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38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38화
클래식의 난입자(1)
‘생각보다 반응이 더 괜찮은 것 같은데?’
내 순번이 끝나고, 격정적인 표정을 짓는 심사위원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예선에서 떨어질 거란 생각까지는 안 했다.
대충 괜찮은 반응이 나올 거라는 예상은 했다.
근데 이 정도라고?
쑥덕쑥덕.
심사위원들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바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나를 자리에 돌려보내지 않고 물었다.
“피아노 콩쿠르인데 자작곡을 써 오겠다고요?”
“안 되나요?”
“아뇨,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럴 거면 작곡 콩쿠르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른 곡도 좀 더 듣고 싶… 아, 아닙니다.”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뭐 심사위원들의 걱정은 아주 타당하다고 본다.
피아노 콩쿨에 자작곡? 아마 좋은 평가를 해본 경험이 없을 거다.
피아노로 즉흥 좀 잘 친다고, 다른 곡에 어레인지 좀 가해 봤다고 섣불리 자작곡을 들고 나오면 반드시 피를 보고 만다.
‘근데 난 저쪽이 메인이란 말이지.’
내 곡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작곡한 피아노곡이 클래식계에서도 먹히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근데 김도일 군 실력이라면 꼭 자작곡이 아니라도….”
심사위원 중 한 명은 말을 이으려다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뭐, 평가를 내놓기엔 아직 이르긴 하다. 예선이니까.
본선에서 괜찮은 애들만 추려서 다시 붙여봐야 제대로 판가름이 되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기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봄이한테 괜히 되도 않는 겁박을 하려던 떨거지들이 꽤 괜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랄까, 길 걷다 똥 밟아서 확인하려다 고꾸라져서 개똥에 처박힌 얼굴이랄까.
참 재미있었다.
“다음 36번 참가자 연주 시작하세요.”
이러나저러나 예선은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아직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아주 약간 더 탈락자가 많아진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많아야 되는데.’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내 곡을 들을 거고 더 많이 퍼뜨려 줄 텐데.
괜한 걱정이긴 했다.
“자 여러분은 여기까지고 이제 다음 순번 분들 들어오셔야 하니 이동해 주세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자 반대 방향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바이올린 예선장, 그곳의 주인공은 봄이였다.
현악기 쪽 심사위원들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걸 보니 한 건 했나 보다.
끝나는 타이밍도 비슷했다. 바이올린 쪽 예선장도 사람이 우르르르 빠져나왔다.
멍한 표정의 봄이는 가장 마지막에 조심조심 걸어 나와,
씨익-!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받아본 관심은 좀 어때?”
“엄청… 엄청 무서웠어.”
뭐 그렇겠지.
상담 좀 받는다고 천성이 고쳐지면 이 세상에 심리학자니 정신분석학이니 정신과 의사니 필요도 없었을 거다.
다만,
“근데… 조금 재밌었어.”
그렇다고 ‘말’이란 게 아무 힘도 없는 건 아니고.
아주 약간,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
봄이에게는 내 말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참 다행이었다.
“도일이는 어땠어?”
“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 뒤를 가리켰다.
40명이 좀 안 되는 이번 순번 참가자들이 순수히 돌아가지 않고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직접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발을 못 떼는 것일 뿐.
“1등 했나 보네!”
“그럼.”
예선이니까 1등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저 본선 진출이냐 탈락이냐. 둘 중 하나만 알려줄 뿐이다.
뭐 근데 아무도 태클 안 거는 거 보니까 1등 맞는 거 같기는 한데?
“이제부터 뭐 할 거야?”
“곡 만들어야지.”
“본선에서 쓸 거?”
“오,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가요 쪽 작곡한다는 걸로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뭔가 그런 느낌이 들었어! 본선은 자유곡이 되니까 사실 나도 도일이 곡 연주하려구.”
“오.”
아무래도 정기연주회 때 만들어 줬던 곡을 말하는 것 같다.
‘근데 그건 콩쿠르용으론 별로일 텐데.’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구조를 까놓고 보면 팝송 농도가 90퍼센트 이상이었다.
바이올린 특유의 기교를 살리기보다는 ‘목소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했던 것이다.
뭐, 업계 관계자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비슷한 멜로디로 좀 더 보강해서 만들어줄까?”
“응… 어?”
봄이가 눈썹을 올렸다. 원래도 큰 눈이 훨씬 더 커졌다.
“그건 클래식용으로 쓴 게 아니거든. 비슷한 느낌 좋아하면 좀 바꿔서 써줄게.”
“진짜?!”
“응.”
아직 EL 쪽에서 신곡 작곡의뢰가 오지 않았다. 여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피아노곡 하나만 쓰는 것보다 효과가 배가 되겠지.’
아주 훌륭한 노림수도 있었다.
“고마워….”
봄이는 오늘도 엄청나게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본심은 영원히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갈까.”
“응.”
“밥 먹고 갈까?”
“…응!”
약간이지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는데, 건물을 빠져나가자마자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라.
‘비가 또 내리는구만.’
장마 탓이었다.
“아….”
“우산 가져왔어?”
“아니?”
뭐 서로 우산 하나를 나눠 쓴다는 클리셰는 같은 전개는 없었다.
나는 팔 부분을 완전히 도려낸 민소매 재킷을 내밀었다.
“이거 써.”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봄이는 주섬주섬 찢어진 재킷을 머리 위에 걸쳤다.
일반 재킷이었으면 나름 좀 간지 좀 났겠는데. 옷이 저 모양이니까 어디 헌 옷 수거함에서 쌔벼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괜찮다는 게 설마 다른 의미인가?’
창피해서일 수도 있다.
딱히 내 탓은 아니다.
다 비 때문이다.
‘X같은 장마….’
나는 비를 그다지 안 좋아한다.
회귀 전에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지옥을 겪고 나서부터는 더했다.
몸이 물에 젖으면 그 괴로운 수비드 용액이 떠오르니까.
나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편의점에 입성했다.
“흐익!”
와이셔츠가 전부 젖어서 상체의 중요 부위를 가려준다는 기능까지 상실했기에, 알바생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버렸다.
‘날씨 참 개같구만.’
나는 비닐우산을 두 개 집어 들며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하늘, 홀딱 젖은 아스팔트, 자동차 전조등에 비쳐 잠시 동안 반짝 빛나는 빗방울.
나름 실내에서 본다면 썩 운치 있는 모습이었다.
직접 맞으니 문제지.
‘나만 당하니 좀 아쉬운데.’
원래 X같은 걸 나만 당하면 기분이 좀 그렇다.
같이 당해야 고통도 덜하고 그런 것이다.
갑자기 이 기분을 모두에게 공유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느낌을 곡으로 써본다면…?’
일순간의 번뜩임과 함께,
머릿속에 멜로디 한 마디가 떠올랐다.
* * *
EL엔터테인먼트의 제3 스튜디오는 원래도 사람이 많았다.
곡의 ‘물량’을 담당하기 때문에 머릿수는 아주 중요했으니까.
스튜디오 면적만을 비교한다면 1, 2 스튜디오보다 원래 더 컸다는 것이다.
근데 지금은….
“페어리스 생방송용 녹음은 언제 시마이치면 좋을까요?”
“금요일까지.”
“옙.”
더더욱 많아졌다.
우선 페어리스가 제3 스튜디오를 거쳤기 때문에 인원이 약간 증원됐고, ‘블랙 벨트’가 데뷔전에 참전하며 또다시 증원됐다.
근데 증원은 됐어도 원래 EL엔터에는 정통적인 밴드 뮤지션이 없었기에 직원들은 풀 밴드 곡을 다루는 것에 그다지 익숙지가 않았다.
물론 도일이가 만들어준 녹음본이 워낙 좋아서 민수의 트레이닝이 마쳐지는 대로 보컬 파트만 따로 따서 입히면 되긴 하지만….
‘페어리스도 그렇고 도일이한테 기대는 게 크다.’
그가 살려 놓고 데려다 놓은 뮤지션인 만큼, 향후 몇 년간은 그의 힘이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명은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딱히 안 좋은 방향의 경계는 아니었다.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의지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쳐내자! 라는 게 말이 되나?
임원들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양반이었다. 그냥 그런 의견이 있었다는 것뿐.
은근~ 히 자신에게 묶어둘 방법을 찾으라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당장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고.
‘조만간 한번 부르긴 해야 하는데….’
페어리스는 뮤직비디오의 발표, 곡의 80위 차트권 진입이 이루어졌다.
앨범은 이미 다 만들어졌고, 사흘 뒤 런칭을 하는 일만 남았다.
아마 ‘안착’을 넘어서 과격한 상승곡선 그래프를 기대할 수 있겠지.
‘30위… 아니, 20위권도 꿈은 아니군.’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폭풍전야이니만큼 곡을 쓴 이도 같이 자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미리미리 다음 곡 구상도 들어둬야 하고.’
송영철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핸드폰을 들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방학에 들어갔을 텐데, 평일에 불러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근데….
“음?”
문자가 와 있더라.
얘가 먼저 문자를 보내다니.
[회사에 그랜드 피아노 있나요?]“갑자기…?”
있기는 있었다. 그것도 꽤 비싼 놈으로. 관리는 꾸준히 해주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녹음용으로는 잘 쓰지는 않는데….
사실 요즘 가상 악기가 너무 잘 나와서 시간 대비 효율이 안 나오기도 하고.
[있는데 이걸로 당장 녹음은 못 해.] [괜찮아요. 지금 갈게요.] [지금?]도일이가 도착하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뭔가, 엄청나게 급한 듯한 표정.
“…그랜드 피아노의 영롱한 소리가 그리워졌니?”
“어떻게 아셨어요?”
“진짜냐…. 뭐야, 갑자기 피아노에게 빠지기라도 한 거야? 피아니스트 되려고?”
“예?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어…?”
…뭐가 뭔 상황인지 대체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니?
“그럼 작곡은?”
“해야죠.”
휴우, 송영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0대의 변덕 같은 게 발동돼서 꿈이 바뀌기라도 한 줄 알았다.
“나중에 나무위키에 제 이름 검색하면 ‘작곡가’가 먼저 나와야 돼요.”
“그럼 됐어.”
“피아노 어디 있어요?”
“따라와라.”
원래 외부인에게 회사의 악기를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니,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닳는 것도 아니고.’
오래 볼 사인데, 이 정도도 안 해줄 수가 있나?
송영철은 꼭대기 층에 있는 제2 물품 보관실로 그를 안내했다.
거대한 천에 감싸져 있는 육중한 자태.
천을 걷어 젖히자, 약간의 먼지가 앉아 있는 독일 국적의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오… 뵈젠도르퍼.”
“전무인가 상무인가가 중고로 들여놓은 건데 가끔 쓴다.”
“잘됐다. 콩쿠르에선 무조건 그랜드 피아노인데, 학원이랑 집에 그랜드가 없어서 감이 잘 안 잡혔거든요.”
“그렇… 응? 뭐? 콩쿠르?”
“저 콩쿠르 나가는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김도일은 피아노 앞에서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먹먹하기 그지없는, 습도 가득한 공기를 머금는 듯한 연주를 시작했다.
“……?”
처음에는 피아노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저 커다란 걸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까지 들었다.
다만,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것이,
순수히 그가 새로 만들어낸 ‘곡’이라는 것을 깨닫자, 온몸이 소름이 몰려왔다.
“…대체 뭘 만들어 온 거냐?”
…윗선에서 은근~ 한 압력이 있었다.
천재 작곡가를 회사에 묶어둘 방법을 더 찾아보라고.
그리고 송영철은, 방금 아주 기가 막힌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참이었다.
‘…꼭 작곡가로서 묶어둘 필요가 있나?’
작곡가가 아니더라도 괜찮지 않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려면 소속사가 필요할 테고. 여기도 소속사인데.
‘지금 내가 뭔 생각을….’
그것은, 저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아주’ 당연하다는 사고의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