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ghter Pilot's Love RAW novel - chapter 18
‘원하는 바가 있으면 나를 직접 찾으라고 해.’
그것이었다. 아들이 하려고 하는 부탁은.
태욱은 생각했다. 어쩌면 며느리가 될 그 여자조종사가 자신과 아들의 회복할 수 없었던 관계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고…….
태욱은 날카로운 눈동자 깊숙이 기대감을 감추고 굳은 얼굴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 아들을 쳐다보았다.
***
2003년 12월 24일. 20:13:05. 아파트
지윤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겠다던 20시에서 13분이 더 지나 있었다.
‘군인이 시간 약속 하나도 지키지 않다니, 군기가 빠져서는…….’
풋. 지윤은 그런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우스웠다. 군기는 자신이 잡을 것이 아니라 대대장인 그가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함께 하는 첫 크리스마스이브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지윤은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애써 만든 음식이 식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부터 백화점으로 나가 스테이크 재료를 사며 매장 직원에게서 굽는 방법을 일일이 메모해 집 안을 온통 기름투성이로 만들면서 장만한 식탁이었다.
‘다시 데워야 하나…….’
지윤은 다시 벽에 걸린 시계로 눈길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딩동.
지윤은 거실에 울리는 벨소리에 흠칫 놀라며 현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벨을 누르지 않는데…….’
이상한 생각이 든 지윤은 벽에 달린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여느 때와 달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우혁이 서 있었다.
싱겁기는. 지윤은 그의 장난에 살짝 미소를 띠며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자신의 눈앞에 화려한 색상의 장미 한 다발이 내밀어졌다. 코앞까지 다가온 장미의 향기가 그녀의 폐 속 깊숙이 전달되고 있었다.
“뭐예요? 깜짝 놀랐어요.”
“훗. 놀라기만? 감동적이지는 않나?”
“핏. 감동은…… 요 정도 가지고.”
“뭐?”
우혁이 살짝 지윤의 코를 잡고 비틀자 그녀가 과장된 신음을 내뱉었다.
“아야!”
그가 입고 있던 공군 점퍼를 벗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이건 선물.”
우혁이 내미는 작은 상자를 들여다보며 지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풀어 봐도 돼요?”
“풀어 봐.”
우혁의 기대하는 표정에 지윤은 선물이 실망스럽더라도 과장되게 기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윤은 상자 속에 든 작은 물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김 대위가 그러는데 여자들은 장미를 좋아한다더군. 그리고 의미 있는 선물을 하려면 그게 좋을 거라고 하더라고.”
“……! 김 대위에게 여자가 뭘 좋아하나 물었어요?”
“음…… 왜 싫은가?”
‘풋.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녀의 큰 웃음소리에 우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흠…… 웃어서 미안해요. 예전에 김 대위가 저한테 여자는 뭘 좋아하냐고 묻길래 제가 조종복에 붙어 있는 혈액형 명찰을 추천했거든요…….”
너무 웃어 눈 끝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지윤이 그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네가 조언해 준 선물을 김 대위가 나한테 조언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는 지윤의 웃음 섞인 표정에 우혁은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혈액형이 새겨진 명찰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내겐 너무나 의미 있는 선물이에요.”
지윤은 뒤꿈치를 들어 그의 턱에 살짝 키스했다. 물러서려는 그녀의 허리를 감으며 우혁이 입술을 내리자 그녀가 정색을 했다.
“안돼요. 음식이 다 식는다고요.”
“무슨 음식?”
“스테이크. 그리고 케익, 또…… 분위기 있는 붉은 와인.”
“직접 스테이크를?”
“흠. 왠지 못미더워하는 말투군요? 따라와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이끌었다.
“짜잔~.”
과장된 손짓으로 식탁을 가리키자 우혁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난 사실 먹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말을 하며 우혁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당기자 지윤이 그를 향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기막혀. 지금 내 일생에 처음으로 스테이크를 구웠는데 그 앞에서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좋아. 빨리 먹어치우자고.”
지윤은 급하게 식탁 의자에 앉은 우혁을 더욱 기막힌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안돼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을 거예요.”
“알았어. 어서 앉기나 해.”
지윤은 식탁 양쪽 끝에 미리 세워둔 초에 불을 붙이고 우혁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그가 따르는 와인의 붉은 빛깔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지윤 대위의 회복된 건강을 위해 건배.”
그가 내미는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지윤은 가만히 속삭였다.
“당신과 나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사랑해요.”
“……사랑한다. 이지윤.”
은은히 빛나는 촛불 위로 그와 그녀의 눈길이 만나 작은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
2003년 12월 30일. 09:32:28. 블랙울프 편대 사무실.
우당탕.
급하게 문을 열고 뛰어드는 김 대위를 사무실에 모여 있던 전 편대원들이 바라보았다.
“저저, 야! 내가 문 좀 살살 열라고 했지? 애 떨어질 뻔했잖아?”
“헥헥. 아이고 소령님. 애,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지윤은 1월부터 복귀할 예정으로 그 준비를 위해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또 뭔데? 만약 별거 아니면 넌 오늘 연병장 50바퀴다.”
“에이~ 소령님. 50바퀴 만요? 한 100바퀴 돌리시죠.”
김 소령의 말에 최 소령도 거들고 나섰다.
“그럴까? 좋아. 100바퀴. 중요한 거 아니면 너 오늘 제삿날인줄 알아!”
“흥. 다들 들으시면 까무러치실 걸요.”
그의 장담에 두 사람은 일순 궁금한 표정이 되었다.
“뭔데? 빨리 말해봐.”
“……참모 총장님이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쓱 둘러본 김 대위가 무슨 큰 폭탄선언을 하듯 소리쳤다.
“누구……? 공군본부의 그 참모총장님? 어딜? 여기? 우리 비행단에?”
“아! 그렇다니까요. 제가 지금 단장실로 올라가는 공군참모총장님을 봤다니까요. 휴~ 어깨에 달리 별4개를 보는 순간 어찌나 떨리던지…….”
“왜?”
“예에?”
“여기 왜 오셨는데? 무슨 큰 일 난거 아냐?”
김 소령의 질문에 김 대위도 궁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게요. 장군님이 여길 왜 오셨을까요?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난 것도 아닌데…….”
“그걸 알아 왔어야지! 하여튼 넌 도움이 안 돼!”
“전 그냥 장군님을 확인하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막 뛰어왔죠. 그리고!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렇게 높으신 장군님이 오셨는데 가서 ‘왜 오셨어요?’ 하고 물어봐요?”
“흠…… 그건 그러네. 하긴 너 같은 졸이 물어봐도 상대나 해 주시겠냐?”
“졸이라뇨? 저도 엄연한 장교입니다.”
어깨에 달려있는 계급을 탁탁 치며 으스대며 말하는 김 대위의 표정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너도 장교다. 암~ 장교지. 훌륭하다.”
“근데 전 김 소령님께 칭찬을 들어도 어째 꼭 욕을 먹는 것 같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 대위를 바라보며 지윤도 살며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네가 지은 제가 많아서 그렇지. 그건 그렇고 국수는 언제 먹여 줄 거냐?”
“누구 말입니까……?”
김 대위는 김 소령의 짓궂은 질문에 모르는 척 지윤을 돌아보며 도리어 질문을 돌렸다.
“너 말이야! 너!”
“왜 저보고만 물어보십니까? 저보다 더 급한 사람 이 사무실에 한 명 더 있는데.”
김 소령은 김 대위의 말에 난간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 나이로 보나 계급으로 보나 김 대위보다는 정우혁 중령님이 먼저지……
“그래 우리 미래의 사모님께서는 언제쯤 결혼하실 계획이신가요?”
김 소령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난처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지윤에게 놀리듯 질문을 던졌다.
“바로 그거죠! 소령님. 더 급한 사람은 이지윤 대위라니까요. 큭큭큭.”
“알았어. 인마. 그래서 지금 묻잖아. 이지윤 대위. 우리 국수 언제 먹나?”
지윤은 그들의 난처한 질문에 다시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이젠 기지 내에 정우혁 중령과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저들이 저런 질문을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음…… 아직 날짜가 정해진 건 아닙니다.”
“어쨌든 결혼은 하는 거지?”
“그럼 결혼하지. 소문 다 내놓고 책임 안지시겠냐? 중령님이 너 같은 줄 아냐?”
김 대위는 김 소령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노려보자 자신의 실언을 만회하기 위해 실실 웃으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요즘은 결혼도 안하고 연애만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아직 대대장님이 결혼하자는 말씀을 안 하셨을 수도 있고. 맞아! 그렇지! 이 대위가 아직 청혼을 못 받았을 수도 있잖아요? 제 말의 뜻은 그거였죠.”
“으이그, 갖다 붙이기는…….”
“헤헤헤, 제가 좀 임기응변이 뛰어나죠.”
김 소령은 스스로 말하고도 스스로가 대견스러운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김 대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이지윤 대위. 청혼 받았어? 아. 내가 이런 질문한다고 오해는 하지 마. 이 대위도 들어서 알다시피 몇 년 전에 254대대장님도 지금 사모님한테 청혼을 못하시고 시간을 끄시는 바람에 결혼 못하실 뻔했잖아. 그래서 묻는 거야.”
김 소령도 김 대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일리가 있긴 한데, 254대대장님이야 하도 오래 묵은 노총각이셨고 또 지금 사모님하고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났으니까 망설이다 그러신 거지만 이지윤 대위야 뭐…… 근데 이 대위. 대대장님이 아직 청혼도 안한 것 아니지?”
지윤은 김 소령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훗. 곧 결혼 소식 들려드릴게요.”
“그래? 그럼 결혼하기로 한 건 맞는가 보네?”
“네. 소령님.”
“우와. 우리 편대에 미혼자는 없게 되는 거네?”
김 대위의 말에 김 소령이 쿡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왜? 너도 결혼하려고?”
“그럼요. 우린 내년 봄으로 날도 잡았는데요.”
“그래? 벌써? 언제 그렇게 진도가 나갔냐?”
지윤도 김 대위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 대위가 그 간호장교와 사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벌써 결혼이라니…….
“아. 미적거려서 뭐합니까? 이거다 싶으면 하는 거지. 안 그래? 이 대위.”
“네…….”
지윤은 김 대위의 뻔뻔스러운 질문에 속삭이듯 대답했다.
따르릉. 따르릉.
갑자기 사무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그때까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던 최 소령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블랙울프 편대 최강우 소령입니다. 필승! 네. 있습니다…… 네. 지금 바로 올려 보내겠습니다.”
“뭐야?”
김 소령의 질문에 최 소령의 의아한 시선이 지윤을 향했다.
“이지윤 대위 단장실로 오라는데요.”
“뭐?”
“네에?”
김 소령과 김 대위가 동시에 큰소리로 의문을 표시하자 최 소령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단장님께서 이지윤 대위 있냐고 물으시더니 지금 당장 단장실로 올려 보내랍니다.”
지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단장님 방에는 장군님이 계실 텐데…… 왜 이 대위를……? 혹시 저번 달 전투기 추락사고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요?”
“그거 왜? 벌써 블랙박스 회수하고 오른쪽 날개 이상으로 판명된 사건인데. 이지윤 대위가 무슨 잘못이야? 민가를 덮치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바다까지 몰고 갔는데 표창장을 주지 못할망정.”
“표창장! 그거 아닐까요? 이지윤 대위에게 표창장 주려나 본데요.”
김 대위의 비관적인 말에 대답하는 김 소령에게 최 소령이 그럴듯한 추측을 했다.
“어?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우선 빨리 단장실로 가봐.”
“네. 김 소령님.”
“……하필 이런 때에 중령님이 안계시니…….”
지윤도 긴장이 되었다. 그가 함께는 아니더라도 같은 건물 안에만 있어 주어도 훨씬 든든할 텐데…… 현재 그는 그린울프 편대와 함께 비행훈련에 참석하기 위해 기지를 떠나고 없었다.
지윤은 비행단장실이라고 적힌 방 앞에서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별 넷의 장군을 볼 수 있을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0월에 있었던 국군의 행사 때 멀리서 희미하게 보았던 공군참모총장은 그 태도와 권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과 거리감으로 자신은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공군의 최고 사령관인 공군참모총장……지윤은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며 눈앞의 문을 살짝 노크했다.
똑똑.
“들어와.”
지윤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맞은편에 보이는 이영훈 준장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필승. 제255대대 블랙울프 편대 소속 이지윤 대위 호출을 명받고 왔습니다. 필승.”
“어. 그래. 이지윤 대위. 이리 가까이 와.”
준장의 명령에 지윤은 그의 책상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신을 등지고 앉아 있는 참모총장으로 짐작되는 남자를 바라보며.
지윤이 다가가는 소리에 참모총장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모총장은 건장한 체격에 거의 반백의 희끗한 머리, 그리고 젊었을 때는 아주 준수한 얼굴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용모였다.
그런데 왜 참모총장님의 얼굴에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걸까……? 참모총장의 머리가 검고 얼굴의 주름이 없다면……!
맙소사. 정우혁 중령…… 그와 놀랍게도 닮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설마……
“장군님. 이지윤 대위입니다.”
준장의 소개에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필승.”
“음…….”
확실히 닮아 있었다. 언젠가 지윤이 제20전투비행단에 발령을 받아 단장실에서 처음 우혁을 보았을 때의 눈빛이었다. 사람을 날카롭게 관찰하는, 그 눈빛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내보이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그런 눈빛이었다.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지윤은 그를 탐색하던 시선을 들어 전방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래.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군. 더군다나 귀관의 목숨을 걸고 전투기를 몰아 민가를 벗어난 것은 아주 훌륭한 행동이었다.”
지윤은 장군의 칭찬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부드러워진 표정을 바라보던 장군이 대뜸 다른 질문을 했다.
“듣자하니 조부모님 손에 컸다고?”
“……네. 그렇습니다.”
“흠……그래. 키워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군.”
“…….”
태욱은 볼수록 지윤이 마음에 들었다. 침착하고 바른 태도가 그녀의 곧은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고, 맑고 총명해 보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순수함을 빛내 주고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전투조종사가 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견하군. 내 기억에는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 단독으로 축하 비행 쇼를 했던 여자조종사가 여기 20전비 소속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습니다. 장군님. 그때 맨 마지막 축하 비행 쇼에서 단독비행을 했던 여자 전투조종사가 이지윤 대위입니다.”
정태욱 장군의 질문에 대신 나서는 이영훈 단장의 대답에 태욱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그렇다면 실력도 대단하다는 말이군. 내 그날 귀관의 비행을 보고 솔직히 감탄했었네.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도 이겨내기 힘든 훈련을 버텨내고 전투조종사가 된 것만도 장한일인데 그렇게 훌륭한 비행도 해 내다니 아주 대단하다 생각했었지.”
“감사합니다. 장군님.”
지윤의 가슴은 정택욱 장군의 칭찬에 뿌듯한 기운으로 넘쳤났다.
“우혁이 그놈 상대하기가 힘들지 않나?”
“……?!”
갑작스러운 장군이 질문에 지윤은 순간 숨 쉬는 것마저 잊었다.
“그놈이 나를 닮아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는 놈인데…….”
말을 하며 지윤을 바라보는 장군의 눈가에 진 주름과 밀려 올라간 입술이 그가 웃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지윤의 놀란 표정에 그가 진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역시 그 놈이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그런가?”
“네. 장군님…….”
“흠……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장군의 뒤로 이영훈 준장이 그를 대신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지윤 대위. 정우혁 중령의 아버님이신 정태욱 공군참모총장님이시네.”
“…….”
지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럴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와 닮은 얼굴에서 설마, 하는 마음을 가졌고 장군의 말속에서 이미 짐작한 바였다. 준장의 새삼스러운 설명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해 줄 뿐이었다.
갑자기 지윤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우혁에 대한 화가 솟구쳐 올랐다.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은 채 지윤 혼자 이런 상황을 맞게 만든 그에게 몹시 화가 났다.
“그놈이 사전에 설명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났군.”
“…….”
“그놈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싫어해.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어릴 때부터 군대 생활에 젖어 있던 내가 자식 놈들을 대할 때조차 부하들 다루듯 다루었으니 그놈이 내게 반항한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어. 거기다 내가 제 어미에게조차 살갑게 굴지 않고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고 더욱 나에 대한 거부감만 들었겠지. 사실 난 그놈 어미하고 사랑 없이 중매로 결혼했네. 군 생활과 전투기만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하찮은 것이라 여겼던 때였거든…….”
뒷말을 줄이는 장군의 표정이 일순 회환의 감정으로 괴로운 빛을 띠었다.
“……나이가 드니 내 지나온 삶이 후회가 되더군. 나를 참아내고 지금껏 함께 해 준 그놈 어미한테도 고마운 생각이 들고…… 2년 전 그놈이 이라크 전에 참전한다고 할 때 화해화고 싶었는데 놈이 전혀 기회를 안 주더군. 그놈이 날 닮아 고집스럽고 무뚝뚝해. 더군다나 타협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야. 날 닮아 그런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나……어떤가? 자네가 날 좀 도와주겠나?”
“……제가 어떻게?”
“그놈이 며칠 전 나를 찾아왔어. 생전 부탁이라고는 안하는 놈인데. 네게 부탁을 하더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네와 함께 미국 파견조종사로 가고 싶다더군. 자네 자격이 부족하니 나더러 힘을 써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