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93
제293화
마르할은 아젠만의 저택에 도착했다.
아젠만의 저택은 을씨년스러웠다.
정원 관리에 은근히 진심인 아젠만은 정원사와 집사를 써 1년 내내 정원을 관리했다.
하지만 마르할 앞에 있는 정원은 한 달은 족히 방치된 것처럼 보였다.
뒷문을 열고 나온 집사만이 마르할을 반겼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 혼자 갈게요.”
“함정일 가능성은?”
“지붕에 구멍이라도 뚫을게요.”
“알았다.”
스트레킬이 엘리제의 고삐를 잡았다. 도시를 빠져나가 하늘에서 저택을 살필 작정이었다.
“가죠.”
마르할과 집사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마르할을 아젠만의 집무실까지 안내한 집사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집사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마르할은 집무실 문을 열었다.
“살려주게!”
땅에 머리를 박은 아젠만이 목청껏 외쳤다. 마르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이럴 거 같더라니. 이번엔 뭘 잘못했는지, 이유라도 들읍시다.”
용서를 비는 사람은 용서해줘야 한다.
마르할에게 걸린 유일한 제약은 봉인 일부를 풀어도 여전했다.
아니, 봉인을 풀고 더욱 강해졌다.
마르할은 용서로 마족을, 세상의 반을 몸에 봉인했다.
제약이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는 일은 없다.
“나는 용서받았나?”
“다 아시는 분이 뭘 그리 체면 차려요. 일어나시죠.”
“알았네.”
일어난 아젠만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
“이제 각하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나 들어볼까요.”
“이걸세.”
아젠만은 서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제목 없는 낡은 책을 본 마르할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런 물건도 있었죠.”
아젠만은 책갈피로 표시해둔 부분을 펼쳤다.
책의 한쪽에 가족의 이름과 함께 떡하니 적혀 있는 이름 하나.
[마르할 무느두스.]다른 부분과 다르게 적고 얼마 되지 않은 흔적이 남았다. 주변에는 땀이 떨어져 번진 부분도 보였다.
아젠만은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 몇 자 안 되는 글자를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마르할은 책에 쓰인 자신의 이름을 쓰다듬었다.
어딘가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을 보는 건 세상에게 잊힌 이후 처음이었다.
애감을 담아 마르할은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에요.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기록을, 역사를 빼앗는 일이었어요. 없는 기록, 없는 기억을 빼앗겼다는 괴악한 가설을 세우고, 또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찾아 확인해야 하죠. 존재하지 않는 기억과 기록을 근거로요.”
망상에 가까운 가설을 맹신하고,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과 만나, 존재하지 않는 증거로 가설을 증명해냈다.
아젠만이 해낸 건 그런 위업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에요. 마법사와 도둑, 그리고 성인도 그렇게 판단했고요.”
망할, 그러고 보니 제일 위험한 인간이 봉인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다. 마르할은 서부 어딘가에 있을 망할 형을 한 번 노려봤다.
“기적.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겠네요. 그래서 각하, 인간에게 불가능한 위업을 이루신 기분은 어떠세요?”
“지금 죽어도 기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아젠만의 두 눈에서는 환희의 눈물이 흘렀다.
인외의 인간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을 해냈다. 당사자에게 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젠만은 홀로 세상을 뒤집고자 했다. 본연의 목적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비슷한 일을 해냈다.
세상의 절반을 멸하고, 세계의 역사조차 훔치는 전능한 자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개인의 힘으로 세상과 대적해냈다!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정말로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고맙게도 마르할은 아젠만에게 그가 가장 원하는 질문을 해주었다.
난제를 풀었다. 그러면 풀이법을 설명하는 게 정답을 푼 자의 여흥 아니겠나.
아젠만은 떨리는 손으로 마르할에게서 책을 받았다.
책을 덮고, 책의 표지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아젠만의 의식은 과거를 향했다.
“자네가 너무 뛰어났다. 그뿐이지.”
“제 기술 대부분은 도둑에게서 나온 거예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그 도둑도 멸망한 국가의 언어를 모두 익히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지금은 익히고 있지만, 16년 전을 기준으로는 올바른 추측이에요.”
마르할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자기 힘을 다듬던 5년. 도둑은 동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부를 쏘다니며 주인 없는 유물을 회수하고, 기술과 언어를 배웠다.
“서부의 모든 귀족을 조사했네. 여러 언어를 배워야 하며 서부 지도를 즉석에서 그려낼 정도로 머리에 완벽하게 넣어야 하는 귀족이 있는지.”
“그냥 제가 잘나서 그런 거였다면요?”
“흔히 천재들을 보고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고 하지. 많은 사람이 여기서 놓치는 게 뭔지 아나?”
“뭔데요?”
“그들도 보고 배운다는 거.”
“부정은 못 하겠네요. 어렸을 때부터 엄청 시달렸으니까요.”
고대 제국어로 시작해 바체아 제국어, 그리고 서부 주요 국가의 언어까지. 심한 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언어 공부만 하기도 했다.
마르할의 재능이 나쁘지 않아 배우는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아젠만의 말대로 보지 않고 배운 건 없다.
모두 황궁 학자들이 고른 뛰어난 선생들이 있었기에 마르할은 그것들을 배웠다.
“서부의 역사서를 뒤적이며 모든 가능성을 조사했네. 하지만 자네와의 연결점은 하나도 없었어. 내가 모르는 역사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 역사가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
“오만하네요.”
“그 오만이 정답이었지 않나?”
“역시, 각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마르할이 만난 몇 안 되는 오만이 허락되는 사람이다. 아니, 능력 있는 자의 오만은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허락되는 인간이 아젠만 리안틀이었다.
“앞서 말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며, 능히 천재를 배출할 역사를 품은 가문. 바체아 제국 황실. 그게 다야. 그 책은 가장 확실한 증명 수단이기에 구한 거지.”
“설명은 끝났어요?”
“그래.”
아젠만의 몸에서 생기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난 죽나?”
“다른 기록은요?”
“없네. 내 머리에 있는 걸 제외하면 그 책이 끝이야.”
화륵. 불길이 일더니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유일한 마르할 무느두스의 흔적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젠만은 사라지는 기적의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타오르는 불길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시에 아젠만의 몸에 힘이 돌아왔다.
“살날이 조금 연장되었군.”
“기적을 이룩한 사람을 허망하게 보내면 화낼 사람이 몇 있어서요.”
마르가 알면 아젠만을 한번 보려고 할 테고, 아르고도 관심을 가질지도 몰랐다.
아르고는 아젠만의 위업보다는 아젠만이 거기까지 도달한 과정과 방법을 더 궁금해하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젠만의 열기가 감도는 눈이 마르할을 향했다.
“자네 목적은, 역시 제국의 재건인가?”
“최종적으로는 그래요.”
“그렇군. 알 것 같아.”
마르할이 가진 권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하지만 마르할은 더한 권력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것 말고도 마르할은 아젠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가끔 하고는 했다.
관점을 바꾸면 모두 이해되었다.
“바체아 제국 건국제. 당시에는 왜 뜬금없이 바체아 제국인가 싶었지. 명분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축제였어.”
마르할은 서부 국가 전반의 문화를 전부 모았다. 이름만 빌린 전혀 다른 축제를 해도 될 것을 막대한 돈을 들여 서부 문화를 재현했고, 어이없게도 그게 대기근의 시발점이었다.
아젠만의 평정이 무너졌다. 그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기근까지 예측했나?”
“기근으로 죽은 사람이 몇인데요. 알았으면 축제를 다른 방식으로 열었겠죠.”
서부의 식량 구조가 불안한 건 알았다. 그래도 설마 축제 한번 연다고 서부 전역이 기근에 빠질 줄은 몰랐다.
“그래, 그래야지. 정말 그랬다면 나는 자네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뭐가?”
“제가 누군지요.”
“내가 아는 것 말고 더 있나?”
“각하도 직함을 하나만 달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각하라는 호칭으로 제일 많이 불리는 아젠만이지만, 과거에는 보급관이자 행정관이었고, 그 전에는 일개 집안의 하인이었다.
“사라진 역사보다 더 놀랄 사실이 있을까 모르겠군.”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마왕은 바체아 제국 황궁에 있었어요. 지옥이 된 서부에서 서부 지리도 모르던 용사 일행을 마왕에게 안내한 사람이 누굴까요?”
잔에 물을 따르려던 아젠만은 물병을 떨어뜨렸다. 도자기가 깨지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는 멍하니 물었다.
“다섯 번째…?”
“길잡이. 그렇게들 불러요.”
아젠만은 역사와 업을 안다.
바체아 제국의 마지막 황족. 그리고 숨겨진 용사 일행의 일원.
“바체아 제국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나?”
“여기요.”
마르할의 손에 바람이 머물다 사라졌다.
잠깐이지만 바람은 왕관의 형태를 이뤘다.
물질조차 아닌 바람이지만, 아젠만은 바람이 품은 업을 직관했다.
바체아 제국 황제의 오동나무 관.
황제의 증거.
날씨를 부린다는 바체아 제국 황제의 역사와 세상의 반을 멸했다는 용사 일행의 역사가 한 사람 몸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력도 당연한가.’
마르할이 연합과 안체의 전쟁에서 보여 주었다는 불가사의한 무력도 모두 설명되었다.
“좋은 일손 안 필요한가?”
“불야성의 백귀도 맘에 안 차서 공국을 뛰쳐나오신 분이요?”
아젠만은 사형이 당연한 범죄를 저지르고 공국에서 살아서 도망쳤다.
도망칠 능력이 있었다면, 백귀와 협상해 공국에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슈바벤 베르그번의 유일한 약점이 그거야. 본인은 초인이지만, 자식들은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왕권에 위협이 되는 인간을 자기 아래 두지 않아.”
“저는 안 그런 사람이라는 거네요. 좋아요. 원하는 거 있어요?”
“재상은 어떤가?”
“빙 돌리지 마시고, 지금 이것도 역사로 기록되고 있어요.”
아젠만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마르할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지었다. 마르할과 적대한 경험이 있는 자들은 경기를 일으키는 그 얼굴이었다.
“만일 바체아 제국이 건국되면, 첫 재상으로 내 이름을 올려주게.”
“제가 얻는 건요?”
“기적을 일으킨 천재의 충성.”
“바체아 제국이 본격적으로 고대 제국어를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 고위직에서 배신자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네.”
“좋네요.”
마르할의 가슴 부근이 꿈틀대더니 마르할의 소매에서 기다란 가죽끈이 풀려 나왔다.
아젠만도 어렵사리 접한 정보였다. 마르할은 어떤 마법과 신비에도 멀쩡하고, 그리고 초인의 검에도 멀쩡한 가죽끈을 유물로 다룬다고.
마르할은 바람을 모은 손으로 가죽 끝부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젠만도 모두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고대 제국어였다.
가죽끈의 반대편 끝에는 아젠만도 아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모두 마르할 밑에서 일하는 핵심 인력의 이름이었다.
저건 계약서다. 결코 어길 수 없는 계약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마르할에게 아젠만이 물었다.
“공국 백귀가 인정한 소수의 기사는 임명과 함께 힘을 얻고, 성황국 이단심문관과 일부 성기사도 부임과 함께 신비를 얻는다더군. 바체아 제국에도 비슷한 게 있나?”
“있죠. 재상은 기껏해야 조금 건강해지고,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정도지만요.”
“인재를 죽을 때까지 쥐어짜겠다는 악의가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인가?”
“그거 맞아요. 여기 계약서. 빈 곳에 이름만 적어요.”
아젠만은 바로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
글씨가 한 차례 빛나며 몸에 덧씌워진 저주가 느껴졌다.
“몸은 변한 거 같지 않군.”
“그건 지금부터예요.”
집무실의 모든 바람이 모였다. 그걸로 모자라 멋대로 창문이 열리고 바깥의 바람까지 끌어왔다.
그렇게 모인 바람은 마르할의 머리에서 왕관이 되었다.
바람이 마르할의 손가락에 상처를 냈고, 계약서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아젠만 리안틀. 그대는 지금부터 바체아 제국의 재상이에요.”
노안으로 침침하던 눈이 맑아지고, 늙어 늘 서늘하던 몸에 뜨듯한 열기가 돌았다.
족히 10년은 젊어진 기분이었다.
아젠만은 눈을 감고 건강해진 몸을 음미했다.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젊음을 얻었다. 고작 계약서 하나랑 말 몇 마디로.
‘왜 바체아 제국이 서부의 절대자였는지 알겠군.’
므에트가 왜 그렇게 바체아에 집착하는지도.
이런 힘에 대한 뜬소문이라도 돈다면, 누구든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가진 자일수록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은 강렬한 법이니까.
“자, 재상. 황제가 내리는 첫 명령이에요.”
“연합을 없애면 되나?”
“그건 조금 나중이요. 백귀를 조금 괴롭혀주려 하는데, 꿍쳐둔 공국 귀족들의 약점 같은 거 없어요?”
“백귀가 제 손으로 죽인 자식 중에는 뻐꾸기 새끼도 있다.”
“…네?”
천하의 마르할도 당황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뇌격과 암살자를 선물받았다. 그에 대한 보답이나 조금 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백귀의 치부가 튀어나왔다.
“공국에서 내게 건 죄목에는 불륜도 있다.”
“아니, 그래도 왕비를요? 그 얼굴로 어떻게?”
콧잔등의 사마귀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않는 사람이?
“해보니 되더군.”
“음… 이런 질문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자식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랑으로 낳은 자식도 아니다. 자식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나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나로 완결되는데, 자식이 필요한가?”
조금의 미련도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전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들에게도 인정받을 기적을 만들어냈고, 아젠만은 자식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쳤다.
마르할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역시, 각하는 미쳤어요. 제가 본 사람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칭찬으로 듣지.”
아젠만은 칭찬이 기꺼운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