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40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40화
클래식의 난입자(3)
8월 3일 수요일.
드디어 ‘진짜’ 여름인 8월에 진입했다.
내가 코찔찔이 시절까지만 해도 선풍기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기상이변이니 뭐니 날씨가 개지랄이 나서 아닌 것 같더라.
‘대단한 습도군.’
늦장스럽게 시작된 장마는 8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비가 온다.
계속 온다.
물론 그럼에도,
“준비됐어 [봄]?”
“물론이지 [일].”
우리의 준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솨아아아아아-!
우리는 오늘따라 엄청나게 퍼붓는 비를 가르며 본선장으로 향했다.
뭐 나는 솔직히 비가 온다고 해서 그다지 큰 영향은 안 받는다.
습기 때문에 본선장의 피아노가 X될 수는 있지만, 피아노가 X된다고 해서 나만 X되는 게 아니잖아?
다 같이 X되니까 괜찮았다.
다만 봄이는….
“준비 진짜 만땅이네.”
“당연하지 [일].”
준비를 진짜 완벽하게 한 것 같다.
‘바이올린 케이스는 원래 습도 조절이 되는 거 아닌가?’
봄이의 바이올린 케이스는 딱 봐도 겁나게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근데 거기에 거대 비닐 지퍼백을 감싸고, 보베다를 잔뜩 넣어놨다. 연주자의 집념이랄 게 보여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
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라.
언제나 보던 봄이가 아니다.
평소 선생님한테 지목당해서 발표할 때나, 무대에 올라갈 때나.
뭔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 같은 표정이 조금조금씩 보였는데.
지금은 완전 쌩쌩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 곡에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마음에 들어 했었지.’
봄이한테 써준 곡은 노 베이스로 만든 게 아니었다.
정기연주회에 썼던 멜로디에 클래식스러운 기교를 몇 개 섞고, 진행도 좀 바꾸고.
난이도 빡 오르게 피치카토 같은 뜯기술 좀 때려 박고, 속주 좀 더 넣고.
클래식보다는 국적 불명 김치피자 탕수육 같은 느낌이 되기는 했지만.
‘중독성은 엄청났어.’
정말 자극적이게 되더라.
세 마디라도 듣기 시작한다면 멈추기가 힘들 만큼.
“도일이가 써준 곡 있잖아, 우리 엄마 아빠도 진짜 좋아했었어!”
“오.”
“엄마는 옛날부터 클래식만 들어서 내가 애니 곡 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엄청 신기해.”
내 곡 덕에 부모님이랑 사이가 좀 개선된 느낌이다.
‘자세한 집안 환경은 잘 모르겠지만.’
입는 거나 쓰는 거 봤을 때 우리 집처럼 가난한 건 아닌 것 같고.
힐끗.
내 얼굴을 확인한 봄이가 부연 설명을 이었다.
아마 되게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나 보다.
“엄마는 그림 그리셔.”
“그렇구나.”
“머지않아 전시회 한다는데 한번 와볼래? 엄마도 너 얼굴 보고 싶으시대.”
‘되게 잘 사는 집안인 모양이네.’
뭐 사실 예고에는 나 같은 애들이 별로 없긴 하지. 예술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미술이라….’
딱히 음악이랑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뭐, 친구네 부모님 보러 가는데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좀 그렇다.
그래서 난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나야 좋지.”
“진짜!?”
“그럼그럼.”
봄이는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얘네 집에 친구가 놀러 오는 게 처음이라던가?
‘숨막히겠구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봄이는 진짜일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우리는 비를 뚫고서 본선장에 도착했다.
구로구에 위치한, 예선과는 다른 진짜 ‘공연장’.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와우.”
나는 건물에 도착해서도 처마 밑에 들어가지 않고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회귀한 다음에 진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네.
감회가 새로웠다.
뭐랄까, 몸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랄까?
폭풍전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진짜 폭풍 같은 비가 퍼붓고 있기도 하고.
다만,
“너무 오랜만이라서 느낌이 이상해?”
나의 센티멘탈적인 감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채은지.”
방해꾼의 이름은 그러한 모양이었다.
‘또 시비충인가?’
처음 든 생각은 그랬다.
봄이의 재능에 질투하여, 시비를 걸고 뒷담화나 하는 애인 줄 알았다.
다만 봄이의 표정을 보고서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떠오른 감정의 결이 다르다.
마치 ‘경계’하는 것 같달까.
“난 네가 바이올린 완전히 접은 줄 알았어. 1년 반이나 콩쿠르에 안 나왔잖아.”
“…좀 쉬었던 것뿐이야.”
“그래? 그럼 실력도 그대로겠네? 난 성장했는데.”
방긋방긋 웃는 얼굴과 대비되는 날카로운 언행.
“난 이번에 차이콥스키 협주곡으로 하려고.”
바이올린 곡은 겉핥기밖에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알 정도로 꽤나 고난이도의 곡이었다.
“지정 곡 하는 게 더 점수 따는데 유리하긴 한데, 뭐 너랑 내가 그런 거 신경 쓸 만한 실력은 아니잖아? 넌 뭐 골랐어?”
“난 Salt swimming.”
봄이는 당당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뭔데?”
“곧 알게 될 거야.”
휙, 고개를 돌려 버리는 봄이와 인상을 한껏 찌푸리는 여자애.
“1등은 못 하겠네. 이상한 곡 들고온 거 보니까.”
그녀는 옆에서 탁탁, 우산을 털더니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누구야?”
“…예전부터 알던 애인데, 되게 잘해.”
“오.”
좀 놀라웠다.
봄이랑 지내면서 얘가 누구한테 ‘잘한다’라는 말을 하는 걸 거의 못 들어봤는데.
본인 실력이 원체 뛰어나니 당연하긴 하겠지만서도.
“콩쿠르에서 자주 만나서 맨날 1, 2위 번갈아 가면서 했어. 뭐랄까… 라이벌?”
그렇구나.
라이벌이라는 거구나.
뭔가 좀 멋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되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
“….”
“난 변할 거야.”
봄이의 얼굴이 찌릿,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콩쿠르에 서는 게 ‘자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참가 과정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적도 생겼지만, 라이벌도 생겼다.
후자는 뭔가 좀 부러웠다.
“화이팅!”
나는 봄이와 아쉽게도 대기실이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무운을 빌어준 다음 갈라섰다.
그리고 나는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고 아슬아슬한 시간이 될 때까지 한참을 밖에서 서성였다.
머릿속에, ‘갈망’이 찾아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라이벌이라….’
떠올려 보면, 딱히 전생에 라이벌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작곡가는 원래 고독한 직업이니까.
그럼에도 라이벌에 대한 로망은 항상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같이 으쌰으쌰 경쟁하면서 서로 실력 발전도 도모하고, 막 대회 끝난 다음에 서로 어깨도 도닥여 주고.
내리쬐는 노을 아래에서 괜히 뜀박질 좀 하고.
청춘 만화 같네.
하고 싶어졌다.
하고 싶어졌으면 하면 된다.
바로 지금부터.
결단을 빨랐고, 실행은 더 빨랐다.
그렇기에,
쾅-!
나는 피아노 대기실의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힘과 동시에 선언했다.
“라이벌 할 사람?”
정적과 함께 우글거리는 앳된 눈들이 전부 나에게 향했다.
* * *
어릴 적부터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걷는 이상, 한 중학생쯤 되면 다 아는 얼굴이 된다.
대회에서 마주치고, 맞붙고, 이기고, 지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학생들 사이에서 나름 서열이란 것이 생기게 되는데, 김강현은 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위.’
피아노를 잘 친다. 어릴 적부터 영재, 천재 소리를 번갈아 가며 들으며 수많은 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유명세에는 그림자가 꼈다.
‘유재호…!’
천재.
그 단순한 단어 한마디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인물은, 언제나 김강현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언젠가는 재낀다.’
1등을 차지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대회는 유재호가 참가하지 않았던 것뿐.
그렇기에 김강현은 작년 즈음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아직 그의 목을 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비장의 수를 들고 나왔으니.’
‘흑건’을 갈고닦기를 1년 반, 어느덧 그 연주는 프로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자신 혼자 내린 평가는 아니다. 솔로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리는 프로조차 같은 감상을 내놓았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천재 유재호와 불굴 김강현의 한판 승부에 대기실이 한껏 달아올랐어야 할 터.
다만,
오늘만큼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연화예고에 김도일이란 애 있거든? 피아노 전공이 아니라 작곡과래.
-미친. 다른 과가 본선에 올라온 거야?
-심지어 클래식 작곡이 아니라 미디 작곡이라는데?
-그거 가요 쪽이잖아.
-어떻게 한 거래?
-그냥 잘 쳤다는데?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더라.
천재 유재호도, 자신도 아닌 제3의 인물에게.
‘도망자인 줄 알았는데….’
다른 전공에서 잘 안 되니까 만만한 피아노로 도망쳐 온 줄 알았는데.
소문으로 듣기에 그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어디서 이상한 놈이 굴러들어 와서는…!’
다만,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다른 과 출신이다.
십수 년.
재능과 어우러진 자신의 ‘노력’이, 어이없이 짓밟힐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김강현은 계속해서 입맛을 다셨다.
김도일이란 놈이 대기실로 들어오면,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은근한 꼽주기는 김강현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다만,
콰앙-!
철문이 거의 부서지듯 열리는 소리와 함께,
“라이벌 할 사람?”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몸체가 대기실에 비집고 들어오자, 모두가 숨을 죽이게 되었다.
‘…뭐, 뭐지?’
처음 든 감정은 당황감이었다.
“나랑 라이벌 할 사람 없냐?”
두 번째 든 감정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저게 고등학생이라고?’
불이라도 뿜을 듯이 저돌적인 눈빛, 옷 아래로도 보이는 우락부락한 몸체.
괜히 말 잘못 걸어서 한 대 맞으면 전치 100주는 넘길 것 같았다.
“…없어?”
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들 미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
기세 하나만은 알아주던 김강현조차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만 1등과 2등의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는 것일까,
“네가 김도일이구나.”
그에게 유일이 대적하는 것은 유재호였다.
“…문 여는 법을 모르니?”
“그치만 손잡이가 젖어 있었는걸.”
“닦으면 되잖아. 여기 드라이기도 있고.”
“오.”
진짜였다.
센스 있는 주최 측에서는 드라이기를 배치해 두었다. 아무래도 물에 생쥐 꼴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썩 보기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개이득이네.”
김도일은 헐레벌떡 드라이기로 달려가더니 몸을 말리기 시작했다.
머리, 상의, 발,
그리고… 하체까지.
“꺄아아악!”
드라이기가 바지 안에 들어갔다.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서 솔직히 여자애의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눈치도 못 챘다.
“너 대체 무슨… 하아, 아니다. 예선에서도 괴상한 짓거리를 했다고 했지.”
“내가?”
“어. 이상한 복장으로 관심 끌었다며?”
“개인적인 퍼포먼스라고 해두지.”
그는 이상했다.
다만 김강현이 놀란 것은 그런 이상한 ‘김도일’뿐만이 아니었다.
‘천하의 유재호가 경계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이 해왔기에 알고 있었다. 유재호는 웬만한 일에 적대감을 품지도, 경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에게 맞섰다.
원래라면 대적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놈이, 말상대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선 올라와서 신난 건 알겠는데, 예의는 좀 지키지.”
“예의라….”
알려준다고 순순히 따를까?
“그럼 클래식 콩쿠르 예절에 대해 설명 좀 부탁해.”
…자그마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손히 부탁했다.
그리고 유재호는 그걸 또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어떤 옷을 입고 오는지, 무대에 올라가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끝나고서는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지.
마치 유치원생을 어르고 달래듯이.
“…미디 출신이니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배우면 돼.”
“그렇구만.”
“본선에서는 무슨 곡을 칠 거지? 내가 알려줘도 되는데.”
물론 그 끝맺음은 역시나 유재호다웠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모든 것이, 자기 아래에 있다는 표정.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바였다.
저 고압적인 태도에 넘어간 학생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았다.
조금 분하더라도 넘어가는 편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천재의 가르침을 손수 받을 수 있기에.
다만,
“난 자작곡인데?”
김도일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자작곡….”
“자작곡.”
“네가 쓴 피아노곡?”
“피아노 대회니까 그렇겠지?”
“흫.”
허파에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였다.
“하하하하하!”
그게 이어졌다.
“피아노 대회에서 자작곡을 들고 나온다고? 작곡 대회도 아닌데? 네가 저명한 작곡가의 곡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풋.”
“푸흡.”
1인자의 조롱은, 추종자의 조롱 또한 같이 만들어냈다.
대기실이 일순간 웃음바다로 변했다.
하지만 김강현은 그 웃음을 끝까지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위치가 적절했기에,
‘김도일’의 표정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로 주눅 든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웃음 소리가 잦아들고, 또다시 정적이 흐르려고 했다.
다만,
신은 대기실에 정적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먼저 시작한 바이올린 본선장에서,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봄이 차례가 끝났나 보군.”
씨익,
그의 입가에, 시원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걸렸다.
“봄… 김봄?”
“내 절친을 아나?”
…모르는 게 이상했다.
유재호급의 바이올린 천재.
그녀가 콩쿠르에 복귀했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한 바퀴 돈 다음이었다.
근데… 걔랑 김도일이 절친이라니?
“들리는가?”
그는 마치 장군이라도 된 듯이 목소리를 깔며 물었고, 자답했다.
“그녀가 켠 곡이 내 곡이다.”
유재호의 눈썹이, 아주 약간 꿈틀였다.
“그리고 내가 칠 곡 또한, 내 곡이다.”
함성은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켰길래?
어떤 곡이길래?
이 눈앞의 난입자는… 뭘 준비했길래.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너, 라이벌은 불합격.”
그는 유재호 이상으로,
머리 꼭대기에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선언했다.
“설명충 따까리는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