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4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4화
고인물의 무대(3)
찬란했던 학생 시절의 추억은 삶의 동력이 된다.
가끔 그 시절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누구누구는 안 뒤지고 잘살고 있나 쓸데없는 걱정도 하다 보면 힘든 일이 싹 잊힐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 다시 찾아가 본다는 생각은 잘하지 못하는데, 기회가 없어서였다.
학교란 원래 그런 것이다.
졸업을 하는 순간 다시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교복에 안 어울리는 외견은 둘째 치고, 기억 속의 그 사람들이 이제 옆에 없으니까 그렇다.
다만,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추억 속의 학교에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면?
괜히 혹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연화 예술 고등학교 출신, 가수로 활동하다 현재는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최성민 또한 그랬다.
“…3년 만인가.”
20세 가수 데뷔, 33세 은퇴 후 보컬 트레이너로 전직.
엔터 회사에 들어가 2년 만에 유명 걸 그룹을 시장에 배출했다.
처음에는 가수가 트레이너를 한다니, 몰락이니 뭐니 떠드는 인간들이 많았지만 별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2년 만에 성과를 냈으니 말이다.
이제 모두가 안다. 차린 지 10년 좀 안 되는 신생 엔터 회사가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이사 자리에 오른 최성민의 공이 크다는 것을.
‘재능을 빨리 알아채서 다행이지.’
가수로서는 삶은 괜찮았다.
뭐 음방 1위라든가 차트 1위 같은 대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인지도와 팬이 있었다.
하지만 최성민은 가수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활동 도중에 눈치채 버렸다.
자신에게 조언을 얻어가는 후배 가수가 잇달아 대성해 나가는 걸 보며, 재능을 깨달은 것이다.
부우웅-!
북적거리는 언덕 위의 연화예고의 정문을 지나 한 대의 외제 세단이 들어갔다.
외부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운동장은, 오늘만큼은 주차장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운동회는 못 봤네….”
연화예고의 5월에는 두 개의 이벤트가 열렸다.
하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체육대회, 두 번째는 평소의 연주회와는 다른, 길고 풍성한 연주회.
전자를 보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가 외부인들에게는 더욱 큰 볼거리이자 관심사였다.
오랜만에 모교에 방문한 최성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쭈욱- 기지개를 켜고서 반갑기 그지없는 학교를 거닐었다.
물론 반가운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늦는구만.”
“반갑다.”
낮이 익은 목소리.
오래된 친구다. 뭐, 그렇게까지 오래된 건 아니고. 만난 지 한 반년 정도 됐나?
“빨리 오지.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짜식이.”
원래 그렇잖아. 다니던 학교라도 혼자 가면 좀 뻘줌하잖아.
같은 학교 출신이랑 가면 훨씬 나은 법.
최성민은 괜히 친구의 어깨를 턱턱 두드리며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
“난 뭐 똑같지. 넌?”
“나도 똑같지.”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라 하더라도, 성인이 되어 접점이 느슨해지면 자연스레 사이도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다만 최성민과 그 친구 이준호는 아직도 끈끈했는데, 바로 생활 반경이 일정하게 겹치기 때문이었다.
이준호는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자신이 키워낸 제자들의 곡이 그의 손을 대개 거쳐 갈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다.
워커 홀릭이란 점 빼고는 성격도 무던하고 꽤 좋은 놈이다.
…워커홀릭이란 점 빼면 말이다.
“이야… 넌 여기까지 와서 이어폰을 꼽고 있구나. 그건 또 얼마 줬어?”
“아, 이거? 이번에 젠하이저에서 나온 건데 소리가 글쎄 아주 청량한 게 은접시에 물방울 떨어지는 것 같은….’
‘괜히 물었다.’
스튜디오 밥 먹는 인간들 중에는 환자가 많다.
환자가 무엇이냐, 좋은 소리를 추구하고 추구하다 못해 음향장비에 돈을 다라이로 쏟아붓게 돼버린 인간들이다.
같은 업계 사람들도 환자들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데, 이준호는 그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중병 환자였다.
아마 집 평수 두 배 늘리기 vs 집 전선 전부 은선으로 깔기 중 선택하라면 거리낌 없이 후자를 고르지 않을까?
“그래그래. 그 청량한 소리 나는 젠하이저 이어폰으로 뭐 듣는데? 이번에 데뷔한 애들?”
“그건 작업 끝났고. 지금은 다른 거.”
“뭔데?”
“봐봐.”
이준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보다 조금 작은 기계를 내밀었다.
A&k의 초고가 Dap. 역시 환자들은 음악도 핸드폰으로 안 듣는 법이었다.
“음….”
힐끗, 최성민은 dap의 화면을 보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음악 파일의 확장자가 기기에 어울리지 않는 MP3였기 때문이다.
“…Wav가 아니네.”
“음원이 MP3밖에 없거든.”
“어디서 불따라도 했어?”
“나 공모전 심사하잖아. 그 곡이야.”
저번 연도에 뭐 어디 협회에 들어가서 심사위원을 한다더니만. 그 얘기인 듯했다.
“근데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경합인가?”
“아니, 압도적이라서.”
“압도적이라고…?”
더 쉬운 거 아닌가?
누가 더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를 썼느냐, 누가 더 깔끔하게 최종본을 뽑아냈느냐.
사운드 엔지니어라면 몇 번 재생 안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것일 터.
“그럼 왜 고민해?”
“잔말 말고 들어봐.”
최성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어폰을 받아들어 귀에 꽂았다.
그리고 자신의 절친이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버렸다.
“이거….”
가장 먼저 귀에 때려 박힌 것은, 강렬하기 그지없는 비트였다.
그다음에는 이어지는 퍼즈감이 강력한 신시사이저의 멜로디, 위를 덮는 일렉트릭 피아노.
지글거리는 퍼즈 베이스는 근음과 5도 화음을 폭넓게 커버했다.
‘…찐득하구만.’
뭐랄까, 마치 네온사인이 시야를 전부 덮은, 비 내리는 근 미래의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번 듣는 것만으로 곡의 스토리가 전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어디 대학인데?”
최성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단 한 곡밖에 듣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스튜디오의 문을 두들길 것 같았기에.
다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었다.
“이거 고등학생 대상 공모전이다….”
“엥…?”
….
…이런 실력의 고등학생이 있다고?
…한국에?
최성민은 친구의 대답을 신뢰할 수가 없어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맞아?”
“맞아.”
“어디 고?”
“연화 예술 고등학교. 여기.”
“….”
“너 무슨 생각하는 줄 알아. 어디 프로한테 곡 받아다가 제출한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
“그야 씨, 말이 안 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기만 제출한 게 아니더라. 비슷한 시기 공모전 열리는 데에는 다 보냈더라. 내가 확인한 것만 네 곳.”
최성민은 이어폰을 뺐다.
얼굴에는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한 어이없음이 진하게 피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의 표정이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양 똑같았다.
“후배 중에 천재가 있는 거 같다. 진짜 천재.”
그리고 친구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에, 추억의 풍경을 보며 가슴이 박동치기 시작했다.
“추억팔이 하러 온 건데… 일도 해야겠는데.”
* * *
봄이와의 연습은 매우 순조로웠다.
점심 먹고 같이 연습실 가고, 켜보고, 피드백 받고, 집에서도 따로 연습해오고.
악보를 전부 외우는 데는 이틀 정도밖에 안 걸리더라.
그다음부터는 다듬기였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인정사정이 없었다.
“조금 거기 파~ 부분 좀 더 날카롭게 안 돼? 비브라토도 짧게!”
“응! 해볼게!”
“그리고 또….”
보통 세션들은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요구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언짢은 티를 내긴 하던데.
봄이는 그런 게 없었다. 뭐랄까, 실력은 18세답지 않지만 배우려는 자세는 18세답달까.
‘퀸 엘리자베스 3위 소문은 사실이구나.’
증거는 없지만 확신이 들었다.
정도를 걷지 않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명 음악인들도 댓글 창에 자주 출몰하며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표하던 게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간에.
정기 연주회에서 뽐낼 곡 준비는 끝났다.
5월 16일.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체육대회 날이 찾아왔다.
뭐, 솔직히 말해서 체육대회에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다만, 회귀 전과는 양상이 꽤나 달라졌다.
우선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릴 때, 다른 사람 곡이 아닌 내 곡이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둥-!
좌아아앙-!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 헤비 락 계열 BGM.
개인적으로 감상을 붙여보자면 국가가 허락한 천연 스팀팩 같달까.
이걸 들으면서 돌격하면 이동속도가 한 10%는 빨라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내 곡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자애들보다는 남자애들이었다.
“와… 이거 누가 작곡한 거냐? 뽕 지대로 차네.”
“그 스타크래프트 곡 그거 같음.”
“테란?”
“맞아맞아, 그거.”
“이번에도 신현수가 될 줄 알았는데.”
“어? 이거 신현수 곡 아니야? 누군데?”
“2학년에 김도일이라고, 이번에….”
지옥 생활의 덕일까, 누가 남 얘기하는 건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겠다.
‘흐흐흐.’
나는 점점 올라가는 어깨 뽕에 주체하지 못한 채,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때는 줄다리기였다.
전생에 분명 첫 번째로 탈락한 것 같아서 대충했는데, 아니더라?
우리 반이 계속 이기더라.
‘곡 탓인가… 아니면….’
어쩌면 내 몸 탓일 수도 있었다. 지옥에 돌아온 다음부터 뭔가 몸이 우락부락해지기 시작했다. 배도 계속 고팠다.
뭐랄까, 근력과 몸이 알아서 지옥 시절로 때로 돌아가려는 느낌이랄까.
‘지금보다는 훨씬 컸었던 것 같은데.’
이건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몸 커져 나쁠 건 없잖아?
여하튼.
무사히 이틀간의 체육대회가 끝났다.
5월 17일 월요일 저녁.
봄이와의 마지막 합주를 끝내고, 나는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굣길에 올랐다.
물론 바로 집에 갈 생각은 없다. 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나는 학생들 상대로 초저가 장사를 하는 미용실에 당당히 입성했다.
“형광색.”
“…예?”
“형광색으로 염색해 주세요.”
핸드폰으로 하고 싶은 머리 색을 보여주는 것은 덤.
“지… 진짜 이 색깔로 해요?”
“물론이죠.”
“아… 예.”
강렬한 형광빛 민트색 머리칼이 시야 주위를 아른거린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따지고 보면 다시 태어난 게 맞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맘에 드세요?”
“잘 나왔네요.”
나는 미용실 거울로 머리카락을 살피며 학교 소품실에서 쌔빈 보디 페인트도 가방에서 꺼냈다.
보라색이었다.
뭐 하는 데 쓸 거냐고?
모처럼 무대에 올라서 피아노 치는데, 몸이랑 얼굴에 칠해야지.
보라색 피부, 형광빛 머리칼.
이것만 있으면 절대 그 누구도,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진짜 X나 완벽하군.”
이 학교엔 나 말곤 고인물이 없었다.
그러므로, 한껏 뽐낼 수밖에 없다.
고인물의 위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