허윤에게 물었다.
“허 선생,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요?”
허윤은 잠시 손현의 말을 곱씹으며 답했다.
“아무리 늦어도 보름 안에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늙수그레한 노상인이 따지듯 말했다.
“이보게. 아까는 분명 임신일이 대길이라 했네. 보름하고도 사흘 더 뒤 말일세. 그런데 왜 지금은 또 보름 안이라고 단정하여 말하는가?”
허윤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러분이 좀 전에 본 임 당주에게 대흉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길이고 대흉이고, 그건 어차피 우리가 아니라 무림맹에서 온 부인의 운이 그렇다는 것 아닌가.”
“임 당주는 이곳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큰 흐름의 결정권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보름 뒤의 대흉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에게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상인들도 그 말에 불안해했다.
허윤은 무림맹이 질 거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웅성웅성.
허윤의 점술은 누가 뭐래도 최고였다.
그건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겪어 본 바였다.
다만 거기에 자신의 전 재산과 운명을 맡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다.
허윤이 상인들을 향해 읍을 하며 간절히 말했다.
“나는 이 일로 어떠한 이득을 얻고자 함이 없습니다. 부디 내 말을 따라 주시어 목숨과 재산을 부지하십시오. 백도맹을 통해 여러분이 새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모른 척 내버려 두면 이들은 허윤처럼 자식을 잃거나, 혹은 부모를 잃을 터였다.
도진이의 복수와는 큰 관계가 없지만, 이들을 백도맹에 가입하게 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도 자신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하여 허윤은 적극적으로 상인들을 설득했다.
허윤의 진심에 상인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백도맹에서 그렇게 해 준다면야…….”
허윤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거기에 내가 가진 돈 전부를 내놓겠습니다. 그러면 훨씬 여러분들의 손해가 줄어들 겁니다.”
상인들은 놀랐다.
무림맹은 상인 연합인 백도맹을 내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윤은 자신들을 위해 재산을 다 내놓겠다고 한다.
어느 쪽이 상인들을 위하는지는 확실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허 선생을 믿고 갑니다.”
눈치를 보던 상인들 상당수가 결정을 내렸다.
“최대한 재산을 빨리 정리하고 떠날 테니, 백도맹에서 좀 도와주십시오.”
이제 떠날 상인과 떠나지 않을 상인들이 갈리기 시작했다.
벌써 그 자리에서 당장에 떠날 상인들의 재산을 헐값에 사들이겠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허윤은 그제야 작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지회로 돌아온 허윤은 회주 계춘과 급히 상의를 했다.
계춘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번에도 허 서기의 말이 맞은 것 같군. 철심당이 움직였으면 결코 조용히는 끝나지 않을 걸세.”
“이곳 상인 중에 떠나려는 이들을 백도맹에서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 맹에 가입했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편의를 봐줘야지. 상인은 신용이 생명 아닌가.”
계춘이 땅이 무너질 듯 계속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에 자네 말에 따라 배송을 지연시켜서 얻은 이득이 꽤 크다네. 그것에다 섬서 지회의 기존 자금까지 보태어 그분들이 이주하는 데 쓰도록 하겠네.”
“백도맹 본단에서 허락해 주었습니까?”
“하아, 허락은 무슨.”
“그럼…….”
“나도 모르겠네. 만약 정말 자네 말대로 된다면, 다 사람 살리자고 한 일이니 자형(姊兄)도 나를 크게 나무라진 않으실 거네. 그게 아니라면 단독적으로 자금을 사용했다고 혼나겠지만…… 뭐, 처남을 죽이기야 하겠는가.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고 보니 계춘은 백도맹주 진경립의 처남이다.
허윤은 괜히 실소가 났다.
“자네 말대로 보름 정도밖에 안 남았다면 이곳 지회도 빨리 정리를 해야겠네. 자네도 서두르게. 최대한 많은 상인에게 알려 주고, 자산 매각이 잘되지 않으면 우리가 사들이겠다고 하게.”
“믿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안 믿고 어떻게 하겠나. 그간 옆에서 자넬 본 게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