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72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72화
국제 대회의 핵폭탄(2)
클래식은 10대부터 피 터지는 경쟁 환경에 자신을 던져 넣어야 했다.
사실 뭐 ‘경쟁’을 안 하는 분야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서도.
클래식 콩쿠르처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결과물을 조곤조곤 평가당하고, 순위가 매겨지는 환경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
잘 해오다 갑자기 멘탈이 박살 나거나, 슬럼프가 오는 애들?
얼마든지 많다.
김강현은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강한 멘탈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위로는 차근차근 올라가면 되니까!’
모든 것을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재능은 없다.
다만, 금방 일어설 수 있는 근성이 있다.
이것 또한 엄청난 축복 아니겠는가?
그럼 이 축복받은 능력을 ‘전략적’으로 잘 사용하는 게 효이지 않겠는가?
계획은 사실상 완벽했다.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여기서 한국인 중 1위를 한다.
만년 2, 3위를 하는 놈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다 방법이 있었다.
‘유재호가 슬럼프에 빠졌지.’
패배를 하지 않던 놈이 패배를 당했다.
잘난 면상이 눅눅해질 정도로, 연주할 때 맥아리가 빠지더라.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유재호가 슬럼프에 빠지게 된 계기. ‘김도일’ 또한 피아노 대회에는 영 관심이 없는 모양이더라.
큰 대회가 하나 있었는데 안 나오더라?
그러므로, 이번 국제 대회에도 안 나온다는 건 완벽하기 그지없는 추론이었다.
‘환경은 잘 갖춰졌어.’
잘난 놈이 멈춰 서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앞질러 가면 그만일 뿐!
근데….
“이 새끼 대체 뭐지?”
국제 콩쿨 예선이 끝나고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같은 참가자 잉스타를 염탐하고 있었는데, 어느 게시글 하나가 유독 눈에 띄더라.
일본인이었고, 구면이었다.
세번으로 나누어진 예선에서 2조 1위를 차지한 참가자.
이케다.
‘좀 치던 놈이었지.’
개인적으로 눈여겨보고 있던 녀석이었다.
참가자 중 거의 3할에 달하는 이들이 일본인인 만큼 개인 하나하나의 특성을 다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이케다는 특히 눈에 띄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유재호처럼 얼굴도 나름 잘생겼고.
특유의 속주는 치명적이면서도 깔끔하고.
솔직히 말하자.
자신보다 위였다.
김강현이 콩쿠르 1위가 아닌 한국 참가자 중에서 1위를 노리는 이유였다.
‘일본 클래식은 강하니까….’
단순히 머릿수만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악기를 접하는 비율 자체가 높고 취미 인구 또한 압도적이다.
인프라 또한 저쪽이 더 나았다. 더 쉽게 클래식을 접하니 재능에 눈뜨는 인간들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다만 그럼에도 마냥 븅X같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본선을 앞두고 대비를 해둬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미친….”
잉스타에 올라온 글이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더라.
무대 위에서 인상을 한껏 찡그린 채 두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있는 모습.
명백히 보이는 비하의 의도.
반응은?
불타고 있었다.
한국인 참가자들이 몰려와 마구 댓글을 달고 있었고, 이케다란 놈은 ‘그냥 김치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인데 뭐가 문제?’라며 대응했다.
솔직히 사진이 한국인 비하하는 꼴 같기는 하지만….
잡아떼자면 잡아뗄 수 있을 정도로 미묘한 정도.
그렇기에 다들 심한 욕은 못 하고 실망했다는 표현만을 하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내 가랑이 밑 냄새보다는 나을 듯?
-곧 알려드림.
상남자가, 나타났다.
“와하하하하!”
예고의 교실.
김강현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반 애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모르는 애들한테는 찬찬히 설명해 줄 뿐.
자신 외에도 현 상황을 지켜보는 애들이 있었는지, 이야기의 전파는 빨랐다.
“그니까 요약하자면, 이케다란 놈이 한국 비하를 먼저 했고, 김도일이 나서서 그냥 받아버렸다는 거지?”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
아주 시원하기는 했다.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알게 모르게 한국을 무시하던 놈들이 참 많았는데.
머릿수와 실력이 달리니 사실 아무것도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렇게 확 질러주니 고맙달까.
김도일이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와~ 김도일 걔 이번에 탑 싱어 나온 애지? 강현이 너랑 친해?”
“아… 어 아는 사이지.”
“진짜?! 나 나 너 친구라고 하면 맞팔해 줄까…?”
“어 나도!”
“도일이 국제 대회 나가는구나….”
여자애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다가왔다.
물론 저 초롱거림이 자신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김강현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야 말았다.
‘…진짜 나가는 건가?!’
대회에 관심이 없었다면 굳이 저 일본인한테 댓글을 남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고 다니는 막돼먹은 놈은 결코 아니니까.
‘조졌군.’
…김강현은 뿜어져 나오려던 한숨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그리고, 저번에도 그랬듯이,
자신의 순위가 한 칸 밀리는 그림이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다만,
“…흐흐 재밌어지겠네.”
뭐,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이 밀리는 건 밀리는 거고.
솔직히 말해 자신만 밀리는 것도 아니고.
‘다 밀리는 거지!’
김도일은 명실상부, 미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콩쿠르에 나온 적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이미 또래 내에서는 모르는 애들이 없을 정도.
근데,
일본 애들은 그걸 알까?
그냥 입만 산 놈이라고 오해하고 있지 않을까?
적으로 있었을 때는 두려웠다.
다만, 아군 비슷한 위치에 있으니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김강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댓글 창을 열고서,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Stronger hyeon ㄹㅇ 개상남자.
└Stronger hyeon 일본애들 이제 벌벌 떨듯 ㅋㅋㅋ 가랑이 사이로 길 준비 하셈 ㅋㅋㅋ
…이미 불타고 있던 댓글 창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아마 김도일도 더 좋아할 거다.
판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뻐하는 미친놈 같으니까.
* * *
나는 불필요한 알람들을 꺼두는 편이다.
메일이랑 카톡, 전화, 메시지 말고는 전부다 뮤트.
핸드폰 잠금 화면에 알람이 쌓여 있는 거를 도저히 못 참겠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변 같은 것을 못 느꼈다.
학교 끝나고 분식집에서 세레브하게 만찬을 즐긴 다음에 음료수나 쌔비러 학원이 닫기 직전 도착할 때까지.
…도착하자마자 서희영 원장이 호다닥 이리로 달려올 때까지.
“도… 도, 도일아!”
안색이 창백하더라.
일순간 나의 나이 많은 아우가 떠오를 정도로.
물론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고.
“왜요?”
“이, 이… 잉스타!”
“…네?”
서희영 원장은 내가 가방을 완전히 내려놓기도 전에 태블릿을 불쑥 내밀었다.
…한국을 비하하던 놈의 계정이었다.
근데 이걸 왜 원장 선생님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이변’을 눈치채 버렸으니까.
“…댓글 창 터질 거 같네요.”
아까 내가 댓글을 달 때도 나름 불타고는 있었다.
도합 한 오륙십 개 됐나? 개인 잉스타치고는 아주 많이 달리긴 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500개.
물론 500명이 한 번에 달려들어서 댓글을 단 건 아니고.
수십 명이 키보드 배틀을 뜨고 있어서 이 숫자가 된 것이다.
뭐랄까, 구글 번역기와 한글로 적힌 패드립과 쏯쏯 ww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이 정도면 그냥 난장판이라 표현해도 될 거 같기도 했다.
“…지X이 났군요.”
“지, X랄이라니!”
“하하.”
뭐, 그런 건가?
내가 대차게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에, 숨죽이고 있던 한국 클래식 동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가?
…그런 모양이다.
학원 로비에, 핸드폰을 들고서 열심히 타자를 쳐내려 가는 애들이 몇인가 보였다.
“…에이, 애들이 그럴 수도 있죠.”
“무슨 남일 말하듯이…! 아니,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네?”
“우선 따라올래? 사장님 오셨거든.”
“저… 때문에요?”
“아마 그렇겠지?”
“….”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댓글을 단 지 아직 12시간도 안 지났다.
벌써 소문이 이렇게 퍼진다고?
나는 괜히 긴장 아닌 긴장을 하며 원장쌤을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들려오는 질문.
“도일아, 이케다가 누구인지 아니?”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질문.
“예선 조 1위 라고 들었어요.”
“…그렇지.”
“피아노 꽤 잘 치나 봐요?”
서울 국제 콩쿠르가 조빱 대회도 아니고.
여기서 상위권 먹을 정도면 실력이 꽤나 출중하다는 소리겠지.
나도 모르고 도발한 건 결코 아니었다.
“…잘 치지. 수상 경력도 많고.”
“아하.”
“그놈 아버지가 게이다이 원로 교수야. 친하진 않지만… 나도 아는 사람이고.”
별거 아닌 일 가지고 왜 왔나 싶었는데.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클래식 세계가 진짜 존나 좁기는 하구나.’
가요계였으면 한 구역의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이, 여기선 대 지각변동 같은 느낌이다.
“게이다이….”
“도쿄 예술대란다.”
아무리 나라도 도쿄 예술대가 클래식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는 알고 있다.
높다.
존나 높다.
나라가 다르니 비교하는 건 미안하긴 하지만, 아마 한국예대보다 세계적인 위상이 높지 않을까 싶다.
“이케다 소이치로라는 양반인데, 막내아들한테 꽤 신경을 많이 썼어. 첫째 둘째 아들도 있었는데, 음악에는 별 소질이 없었다더라고. 그래서 막내를 거의 끼고 살았지.”
…지인이라 그런가,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끼고 살았는데도 저딴 게시글을 올리는 걸 보니 교양 교육은 우튜브로 대체한 것 같기는 한데.
뭐 업계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거의 자기 분신처럼 여긴 거지.”
임재철의 눈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아하.”
“일본 객원 교수한테 전해 듣길, 네가 이케다한테 댓글 단 거 보자마자 자기가 공격당한 듯이 노발대발하고 있다더라고.”
“…원로 교수가 잉스타도 한대요? 젊게 사시네.”
나보다 계정을 빨리 만들다니.
대단한 할배 같다.
“그러게 말이야.”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잉스타 창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500개였는데, 금세 600개를 돌파해 버렸다.
일본어는 못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수많은 ‘느금마’ 난사뿐이었다.
“…상황이 좀 딥하게 흘러간다.”
…솔직히 좀 그렇다.
얼떨떨하다.
그냥 뭐 개인적인 사상이 어떻든 간에 잘못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면 끝날 일 아닌가?
그럼 내가 댓글 달지도 않았을 테고.
괜히 자존심 부리다가 이젠 자기 아빠까지 소환하는 꼴이라니.
뭐랄까,
이케다란 놈이랑은 만난 적이 없다.
다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남자.’
진짜 진심으로 느껴지는 ‘하남자.’
난 하남자한테 지기 싫었다.
그리고,
걱정하기보다는 생각의 전환을 시도했다.
…지금 클래식계에서 나의 입지.
천미정 감독의 드라마 삽입곡 하나를 만들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 한번 한 게 다인 입지.
부족했다.
어딜 가든지 간에 내 이름을 들으면 내 얼굴이 딱 떠올라야 마땅한 법인데,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니란 소리다.
근데 지금 내가 음악 금수저 하남자를 때려눕히고 승리를 잡는다면?
완벽하다.
아시아권에 확실하게 이름을 떨칠 수 있겠지.
게다가,
“…이케다는 일본에서 속주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그 아들도 속주를 주 무기로 삼고. 나랑 한국예대 교수들이 도와줄 테니 이번엔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다른 곡을 준비해서….”
“잠깐만요. 속주요?”
혐한러 이케다의 정보를 귀로 듣자마자, 머리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빠르고 깔끔하게 치는 것. 알다시피 당장 며칠 연습해서 될 게 아니야.”
“….”
…맞다.
압도적인 속도란, 당장 깔작 수련해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피나는 고통과 인내, 적에게 쫓기며 연주를 끝까지 마치고자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속도다.
그리고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
지옥에서 돌아온 후,
단 한 번도, 남의 연주에서 ‘속도감’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