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s Youngest Son is a Warlock RAW novel - Chapter (293)
외전 – 스승과 제자(4)
* * *
세계가 한 번 더 반복됐다.
그 사실을 축제가 열리던 골목길에서 알아버렸다.
펑!
불꽃놀이가 하늘에 가루처럼 퍼져갔다.
러쉘은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루… 루시온이다!
어둠이 터트린 반가운 그 목소리에 러쉘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겁에 질려서는 유령들에게 쫓기는 루시온을.
어설픈 발놀림과 당장이라도 놓칠 것 같은 불안한 목발을 보니 그때 루시온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것 같았다.
러쉘은 이를 악물었다.
‘참아라.’
루시온의 눈을 보면 분명 벗어나지 못하겠지.
‘참아라, 러쉘.’
세계가 몇 번이나 반복되더라도 자신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세계가 반복되는 걸 확실히 알았으니 루시온이 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야 했다.
이전 삶을 다 바쳐 이제 거의 다 완성하지 않았던가.
어, 어떡해. 넘어졌어.
하지만 어둠은 러쉘과 달리 눈을 돌리지 못했다.
러쉘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루시온의 울음소리에 발을 멈췄다.
‘…제기랄.’
왜 하필 지금인지.
조금 더 빨리.
루시온이 뉴브라 왕국 놈들에게 납치당하기 전에 기억이 떠올랐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꺼져라.”
러쉘은 유령들을 노려보며 기세를 높였다.
후다닥 도망가는 유령들을 쳐다도 보지 않고 루시온에게 걸어갔다.
“…어?”
루시온이 눈을 동그랗게 뜰 무렵 러쉘은 떨어진 목발을 들고는 뒤에서 루시온을 잡아 세웠다.
“감사…….”
“뒤돌아보지 마.”
러쉘이 루시온에게 말했다.
“하지만 안토니가 도와주면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고 했어요.”
“목발 잡고.”
러쉘은 떨리는 목소리로 루시온에게 목발을 건넸다.
“…아저씨 울어요?”
“아저씨 아니고 형이야.”
“형아 울어요? 제가… 무거웠어요?”
“아니.”
“고맙습니다.”
이히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손에서 전해지는 루시온의 온기가 너무도 포근하지 않은가.
러쉘은 나이를 한 번 먹더니 그새 약해진 눈물샘을 탓했다.
“우와아.”
루시온이 뒤늦게 주변을 보더니 못된 아저씨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어렴풋이 들려왔던 ‘꺼져라’라는 목소리가 바로 저 형아의 목소리였다.
“고개 돌리지 마.”
“형아는 제 영웅이에요!”
루시온은 다리를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빌어먹을.’
러쉘은 당장 루시온을 안아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비로소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지 알려줬던 그 말이지 않은가.
“잘 들어.”
루시온을 잡은 러쉘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살아 있다.
아직 살아 있어.
“너는 착한 아이야. 누구라도 다 널 좋아할 만큼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야.”
맞아, 루시온.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제가요? 제가… 착한 아이예요?”
“그래. 엄청 착한 아이지.”
루시온이 고개를 푹 숙여서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놈들에게 휘둘리지 마. 배에 힘 딱주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이 미친놈들아’하고 소리쳐주면 그만이야.”
러, 러쉘? 그 말은 지금 루시온이 쓰기에 너무 사납잖아.
“형도 보여요?”
놀란 루시온의 목소리에 러쉘은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밥… 잘 먹고. 단 거 좋아하는 건 알지만, 양치질하는 거 잊지 말고.”
“홉!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빠도 모르는 건데.”
루시온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형아가 꺼내는 말은 너무도 다정했으니까.
“모두가 널 사랑하니까, 네가… 겪은 아픔은 놓아줘.”
“아빠랑, 형아랑, 누나랑 안토니도요?”
“물론이지. 전부 널 사랑하고 있어. 네가 모두를 슬픔에 빠트린 게 아니라 널 걱정하고 있는 거야. 아까 말했지? 저놈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너는 네가 사랑한 사람들만 바라봐.”
뚝뚝.
러쉘의 눈물이 땅을 적셨다.
“…형?”
루시온은 가슴이 따끔따끔할 만큼 슬픈 목소리에 뒤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긴 손가락이 옆에 나타나 앞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쭉 가. 누구 바라보지도 말고, 저쪽으로 쭉 가면 형아가 있을 거야.”
“카슨 형아요?”
“그래. 뒤에서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걸어가.”
러쉘은 손을 놓았다.
루시온이 목발을 짚으며 천천히, 어설프게 걸어갔다.
몇 발자국 갔을까, 루시온은 갑자기 밀려드는 슬픔에 고개를 돌렸다.
무섭게 생겼지만, 다정함이 가득한 남자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울고 있는 걸까.
루시온은 남자에게 다가가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루시온!”
카슨의 목소리에 루시온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형아!”
루시온은 카슨에게 달려갔다.
“…하. 루시온.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야.”
카슨은 루시온이 넘어지기 전에 당장 아이를 안아 올렸다.
카슨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고 두 손이 벌벌 떨렸다.
또 루시온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없다.”
루시온은 방금까지 서 있었던 남자를 찾으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없었다.
“으힝…….”
루시온은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해. 형이 미안해.”
카슨은 루시온을 달래려 살짝살짝 몸을 흔들었다.
* * *
러쉘은 수천 개의 종이로 덕지덕지 붙은 방을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중앙으로 걸어갔다.
아주 천천히.
종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로 가득 적혀 있었고, 마치 살아 있는 듯 글자가 꿈틀거렸다.
그 글자를 어둠이 누르며 러쉘을 바라보았다.
러쉘은 중앙에 손을 뻗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건지.
러쉘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냥 손을 찍어!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굼떠?
원래 우리는 이랬잖아. 평소처럼 가볍게, 가볍게 해.
“…이 미친놈들.”
러쉘은 얼굴을 구겼다.
“너희랑 나랑 지금 몇 번이나 같이 끝과 시작을 마주했는데 가볍게라니. 그게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참으려 해도 당최 좋은 말이 튀어나올 수 없었다.
“너희가… 대가로 쓰인다고.”
알아. 우리는 다 동의했잖아.
할아버지가 한 번 되더니 기억력이 감퇴했나 봐.
어둠은 괜히 웃음을 지었다.
“야. 다시 생각해 봐. 다음번에 너흰 없다고.”
안다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말고 잘 생각 봐. 이거 한 번 발동하면 되돌릴 수 없어.”
그것도 알고 있어.
같이 만들었잖아.
“같이한 건 사실이지만, 내 지분이 8이야. 정확히 말해.”
…치사해, 러쉘.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했다고 말해주면 안 돼?
어둠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지분 8은 포기할 수 없어. 나중에 루시온한테 자랑할 거니까.”
러쉘.
어둠이 곧 배시시 웃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니까, 일부를 떼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아.
“하지만 너흰 하나하나 다 다르잖아. 이 흑마법이 성공해서 루시온이 정말로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너희는 그 자리에 없는 거라고.”
어둠은 짧은 팔로 러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착하네, 러쉘.
하지만 우린 괜찮아. 우린 원래 루시온을 위해 존재하는걸.
어둠은 러쉘에게 그 이유를 내뱉지 못했다.
특정 단어를 쓰면 베로니아가 등장할 테니까.
러쉘. 네가 우리 대신 루시온을 살펴줘.
넌 루시온의 스승이잖아?
러쉘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성공해야 해.
“…그래.”
러쉘.
“말해.”
우리는 루시온도 좋아했지만, 너도 좋아했어. 알고 있지?
“…….”
러쉘. 네 가족을 살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루시온을 포기하면 안 돼.
“물론이지. 억울해서라도 안 그래.”
착하네, 러쉘.
어둠은 활짝 웃었다.
러쉘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제 세계가 바뀔 동안,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든 이 흑마법을 사용할 시간이라는 걸.
“루시온은 이 흑마법으로 이전 세계의 기억을 얻게 될 거야.”
러쉘은 마지막으로 어둠에게 말했다.
그들 중 일부는 대가로 사용되지 않을 테니.
응. 루시온이 죽지 않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기에 우리가 다 동의했잖아?
“맞아. 하지만 미래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거기까지는 뭘 해도 손을 댈 수 없거든.”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러쉘.
러쉘은 토닥거리는 어둠의 말에 숨을 잠깐 몰아쉬었다.
“나는… 이걸 루시온이 이 세계로 태어나기 전으로 가서 사용할 거야. 분명 너희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테니까 나 역시 무슨 대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짊어져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루시온이 살아남을 수 있게 돕는 거야.
놈의 눈을 피해서 천천히.
“맞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에게 이번 기억을 넘기고 갈게. 그 후에 내가 어떻게 되어있든 나를 돕지 마. 루시온을 살릴 수 있게 너희가 해야 할 일을 해.”
러쉘은 당부했다.
어둠조차 눈치를 볼 만큼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가 세상을 되돌리고 있는 거라면 어둠과 자신은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힌트는… 줘도 되는 거야?
“할 수 있는 만큼. 우리의 목표는 처음 그대로 루시온이 저 빌어먹을 운명을 탈피하게 돕는 거니까.”
응! 티가 나지 않게 할게.
어둠은 힘차게 대답했다.
하아.
러쉘은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까지 함께해서 고마웠… 고, 영광이었어.”
순간 울컥해 러쉘은 말을 잠깐 멈췄다.
조잘거리기만 할 뿐, 자신을 보고 깔깔 웃기 바빴던 그들이 귀찮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너희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 진심이야.”
러쉘은 수천 장의 종이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종이에 손을 올렸다.
종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이 사슬처럼 방으로 뻗어 나갔다.
고마웠어.
행복해야 해.
언제나 많이, 많이 사랑받으렴, 러쉘.
글자를 잡던 어둠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방 너머까지 뻗어진 사슬이 러쉘을 옭아맸고 대가를 위해 저주로 보이는 글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촤르르륵.
하지만 러쉘은 눈을 돌리지 않았고 집중력을 이어나갔다.
수천 장에 적혀진 흑마법이 러쉘의 어둠이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새겨졌고, 방 안에서 불어닥친 바람을 따라 흑마법이 쓰여 있었던 종이가 하나씩 흩날렸다.
시야가 흐려졌다.
“…커헉!”
피를 쏟아내며 러쉘은 그대로 무너졌다.
이번 생의 목숨까지 대가로 바친 탓이었다.
하지만 러쉘은 부들거리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억을 잇는 흑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때, 세상이 갑자기 멈췄다.
러쉘은 눈을 크게 떴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저런.”
긴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발소리가 깊었다.
‘놈이다. 어둠이 말했던 그놈.’
러쉘은 단번에 눈치챘다.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렸네?”
짝짝.
놈은 손뼉을 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위엄에 러쉘은 숨조차 쉬기 버거웠다.
하지만 러쉘은 어둠의 떨림을 느끼며 놈의 공격을 막았다.
부들부들.
턱밑까지 들이미는 놈의 어둠에는 아주 짙은 타락이 섞여 있어 이를 막는 것조차 버거웠다.
“오. 역시 좀 달라.”
놈은 키득거렸다.
“하지만 이거 어쩌나.”
한순간, 놈의 공격을 막던 자신의 어둠이 사라졌다.
푸욱!
곧바로 목이 꿰뚫렸다.
“…커어어.”
러쉘은 고통이 들이닥치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람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여린 목숨줄을 꼭 잡으며 기억을 잇는 흑마법을 조용히 사용했다.
자신의 피를 바쳐 다음 세계가 아니라, 다다음 세계로.
“뭐야. 뭘 사용할 줄 알았더니 벌써 죽어가네. 아쉬워라. 세계의 비밀을 밝힐 유일한 자였을 텐데.”
‘…웃기고 있네.’
“하지만 내가 기억해주마. 네 면상을.”
우쭐하며 웃는 놈에게 러쉘은 살짝 비웃음을 그렸다.
‘내가 이겼어.’
* * *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어둠은 갑자기 비명을 터트린 러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머리를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의자 그대로 뒤로 넘어져서는 땅을 뒹구는 모습이 너무도 무서웠다.
꼭 죽음에 도달할 것만 같지 않은가.
주, 죽으면 안 돼, 러쉘.
너 없으면 우리가 너무 슬프단 말이야.
“…….”
러쉘은 그대로 멈췄다.
눈을 깜빡거리다 다급히 물었다.
“지, 지금 언제야?”
아무리 자신이 만든 흑마법이라지만, 기억을 찾는 시기는 자신이 정할 수 없었다.
음… 저기 봐봐. 네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으니까.
러쉘은 상체를 일으켜 어둠이 가리키는 곳을 당장 바라보았다.
‘내가 루시온을 만나기 전이야. 아니, 루시온이 납치당하기 전이라고!’
러쉘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우다 말고 멈췄다.
몸에 천천히 이전 세계의 대가였던 저주가 새겨졌다.
러쉘?
너, 너 왜 이래?
‘…시간이 얼마 없어.’
저주와 함께 자신의 몸에 새겨진 흑마법이 강제로 발동되고 있었다.
자신을 죽였던 그놈을 생각해 일부러 강제로 발동되도록 방향을 그렇게 잡아뒀다.
“잘 들어.”
러쉘은 새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고통을 참아내며 말했다.
지금 자신이 흑마법을 통해 건드릴 건 세계와 세계 사이의 시간의 비틀림이었다.
그 비틀림을 통해 루시온이 루시온으로서 태어나기 전에 만나야 했다.
이 힘을 과거의 루시온에게 전해주면 언제인지 몰라도 반드시 현재의 루시온이 그 힘을 손에 넣게 되겠지.
“1년 뒤에, 3월 9, 10일 중에 뉴브라 왕국으로 끌려가는 아이가 있을 거야.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보면 알 거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밤이 다 되어 가니 잠꼬대도 아닌데?
“너희가 도와줘. 그 아이, 루시온을 제발 도와줘.”
러쉘은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서히 러쉘의 몸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몸에 또 다른 저주가 새겨져 얼굴을 뒤덮었다.
산 자도 되지 못하며, 죽은 자도 되지 못해 그저 시간 속에 갇혀 영원토록 아우르는 고독과 외로움에 먹혀 후회하고 자신을 가여워할지어다.
“꼭 기억해줘! 이름은 루시온 크로니아야!”
러쉘!
러쉘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몸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