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villain's infinite absorption power RAW novel - Chapter 154
155. 마지막 파티
비비안은 푸석거리는 대지에 서서 흐릿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멍한 그녀와 달리 분주한 움직임이 가득했다.
“이곳에 하나 놓고, 너무 우측으로 쏠렸잖아!”
온몸이 땀에 젖은 노르돌이 다른 드워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석재를 부지런히 다듬고 자르며, 일정 간격으로 쌓아 제단을 만드는 드워프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수레에 돌을 얹어 곳곳에 나른 그들이 수레 손잡이를 놓자 돌이 쿵 하며 땅으로 떨어졌다.
돌을 들어 위치를 조정하며 키프로스가 일러 준 도면을 하나도 틀리지 않겠다는 듯 노르돌은 매의 눈빛으로 공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단의 가운데에는 한때 탑의 지배자였던 드미트리가 두 손을 포갠 상태로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터져 나간 머리통 대신 키프로스의 머리가 붙은 채로.
“스승님….”
작게 읊조린 그녀의 말에도 키프로스는 눈을 뜰 수 없었다.
목과 몸통을 이어 붙인 뒤에 실질적으로 죽음에 다다르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신나게 웃었다.
“키메라 실험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나 자신이지. 껄껄껄껄. 내 지식은 네가 이어받았으니 이제 미련이 없다. 넌 할 수 있어!”
입매가 살짝 올라간 그의 얼굴은 죽었어도 여전히 웃는 상이었다.
이제 눈이 뜨는 날이 다가온다면 더는 키프로스가 아닐 것이었다.
외신이 되어 태어나는 날, 싸워야 할 적이 되겠지.
드워프들이 제단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에 비비안도 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지팡이 끝이 빛나며 제단을 만들어 낸 석재 곳곳에 레이저로 마킹하듯 그을음과 함께 주문을 새겨 넣었다.
마침내 제단이 완성되고 드워프들이 일제히 기도할 무렵, 남은 것은 수혁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잘하고 있는 거 맞죠? 분명 쉬지 않고 싸울 게 뻔하긴 하네요.”
하늘을 올려다본 그녀는 기약 없는 기다림에도 제단 주위를 떠날 줄 몰랐다.
그녀의 예상대로 수혁은 부지런히 도끼로 적을 가르는 중이었다.
“크아아악-!”
용과 인간이 반반 뒤섞인 몸인 용인 전사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단단한 비늘을 가른 도끼에 의해 양 팔꿈치가 잘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억지로 수혁의 몸뚱어리를 붙잡은 그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을 죽여!”
질질질.
수혁을 붙잡았다는 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용인을 매단 상태로 수혁이 발걸음을 옮기자 그는 그대로 끌려갔다.
꼬리에 땅을 박고 나름의 저항을 해 보았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걸리적거리긴.”
퍽.
무릎을 올려 치자 가슴뼈가 움푹 들어간 용인은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쓰러졌다.
수혁이 무심한 눈으로 용인의 시체를 앞으로 집어 던지자 그의 동료가 검으로 수혁을 찌르려다 놀라 숨을 들이켰다.
“헛!”
“의리가 있네.”
동료의 시체를 베지 못한 대가로 머리통에 수혁의 도끼가 박혔다.
부우-웅. 쾅!
옆에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검이 흉흉한 기세로 다가왔으나 수혁의 버클러에 가로막혔다.
“아닛?!”
자그마한 버클러로 자신의 대검을 막았으나 아무런 흠집조차 내지 못한 용인이 헛바람만 들이켰다.
푹. 푹. 푹.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머리를 꿰뚫을 때까지 그는 놀란 눈을 감지 못했다.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는 엘프는 수혁에게 정신이 쏠린 적들을 손쉽게 사냥했다.
콰직. 콰직. 콰직.
서로 주먹을 겨루던 적의 안면을 주먹으로 부순 멜리에가 해맑게 웃었다.
수혁의 파티는 항상 소수였지만 언제나 승리했고 적들을 분쇄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합이 좋군요. 이 파티의 끝이 보이니 너무나 아쉽습니다.”
마르하임의 말처럼 그들은 어느덧 48층에 도달해 있었다.
이번 전투까지 승리했으니 이제는 49층.
50층까지는 한 층이 남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전투는 수혁 위주로 돌아갔으나 전투 외적인 부분들은 파티원들의 도움도 제법 컸다.
특히 미로나 퍼즐적인 부분에서는 엘프의 활약이 눈에 띄게 컸다.
“50층에 오르면 이제 신의 힘이 깃든 무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다들 무엇을 받고 싶으세요? 저는 제 온몸을 감싸 주는 갑옷을 받고 싶어요. 더욱 거칠 것 없이 적들에게 파고들 수 있게요.”
신이 난 멜리에가 자신의 희망 사항을 얘기했다.
“나는 아무래도 더 좋은 활을 달라고 하겠지요. 칼리아도 마찬가지겠지요?”
마르하임의 말에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요? 더 강한 도끼? 아니면 튼튼한 방패?”
다들 궁금한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와하하핫. 역시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무기의 힘보다 본신의 힘을 잘 갈고닦은 덕분이겠죠? 휴우- 아직 50층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잘 익은 과실즙을 들이마신 기분이군요. 너무 들떠선 안 되겠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저도 동감입니다.”
마르하임이 웃음을 절제하자 칼리아가 그에 맞춰 얼굴을 굳혔다.
분위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데는 선수들이었다.
감정 조절에 능숙한 그들과 달리 멜리에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갑옷만 있으면… 100층까지 갈 수 있어.”
힐끔 곁눈질로 수혁을 바라본 멜리에의 양 볼이 붉어졌다.
그러나 수혁은 무슨 생각인지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관리자 조인족이 감탄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빠른 속도로군. 쉬었다 싸울 텐가?”
“바로 싸우지.”
수혁의 의견에 파티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가 오른 걸 그대로 이용해 50층까지 단번에 오를 생각이었다.
어차피 전방에서 싸우는 수혁이 제일 바쁜 만큼 나머지 파티원들의 체력은 생각보다 널널했다.
“휴식조차 필요 없다니 후회하지 않겠나?”
“상대가 없어?”
“그건 아니라네. 좋아. 곧바로 상대를 넣어 주겠네.”
조인족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장 안으로 새로운 전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발견한 수혁 일행의 눈에 일제히 이채가 떠올랐다.
“수가… 적네?”
“호오….”
수혁 일행처럼 총 5명인 소수 인원의 파티가 49층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중 4개의 팔을 가진 근육질의 전사들 뒤로 홀로 지팡이를 든 오크족이 보였다.
자신만만한 그들의 눈빛은 49층에 오를 동안 승리를 해 온 전사들의 자신감이었다.
수혁은 지팡이를 든 오크의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가장 위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 오크부터 잡아. 마법사다.”
“과연… 우리의 화살을 최우선으로 날려 보죠.”
마르하임과 칼리아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번 시험은 투쟁의 시험! 50층에 올라 신의 무기를 이어받을 자들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관리자 조인족의 외침과 함께 다같이 게이트 내부로 들어갔다.
황량한 모래사막이었다.
맞바람이 불자 작은 모래 입자가 사르락거리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얕은 언덕에서 적들과 마주 보게 된 수혁은 적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마법사가 제일 뒤로 빠졌군. 내가 시선을 끌어 볼 테니 저 녀석을 잡아.”
“최선을 다해 보죠.”
마르하임과 칼리아가 곧장 활시위에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비틀린 화살을 걸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마력 감옥이 사라지자 수혁과 멜리에가 모래 언덕 밑으로 달려갔다.
반대편 언덕 위의 전사들 대다수는 네 개의 팔 중 하나만 대도를 들고 나머지는 방패를 들었다.
뒤에서 중얼거리며 마력을 모으는 오크 마법사를 지켜 내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휙-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오크 마법사의 머리를 노렸다.
첫 번째 전사가 방패를 들어막으려 했으나 뱀처럼 휘어지며 옆으로 화살이 통과했다. 그러나 화살은 뱀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음에도 겹겹이 쌓은 방패에 결국 가로막혔다.
퍽. 퍽. 퍽.
묵직한 기세로 화살이 계속해서 날아왔으나 모조리 방패에 가로막혔다.
부-웅. 서걱.
어느새 그들에게 도달한 수혁이 도끼를 휘두르자 방패와 함께 전사의 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러나 악착같이 방패로 가로막은 적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수혁을 가로막았다.
멜리에 또한 적에게 가로막혀 돌파하지 못했고 그사이 오크 마법사의 주문은 완성되었다.
“불의 비!”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빛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어서 먹구름을 만들어 내더니 소나기와 같은 불덩이가 굉음과 함께 마구 쏟아졌다.
콰르르릉. 콰과과광. 콰과과광.
마르하임과 칼리아가 서 있던 곳이 폭발과 함께 화염의 지옥으로 변하자 그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이 아무리 발이 재빨랐어도 마법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멈춰선 채 활을 바닥에 꽂은 칼리아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황금색으로 빛나며 그녀 자신과 마르하임을 둥글게 감쌌다.
그녀가 만들어 낸 황금의 방어막에 부딪힌 불덩이가 폭발하며 그들을 위협했다.
두 엘프가 발이 묶인 사이 수혁은 그다음 전사의 목을 베어 냈다.
마법사의 숨통을 어서 끊어야 했다.
오크 마법사를 악착같이 지키려는 전사가 한 번 더 수혁의 앞을 막아 낸 사이 멜리에를 향해 오크 마법사가 지팡이를 뻗었다.
“앗?!”
전사를 상대하느라 옆을 보지 못한 멜리에의 옆구리로 거친 화염구가 폭발했다.
콰과광!
옆구리가 터진 멜리에가 모래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날아간 그녀의 왼쪽 팔은 화염에 불타올라 새까만 재가 된 상태였다.
서걱.
수혁의 도끼가 한 번 더 전사의 목을 갈랐고, 이어서 음흉한 웃음을 짓던 오크 마법사의 두개골마저 부숴버렸다.
“이런….”
마지막으로 남은 전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멜리에가 굴러떨어진 언덕 밑으로 내려갔다.
아직 쓰러진 그녀를 향해 검을 겨누고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그… 그만! 여기까지 싸우자! 여기서 내가 항복할 테니 전투를 멈추자. 안 그러면 이 전사의 목을 자르겠다.”
“…….”
언덕 밑을 내려다본 수혁이 쯧쯧 혀를 찼다.
“왜 대답이 없어?!”
초조한 얼굴의 전사가 수혁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오히려 고개를 절레 저었다.
“잘 가라.”
“?!”
“크허허허어엉-!”
거대한 덩치의 호랑이로 변한 멜리에가 순식간에 발톱으로 전사를 꿰뚫었다.
다만 그녀의 팔 하나가 없어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을 죽이고 홀로 괴성을 지르는 멜리에를 수혁이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렇게 완전히 날아간 팔은 재생을 할 수 없어서였다.
“쓰읍….”
크어허헝!
고통에 홀로 울부짖는 그녀가 털썩 쓰러지며 파티의 마지막 전투가 끝이 났다.
* * *
“아… 어쩌죠… 나 100층에 올라야 하는데….”
팔 하나가 날아간 멜리에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으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마르하임과 칼리아가 슬픈 얼굴로 그녀를 껴안아 주자 눈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흐윽… 흐허어엉… 나… 나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데… 흐어어엉-”
본신의 실력을 꺼내지 않았던 수혁 역시 미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다.”
“흐윽- 흐윽- 뭐가 미안해요. 흐윽- 내가 부족한… 건데….”
이대로 신의 무기를 받아도 위층으로 올라갈 기량이 사라진 그녀는 그렇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원하던 50층에 도착했으나 수혁 일행 중 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분위기를 읽은 관리자 조인족이 조용히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50층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네. 진정한 의미의 신의 전사들이 된 것이지. 이쪽 통로 끝에 가면 그대들에게 필요한 힘을 내려 줄 걸세.”
눈치껏 조인족은 사라졌고 수혁 일행만 남게 되었다.
“하아… 파티는 이제 끝이 났고 개인적인 전투가 되겠군. 그런데 카리온…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위로 올라갈 자신이 없어졌다네. 내가 신의 무기를 받는다고 다른 자들을 꺾으며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마르하임이 미안한 어투로 수혁에게 이야기했다.
차라리 수혁으로서는 반길 내용이었다.
괜히 전투에 나섰다가 죽으면 곤란한 것은 그였으니까.
“저도 더는….”
칼리아마저 고개를 떨구었다.
남은 것은 멜리에뿐.
자신의 텅 빈 어깨를 주무르던 그녀가 애써 볼을 부들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같이 100층에 가고 싶었는데… 저도 안 되겠어요. 카리온은 왠지 100층에 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 부탁 하나만 들어 줄 수 있어요?”
그녀의 부탁이 무엇일지 잘 알 것 같았다.
저번에 그녀의 속 얘기를 듣고 유추하기로 그녀의 일족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외신의 힘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겠지.
수혁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하임과 너의 바람은 내가 이루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