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이상한 건 도단경도 마찬가지였던 듯했다.
도단경은 허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허윤이 바닥에서 몸부림을 쳤다.
“끄응, 끄응…… 나 죽네. 어미 아비도 없는 호래자식이 애꿎은 사람 때려죽이네…….”
상대가 별것 아니라면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허윤은 단 한 방에 언제든 상황을 역전할 만한 두풍을 쓸 수 있다.
그 때문에 대놓고 의심스러운 짓을 하는데도 함부로 손을 쓰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마뜩잖았다.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괜히 화려한 언변에 휘말려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나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마냥 내버려 두기에는 뭔가 불안하다.
허윤은 백발백중의 점복자다. 시간을 끌면 뭔가 방법이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그게 허윤이 노리는 바일 수도 있었다.
허윤의 잔꾀가 워낙 대단한지라 도단경은 좀처럼 꿍꿍이를 간파할 수가 없었다.
약 스무 걸음 정도의 거리.
그럼…….
도단경은 검지로 허윤을 가리켰다.
이대로 지풍을 쏴서 죽이는 게 가장 깔끔하고 안전하다.
조화신공 탄지력 일전…….
부우우…….
손가락 끝에 내공이 모이며 강력한 덩어리가 맺혔다.
머리를 관통하면 한 방에 죽일 수 있다. 그 누구도 머리가 터지고는 살지 못한다!
하나 도단경이 막 지풍을 쏘기 직전.
그는 지금까지 허윤에 대해 들었던 정보들이 떠올랐다.
소림사의 혜석 대사는 지풍을 맞고도 버텼다. 그런데 허윤은 그 혜석의 머리를 자기 머리로 깨뜨린 자다.
도단경은 갑자기 의심이 생겼다.
굳이 자기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누워서 아등바등하는 것도 수상했다.
“아이고오, 나 죽네. 세상 사람들! 이것 좀 보시오! 무림맹 맹주라는 작자가 죄 없는 사람을 때려죽입니다!”
허윤이 하도 바둥대서 묶었던 머리까지 풀렸다.
도단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옮겨 허윤의 심장을 겨누었다.
스윽.
“차라리 얼른 죽여라, 이놈아!”
허윤이 버둥대면서 정수리를 도단경의 검지 쪽으로 향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도단경도 순간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도단경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고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심장을 가리켰다.
스윽.
허윤은 침까지 튀면서 난리를 부렸다.
“그래! 어디 쏴 봐라, 그 지풍이란 거 한번 맞아 보자. 쏘라니까? 왜 안 쏘느냐!”
그러면서 슬쩍슬쩍 몸을 움직여 다시 정수리를 손가락 쪽으로 향했다.
가마가 보였다.
스윽.
슬쩍.
스윽.
슬쩍.
도단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이?
자꾸 정수리를 들이대는데 하필이면 쌍가마라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명숙들은 도단경이 쏠 듯 말 듯 멈칫거리고 허윤은 계속 악다구니를 쓰고 있어서 의아했다. 하나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허윤을 방해하게 될까 봐 안달복달했다.
“그렇게 사람 죽이는 게 좋으면 나부터 죽이라고오! 귀를 돼지 오줌보로 처 막았나. 사람 말이 안 들리냐?”
도단경은 쏘지 않았다.
확실해졌다. 허윤이 지풍을 유도하고 있었다. 아마 지풍을 튕겨서 자기에게 맞춘다거나 하려는 식으로 쓸 모양인 듯했다.
의도를 알고 나니 허윤이 너무 하찮게 보였다. 도단경은 우스워졌다.
피식.
허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멈추고 도단경을 올려다봤다.
“안 쏴? 지금 안 쏘면 너 평생 후회한다.”
도단경은 대답 대신 신법을 써서 움직였다. 그가 공간을 격하고 허윤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팍!
그러곤 손을 뻗어 허윤의 머리카락을 잡아 높이 들어 올렸다.
“후회? 본 맹주에게 지금 후회라고 했느냐?”
“이…… 이게 쏘라는 지풍은 안 쏘고…….”
허윤이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도단경이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런 얕은 수작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았는가. 자, 이젠 어떻게 할 테냐.”
허윤이 갑자기 발버둥을 멈췄다.
그러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도단경이 인상을 썼다.
“웃어? 눈과 혀를 뽑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 찢어 버려도 웃는지 보자꾸나.”
“왜 웃겠어. 네가 결국 가까이 왔잖아. 너……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지?”
도단경이 살기를 뿌렸다.
돌연 허윤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도단경은 허윤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린 채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콰우우웅!
천근신퇴공 광소타!
허윤의 발이 도단경의 가슴 앞을 스치며 위로 올라갔다.
위력이 세서 도단경도 제법 간담이 서늘했다. 맞았으면 그라도 해도 무사하기 어려웠을 듯했다.
하나 눈에 뻔히 보였다.
허윤은 포기하지 않고 손등에 구멍이 난 손을 억지로 들어 도단경의 눈을 찔러 갔다.
“혈안지!”
아까 같은 수법으로 도귀에게 당한 바 있어 도단경은 또 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손등에 구멍이 나서 너무 느렸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트는 것만으로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히 허윤의 손가락이 귀 옆으로 지나갔는데, 갑자기 폭음이 울렸다.
뻐엉―!
폭발의 충격 때문에 도단경의 머리가 옆으로 홱 꺾였을 지경이었다.
귀에서 연신 이명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이―…….
아까 백룡회에게 집단으로 밟히며 누적됐던 충격 때문에 정신이 어찔해졌다.
이게 혈안지?
아까와 너무 다른데?
도단경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시야도 잠깐 하얗게 초점이 나가 버렸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말려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말려들었다?
문득 도단경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를 가까이 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허윤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껏 그의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
굳이 진흙탕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속임수에 걸리지만 않으면 천하의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
하여 그는 허윤을 던져 버리곤 자리를 벗어나 피하려 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김서방네 콩깍지 깐 콩깍지 이서방네 콩깍지 안 깐 콩깍지. 복씨 땅콩 막 볶은 딱딱한 땅콩, 안씨 땅콩 안 볶은 안 딱딱한 땅콩…….
호신강기를 두드리는지 고막이 마구 둥둥 울렸다.
도단경은 흠칫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주문인가?
마라왕이 전음으로 사용하는 주문인가 싶어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다시 읊어 뜻을 되새겨 보려 했는데, 발음이 잘 안 됐다.
‘김서방네 꽁깍지 깐콩칵지…….’
갑자기 화가 났다.
뭐지?
내가 왜 이런 걸 따라 외고 있지?
아차 싶은 도단경이 바로 내공을 모아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의 머리로 들려오는 소리는 금세 커져서 뇌를 뒤흔들었다.
작년 삽장사 구년 헛삽장사, 금년 삽장사 십년 헛삽장사. 봄 꿀밤 단 꿀밤, 가을 꿀밤 안 단 꿀밤. 닭발바닥 싸움닭발바닥, 밤발바닥 쌍밤발바닥. 앞뜰 말뚝 말맬말뚝, 뒤뜰 말뚝 말안맬말뚝…….
호신강기를 파고 들어와 뇌성벽력처럼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뜩이나 정신이 하나도 없어 어지러운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귀가 갑자기 먹먹해지면서 귓불이 뜨끈해졌다.
고막이 터진 것이다!
게다가 코피까지 흘렀다. 머리 안에 가시가 박힌 쇠구슬이 마구 굴러다니는 듯했다.
“으아아아아!”
도단경이 이 이상한 소리를 떨쳐 내려고 -이미 고막이 터져 의미가 없었으나- 귀를 막고 내공을 끌어올려 버티며 소리를 질러 댔다.
“지금이오!”
허윤이 소리쳤다.
돌연 옆에 쓰러져 있던 혜석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면서 몸을 날려 도단경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뻐 억!
혜석의 머리가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우드드득!
도단경의 호신강기가 밀리면서 늑골이 비명을 질러 대고 내공이 진탕됐다. 도단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아아악!”
도단경은 피를 뿜으면서 옆으로 게걸음을 하듯 주르륵 밀려났다.
“이, 이 땡중이 언제……!”
“망할, 역시 한 방으로는 안 되는구만! 회주!”
넘어져 있던 허윤은 벌써 일어나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구천직주우우우!
허윤이 머리를 앞으로 하고 도단경의 품으로 뛰어들어 배를 들이받았다.
뻐어어어억!
도단경은 내장이 목구멍까지 밀려나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피를 뿜어냈다.
“크허억!”
답답한 숨을 토하면서 그가 허공 높이 떠올랐다.
허윤이 다친 양팔을 늘어뜨린 채 소리쳤다.
“존두 대사!”
혜석이 배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허윤의 앞으로 와 정좌를 하고 앉았다.
허윤은 심호흡을 하고 그 뒤에 떡 하니 섰다.
손으로 잡고 조준할 수 없고, 기회는 한 번뿐.
허윤은 혜석의 봉우리를 가늠자 삼아 허공에 떠서 날아가는 도단경을 겨누었다.
그러곤 조그맣게 혜석에게 말했다.
“내가 좀 많이 세졌소. 예전과 달라 죽을 수도 있소. 정말 괜찮겠소?”
혜석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성불이라고 하네. 내 걱정은 말게나.”
지금껏 수석은 제대로 쓰기도 전에 부서졌기 때문에 허윤의 힘을 온전히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혜석의 존두는 허윤이 지금껏 사용해 본 그 어떤 수석보다 단단한 머리다.
덕분에 허윤은 전심전력을 다할 수 있었다.
“그럼, 가겠소이다!”
“내세에서 보세!”
허윤은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온 힘을 다해 혜석의 정수리를 들이박았다.
꽈― 아― 아一 아一 앙―!
혜석 대사의 코에서 쌍코피가 찍 샜다.
그리고 동시에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가공할 크기의 소용돌이 바람이 생겨났다.
“우와아앗!”
근처에 있던 명숙들은 자기들도 소용돌이에 휩쓸릴까 봐 급히 몸을 낮추었다.
거대한 소용돌이 바람이 허공에 떠 있던 도단경을 휩쌌다.
도단경의 호신강기를 뜯어내고 머리카락을 뽑고, 옷을 갉아 먹고 살을 긁어 댔다. 도단경은 수백만, 수천만 마리의 늑대가 자기 몸을 물어뜯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콰우우…….
소용돌이 바람이 지나갔을 때, 도단경은 완전히 너덜거렸다.
그렇게 시체처럼 허공을 부유하다가 추락할 무렵.
그가 눈을 번쩍 떴다.
도단경은 이를 빠득 갈면서 몸을 뒤집어 내공으로 몸을 감싸며 떨어졌다.
쿠웅!
그리고 동시에 땅을 박차면서 무림맹 쪽으로 뛰어 달아났다.
명숙들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아앗! 저 살인두풍을 맞고도 버티다니!”
“천마총의 문을 열러 가는 것 같소! 봉마지기 일족이 나오면 모두 끝장이오!”
“그렇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되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막을 길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보니, 허윤은 그 한 방에 힘을 모두 쏟았는지 기진맥진해 있었다.
허윤이 쥐어짜듯 소리쳤다.
“고우사! 뒤따라가서 문을 닫으시오.”
문을 닫으라고?
고우사가 몸을 웅크린 채 끙끙거렸다.
“이 꼴이 안 보이냐? 손가락 하나 못 움직여!”
“이런…… 그럼 또 누가 문 닫는 기관을 아는 사람 없소?”
그때 도진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압니다. 아까 봤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도단경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거의 의식하지 못했지만, 도진은 전신 혈맥이 다 튀어나온 채 마기를 줄기줄기 뻗고 있었다.
허윤은 도진을 바라보았다.
천마신공의 마기를 멈추려면 조화신공이 필요하다.
목숨을 구할 방법이 코앞에 있는데 스스로 문을 닫는 잔인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허윤은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너라.”
도진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말을 굴렀다.
천마신공…… 천마신위 지종 군림보.
파앙!
도진이 도단경의 뒤를 따라 무림맹으로 몸을 날렸다.
무림맹 무인들 다수가 중간 길목에 있었지만 도진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으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도 지금까지 본 게 있었다.
그들이 길을 비켜 주자 도진은 그 사이를 질주해서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