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학귀수가 당한 건 대놓고 싸우러 가서 진 것이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육개와 반춘은 다르다.
허윤을 치러 간 게 아니라, 오히려 허윤을 피해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했다.
마치 장강용왕이 무얼 하려는지 훤히 알고 있는 양.
기분이 매우 나빴다.
두렵다거나 불안하다기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지금이라도 쳐야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쳐들어갈 것도 이미 알고 대비해 두었을 거라 봐야 합니다.”
“무슨 계획을 세워도 천기를 따라야 성공합니다. 진노를 잠시 가라앉히시고…….”
무사와 모사, 점복술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장강용왕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만!”
장강용왕이 외치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결론은 하나다. 놈이 우리를 정면으로 칠 자신이 있었다면, 굳이 강호에 포고하지 않고 그냥 쳐들어왔으리라는 것.”
그때 그냥 남창으로 치고 들어갔으면 허윤을 잡을 수 있었을 터였다.
빠득.
장강용왕은 이를 갈았다.
“놈은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한둘씩 보내 오는 걸 잡아먹을 셈이었던 거지. 그 이유가 뭐 때문인 것 같으냐.”
“그러고 보니, 일전에도 초도 한 곳만 파괴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신경을 자꾸 긁어서 포양호 밖으로 꾀어내려는 셈인 것 같습니다.”
“꾀어내서 어떻게? 뭘 하려고? 꾀어내서 싸우면, 저들이 승산이 있다더냐?”
그 물음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대규모로 움직이면 관부가 싫어하기야 하겠지. 하나, 그 문제는 진작 손을 써 두었다. 지금 관부는 문제가 되지 않아. 중요한 건, 놈이 대체 무슨 속셈으로 우릴 유인하려 드느냐 하는 것이다.”
모사들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정보원들에게 물어봐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쪽 상인들도 지금 허 선생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장강용왕이 점복술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논리적으로 추측이 되지 않는다면, 남은 건 점복술 뿐이다.
“점괘로 나온 건 없느냐?”
저마다 말하기를 꺼리다가 그중 한 명이 떨면서 대답했다.
“점술로 사람의 속내까지 짐작할 수는 없사옵니다. 다만, 소인이 현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 있는지는 점을 쳐 보았사온데…….”
“무엇이냐.”
“중천건이라는 괘로, 혹약재연(或躍在淵)하면 무구(无咎)하다는 효사를 얻었습니다.”
“뜻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여전히 연못에 있으면…… 그러니까,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모사와 무사들이 다 어이없어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란 뜻이야?”
“그게 무슨,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나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있는 데를 겨우 연못에 비유해? 성도보다도 면적이 더 넓은 이 포양호를?”
점술가가 손을 마구 저었다.
“점괘가 그리 나온 것이지, 제가 임의로 지어내거나 함부로 해석한 게 아닙니다.”
무사들이 분개했다.
“총채주님.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벌써 석 달이 넘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더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식량도 곧 떨어질 겁니다.”
장강용왕의 눈썹이 꿈틀댔다.
“뭐라고? 식량이 떨어져?”
“예. 한동안 다 총채를 지키느라 약탈을 멈췄고, 그러는 바람에 달리 식량을 가져올 인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지도 몰랐고, 또 저번에 애들 사기 올려 주신다고 한번 크게 푸신 적도 있었고요.”
“남창 상인 놈들은? 식량 배를 안 보냈어?”
“허 선생이 자꾸 배를 빌려 달라고 오니까 그때마다 고치는 척하느라 움직일 배가 없었답니다.”
장강용왕은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심각함을 느꼈다.
총채의 인원이 천 명이다.
하루에 적어도 네 가마의 곡물이 필요하다.
“설마?”
우연인가.
아니면 이게 허윤이 노리던 바인가.
“배 풀어. 빼앗든 훔쳐 오든, 잔뜩 싣고 와.”
모사들이 걱정스러워했다.
식량을 싣고 오려면 큰 배를 이용해야 한다.
평소 노략질을 할 때 쓰는 팔라호선은 뱃전이 낮고 작아서 많이 실을 수가 없다.
“아시다시피 큰 배는 몇 척 되지 않습니다. 한데 그걸 다 잃게 되면…….”
“스무 척을 보내. 반은 남창으로 보내서 상인 놈들에게 식량을 구해 오고, 반은 그사이에 여러 군데를 돌아. 그러면 반은 털려도 반은 회수할 수 있잖으냐. 일단 대응 방안을 찾기 전까지 버틸 식량을 어떻게든 가져오란 말이야.”
수적들도 장강용왕이 말한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허윤의 동료가 열 명 정도이니, 스무 척을 보내면 최소한 열 척은 돌아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과는 이들이 예상과 달랐다.
반은 털리고, 반은 빈 배로 돌아왔다…….
* * *
허윤의 장원에 곡식이 든 가마니를 실은 수레가 줄줄이 들어왔다.
전부 수적들이 상인들에게 받아 가던 곡식이었다.
장용과 쾌도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얼마야? 일 안 해도 십 년은 먹고살겠네.”
“캬! 역시 형님이셔. 우린 정파답게 수적 놈들 걸 빼앗은 거니까 이거 다 우리 거 아냐.”
한데 잠시 후, 남창 상인들 몇 명이 파리한 안색으로 허윤을 찾아왔다.
가마니를 잔뜩 실은 수레가 장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을 본 그들은 아까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밖에 나와 있는 허윤을 보곤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저기…….”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어서들 오십시오. 자, 자. 여기서 이러고 계시지들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 잔씩 하시지요.”
다행스럽게도 허윤이 내치지 않고 맞이하자 상인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저기, 차는 됐고…… 허 선생.”
허윤이 웃다 말고 정색하며 되물었다.
“선생?”
상인들은 괜히 뜨끔해서 덧붙였다.
“선생님, 아니, 대협.”
허윤이 다시 웃었다.
“대협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하하하!”
가당치 않은데 왜 정색해.
상인들은 속마음을 감추고 본론을 꺼냈다.
“저…… 우리가 할 말이 있는데 말이오.”
허윤이 또 정색했다.
“말이오?”
“아, 할 말이 있는데요.”
“하하하. 네네, 말씀해 보십시오.”
“그…… 장강의 수적들이 약탈해 간 물건을 보관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하하하! 보관하고 있는 거 아닙니다. 저기 보시면 지금 들어가고 있는 게 그겁니다.”
“아, 하하. 그렇군요. 한데,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저희 물건입니다.”
허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까?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면 응당 돌려 드려야지요.”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허 대협.”
“빚까지 내어 사들였던 걸 놈들이 싹 가져가는 바람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허 대협께서 수적들을 잡아 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쫄딱 망했을 겁니다.”
허윤이 수레를 감독하고 있는 안소방에게 말했다.
“소방. 거기에 이름이 쓰여 있나 보게.”
상인들은 저마다 말했다.
“가마니에 푸른 천이 붙어 있는 게 제 겁니다.”
“저희 가게는 거래표를 가마니의 맨 앞쪽에 붙여 뒀습니다.”
안소방이 수레를 살피더니 가마니에 붙은 푸른 천을 찍 하고 떼었다.
거래표도 뚝 떼었다.
그러곤 허윤에게 대답했다.
“말씀하신 표시는 안 보입니다.”
상인들은 당황했다.
“아니, 거기 방금 떼었잖소.”
“분명히 봤소. 그거 붙었던 게 내 거요! 멀쩡한 남의 물건을 왜……!”
허윤이 정색했다.
“없다는데. 내 아우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닌 게 아니고…….”
“방금 대협도 보셨잖습니까.”
허윤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소. 안타깝소이다. 대인들께서 잃은 물건이 아닌가 보오. 배라도 있으면 쫓아가서 되찾아 오련만…… 그러고 보니 수리는 다 끝났소이까?”
허윤과 상인들의 대화 중에도 안소방은 대놓고 수레를 돌아다니며 상인들이 말한 표시를 떼었다.
찍. 찍.
“저, 저, 저…….”
상인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그때 옆에서 장용과 쾌도가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소방이도 좀 늘었네.”
“그래서 사람이 평소에 잘해야 해.”
“맨날 바가지만 씌우면 누가 도와주나. 그래 봤자 콩고물 하나 안 떨어질 거 아냐.”
“콩고물이면 다행이게? 되찾은 물건으로 또 바가지나 씌우겠지.”
남창 상인들이 그 말을 듣고선 바로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아이고오, 허 선생!”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그거 없으면 저희 죽습니다.”
“앞으로 다신 안 그럴 테니 제발…….”
허윤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그거 없으면 죽는다면서, 왜 수적들이 빼앗아 갈 땐 가만히 있었소?”
“그, 그건…….”
“없어도 안 죽으니까 안 덤빈 거 아니오?”
“장강 수적들에게 일개 상인에 불과한 저희가 감히 어떻게 덤빕니까……. 가족들까지 죽인다고 협박을 하는데요.”
“내가 말이오. 남창에 와서 쓴 돈이 자그마치 십만 냥이올시다.”
상인들이 비굴하게 말했다.
“하하하…… 그,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셨지요.”
“저희가 듣기로 물건 처분한 게 오만 냥 정도 되는…….”
허윤이 말을 끊으며 정색했다.
“이자요.”
“아. 네, 네. 암요. 이자 중요하죠.”
“아무튼, 그 돈 십오만 냥을 쓰면서도 남창의 상계 발전을 위해서이니 단 한 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소. 그런데, 정작 남창에서 장사 중인 귀하들은 이 남창을 위해 땡전 한 푼 내놓기가 아깝다는 거요?”
“대협…… 방금은 십만 냥이라고……”
“아하. 상계의 발전을 위해 선뜻 쾌척한 내 이십만 냥은 괜찮고, 댁들 돈은 안 괜찮다?”
“네? 이십만 냥이요?”
상인들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삼십만 냥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쩐지 허윤의 말에서 그 돈을 어떻게든 남창 상인들에게서 긁어모으겠다는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인들이 우물쭈물하자, 허윤이 웃으면서 권했다.
“그러니까, 장강 수적은 내게 맡기시고 안에 가서 차 한 잔씩 하십시다. 내가 이십오만 냥을 들여서 구한 귀한 차올시다.”
심지어 이제는 상인들이 말을 안 해도 자기가 아무 데나 값을 올려붙이고 있다!
상인들은 소름이 끼쳐서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저흰 이만 가겠습니다.”
“아니, 차도 안 들고 어딜 가시오. 내가 삼십만 냥이나 들여서 사 온…….”
상인들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가 버렸다.
허윤은 그들을 싸늘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마침 돌아오던 고우사와 대홍랍강, 약왕이 헐레벌떡 지나쳐 가는 상인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허윤이 물었다.
“가신 일은 잘되었소이까?”
고우사가 답했다.
“아, 이놈의 수적 새끼들은 왜 이렇게 사방팔방 돌아다녀? 그놈들 때문에 하도 뛰어다니느라 신발이 다 해졌다.”
약왕이 말했다.
“자네가 습격이 있을 거라 말한 강가 마을에 모두 들러서 사람들을 대피시켰네. 수적들은 아마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을 걸세.”
먼지투성이인 대홍랍강도 땀을 훔치며 껄껄 웃었다.
“간만에 소리 좀 질렀네.”
고우사가 슬쩍 짜증을 냈다.
“아, 나이도 많은 어르신들한테 왜 자꾸 뛰어다니는 걸 시켜. 좀 쉬운 일 좀 주지.”
“그야 세 사람의 경공이 제일 뛰어나잖소. 어? 근데 설마 지금 짜증 내는 거요?”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운동하니 건강해지는 것 같고 좋다는 거지. 뭐든 시켜만 줘.”
말을 해 놓고 보니 왠지 허윤의 심부름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래도 장용과 쾌도의 아래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런 기분이었다.
허윤이 웃었다.
“잘됐구려. 그럼 진법부터 늦지 않게 마무리해 주시오.”
* * *
장강용왕은 입맛이 썼다.
어차피 나중에 충당하면 되니 배를 잃더라도 식량부터 채워 놓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미끼로 쓰려 남창에 보낸 배는 전부 잃었다.
하지만 의아한 건, 돌아온 나머지 반도 빈 배였다.
돌아온 수적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식량으로 쓸 만한 것도 거의 없었고요.”
“가는 데마다 그러니까 나중엔 좀 무서웠습니다. 무슨 돌림병이라도 돈 게 아닌가 하고요.”
이쯤 되니 허윤이 귀신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뭘 할지 다 알고 다 대비해 둔 것이다.
심지어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까지 아는 듯하다.
가만?
장강용왕은 문득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총채의 수적들은 호수 안에선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뭍으로는 갈 수가 없다.
뭍으로 가 봐야 빈손으로 되돌아온다.
이게 뭐지?
활동 반경이…….
포양호에서 벗어나질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