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37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37화
도른자의 예선(4)
예선의 지정곡은 총 세 개였다.
국내에서 상당히 권위 있는 콩쿠르라 그런지 쉬운 곡 따위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역시 최고 난이도를 꼽으라면 장송 행진곡이 아닐까 싶다.
‘이걸 친 건 두 명밖에 없었어.’
가장 어려운 만큼 가장 눈에 띌 터. 그러므로 선택하는 사람 또한 많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두 놈밖에 없더라?
그마저도 스무 소절을 넘기지 못한 채 심사위원에게 컷 당했다.
10분에 달하는 곡이라 다 듣고 있다가는 날밤을 새우겠으니 충분히 이해는 갔다.
‘난 컷은 안 당했군.’
묵직한 처음이 귀에 때려 박힌다.
정말 노골적이기 그지없는 비극적 멜로디. 어디 숨을 생각 없이 드러나는 어둠.
그 이름과 컨셉에 걸맞은, 완벽한 인트로였다.
‘쇼팽도 인트로 장인이네.’
21세기에 태어난 내가 그를 평가하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뭐. 내적 친밀감 좀 느낀다고 칼이 날아오는 건 아니잖아?
아무튼 간에,
나는 손끝에 힘을 실었다.
묵직한 저음이 더더욱 힘을 받도록, 그저 묵직한 것이 아닌, 강력한 한 방처럼 보이도록.
단순히 눈에 띄기 위한 연주가 아니다.
곡을 비틀기 위함이다.
장송 행진곡의 원래 콘셉트, 죽은 자를 위한 애도.
잔잔함과 격정이 반복되지만, 낙폭이 큰 곡.
난 그 낙폭을, 더더욱 키우기로 했다.
‘미세한 분해와 재구성이라….’
괴인 임재철에게 작곡가로서의 연주법을 배웠다.
그가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던 것은 원곡에 이미 쏟아져 있는 고뇌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그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였다.
대전제는 가만히 둔다.
하지만 소전제에는 변화를 가해 슬플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는 배경을, 더더욱 부각시킬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두웅-!
터치가 더더욱 깊어졌다. 피아노 줄은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오는 압도적인 압력 앞에 최대한의 진동 폭을 뿜어댔다.
단 한 음뿐이었지만, 시사하는 바는 또렷했다.
아포칼립스.
핵이 떨어지고,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모든 도시에 죽음이 넘실거리는 풍경.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죽음.
대부분의 것이 싹 지워진 망가진 도시를, 한 남자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깊은 절망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내 장송 행진곡이다.
그리고, 내가 그려낸 풍경이었다.
* * *
관현악단 심혜(心彗)의 전속 피아니스트, 최상호가 심사위원이 된 지는 어언 6년이 지났다.
클래식 경연대회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회.
40줄이 넘어가는 그가 고등학생 시절에 참가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그 역사와 위상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감회가 새로웠지.’
참가자에서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는 위치가 살짝 바뀌었을 뿐이지만 보이는 풍경은 전혀 달랐다.
감격스러웠다.
심사석에 처음 앉았을 때는 마치 자신의 음악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보람도 있었다.
…한 2년 차까지는 말이다.
‘심사위원을 하는 것도 고역이구만….’
음악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전혀 아니다.
애들을 싫어하는 성향인가? 아니다. 자신도 애를 키우는데 굳이 왜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두웅~ 디잉~
‘못 하는 애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평소 현업자들이 내던 악기 소리에 익숙해져 있던 귀였다. 좋은 음악에 푹 절여져 있는 고막이라는 말이다.
근데 거기에 서투르기 그지없는 연주가 때려 박히니 솔직히 좀 어질어질했다.
물론 현업자들과 현업자가 되지 못한 전공생들의 실력 차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하….”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저 도망친 곳이 피아노일 뿐인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라는 단어 외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네 소절 딱 듣고 탈락을 시켰더니, 바락바락 따지고 들더라. 거기에 대고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작년에는 그나마 좀 나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 일이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즐거움이 있었다.
싹수가 훤히 보이는 학생의 연주를 들을 때는, 그 밝은 미래가 머리에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순수하게 행복했다.
‘작년 유재호는 엄청났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의 피아노 천재.
아쉽게도 다른 지역 예선장에 가는 모양이기에 오늘 볼 일은 없었다.
싹수 있어 보이는 나와야 그나마 좀 위로받을 것 같은데….
없더라.
고은혜라는 아이는 그나마 영재 소리를 들을 만했지만 딱 그 수준이었다. 업계에 있다 보면 쉬이 보이는 수준.
오늘은 꾹 참으면서 버티자. 그렇게 생각했다.
한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옷은 또 왜… 아니, 머리가….”
그는, 차림이 이상했다.
자신의 6년 경력… 아니, 대회의 35년 경력을 통틀어도 이런 미친놈이 있었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대체 뭐 하러 온 걸까.
근처에 코스플레이 행사장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진지하게 경쟁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놀러 온 거 같은데….
‘빨리 돌아가라….’
내쫓을 수는 없으니 우선 앉히기는 했다. 장송 행진곡을 친다고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일말의 기대도 없었던 것이다.
기대가 없었기에, 놀람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장송 행진곡.
아주 유명한 곡이다. 비단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안 쓰이는 데가 없어서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들어볼 정도.
다만, 곡의 대중성이 꼭 난이도를 대변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접하고 많은 사람이 도전한다고 해서 쉬우리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장송 행진곡은 어려웠다.
터치의 강약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사운드 클라이머 어디에 무명 작곡가가 써놓은 ‘sad bgm’보다 감정전달이 안 될 것이다.
근데….
단 터치 한 번에, 이 정도로 기분이 크게 요동치다니.
“아….”
순식간에 머릿속에 몰려온 당혹감. 다만,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풍경.
처음 보는, 괴상한 차림의 소년이 만들어낸 풍경이 온 머릿속을 덮었으니까.
후욱-!
황폐화된 대지와, 바람을 타고 전해져오는 부패의 냄새.
조용하고, 엄숙한 죽음이 아닌 강대하면서도 허무한 죽음.
…그것은, 세계가 끝난 후의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한 남자가, 짙게 낀 먹구름 아래를 걷고 있었다.
다 타버린 나뭇가지를 자근자근 밟아가며, 솟아오른 아스팔트를 풀쩍 뛰어넘어 가며. 대부분이 무너져 버린 도시에 입성했다.
그곳에는 생명체랄 게 없었다.
황폐화.
모든 건물에 금이 가고, 부서지고, 창틀에는 유리가 단 하나도 달려 있지 않다.
고온에 습격당한 도로 위 플라스틱 고깔은 녹고 뒤틀려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정작 남자는 그것들에는 눈을 주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백골이 되어버린, 그마저도 풍화된 시체였다.
당연하게도 얼굴 깊게 자리 잡는 주름.
그리고…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안심’.
디링-!
곡조가 바뀌었다.
pianissimo, 매우 여리게.
거대한 죽음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품고 있는 감정은, 놀랍게도 안도감이었다.
자신이 옳았으니까.
장시간 노동, 언제나 피로한 삶, 과대망상증 환자라며 비난하던 짜증 나는 인간들 등등.
모든 것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제서야 비로소, 평등해졌다.
남자는 지독한 풍경 앞에서 실신한 듯이 웃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결국 자신만의 낙원으로 발을 돌렸다.
교외의 작은 땅,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쉘터.
어두컴컴한 지하의 구석에는 비축해 둔 식량이 가득했다.
그곳은 이 세상에 끝날 것을 예상해둔 자신,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의 천국이다.
남자는 천국에서 죽을 때까지 살 것이리라 다짐했다.
다만,
그럼에도,
망해 버린 세상에 천국은 없었다.
두웅-!
여린 곡조가 끝나고, 다시금 절망감이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남자는 아침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건강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가 그의 마음속에 더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소모될 뿐.
식량도, 주방 세제도, 비누도.
침대의 매트리스는 스프링의 탄성이 줄어 죽 꺼지고, 처음에는 맛있었던 통조림도 점점 시간이 지나며 내용물이 변했다.
정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든 것이 소모되기만 하는 곳에서 살아갔다.
아니, 그걸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게 맞지 않을까?
만약 남자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것에 평생 심취할 수 있을 만큼 흥미를 느꼈다면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다만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이 세상의 멸망에는 대비했지만, 자신의 멸망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끼익- 끼익-!
어두운 지하실의 실내 철봉이 비명을 지른다. 사람이 매달려 있었지만, 봉에 손이 감겨 있지는 않았다.
그저 갈색의 노끈뿐.
올가미 매는 법이 기가 막힌, 끊어질 리 없는 노끈뿐.
…절망 속에서 곡이 끝났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크허….”
“허어.”
모두가 침음성을 토해내었다. 마치 목이 졸리다가 간신히 풀려난 듯한 얼굴들.
그는 결코 단순한 피아노 영재를 보며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크흠!”
최상호는 재빨리 목을 가다듬었다. 던져야 할 질문이 산더미였기 때문이었다.
“저기.”
“그!”
“ㅇ….”
여러 말소리가 겹쳤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탓이었다.
눈치 게임에 성공한 것은 최상호였다.
“…어디 학생입니까?”
뭐 하는 놈인가.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연화예고 2학년입니다.”
“열여덟…!”
“……!”
열아홉이라고 해도 호적수가 없을 엄청난 재능이었다.
근데 그보다 한 살 어리단다. 10대에서 1년이란, 정말 어마 무시한 차이였다.
“다른 콩쿠르 수상 경력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다고요… 왜?”
클래식 전공은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게 대다수였다. 중간에 도피처처럼 뛰어들 수도 있지만 100이면 100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근데 저 실력에 경력이 없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작곡 전공이니까요?”
“어…?”
“자, 잠깐만. 작곡 전공이라고요?”
“옙.”
일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작곡 전공…?
지금 자신이 피아노 전공생도 아닌 소년한테, 천재성을 느꼈다는 말인가?
최상호는 입안에 침이 빠르게 고이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지정곡이라 아쉽네요. 그래도 본선은 자유곡도 된다고 쓰여 있으니까 만들어 와도 되겠죠?”
뭔가 아쉽다는 듯이 입을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보며,
주르륵-
“헙.”
군침을 흘리고 말았다.
누구나 흘릴 수 있는,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을 때 흘리는 군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