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12
157. 선물(2)
이찬용도 이새봄의 선물이 든 패키지에서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리본이 묶인 브라운 칼라의 상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영은의 손이 상자 뚜껑을 열었다.
“헉.”
뚜껑을 열자마자 깜짝 놀라며 숨을 들이켠다.
“어?”
“봄아.”
처음에 집 가격에 너무 놀랐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예상보다는 조용하다.
상자 속에는 5만 원권 묶음 20개가 옆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묶음이 세워진 상태로 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와, 우와.”
입에서 감탄의 소리를 지르는 이한봄.
“이…… 이것아.”
“엄마 아빠가 속 많이 썩인 이 못난 딸을 키우느라 고생하셨는데,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해요.”
“봄아…….”
“어…… 엄마 저 때문에 정말 고생하셨는데, 겨우 이걸로 감사를 표해서 정말 죄송해요.”
이새봄의 입에서 나온 존댓말.
이찬용에게는 존대를 했지만, 김영은과는 늘 친구처럼 말했었다.
“아니다, 아니야. 그리고…… 고맙다, 딸.”
김영은이 이새봄을 왈칵 끌어안았다.
이찬용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역시 나이 든 사람들에게 하는 선물은 현찰이 짱이야.
“참, 내가 친구를 잘 사귄 거라니까. 그래서 봄이를 만나고, 봄이는 또 그렇게 그렇게…….”
중얼거리는 이한봄의 눈가에 물기가 맺혀 있다가 또르르 흐른다.
“그래, 친구 잘 사귄 거 맞다.”
김영은이 태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자네에게 너무 고마워……. 그 일도 잡아 주고…….”
눈물이 온 얼굴에 얼룩진 김영은이다.
그 일이란 것이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영상을 없애 버린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것을 건져 올려 주고…….”
김영은은 이새봄이 무려 4일간 욕조 속에 몸을 담그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태영과 함께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이새봄이 화장지를 잔뜩 뽑아서 김영은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울지 마.”
“그래 울지 않을게. 네가 엄마 곁을 떠나 버릴 줄 알았는데, 최 서방이 널 구해서 이렇게 엄마 옆에 앉혀 놓아서 얼마나 좋은데.”
“나도 오빠가 좋아. 엄마.”
“그래, 그래. 둘이서 행복해야 한다. 알지?”
“으응, 행복하게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
마치 결혼을 약속한 남녀를 앞에 앉혀 두고 하는 말 같다.
수돗물 소리 속에서 코를 푸는 소리도 들렸는데, 이찬용이 밖으로 나왔다.
“최 서방, 고맙네.”
이찬용은 여전히 붉어진 얼굴에 붉어진 눈이다.
“야, 새봄. 나는 뭐 없어?”
“오빠도 여친이랑 둘이서 복권 한 개씩 사도록 해.”
“야아, 그래도 그렇지.”
“히, 오빠는 아직 학생이니까, 요고.”
이새봄은 탁자 아래쪽에 둔 패키지를 들어 올려 툭 던졌다.
“와, 쌩유.”
이한봄이 패키지를 받으며 안에서 단단한 종이 상자를 꺼냈다.
“봄아,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오빠가 태영 오빠에게 내 이야기를 해 줘서 나도 고마워.”
이새봄이 태영의 팔을 끌어안았다.
이새봄에 대한 이야기는 강인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지고 보면 강인목이 가장 큰 은인이다.
그날의 이한봄은 저도 죽을 것 같은 상태였었다.
그날 이후 한 번 더 있었던 군 동기 모임에 태영은 나가지 못했다.
다음 모임이 3월이라고 했으니 가능하면 나갈 수 있도록 하자.
***
{한 실장님.}
병실 입구에 여러 사람이 서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서윤이 병실로 왔다.
입구에 서 있던 여군이 한서윤을 알아본 것이다.
한서윤의 뒤에 유진이가 함께 왔다.
지도 담당으로 지리 감각이 아주 우수한 인재다.
유럽 정벌을 하게 되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서윤에게 보냈다.
대신 설가빈을 추천해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응, 송 부실장 어때?}
{안심해도 된다고 합니다. 애기님도 안전하답니다.}
{그래, 다행이다.}
{들어가 보십시오. 시장님도 와 계십니다.}
{알았어, 수고해.}
한서윤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한 실장, 어서 와. 유 대위 오랜만이야.}
{네, 안녕하세요. 시장님. 한이는 어때요?}
{넵,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한서윤의 인사말에 이어 유진이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 먼 곳에서 달려왔네. 꼭 오지 않아도 되는데.}
{송 부실장이 다쳤다는데, 와야지요. 마침 온정 공단에 갈 일도 있었습니다.}
온정 공업 단지.
고려와 사포를 최고로 만들어 주는 첨단 공업 단지.
13세기의 고려를 20세기의 고려로 살게 해 주는 기술의 원천이 있는 곳이다.
전자 분야의 기술이 없어서 21세기라고 부르지는 못한다.
그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 시대의 다른 나라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곳이다.
{실장님, 저 괜찮아요. 좀 놀랬을 뿐입니다.}
송한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1호기의 의무 장교인 민초현 대위와 조하루 중위도 병실에 있다.
그 외에도 카라코룸에서 송한이와 함께 있었던 여군들 몇이 함께 있다.
병원의 최상층에 있는, 흔히 말하는 VIP 룸이어서 이들이 모두 들어와 있어도 좁은 느낌도 없다.
“왜 무슨 일 있어?”
태영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태영의 눈에 거울이 보였지만, 태영의 모습은 거울 속에 없다.
언젠가 느꼈던 그 현상 같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서방님도 자리에 안 계신데 무슨 일이라도 생겨 봐.}
{앞으로 좀 더 조심하겠습니다.}
{아, 한 실장도 왔으니까, 한 장군이 왜국을 모두 평정했다고 알려 왔어.}
한규장은 왜국을 평정하고 있었다.
{아, 고생했네요.}
{그래, 다음 달에 한 장군이 와서 보고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올 거지?}
{네, 오도록 하겠습니다. 신 장군도 함께 오도록 하지요.}
창해사단장 신도익.
송나라 명주에서 군을 이끌고 있는 창해사단의 수장이다.
태영이 고려로 날아갔던 초기에 만났다.
왜구들이 마을을 침략해 왔을 때, 호장 박한처럼 도망치지 않고, 왜구들과 싸우고 있었던 사람.
중국 대륙 정벌 계획에서 신도익은 명주에서 해안을 따라 송나라 남단을 정벌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신 장군은 어디까지 가 있어?}
{속도를 맞추느라 복주에서 내륙을 점령하는 작전을 수행 중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천주로 내려올 예정입니다.}
{그쪽도 차근차근 잘 진행이 되고 있네. 각 군단 상황은 어때?}
{1군단은 은주로 진격 중이었고, 2군단은 하간부에 주둔해 있습니다. 이달 중순에 진정부를 점령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3군단 소식은?}
{거기만 너무 멀고 위치 확인이 정확치 않아서 못 갔습니다.}
{민 대위, 3군단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지.}
{예정대로라면 지금 숙주 지역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영도 고려를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인지, 숙주가 어디인지 은주가 어디인지 위치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잠깐의 대화 후에 정하연과 한서윤이 송한이에게 손을 흔들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송한이도 손을 흔들어 전송을 하자, 몇 사람만 남고 모두 병실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사령부 회의실이다.
{설 소위.}
{네, 실장님.}
{광역 무전기에서 잡히는 신호는 없어?}
{네, 아직 없습니다.}
{인원을 좀 늘리지 않아도 돼?}
{얼마 전에 6명을 가르쳐서 1일 3교태로 투입했습니다.}
{그건 아주 잘했다.}
{그런데, 실장님.}
{응, 왜?}
{대장님의 그곳에 순찰할 필요는 없습니까?}
{그곳을 순찰, 위치가 특정이 돼?}
{그 전날 야영을 했던 곳이 체체크 호수로 추정됩니다.}
{우리가 다시 찾아갔을 때 위치를 못 찾았지 않아?}
{지도의 글씨가 작아서 칼아스 호수 남쪽 100Km로 생각했는데, 돋보기로 보니 더간 호수였습니다.}
{그래서?}
{야영지에서 출발해 2시간 정도 순항을 했지만, 최 중령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평균 속도 200Km로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했습니다.}
{그 기준으로 찾아보자?}
{네.}
{그건 아닌 것 같아.}
{왜 그러시는지?}
{전에 아라비아에 다녀올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고 나도 들은 것 같아.}
정하연이 기억을 떠올린 것 같다.
{네, 맞아요, 시장님. 대장님이 피디지로 들어간 곳은 지도에서 인제 인근이었는데, 오신 곳은 미봉산이지 않습니까?}
{맞아. 그래서 순찰은 의미가 없고, 광역 통신기에서 잡히는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옳아.}
{아, 그런 것이 있었군요.}
태영이 생각해 봐도 한서윤이 현명하게 생각한다.
태영과 김정표는 둘 다 인제에서 피디지에 휩쓸려 들어갔다.
태영은 미봉산으로 나왔고, 김정표는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으로 나왔다.
그러니 쓸려 들어간 곳으로 나온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백골이 된 상태로 발견되었으니, 그곳으로 나온 시기조차 짐작되지 않는다.
28세기에 도착한 곳은 모르지만, 이 시대로 오기위해 피디지를 열었던 곳은 네팔의 카트만두 지하에 건설된 R존.
그리고 도착한 곳은 매리설산이었다.
{…….}
{…….}
{…….}
또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부터 입 모양만 보일 뿐 말이 들리지 않았다.
~팟~
잠시 후,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불의 감촉, 그리고 잠에서 깼다.
“후, 또 그 꿈이네.”
왜 고려의 꿈을 이렇게 계속 꾸는 걸까?
첫 꿈을 제외하고는 기억 속의 재연이 아니다.
그 첫 꿈이 피디지에 빠지는 꿈이었다.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꿈에 이렇게 한 번씩 보이니 더욱더 그립다.
그래서 반드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은 변치 않는다.
그런데 꿈에 고설하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피디지를 향해 뛰어내린 꿈을 꿈 이후의 꿈에서 고설하는 없다.
꿈속의 일을 현실처럼 생각하면 안 되지만,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설하……. 진짜 피디지에 뛰어내린 거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의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왼쪽 팔에 느껴지는 작은 무게감.
그리고 허리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체온.
이새봄이다.
태영이 자고 있는 중에 옆으로 파고든 모양이다.
~새근~
낮고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태영의 방향으로 두고 잠들어 있다.
“가만…….”
고려의 꿈을 꿀 때, 언제나 옆에 이새봄이 있었던 것 같다.
“맞나?”
고개를 돌려 보았다.
베개가 있기는 하지만, 팔을 베고 누운 목 부분, 엉덩이 부분이 태영의 몸에 닿아 있다.
{추워.}
중얼거리는 것처럼 작게 이새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 몸이 살짝 움찔거린다.
혹시 잠꼬대인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나?
{으, 추워.}
얘가 왜 이러지?
잠꼬대처럼 춥다고 하면서 몸을 미세하게 떠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잔 적이 없으니 이 느낌은 무척이나 생소하다.
아픈가?
아니, 바이호르미어를 주사했으니 아플 일은 없다.
그런데 왜 춥다고 하지?
방 안은 훈훈하고, 침대는 폭신하고, 이불은 잘 덥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체온이 이불 안에 감돌고 있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잠들기 아주 좋은 상태다.
꿈을 꾼다고 봐야 할까?
“봄아.”
이새봄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불렀다.
“…….”
“봄아?”
다시 불러도 대답은 없다.
깊이 잠들었다는 뜻이다.
{추워, 흐으.}
다시 작은 말소리가 들린다.
불러도 반응하지 않으면서, 잠꼬대는 계속한다고?
‘제 방으로 옮겨? 아니야.’
생각을 다시 해 봤다.
훈훈한 방 안의 포근한 침대 속이다.
태영의 체온과 이새봄의 체온을 이불이 감싸고 있는데도 춥다고 잠꼬대를 한다.
이게 뭐지?
혹시 PTSD나 공황장애 같은 것인가?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이 PTSD이거나 그런 유의 정신적인 문제 중에 하나인지 알 수는 없다.
바이호르미어는 사람의 몸을 가장 완벽한 상태로 돌려준다.
바이호르미어 주사를 맞은 사람은 어떤 병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R존의 사람들이 태영에게 수차례 설명했었다.
PTSD는 정신적인 문제다.
바이호르미어가 정신적인 것까지 고쳐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집에 함께 살지만, 서로 다른 방에서 잠들기에 이런 모습을 볼 일은 없었다.
“위니.”
{…….}
“위니.”
[네, 마스터.]다시 부르자 위니가 대답했다.
이 반응은 남녀 간의 지극히 사적인 상태에 있을 때 위니가 보이는 반응 시간이다.
이새봄과 함께 있는 이 상황을 위니는 그렇게 정의한 것 같다.
“봄이가 이렇게 춥다고 한 적이 자주 있었나?”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만, 실내는 항상 따뜻했습니다.]“PTSD로 볼 수 있나?”
[제가 답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알았다.”
태영은 이새봄의 몸을 염력으로 살짝 띄워서 편안하게 몸을 돌렸다.
잠이 깊이 들었는지 깨지 않았고, 고른 숨소리도 그대로다.
이새봄의 몸이 태영을 향했다.
천천히 내려놓았다.
어둠 속이지만, 제법 환하게 이새봄의 얼굴이 보인다.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으응.}
힘을 주지 않았지만, 몸이 당겨지는 것을 알고 잠이 깨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깨지 않았다.
오히려 이새봄은 잠결에 손을 움직여 태영의 품속으로 비비고 들어왔다.
“미안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속으로 찾아든 듯 꼬물꼬물 안겨 든다.
“나는 네가 이런 줄도 모르고.”
이새봄에게서 느껴지던 미세한 떨림이 사라졌다.
그리고 따뜻한 체온이 두 사람을 감쌌다.
~새근새근~
낮고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목에 이새봄의 숨결이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품에 안긴 이새봄이 편안하게 잠든 것 같다.
이새봄이 왜 춥다고 잠꼬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혼자 가려고 할까?
아직도 여전히 사람을 기피하지만, 태영과 함께 갈 때는 잘 간다.
그건 내일 말해 보기로 하자.
자면서 ‘추워’라는 말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래도 혼자 자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 매정하다.
“이제 혼자 잠들게 하지 않을게.”
‘내가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잠시 들었다.
형식이야 어찌 되었건, 둘이 동거 중인 것을 가까운 사람은 다 안다.
그래도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것이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