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villain's infinite absorption power RAW novel - Chapter 153
154. 때가 온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으나 확실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각을 믿긴 하지만 현재 모습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으음… 노스페라투는 현재 본인 행성에 틀어박혀 있다고 하던데….”
인간의 모습을 한 노스페라투가 이곳 콜로세움에 들어온다면 모든 대전사가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몸을 바꾸고 위장을 했다고? 저런 능력이 있었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현재 대전사가 될 만한 싹수가 노란 전사들이 몇 없는 상황에서 카리온을 없애게 된다면 그다음이 문제였다.
만약 노스페라투가 아니라면? 현재 대전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사가 그들에 의해 꺾인다면, 분명 다른 대전사들이 그를 비웃을 게 뻔했다.
비웃는 것을 떠나 100층에 마련된 신의 공물이 되어야 하는 의자에 앉는 것은 결국 자신이 될 것이다.
대전사 중 가장 오래된 전사로서 아이나우는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녀석이 만약 정체를 숨기고 있다면 분명 발톱을 드러내는 날이 오겠지.”
결국 자신의 감각을 애써 무시한 그는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면 녀석의 반응을 이끌어 낼 만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 * *
우드드득. 쭈-욱.
수혁은 숙소에서 오랜만에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자신의 원래 몸으로 돌아가자 그동안 답답했는지 등에 달린 망토가 펄럭거리며 수혁을 귀찮게 굴었다.
“하지 마.”
펄럭. 펄럭.
수혁의 말을 무시한 망토가 답답했다는 듯 수혁에게 나름대로 항의했다.
“지금은 내가 함부로 나설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펄럭. 펄럭. 팡- 팡-
망토의 양 끝단이 뭉쳐지며 두 개의 주먹을 연상케 하더니 전방을 향해 주먹질을 해 댔다.
바람을 가르며 생긴 묵직한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당장 뒤엎어 버리자고? 아직은 아니야. 인내심을 가져. 키프로스가 준비한 안배대로 움직여야지.”
시무룩.
망토가 힘없이 축 처지며 토라진 듯이 수혁의 등에 철썩 붙었다.
저번부터 망토와 교감이 된 수혁은 호전적인 망토를 겨우 진정시켰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날뛰게 풀어 줄 테니.”
다시 몸을 카리온으로 변신한 수혁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는 다시 야만적인 전사로 활동할 차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구이와 구름생맥주를 들고 온 수혁이 빈 식탁위에 앉자 다른 전사들이 힐끔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저 녀석이야?”
“실력이 대전사급이라던데.”
“실제로 대전사가 찾아와서 조만간 보자고 했다는데?”
“덩치만 크지 별로 안 세 보이는데….”
“그럼 가서 싸워 보든지.”
“…50층에서 만나겠지. 그때가 되면 박살 내 주지.”
다들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은 수혁은 말없이 고기를 질겅질겅 뜯어 먹었다.
구름생맥주를 3잔째 마실 무렵, 다른 파티원들이 그가 앉은 식탁으로 찾아왔다.
사과와 바나나를 든 마르하임과 칼리아, 볶은 콩 요리를 접시에 든 멜리에가 수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들 역시 다른 전사들의 견제 어린 눈빛이 쏟아지는 걸 느끼곤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우리를 보는 눈빛이 매섭군.”
“잔챙이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위만 바라보면 돼.”
“역시 타고난 전사답네. 카리온, 자네 같은 자들이 진정 신이 선택한 대전사가 되는 거겠지. 휘유~ 요즘은 100층에 오를 거라는 자신감이 많이 사그라졌어. 자네가 없었으면 정말….”
마르하임은 콜로세움을 오르며 자신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그는 카리온을 만난 것을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걱정 마요. 마르하임. 내가 대신 올라가 줄게요.”
콩 요리를 오물오물 씹고 있던 멜리에가 방긋 웃었다.
그녀의 말에 마르하임이 짓궂은 얼굴을 보였다.
“멜리에, 당신이 오르려면 카리온과도 싸워야 할 텐데요?”
“?!”
50층부터는 개인전인 이상 콜로세움의 위층으로 향하려면 서로 싸워야 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의 말에 식겁한 멜리에가 고개를 과격하게 저었다.
“나는 카리온을 먼저 올려 보내고 뒤따라갈 거예요.”
그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눈으로 봐 온 멜리에는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호감을 품고 있는 자에게 어찌 자신의 발톱을 내밀겠는가.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말했다.
“우리 같이 100층 대전사실에서 만나요. 그러면 싸울 일도 없고 계속 대전사끼리 붙어 있겠죠?”
“음….”
사실 수혁에게 멜리에는 부족한 파티원의 인원을 채우는 용도였다.
계속 전투를 치르며 정이 들긴 했지만 아직 그녀를 완전히 믿는 마음은 없었다.
100층에 올라 마르하임과 서로 주고받는 엘프들과 달리 그녀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그럼에도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순진한 눈망울을 애써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옆에서 계속 지켜본 바로 멜리에는 제법 순수한 면이 있었으니까.
“나도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군. 멜리에.”
“히히. 고마워요.”
멜리에의 꼬리가 뱅글뱅글 돌자 마르하임과 칼리아가 그녀를 귀여운 동생 보듯 바라보았다.
“멜리에, 그대는 왜 그렇게 악착같이 100층에 오르려 하죠? 이곳은 서로 죽지 않는 이상 올라갈 수가 없는데….”
마르하임의 질문에 뱅뱅 돌던 멜리에의 꼬리가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급격히 멈추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그녀의 행동에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도 잠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속 깊은 고민을 얘기할 만큼 동료들을 신뢰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족이 살고 있는 숲이 망가져 버렸어요. 나무가 불타오르고 땅이 뒤집어졌죠. 재앙과도 같은 일이 생김과 동시에 탑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마을의 원로께서 얘기하셨죠. 탑을 올라가라. 그곳의 끝에 도달한다면 우리 일족이 멸망하는 걸 막을 수 있다구요. 탑을 만들어 낸 위대한 신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하더군요.”
“으음… 우리하고 비슷하네요. 우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수가 시들어버렸죠. 탑에 올라가 신께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점이 똑같군요.”
마르하임이나 멜리에나 자신들의 세계가 망가져 버린 것이 똑같았다.
외신이 행한 패악질은 온갖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전사들을 모아 싸우게 하고 이긴 자들의 힘이 강해진다면….
결국 외신의 생명 연장 먹이가 되는 거겠지.
“나 역시 이곳 콜로세움의 꼭대기인 100층에 올라 대전사가 되어 신께 직접 빌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을 잘 알지요. 하지만 우리를 도와줄 희망이 바로 눈앞에 있답니다.”
마르하임이 수혁을 지긋이 쳐다보자 멜리에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물론 카리온이 우리를 도와주는 만큼 우리 역시 그에게 도움을 줄 예정입니다. 좋은 거래가 이루어졌지요. 그렇죠, 카리온?”
끄덕.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멜리에가 부럽다는 눈으로 마르하임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자신이 직접 오를 확률보다 수혁이 오를 확률이 더 높은 걸 잘 알았다.
“난 주고받을 게 없는데….”
시무룩한 멜리에를 바라본 수혁이 지긋이 말했다.
“대전사가 된다면 너도 도와주마.”
“정말요?”
어차피 대전사가 되고 위에서 깽판을 칠 거니 엘프를 돕나, 그녀를 돕나 별 차이 없었다.
신의 힘을 강탈할 거니까.
그 힘을 강탈해 그들에게 주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 없다.
수혁의 말 덕분에 모두가 희망한 웃음을 지었다.
“다 먹었으면 싸우러 가자.”
“넵!”
그들이 전투장으로 향하자 관리자 조인족이 공손한 태도로 안내했다.
대전사가 직접 신경 쓰는 모습을 본 이상 카리온이 추후 대전사가 된다면 자신들의 직속상관이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전투장 문을 직접 열어 준 조인족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자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신경을 껐다.
눈앞에 모여 있는 적들이 먼저였으니까.
미리 전투장에 들어와 있던 전사들 역시 수혁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결국 저 자식이로군.”
“이렇게 된 이상 저놈부터 죽이자.”
“훗.”
말을 듣던 수혁이 비웃자 적들은 더욱 광분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 목은 내가 잘라 낸다!”
“저놈의 피로 목욕을 하겠어-!”
“죄다 죽여 버려-!!!”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조인족이 마침내 시험의 종류를 알려 주었다.
“투쟁의 시험입니다. 전부 숨이 멎을 때까지 싸우세요.”
무기를 든 전사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각자의 게이트로 들어갔다.
또다시 서로의 피와 살이 튀고 숨을 멎을 때까지 자비를 찾을 수 없는 죽음의 향연이 펼쳐질 시간이었다.
* * *
자신의 숙소를 떠난 아이나우가 향한 곳은 같은 대전사인 아라고사의 숙소였다.
드넓은 마당에 엄청난 규모의 꽃밭을 만들어 놓았지만 기괴하게도 모든 꽃의 목이 꺾인 상태였다.
“취향은 여전히 독특하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맞닿을 때가 가장 찬란한 법이죠.”
아이나우가 목이 꺾인 꽃밭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뒤에서 꽃밭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아라고사가 나타났다.
가시가 듬성듬성 난 줄기를 엮어 몸에 걸친 그녀가 팔짱을 끼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엔 웬일이죠?”
“그대에게 잠시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네.”
“흐음… 많이 급한가 보네요. 초조한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보기 좋아요.”
점점 공물의자에 가까워지는 아이나우가 재미있는지 아라고사가 입을 가리곤 작게 웃었다.
“내가 그대에게 재미를 많이 주고 있군. 하지만 이번엔 다른 얘기라네. 현재 가장 대전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그 카리온이란 녀석에 관해서 말이지….”
아이나우는 자신이 가진 의문점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라고사의 눈에 더욱 흥미가 돋았다.
“나름 재미있는 이론이군요. 그런데 만약 당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이대로 대전사가 될 후보를 잃고 공물이 될 건 당신일 거예요.”
“…그건 나도 잘 알아.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온 것이야. 그대의 일족이 노스페라투 때문에 큰 화를 입은 걸 잘 아니까 말이야. 안 그래? 그대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흐음…….”
아이나우가 바라본 아라고사는 특이한 존재였다.
분명 죽어 가던 자신의 일족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오른 그녀였지만 오히려 대전사가 된 이후로 이곳을 떠나지를 않았다.
듣기로는 그 노스페라투라는 녀석에게 일족이 멸망했다고 들었기에 그의 얘기를 들으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녀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것과 관련해선 제가 좀 더 알아보죠. 좋은 정보가 있으면 얘기해줄게요. 그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궁금해서.”
“…알았네. 난 그럼 이만….”
그녀를 대신 이용해 차도살인지계를 하고 싶었던 아이나우가 애써 실망스러운 얼굴을 감추고 되돌아갔다.
그나마 그녀가 좀 더 알아본다고 했으니 그 정도로 일단은 만족해야 했다.
혹시 나중에 진짜로 카리온을 잡을 때가 온다면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편을 들어줄 테니까.
그가 떠나고 꽃밭에 서 있던 아라고사의 표정은 미묘했다.
옆에서 불어온 살랑거리는 바람이 그녀의 귀를 스치자 기다란 귀가 꿈틀거렸다.
정령들이 계속해서 그녀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노스페라투가 올라온다는 사실을.
“복수의 때가 다가오는 건 나도 잘 안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정령님들.”
한순간에 싸늘하게 무표정을 한 그녀가 꽃밭을 잠시 바라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