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39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39화
클래식의 난입자(2)
‘재능이 없어도 1만 시간을 쏟아부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유재호는 이런 말을 입에 담는 인간은 딱 두 부류로 분리할 수 있다고 봤다.
첫 번째는 사기꾼과 장사꾼 그 어딘가에 위치한 인간.
강의를 팔아먹고, 책을 팔아먹고, 어쨌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념 비스름한 것을 밀어 넣어,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두 번째는 그럼에도 건강한 삶을 살아보려는 인간.
어쨌든 자신이 목표하려는 것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니, 그에 합당한 ‘신념’을 가져 보려는 자.
후자의 경우는 분명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가져왔다.
성취를 위해 땀을 흘리고, 몰두하고,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또 다른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다 같이 으쌰으쌰 열심히.
이 얼마나 훌륭한가?
유재호는 만약 지금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후자 같은 삶을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얼굴도 평범하고, 키도 평범하고, 재능도 평범한 삶은 분명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 테니까.
노력과 인내 끝에 땀에 젖은 성취!
소설 속 노력형 주인공은 언제나 멋있지 않은가?
뭐, 어쨌든 그랬다.
가끔 하는 생각이었다.
딱히, 할 필요가 없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재호, 오늘도 수고했어!”
“이제 연습 끝난 거야?”
서울 중앙 예술고등학교의 연습동.
그곳에 단 세 대밖에 없는 그랜드 피아노 중 한 대가 연주를 멈추자, 수많은 앳된 목소리들이 아쉬운 듯한 목소리를 토했다.
대개 톤이 높았다. 여자애들이라는 소리다.
그녀들이 자기 연습도 하지 않고 유재호의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잘생기고 잘났으니까.’
친구들은 그를 볼 때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주었는데, 큰 키와 잘생긴 외모까지 같이 얹었다. 말도 안 되는 밸런스 패치였다.
“응.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미안해 더 못 들려줘서.”
“아, 아니야….”
“진짜 넘 착해.”
뭐 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하는 게 거지 같으면 말짱 도루묵일 것이다.
하지만 유재호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것을 숨기는 법을 오래전에 터득했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향 그 자체,
완벽.
그 오만한 단어를 가장 깔끔히 소화할 수 있는 인간이 유재호였다.
“본선에서 그거 칠 거야?”
“더 어려운 곡이 나을 거 같네. 아무래도 국내대회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잖아?”
“무슨 곡?”
“우선은 베토벤의 열정 생각 중이야.”
“지, 진짜?”
“우와….”
“지정곡에 그게 들어가 있어?”
“아니? 자유곡도 된다길래.”
자신을 빙 두른 여자애들에게서 연신 대단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사실 뭐, 이해는 갔다.
‘진짜 어려운 곡이니까.’
심지어 본선의 지정곡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서 본다면 ‘자폭’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수 없을 만한 행위.
다만,
“듣고 싶다….”
“나두.”
‘유재호’라는 인간이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릴 적부터 보여준 압도적인 성적. 열 살에 흑건을 들고나와 전국 대회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는 전적.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아주 자연스러운 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감에 충족시킨다면, 추종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었다.
‘졸업 후가 기대되네.’
지금도 길거리에 버려진 피아노를 아무렇게나 친 영상이 [천재 미소년 피아니스트의 버스킹]으로 우튜브에 나돌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성인이 된다면 더더욱 관심이 몰리겠지.
그 누가 뭐래도, 유재호의 미래에는 ‘도저히 대적할 자가 없는’ 완벽한 일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범인들은 아래에서 영원히 우러러보기만 하는, 그런 재미난 인생이 말이다.
…근데,
“아 맞다! 재호도 예선에서 장송 행진곡 쳤었지? 다른 예선장에서도 그거 친 애가 있대!”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정보가 들려오더라.
“신기하네.”
“그거 고른 애들은 다 떨어졌는데, 걔만 붙었다는데?”
“오호….”
파악해 둔 참가자 중에서 그 곡이 특기인 애는 없었는데.
‘누구지….’
궁금증이 피어났다.
유재호가 봤을 때 장송 행진곡은 명확한 함정이었다.
대중적인 인지도 때문에 픽만 한다면 주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주제를 표현해 내기가 지독히 어렵기 때문에 관심만 받고 끝날 가능성이 컸다.
“이름은?”
목소리가, 아주 약간 날카로워졌다.
“김도일이라는데?”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
“아, 김도일! 걔 이번이 첫 콩쿠르라매?”
“나도 들었어.”
“…뭔 개ㅅ… 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본인 입으로 그랬다는데?”
해외 출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다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국적자가 국내 대회에 나올 리 만무하거니와, 이 바닥은 아주 좁았다.
해외에서 이름 날리는 고등학생이 기어들어 왔다면 바로 소문이 퍼지게 되어 있었다.
해외 출신이 아니라는 소리는 즉슨….
“…전공을 바꾼 건가?”
“알고 있었어? 원래 작곡과였대.”
“도망자구나.”
대학 입시 전에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만만한 건 역시 피아노였고, 피아노 전공생들은 피아노로 도망쳐온 애들을 그리 불렀다.
‘…운이 좋았구나.’
평소 장송행진곡을 너무 좋아해서 그것만 쭉 팠고, 우연히 예선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런 가정이라면 납득이 딱히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난 신경 안 써.”
“역시 재호는 여유 넘치네!”
사실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내비칠 수는 없을 뿐.
이미 머릿속에는 어떻게 도망자를 밟아줄까 고민밖에 안 들었다.
타고나길 잘 타고났기에, 남을 밟는 것은 당연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도 느꼈다. 천성 ‘정복자’의 성격이랄까?
“에이, 나도 열심히 준비해야지.”
유재호는 아무도 모르게 씨익,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눈에 거슬리는 도망자는, 최대한 비참하게, 압도적인 실력 차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천재니까.
천재는 원래 그래도 됐다.
* * *
안 그런 작곡가가 있겠느냐마는, 멜로디가 먼저 떠오르면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다.
코드 찍어보다 멜로디 입혀보고 지우고 반대로 해보고, 안 되면 번갈아가면서 해보고.
이런 거지 같은 짓거리를 안 해도 되니까.
원래 구상하던 진행도 있었고, 비 퍼 맞으면서 떠오른 멜로디 몇 마디도 있었고.
나름 머릿속에 준비는 괜찮게 되어 있었다.
다만,
‘여유가 많지는 않겠구만.’
본선은 예선이 끝난 후 12일 뒤에 진행됐다.
다른 참가자들한테는 널널한 시간일 테지만, 나한테는 아니었다.
곡을 만들어야 하니까.
지금까지 거의 시도해 보지 않았던 ‘클래식’을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어내야 한다.
뭐 그렇다고 촉박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나는 예선이 끝난 당일 봄이한테 넘길 곡의 수정을 끝낸 다음, 곧장 학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서희영 선생님이었다.
“어떻게 됐니?”
“당연히 붙었죠.”
“오?!”
“오오오오오오오오!”
로비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애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더라.
“와… 작곡과가 본선에 올라가?”
“도일이는 프로 작업 경력도 있잖아.”
“그래도 클래식인데?”
미디 작곡에서 클래식으로의 진출.
그 행위는 상상 이상으로 관심이 몰리는 것 같았다.
아직 예선 진출이고 본선에서 우승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곧 있으면 페어리스 앨범이 발표되지.’
지금 추세로 본다면 기사 같은 데에 내 이름까지 왕왕 언급될 거다.
근데 그 상태에서 내가 클래식에 진출한다?
‘어그로 지렸다.’
상상만 했는데도 엄청났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그리고 이대로 잘 가기 위해서는… 곡이 필요하다.
“나 작업 드간다.”
나는 곧바로 학원에 차려진 내 전용 작업실에 문을 박차고 들어가 로직프로를 켰다.
“클래식 작곡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선지 안 써?”
근데 문을 안 닫아서인가, 바로 훈수가 들어오더라.
“오선지는 좀 구시대적이지.”
왜, 드라마 같은 거 보면 그런 거 있잖아.
볕 잘 드는 책상 앞에 주인공이 앉아서 만년필로 종이에 대고 작곡하는 거.
‘낭만’은 있는데 솔직히 낭만 말고는 없더라.
핸드폰이 없을 때, 혹은 바로 그려서 누구 줘야 할 때 빼고는 그다지 애용은 안 한다.
‘컴퓨터로 엑셀 쓰다가 주판 두드리는 것 같지.’
“우리 아빠는 오선지 쓰던데….”
임다윤이 탈룰라를 걸어왔다.
“아, 말을 잘못했네, 그 뭐냐 그 온돌, 아니, 온고지신이라는 거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클래식 작곡도 역시 로직프로였다.
‘멜로디는 대충 다 두드려놓고 나중에 손보자.’
나는 머릿속에 쳐박아둔 멜로디를 그대로 꺼내어 미디로 찍었다.
그리고 멜로디에 어울리도록 한 땀 한 땀 코다도 같이 찍었다.
클래식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5도 진행.
C – F- B – EM – AM -….
마이너 코드 부분은 세븐스를 적극적으로 침투시켜서 분위기 변주를 노린다.
눅눅하게.
습도가 느껴지도록.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코다 멀티트랙을 합쳐서 틀면….
“…클래식이 이렇게 간단하게 써지는 거였어?”
“쩐다….”
나만의 클래식이 완성된다.
‘초본은 이렇게 가고…. 나머지는 수정 지옥인가.’
믹싱, 마스터링 과정이 없고 녹음본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다만, 나는 이걸 실제로 연주해야 했다.
편곡 소요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
‘그랜드 피아노가 없네.’
막상 내가 실연할 악기로 한 번도 연주를 안 해본 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래서 무작정 회사에 찾아가 그랜드 피아노를 보여달라고 떼썼다.
쳐보니까 꽤 좋더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긴 한데.’
원래 내 분야가 아니었다.
아무리 지옥에서의 수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대치를 높여둘 수는 없었다.
내 소소한 바람은 1등을 먹고 심사위원(현업자)들에게 이름 도장을 콱 찍어두는 것뿐이다.
아, 이건 소소한 게 아닌가?
어쨌든 간에.
송 프로듀서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 괜찮은 것 같더라.
‘그러고 보니 완성본 피드백을 못 받았네.’
열흘 동안 같은 곡만 쳐댔으니, 귀에 익숙해져 버린 학원 애들이나 강사들한테 피드백을 받을 수는 없고.
나쁘게 뽑힌 것 같지는 않은데.
“너… 너.”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체 뭘 만들어 온 거냐?”
“…네?”
처음에는 잘못된 건 줄 알았다.
목소리가 아주 어두웠으니까.
다만 이어지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거… 녹음본 있으면 좀 보내줘. 다른 프로듀서들한테도 들려주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절정은 본선 하루 전, 괴인 임재철의 평가였다.
“…이걸 네가 썼다고?”
“넵.”
“흐음….”
임재철은 연주곡을 듣고서 한참이나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내가 앉아 있던 피아노 의자를 뺏어 자기가 연주하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첫 작곡이지? 완벽하지는 않구나. 특히 코다 전개에서 가요 쪽 버릇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
근본이 미디 작곡가니까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역시 손에 익은 습관은 떨쳐내기가 힘든가 보군.’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게 완벽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좀 더 연습을 하면 좀 더 나은 게 뽑힐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지. 아무리 천재라도, ‘첫 작’에서 이런 퀄리티를 내보일 수는 없어. 천재도 인간이니까.”
“….”
그냥 책을 읊는 듯한 어조였다.
평소에 말하던 버릇 그대로.
그는 담담한 사실을 이야기하듯이 곡에 대한 마무리 감상을 내렸다.
“넌 천재가 아니라 괴물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