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18
18화. 더 파워풀 하게 (2)
펠리지오 호텔 소속 약 40여 명의 셰프들이 내가 만든 10가지의 파스타를 차례로 맛봤다.
“꼭 재료로만 맛의 승부를 보려는 분들이 있는데,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들을 잘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일식의 대가들이 칼질 한번 한 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횟감에 칼이 지나가는 결마다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고요. 칼과 칼질이 그렇듯이, 파스타 면을 볶는 프라이팬과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파스타를 맛본 셰프들은 수많은 궁금증을 가졌겠지만, 난 짧은 설명만을 했다.
내가 가진 기술과 노하우는 말로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으며, 애초에 요리라는 게 이런 강의형식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내 파스타를 먹은 저들의 혀와 뇌는 이미 수많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의 경험을 잘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들이 모두 나의 정교한 파스타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나는 또 새로운 요리를 그들 앞에 보였다.
이미 파스타로 나의 맛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둔 탓인지, 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갈비찜입니다.”
내가 요리의 이름을 말하자, 톰슨이 나의 말을 가로챘다.
“하하. 어제 우리 막내들이 연습하던 갈비찜을 반유현 셰프가 맛보고, 직접 갈비찜을 해주신다고 하셨어.”
어제, 주방에서 요리를 연습하던 사내들의 갈비찜을 먹었었다.
그리고 짧은 시식 평을 남겼을 때, 톰슨은 내게 갈비찜도 같이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었다.
아마도, 파스타 말고도 다른 내 요리 실력이 궁금했던 터였을 것이다.
그래놓고 톰슨은 내가 선심 써서 갈비찜 요리를 해줬다는 듯이 판을 깔아줬다.
“드셔보시죠.”
나는 역시나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펠리지오 호텔 소속의 베테랑 셰프들부터, 견습생까지 차례로 맛을 보기 시작했다.
“oh…….”
“wow!”
“식감과 소스의 배합이……. 완전 고급 요리 같아.”
어떤 한국인 셰프는 고향 생각이 난다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톰슨은 갈비찜을 맛본 뒤에 내가 돌아가지 못하게 프랑스행 비행기를 취소해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도 내일 있을 그랜드 테이스팅에 차려지는 다른 레스토랑의 부스를 보니까 한식이 없을 텐데, 이 요리를 해볼래요? 파스타만큼 장난 아니네요. 후…….”
“셰프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도와드리는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양을 준비해야 되는 만큼 저를 도와줄 보조가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하! 보조, 당연히 필요하죠. 자, 여기서 내일 그랜드 테이스팅에 반유현 셰프를 도와줄 사람?”
톰슨이 한곳에 모여 있는 셰프들을 향해 말했고, 직급이 낮은 셰프들이 나의 눈에 들겠다는 듯이, 서로 경쟁하며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안토니, 미노, 자네들까지 왜 그래? 허허. 참.”
안토니와 미노.
두 사람은 각각 이 호텔의 수셰프와 수석 조리장이었다.
견습이나 인턴이 아닌, 베테랑 셰프들도 하나둘, 나의 보조를 하겠다고 손을 들고 있었다.
“반유현 셰프님이 저보다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다고 한들, 제 요리 실력이 그보다 부족하다 생각하면 배워야지요. 하하하! 배우는 데 자존심이 필요합니까.”
주방 서열로 치자면 톰슨의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수셰프, 안토니는 턱수염을 만지며 호탕하게 웃었다.
***
그랜드 테이스팅이 시작되기 4시간 전.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야외 수영장에는 간이 천막으로 수많은 부스들이 차려졌다.
각 부스는 누구나 알만한 특급 셰프들이 각각 맡아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 행사장은 ‘요리신들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했다.
각각의 부스에서 셰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 또한 펠리지오 호텔, 톰슨이 배정받은 부스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셰프님! 하하하! 편하게 시켜주시면 됩니다. 제가 보조를 맡기로 했으니까요.”
190cm의 거구의 덩치를 가진 안토니가 나를 보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덩치와 큰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안토니! 행사 참여 안 하고 주방을 지킨다면서, 왜 나온 거야? 맘이 바뀌었어?”
“아니. 배추 썰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이 양반아! 하하하! 오늘은 이분의 보조야.”
“보조? 상당히 젊은……. 누구신데.”
“요즘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요리사!”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 부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쪽을 쳐다봤다.
나에게도 그런 시선들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봤을 때, 저 건너편 부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두 남자가 있었다.
‘여기 있었군.’
헨리와 제리 형제.
바로 이 전생에 나와 함께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었던, 나의 동료이자 제자였던 남자들이다.
저들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전생에 두바이에서 헤드 셰프를 맡았을 때, 각각 다른 파트의 조리장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지금 저 둘은 견습생의 신분이었다.
전생에 나를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은 얼굴들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이! 멍청이 형제들! 그 속도로 오늘 행사 준비나 하겠냐.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다가, 행사라고 숨 좀 트게 해줬더니, 여유가 넘치나 봐?
그들과 눈을 마주치곤 가벼운 눈인사를 하려 했을 때, 저들은 상관의 구박에 다시 고개를 처박고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접시닦이부터 요리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꽤나 힘든 세월을 보냈군.’
그들이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었기에, 나는 높은 확률로 그들이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직접 고든 레지의 레스토랑을 찾아갈 계획을 했을 정도로, 이전생의 동료들을 만나는 건,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내가 오랜 세월 검증했던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덕을 많이 보기도 했지.’
저 두 명의 형제는 런던과 두바이에서 총 9개의 미슐랭 스타를 함께 쟁취한 셰프들이었다.
나와 함께 주방을 꾸리기로 결심한 뒤부터, 나의 말을 맹신하고 충성하던 셰프들이다.
그것도 전생에서 10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그들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던 터였다.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었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내 사람’이 필요하다고.
문제는, 지금 시점에 저들과 나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것에 있다.
갑자기 불쑥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는 것도 웃기다.
전생에 10년을 함께했던 동료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언제나 철두철미한 저들의 성격도 문제였다.
‘지금의 나를 무시하고도 남을 놈들이다.’
항상 큰 꿈을 가진 형제였다.
매사에 계산적이기도 한 저 형제들은 나의 접근 자체를 꺼려할 것이다.
나에게 미슐랭 스타나, 그에 걸맞는 직급이 있으면 모를까.
내 지금의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톰슨이 나를 직접 저들에게 소개해 주지 않는 이상, 견습생인 자신들에게 접근한 나를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선, 이 행사에서 주목을 받아 저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반 셰프! 라스베이거스의 생활은 어떤가?
“뭐, 좋습니다. 너무들 잘해주셔서요.”
루시앙이었다.
전화를 받을 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상기되어있었다.
-다름 아니라, 좋은 소식이 있네.
“직접 전화를 주실 정도면, 엄청난 소식 같은데.”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26위에 우리가 뽑혔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Best Restaurants)’은 미슐랭 가이드보다 역사는 깊지 않지만, 그 공신력에 있어 미슐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미식가들의 지침서였다.
영국의 유명 레스토랑 메거진이 주최하는 행사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레스토랑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참여해, 그 신뢰도에서도 전 세계 미식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곳에, 오픈부터 메뉴개발까지 나와 함께한 ‘레드 테이블- 더 파스타’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1년도 아닌, 약 두 달 만에 이룬 성과였다.
‘여섯 번째 삶 중에서 최초군.’
더군다나, 환생한 지 반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얻은 성과였다.
여섯 개의 삶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가장 적은 시간을 들여 얻은 성과였다.
실제로, 30위권에 등록된 레스토랑의 주요 셰프들 중 내 나이가 가장 어렸다.
-하하하! 뜻밖의 선물이라, 어안이 벙벙한가? 또 다른 선물이 하나 더 있다네.
“어떤 겁니까?”
– 공영방송사인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에서 올해의 셰프로 자네와 올리버를 동시에 후보에 올렸다고 연락이 왔네. 어떻게 이런 겹경사가 있을 수 있겠나! 귀국하는 대로 파티를 해야 될 것 같아! 내가 진짜 자네를 잘 봤어! 하하하! 자네는 진짜 복덩이야. 반 셰프!
나에게도 무척 기쁜 소식이었다.
지금 내 몸의 나이가 20대인 만큼, 루시앙이 내게 전한 소식들은 나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이 아주 파워풀할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때때로 미슐랭 평가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전생의 동료인 헨리와 제리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반유현 셰프! 이쪽으로 와서 인사 좀 나누시죠!”
때마침 톰슨이 나를 불렀다.
***
“으. 이거 일반 생선이랑은 다른 것 같은데.”
헨리가 제리에게 말했다.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에서, ‘고든 레지 – 라스베이거스’ 부스의 보조 역할을 맡은 그들은 손질이 가장 번거로운 물고기 중 하나인 아귀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주둥이 먼저 날리고, 아가미 날리고……. 간은 따로 빼놓는다고 했나?”
“껍질부터 벗기는 거랬어.”
“주둥이를 날려야 껍질 벗기기가 쉽지.”
일반 생선과는 생김새부터 사뭇 다른 아귀를 놓고 두 형제는 언쟁을 벌였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광경이 벌어졌다.
“펠리지오 호텔 톰슨 셰프님인데. 무슨 일 있나? 무슨 소리를 저렇게 질러대?”
“내버려 둬. 원래 저 셰프님은 기분 좋은 일 있으면, 저렇게 호들갑 떤다고 그러더라.”
“엥? 저 사람은 누구야?”
저 멀리에, 어쩌면 헐리웃 배우들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모여 있었고.
그 중심에 펠리지오 호텔의 총주방장인 톰슨과 한 명의 젊은 사내가 있었다.
톰슨이 기쁜 소리로 뭐라고 외치는데,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셰프들이 그 젊은 사내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뭐지, 저 사람? 박수를 받고 있는데……. 저 슈퍼스타 셰프들한테?”
“우리가 신경 쓸 일이냐. 우리도 언젠가 주목을 받을 거야. 빨리 아귀나 손질하자.”
“아니, 저 사람 저렇게 젊은데, 무슨 일로 저 대단한 사람들한테 박수를 받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때, 헨리와 제리의 바로 옆 부스에 있던 한 셰프가 말했다.
두 형제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엿들을라고 엿들은 건 아닌데, 저 젊은 사람이 한국 사람인데, 저 사람이 이끄는 레스토랑이 이번에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30위 안에 들었다네요.”
“아…….”
“와……. 우리보다 어려 보이는데?”
그런데 그때, 스타 셰프들에 둘러싸여 있던 그 젊은 셰프가 헨리와 제리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에, 엥? 우리?”
“저 사람이 우리를 가리키는데?”
“뭐, 뭐야. 너 오늘 잘못한 거 있냐?”
“아니 전혀 없는데, 형은?”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가리키다 못해, 그 젊은 셰프는 헨리와 제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암……. 왜, 또, 무슨 일이냐.”
때마침, 자신들을 구박하던 조리장이 눈을 떴다. 두 형제가 아귀를 손질하는 것을 감독하다가 잠깐 눈을 붙였었는데, 소란스러움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보세요.”
헨리가 턱 끝을 움직여 부스의 앞을 가리켰다.
“뭐, 뭐야! 저분들이 이쪽으로 왜와? 너네 무슨 사고 쳤어?”
그들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늘 이곳에 초대된 모든 스타 셰프들이 헨리와 제리가 있는 부스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