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14
214. 헤이안 점령(4)
“그럼요.”
태영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생긋 웃었다.
“왜왕, 안 보이는데.”
“저기.”
서윤이 몸을 약간 돌리며 말했는데, 조금 전에 태극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수색을 마친 전각들이 있는 곳과 태극전이 있는 곳은 석대로 구분이 되어 높이가 달랐다.
애들 키 높이만큼의 석대를 올라서자 멀리 태극전 앞 광장이 보이는데, 석대로 높이 조절은 한곳으로부터 여기서 태극전까지의 거리만 해도 100미터는 되어 보인다.
문만 열렸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나오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인가?
대신들을 꿇어앉으라고 했지, 왜왕을 꿇어앉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나오지도 않아?
“끌어낼까요?”
태영이 몸을 돌려 태극전을 향해 발길을 옮기자 서윤이 태영과 보조를 맞추며 물었다.
등 뒤에서 권우석이 1개 소대는 태영의 뒤를 따르게 하고, 나머지는 전각에서 끌어낸 왜인들을 정리하겠다는 보고를 한다.
그러라고 대답하고 태극전을 향해 발을 옮겼다.
“잠시 기다려 보자고. 어찌 행동하는지.”
태영과 서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조금 전까지 태영과 함께 동측의 전각을 수색했던 신도익이 사포 명사들 중에 1개 소대를 태영의 방향으로 보냈다.
나머지는 각 전각들에 있던 왜인들을 광장으로 끌어내 줄을 세워 꿇어앉히고 있었다.
흙과 모래가 적당히 섞여서 잘 다져진 바닥으로 인해 발아래 모래 쓸리는 소리가 났다.
태극전을 향해 가면서 태극전까지 30미터쯤 남았을 때, 태극전 안에서 입은 옷이 대신의 복장으로 보이는 왜인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꿇어앉지 않았네요.”
서윤의 말이다.
꿇어앉았으면 기어 나오는 것이 맞다.
“그래. 꿇어앉힐 수 있지?”
“그럼요.”
대답과 동시에 서윤의 손가락이 허리에서 살짝 움직였을 때, 두 왜인이 그대로 바닥에 퍽 엎어졌다.
으아아악~
두 명은 몸을 돌려 옷으로 가려졌지만 무릎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무릎 아래 종아리 부분의 다리는 뒤로 접히는 것이 정상인데, 두 왜인은 거꾸로 앞으로 접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염력은 물건을 일방적으로 날려 보내거나 들어 올리거나 하는데, 서윤은 저렇게 손을 쓰기도 한다.
태영 일행이 다가가자 두려움에 떨며 비명을 멈추었지만, 이 겨울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얼굴에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태극전의 앞쪽에는 왕의 호위 무사로 보이는 칼을 찬 무사들 오십 명 정도가 포진하고 있었다. 눈으로 레이저라도 쏘아 낼 듯한 기세다.
태극전은 큰 돌을 다듬어서 쌓은 2미터 정도의 기단이 있고 그 위에 지어진 구조인데, 별도로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 계단을 올라서야 테극전인데, 계단 앞을 궁의 호위 무사들이 막고 있는 셈이다. 마치 우리를 쳐 내지 않으면 못 간다 하는 듯이.
“거총!”
진디의 목소리가 울렸다.
태극전 앞을 막아선 호위 무사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병사들이 총을 들어 올리며 조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디야, 총은 잠시 참아라. 소리를 내지 말자.”
서윤이 잔디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명 받듭니다.”
그리고 잔디의 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적에게 뭔가를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잔디는 사포군의 위용을 마음껏 자랑한다.
마치, 봐라 이놈들아, 하듯이.
제법 괜찮은 퍼포먼스이긴 하다.
“병사들은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사격하지 않는다. 단, 적이 공격하면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적을 사살한다, 알았나?”
“명 받듭니다.”
사포 병사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르~
서윤이 쇠버리를 손으로 잡아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경고는 잔디의 입에서 나왔다.
태영과 서윤이 서 있는 곳은 중앙 계단 앞인데, 좌측 계단 쪽의 호위 무사들이 길을 비켰다.
중앙 계단으로는 못 간다, 옆으로 가라, 뭐 그런 뜻인 모양이다. 하지만 의도대로 따라 줄 생각은 없다.
“부실장, 치우자.”
“네, 기다렸습니다.”
차르르~
다시 쇠버리를 손으로 만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경고했다.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고.”
이번에는 서윤의 입에서 경고가 나왔다.
쐐애애액~
핑, 핑핑핑~
경고와 동시에 쇠버리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중앙 계단을 막아선 무사들 십여 명 정도가 이마와 관자놀이에 빨간 점이 찍혔다.
일부는 눈에서 피가 튀었다.
광장은 저 아래쪽에서 사포군이 궁인들을 정리하는 소리 외에는 바람 소리뿐인데, 병사들은 좌우로 소리 없이 총구를 돌렸다.
이쪽에서 공격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호위 무사들도 공격하지 않는 것인가?
이미 공격에 들어갔는데.
쇠버리를 맞은 호위 무사들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쐐애액~
다시 한번 쇠버리가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누군가가 칼을 던져 버리고 태극전의 좌측으로 달려갔다.
무언가 모를 공포가 저들을 엄습한 것이겠지.
사람이 움직이지도 않고, 칼은 모두 허리에 매달려 있는데, 함께 있던 호위 무사들이 그대로 죽어 버렸으니 담이 약한 사람은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챙~
누군가가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핑~
그 무사는 이마에 빨간 점을 만들면서 그대로 칼을 놓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태영도 손에 든 쇠버리를 날려 보냈고, 태극전을 가로막은 호위 무사들은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이왕필 소대장은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태영을 따라온 소대가 2개 소대인데, 서윤이 그 중에 1개 소대를 이곳에서 기다리게 했다.
“네, 부실장님.”
태영은 쓰러진 왜병들을 발로 밀쳐 내고 태극전의 기단을 밟고 올라섰다.
행동은 발끝으로 밀쳐 내는 수준이지만 발을 대고 밀치자 수십 미터씩 날아갔다.
혹시 태극전 안에도 호위 무사들이 있을지 몰라, 손짓으로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주고, 태영이 먼저 열려 있는 태극전의 문을 열었다.
그러곤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충 보니 밖에 신발을 벗어 놓고 들어가야 하는 모양이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태영을 뒤따라 서윤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넓은 태극전 안에는 족히 백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몇 줄로 줄지어 서 있고, 중앙부의 제법 높은 단 위에 있는 큰 의자에 네 살짜리 꼬맹이가 앉아 있었다.
“하이고, 조게 왕이란다.”
“하이고, 그러네요.”
가소롭다는 태영의 표현에 서윤이 거들었다.
무슨 말을 하건, 왜어가 아닌 다음에야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데 고가의 말로는 저놈 애비가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다고 했지?”
“네, 그랬죠. 그러고 보니 저애 아버지는 어디 있죠?”
서윤도 태영과 같은 의문을 가진 모양이다.
“일단, 나중에 고가나 그 뭐 간파쿠인가 하는 놈을 조지면 나오겠지.”
“네.”
꼬맹이의 옆에는 좌우에 한 명씩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태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 높은 단의 아래쪽에 줄지어 선 사람들과는 약간의 층을 다르게 해서 네 명이 서서 태영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꼬마의 좌우와 아래쪽의 네 명을 노려보고는 줄지어 선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바닥에 내려와 있지 않고, 저 위에 앉아 있다는 말이지?
심사가 제법 뒤틀렸다.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은 태극전의 중앙을 향해 양쪽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인데, 태영이 들어섰을 때, 고개를 돌려 잠시 태영을 바라보았지만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네 명이 시립한 그 앞쪽에 고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가가 내 대신이면 서열상으로 볼 때 신하들 중에는 영의정 급, 좌의정과 우의정 급, 그리고 내대신인데, 저들보다 직위가 낮은 것인가?
태영이 알고 있는 기준으로 납득이 안 되지만, 왜국이니 그러려니 해야지.
그런데 밖에서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는 뭐지?
“웃겨 아주.”
태영이 중얼거릴 때, 사포의 병사들이 들어섰다.
비서실 병사들과 소대장 김을련이 소대원들을 데리고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며 마룻바닥으로 된 곳에 군화가 닿자 쿵쿵 소리가 요란했다.
“이것들이 내 말이 우습게 들렸다는 말이네.”
사포의 ?뉵永墉릿?먼저 들어서서 서윤의 옆으로 다가온 잔디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러게.”
서윤이 동의를 했고 손안에서 차르르 소리가 났다.
“ぶれい……. (무례…….)”
앞쪽을 보고 시립한 왜인 네 명 중에 한 명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쇄액~ 픽~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쇠버리가 날았고 이마에 빨간 점이 생겼다. 아마도 무례하다, 무엄하다는 등의 말을 지껄일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쿵~
한마디 말을 남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대청마루에 넘어졌다.
놀라는 표정과 함께 도열해 선 사람들이 무언가 말을 하며 웅성거렸지만 자리를 이동하거나 문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감히…….”
그때,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몸을 휙 돌리더니 고함을 쳤다.
피융~ 픽~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쇠버리는 총알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 머리 좌측을 뚫고 들어갔다.
쇠버리를 맞은 사람은 눈을 감지도 못했고, 말을 끝맺지도 못한 상태로 몸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쿵~
몸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태극전 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쓸데없이 입을 열면 죽는다.”
잔디의 나지막한 말이 조용한 태극전 안에 울렸다.
전신을 압박하는 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 또는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대신이라는 자존심으로 한마디씩 했던 사람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입을 열기만 하면 마치 모기 울음 같은 소리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셋을 셀 때까지 무릎을 꿇지 않는 놈은 모두 저렇게 된다. 하나.”
네 살짜리 꼬맹이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지 그냥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꾸, 꿇으세요. 제발.”
고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정하듯 말했다.
일단 입에서 나온 말은 지킨다는 것이 각인되어 있는 고가이다.
“이들은 한다면 합니다. 그러니 제발…….”
고가가 다시 한번 말했다.
고가가 이곳으로 들어오고 한 시진, 두 시간이 지났으니 사포군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사포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고가는 태영 일행과 어제부터 함께 있었기에, 몇 개의 진영에 일만이 넘는 병력이 칼 한번 휘두르지도 못한 채 사라진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왕실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새벽에 각 진영을 공격했고, 지금은 한낮이 다 되어 가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것에 대해 고가도 이젠 알고 있을 것이다.
“둘.”
둘을 세자마자 사포의 병사들이 총을 어깨에 받치며 서 있는 사람들을 겨냥했다.
사실, 고가를 제외하고는 총을 겨냥하는 저 자세를 보고 다음에 발생할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맞다.
본 적이 없으니.
문을 향해 시립한 세 명 중 한 명이 무릎을 꿇었고, 그것을 신호로 중앙을 보고 도열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무릎을 꿇은 사람은 채 반도 되지 않았다.
“재발, 어서요.”
고가의 애절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왔다.
후쿠오카에서 고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막부파와 왕실파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파, 라고 이름 지어 부르지는 않았지만, 개념상으로 그랬었다.
그럼, 이 안쪽에 있는 집단과 저 바깥에 있는 집단의 차이가 그것일까?
“셋.”
쾅~ 덜컥~
잔디의 입에서 셋을 세는 소리가 들렸고, 일부의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부딪쳐서 나는 소리, 뛰면서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요란했다.
도망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탕~
그러나 달려 나가는 사람의 움직임보다 총성이 먼저 울렸다.
타다다다다당~
그리고 아직 무릎을 꿇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격이 가해졌다.
타다당~ 탕~ 타다다당~
태극전의 바깥에서 울리는 총소리는 그사이에 밖으로 도망친 왜인들에게 이왕필 소대가 쏘는 소리다.
으아아앙~
그 와중에 네 살짜리 꼬맹이는 의자에서 기어 내려오며 비명을 지르면서 울었다.
고가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쉽게 즉응하기 힘든 소리이지.
비릿한 피 냄새와 화약 냄새, 그리고 아주 연하게 화약 연기가 태극전을 메웠다.
순식간에 태극전 안은 수십 구의 시체가 뒹굴고, 마루 위에 낭자하게 피가 흐르는 처참한 지옥으로 변했다.
무릎을 꿇었던 대신들은 총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네 발로 기다시피 한쪽 구석으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온몸에서 피가 튀기고, 그 중에 몇은 팔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조용.
즉사하지 않고 부상이 심해서 비명을 지르던 왜인,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벽에 붙어 덜덜 떨면서 비명을 지르던 왜인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입 벌리면 죽는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극전 안의 모든 사람을 줄줄이 데리고 나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짧았다.
마지막으로 잔디가 앞으로 이곳에 사람 그림자라도 얼씬거리면 모조리 태워 버릴 것이라는 경고는 태극전 안의 모든 사람들을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볼일이 대충 끝나고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태극전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어서 바깥으로 나왔다.
한쪽에서 좌우에 있던 전각들에서 들고 나온 의자를 가지고 오는 왜인들이 보였다.
그 옆에는 사포의 병사들이 이것저것 정리시키고, 의자를 가져오라 하고, 저 뒤쪽에는 좌우의 전각 안에 있던 탁자를 들고 나오는 왜인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궁이다 보니, 궁 안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많이 있고, 그 일꾼들을 시켜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태영이 늘 탁자 놓고 의자 놓고 하는 것을 아는 사포의 병사들이 알아서 착착 진행한다.
태극전 앞 광장에도 호위 무사들의 시신이 있었지만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칼이나 총으로 죽은 사망자들이 아니었기에 흘린 피는 거의 없는 상태여서 흙바닥 위에 작은 핏자국들만 남아 있고, 피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그래도 태극전 앞 광장의 가운데로 이동하자 책상과 의자들이 태영이 있는 곳으로 옮겨 왔다.
스물 정도는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었다.
전각들이 있는 곳을 정리하던 김웅겸을 비롯하여 대대장들과 중대장들이 그곳으로 왔다.
“대장님, 지금부터 궁내 전역을 수색하겠습니다.”
“잠시만, 궁의 출입문이 많지?”
태영은 유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모두 열네 개입니다. 그건 내성 출입문 숫자이구요. 이곳을 뭐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왕궁의 출입문은 모두 25곳입니다.”
“허, 많네.”
“여기 이 광장과 아래쪽의 전각들이 있는 곳의 출입문만 따지면 17곳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회창문 앞쪽에 다섯, 그리고 태극전 뒤쪽에 셋입니다.”
“연대장.”
“네, 대장님.”
“회창문하고, 좌우로 큰 문이 두 개 보이던데, 그 세 곳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폐쇄해. 그리고 내성을 수색하면서 내성 성문도 동서남북 네 개만 남기고 모두 폐쇄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모두 무장 해제하고 거부하면 모두 사살해. 그게 규칙이야. 장호 데리고 가고.”
“네, 알겠습니다.”
“아, 중요한 거. 식량 창고를 최우선으로 점거하고 출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사포군이 이곳으로 보급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식량 확보는 중요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식량에 독이라도 풀면 골치 아파진다.
“네, 그렇잖아도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김웅겸이 대답을 하고는 중대 단위, 소대 단위로 나누어서 평안궁 전역의 수색을 지시했다.
무관과 문관 궁인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무장 해제하고, 거부하는 자는 사살이라는 첫 번째 명령을 몇 번씩 강조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한신 중대장이 몇 사람을 데리고 오더니 잔디에게 인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태영의 주위에는 비서실 병사들만 남아 있고, 서여울 소대가 광장에 꿇어앉은 궁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장님.”
잔디는 김한신으로부터 인계받은 왜인 몇을 데리고 왔다.
‘고려 도해?’
네 명이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고려 도해다.
뭔가 어색해서 고도해, 이렇게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좀 그렇다.
“누구야? 소개해 봐.”
“はい, このひとは……. (네, 이 사람은…….)”
“고려 말로.”
태영은 고려 도해로부터 왜어가 나오자마자 바로 말을 잘랐다.
“あの……. (저…….)”
당연히 말이 막히지.
지가 고려 말을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말을 하지는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고려 말로 하라고 하니 황당하지.
“왜?”
“ちちを つれてき……. (아버지를 모시고…….)”
“고려 말로 다시.”
태영이 다시 말을 끊고 소리쳤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아버지가 고려 말을 할 줄 안다는 말이겠지?
못하는 고려 말로 다시 하라고 하니 돌아 버릴 지경일 것이지만, 사람 이름도 소개 못 할 정도이면, 이 사람들은 이미 왜인이다.
21세기 현대에서 종종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서, 또는 선조들이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시민권을 가지고 그곳 사람들이 된, 과거에 한국인이었던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중국에 사는 교포들.
그들의 대부분은 일제가 나라를 유린한, 이산의 시기에 엄청난 역경을 겪으며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후손이다.
그들을 동포라고 부르기도 하고, 조선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그들과 한국인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 맞을까?
맞다, 아니다, 그렇게 태영이 단정적으로 선을 그을 수는 없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나 조선족은 국적이 이미 한국이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어는 한다. 하지만 저놈은 고려 말을 한마디도 못한다.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조선족이, 스스로도 ‘우리는 중국인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태영도 알고 있다.
스스로 그리 말하면, 비록 한국어로 말해도 이미 한국인이 아니다.
저놈은 한국어, 아니 고려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데, 고려인으로 볼 수 있을까?
그냥 왜인인 거잖아?
고려 도해의 옆에 선 사람들이 고려 말을 알아듣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들 역시 입도 벙긋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말하지 못하는 놈들이다.
그때, 한쪽에 줄지어 꿇어앉아 있는 궁인들 중에 여인 한 명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소인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억양이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분명하고 완전한 고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