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3화
고인물의 무대(2)
‘곡이라….’
생각해 보니 나는 고등학생 때 누군가를 위해 곡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부 공모전 제출용이었지.
그때는 곡 하나를 구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었고, 다듬는 데 시간은 더 길었다.
테크닉이랄 게 없는 데다 장비도 미천했으니 당연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실력이 있다.
그뿐이랴 끈기도 있다.
열정은 더더욱 진해졌다.
곡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데 진짜 돼…? 체육대회 바로 다음 주인데….”
“어허. 걱정 붙들어 매고 있어. 너야말로 연습 시간 괜찮아?”
“응 나 초견 잘하거든….”
…진짜 중 진짜 재능러인가.
알고지낸 지 얼마 안 되긴 했고, 뒤에서 무슨 노력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팍팍 왔다.
재능러를 모아놓은 곳에서조차도 전혀 빛바래지 않는 사람.
봄이는 아마 그런 과 아닐까?
아니 그런 과가 아니면 애초에 수업 시간에 애니만 본다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하지도 못하겠지.
여하튼 간에.
드르륵-!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
곧바로 내리꽂히는 시선.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시선!
나는 곧바로 어깨를 쭉 폈다.
“김도일이다….”
“진짜 1등 했네….”
의심을 입에 담던 아이들은 이제 없었다.
대신 채워진 감정은 아마도 호기심.
가장 저돌적인 것은 바로 미래 대성장할 첼리스트 이유림이었다.
“안녕!”
“하이.”
“축하축하.”
“감사감사”
“나 폰 번호좀.”
“응?”
…핸드폰 번호?
그렇네.
떠올려 보면 이때까지 호식이 이외에 번호 교환한 적이 없었었지.
뭔가 좀 두근거린다.
내 핸드폰 번호를 따가는 사람이 생기다니?
“좋지.”
나는 내밀어진 스마트폰 다이얼에 내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를 눌렀다.
“나중에 뭐 좀 물어볼게! 땡큐!”
주목을 끌고, 관심을 받는다.
요약하자면 유치하긴 한데, 사실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악의적인 주목이 두려운 것이지 호의만 가득한 주목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진짜 1등 먹었네….”
“호식이 먹고싶네.”
“아이씨 이상하게 들리잖아.”
절친의 축하도 아주 반갑기 그지없다.
“너 진짜 회귀 각성한 거냐?”
“당연하지.”
“로또 번호 좀.”
“3, 9, 24, 91, 63….”
“90번대가 어딨어! 1등 확률 3조 분의 1나오겠네, 씹.”
나는 당당하게 1등다운 태도로 주목을 즐긴 다음, 자리에 앉자마자 오선지를 꺼냈다.
“해볼까.”
“…지금?”
“엉.”
“바로 되는 거야? 피아노도 없이….”
장비가 모자라서 작곡을 못 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내가 지옥에서 얻은 아주 중대한 가르침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컴퓨터가 없으면 스마트폰이 있다.
나는 내 자랑스러운 고물폰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오래된 거네….”
“그래도 스피커는 두 짝 나와서 좋아.”
아이펀7.
당근산 중고 7만 원 짜리다. 지금 시점으로 나온 지 한 6년쯤 됐나?
여튼 아직은 쓸 만했다. 아이펀이니까.
왜 음악쟁이들은 앱등이밖에 없는가, 사실 뭐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초 대기업에서 직접 ‘음악하는 데 쓰세용’하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주고, 그걸 자기들 기계에 최적화시켜서 그렇다.
일반 사용자들한테는 가성비로 바가지로 욕을 먹는데, 전문 사용자 영역에서는 역으로 가성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튼 나는 개러지 밴드를 실행시켰다.
“개러지 밴드….”
“알아?”
“나도 깔려는 있어.”
개러지밴드도 daw는 daw다.
기능은 몇 개 없지만 스케치용으로는 나름 괜찮았다.
“우선 코드… 피아노로 잡자.”
나는 터치 피아노를 띄워 코드 몇 개를 띵띵거렸다.
“오오오오….”
“놀랄 일은 아닌데….”
“좀 멋져.”
봄이는 괜스레 부담스럽게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우선은….”
Am – E7 – A7 – Dm7로 이어지는 아주 왕도에 왕도인 클래식 진행.
이걸로 루프를 만들고 좀 클래식스러운 멜로디를 몇 개 올리면….
“…오.”
“어때?”
“클래식이다아….”
클래식스러운 음악이 튀어나온다.
근데 반응이 진짜 미적지근하네.
“클래식 싫어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
“그냥… 너무 고급스러운 척해.”
…고급스러운 척하는 게 아니라 고급스러운 거 아닌가?
뭐 한때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괜히 부르주아들이 방귀 좀 개세게 끼는 거라고 여겼다.
“그렇구만.”
“안 이상해…?”
“이상한데?”
“역시….”
“근데 뭐 취향인데 어떡해.”
목표로 하는 꿈이 있더라도 그 꿈의 ‘세부’ 영역까지는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락이 하고 싶은데 발라드를 더 잘해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라든지 말이다.
꿈은 아무리 다가가도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가리는 게 없으니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가리는 게 없다. 모든 장르가 좋고, 모든 곡을 듣는다.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는 취향이 좀 갈리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오케이.”
나는 피아노 루프를 리셋했다.
“애니 좋아하지?”
“응.”
“애니 곡은?”
“어….”
“어?”
“엄!청 좋아!”
“…!”
평소에도 목소리가 조용조용한데, 애니 얘기만 나오면 두 배로 커지는구나.
진짜 개씹덕이구나.
애니 곡이란 게 사실 뭐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느낄만한 목소리를 제거하고, 인스트루멘탈만 듣는다면 그냥 듣기 좋은 팝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내가 지금 만들려는 것은 애니 곡이 아닌, 팝 스타일의 바이올린 연주곡이다.
멜로디를 잘만 뽑는다면 축제에 오는 외부인 중에 분명 눈여겨보는 사람이 생길 거다.
그 멜로디가 ‘보컬용’으로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챌 거다.
즉석에서 세운 것치고는 꽤나 완벽한 작전이었다.
“흐음….”
나는 발랄한 스타일로 코드를 몇 개 두들겨 보다가, 적당한 진행을 찾았다.
b-cxx/ fxx/ b-cxx/ dxxm
이걸로 메인 멜로디 잡고….
“자자 핸드폰 집어넣고~ 수업 시작하니까!”
물론 수업시간이 다가와도 나의 창작 본능은 멈출 수 없었다.
“봄이 에어팟 좀.”
“응.”
우리는 에어팟을 한 짝씩 나누어 끼우고 작업을 했다.
주로 내가 건반을 몇 개 띵띵거리고 사람 악보에 음을 적으면 봄이가 ‘오’하는 혜자스러운 반응을 내주는 식이었다.
뭐랄까.
작곡계의 치어리더 같은 느낌이랄까.
썩 나쁜 기분은 아닌데?
“쌤 와.”
봄이는 귀에 낀 에어팟을 머리카락으로 숨기고, 나는 왼손으로 귀를 짚으며 자는 척을 했다.
일반 교과 시간에는 ‘핸드폰 하는 것’보다 그냥 자는 척 하는 게 더 너그러운 처분이 내려지니까.
여하튼 간에.
20분.
간단하기 그지없는, 2분짜리 코드 베이스를 만들어나간 시간.
50분.
머릿속에 구상한 풍경을 멜로디로서 차근차근 재현해 내는 시간.
1시간.
봄이가 직접 연주하기 전 최대한 다듬어놓는 시간.
연주곡과 반주의 초본을 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지옥에서 훈련한 성과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완전군장으로 행군하다 잠시 쉴 때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볍게 느껴지는 거.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다.
“후우… 초본은 이걸로 됐고.”
“밥 먹으러 갈까?”
“그래.”
우리는 오늘도 밥을 먹으러 갔다. 물론 오늘도 메뉴는 좀 형편없었다.
콩밥과 괴이하게 일그러진 조기 튀김, 김치, 된장국.
나는 밥을 깨작거리며 봄이에게 물었다.
“애니 곡 좋아하면 평소에도 연주하거나 해?”
“응.”
“편곡까지?.”
“그건 아니구… 그냥 보컬 멜로디만….”
보컬 멜로디를 악기로 커버하는 경우는 많지.
내가 회귀 전에 보던 우튜버만 해도 그렇다.
‘커버 장인이 있었지.’
휘황찬란한 옷 입고 바이올린 막 켜대는데 실력이 어마무시하더라.
내가 스물세 살 때였나? 구독자 100만을 돌파해서 뭔가 하고 찾아봤더니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나중에 나도는 소문으로는 퀸 엘리자베스에서 3위를 먹은 적이 있다나 뭐라나.
‘지금은 어떨까?’
나는 갑작스러운 호기심에 핸드폰을 켜서 cute spring을 검색했다.
분명 나랑 나이가 같다고 했고, 열여섯 살 때부터 우튜브를 시작했다고 하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동영상을 찍고 있지 않을까?
“오….”
바로 나왔다. 구독자는 5만 명. 아직 많지 않지만 이게 세계급 바이올리니스트의 어린 시절이구나.
만화에서 끄집어낸 듯한 복장과 색조감 넘치는 눈화장.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이때도 변화가 없었다.
“봐봐. 너랑 똑같이 애니 곡 커버하는 사람 있….”
덜.
덜덜덜덜덜덜덜덜덜.
식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틱, 티티티티틱!
봄이의 손에서 수저랑 숟가락이 서로 막 맞부딪혔다. 이내 바닥에 떨어져 째쟁- 하는 강한 치찰음을 냈다.
“….”
“….”
설마?
“큐트 스프링.”
“흐이익!”
더럳러러러덜덜덜덜-!
그녀의 몸이 단기통 경운기에 올라탄 듯이 더욱 떨렸다. 이제는 식판에서 흘러넘친 국물이 식탁을 가득 적실 정도였다.
“으으… 어… 어… 어떻게 알았….”
봄이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이 반응, 이 표정.
안 물어봐도 알겠네.
“…반갑다?”
그것은 뭔가 테크를 잘못 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의 재회였다.
* * *
봄이가 진정하는 데에는 찬물 세수가 필요했다.
그렇다. 지가 그냥 떨리는 상태로 물 먹다가 얼굴에 쏟아버린 것뿐이었다.
“제발 말하지 말아줘….”
“….”
놀랍네.
이유림이 대성할 우튜버인 건 알고 있었는데 봄이까지 우튜버였다니.
우리 반에 뭔 수맥이라도 흐르나? 우튜버 수맥?
아무래도 나도 채널을 만들어야겠다.
“걱정하지 마. 안 말할게.”
“…고, 고마워!”
“말하는 것만 잘 듣는다면….”
“뭐, 뭐, 뭘 시키려구…?”
봄이의 얼굴에 진득한 공포가 잠식했다.
“구라야. 걱정 마.”
사실 말하기가 무섭긴 해. 회귀 전에 같은 반이었던 내가 모를 정도로 이름을 철저히 숨겼는데, 내가 여기서 이름을 까발린다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애니만 보게 될 수도 있잖아.
여하튼 우리는 식판을 정리하고, 연습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연습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난 작곡과라 쓸모가 없었지만.
“자.”
나는 최대한 세심하게 그려둔 악보를 건넸다.
초견이 빠르다고 하던데 과연 얼마나 걸릴까? 봄이는 음악실에서 가져온 영창 바이올린을 집어 들더니 악보에 적힌 멜로디를 가볍게 긋기 시작했다.
‘…전공생은 맞구나.’
활질이 완벽하다. 정말 완벽하다.
스튜디오에서 일할 당시 가끔 리얼 스트링 사운드를 위해 바이올린 세션을 불렀는데, 그들이랑 거의 비견될 정도로 잘 켠다.
“역시 큐트 스프링인가….”
“그… 그거 안 하면 안… 돼?”
“큐트 스프링이 스트링을 잘하네….”
봄이의 얼굴이 폭발할 듯이 붉게 물들었다. 둘만 있을 때라도 작업 중에는 저 이름은 삼가야겠다.
“미안미안.”
나는 반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 전공은 아니지만….’
현업에서 쌓은 실력이 있다. 지옥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 곡’을 연주할 때,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섬세함은 뽐낼 수 있었다.
“가보자!”
소리는 쳤지만 하지는 못했다. 곧바로 드르륵- 소리와 함께 굳게 닫아놓았던 연습실의 미닫이문이 열렸으니까.
“여기 있었네!”
“서… 선생님?”
찰랑거리는 머리와 짙은 화장. 이름도 기억 안 나고 직접 독대한 적도 없지만 아마 바이올린 선생일 거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글쎄, 봄이 곡 아직도 안 정했다고 했지? 선생님이 너~ 무 기다리다 못해서 몇 개 가져왔어. 오늘부터 같이 해보자?”
“…그 …그게.”
“또 이상한 거 연주하지 말고~”
불청객은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스윽, 봄이의 악보대에 놓여있는 종이를 낼름 치웠다.
그순간 나는,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원위치.”
“…응?”
“악보 원위치.”
“넌 누구….”
대화를 더 잇는 건 무의미했다.
나는 건반을 누르며 인트로 연주를 시작했다.
힐끗, 눈치를 보더니 어깨에 바이올린을 기대었다.
멜로디가, 좁다면 좁은 연습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불청객의 얼굴 또한 서서히 변화시켜 나갔다.
당황과 불쾌함이 섞인 표정에서,
“이거 무슨 곡이니…?”
마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풀어진 표정으로.
‘성공적이군.’
그리고 나는 성공에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