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42
“아… 그… 그렇구나… 감사해요.”
하고 뭔가에 홀린 얼굴로 부적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다.
대체 요즘 뭘 준비하고 있는 걸까.
“형, 형.”
지훈이가 우리 자리로 찾아왔다.
아침부터 피곤해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얼마나 엎드려 잤는지 뺨에 옷소매 자국이 선명하다.
“지금 커뮤니티, 형 때문에 난리 났어요.”
“커뮤니티? 아, 재일교포?”
“아뇨. 한국 커뮤니티.”
한국 커뮤니티가 왜?
“봐요.”
지훈이는 내 컴퓨터 쪽으로 쏙 왔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 만한 대형 커뮤니티로 접속했다.
‘이슈’ 갤러리로 들어가자, 모두 다 ‘이상’의 이야기뿐이었다.
지훈이 아무 게시물을 클릭했다.
호텔에서 기자 인터뷰를 한 영상이었다.
어찌나 발들이 빠른지, 그새 편집과 번역까지 되어 있었다.
-혹시 한국에서 출판하지 않는 책을 일본에서 출판하려 하는 건, 한국의 문학 시장 수준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자님이야말로, 그런 전제를 까신 걸 보면, 한국 문학 시장이 일본 문학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까?
-혀,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은 시장의 규모도 다르고-
-일본의 인구수는 한국의 두 배에 달합니다. 시장의 규모가 같을 수 없지요. 그렇다면 질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에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성공한 작가의 수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한국 문학 시장과 일본 문학 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겁니다. 이런 곳에 오신 문화부 기자라면 그 정도 조사는 되어 있으실 텐데요.
-가, 각각의 나라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존중해야 하는 부분…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맞습니다. 기자님.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와하하,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
그 게시물의 제목은,
[일본 기자에게 사이다 날리는 갓이상]댓글은 열광적이었다.
-미친. 봐도 봐도 사이다야. 못 떠나겠다.
-이 작가 한국 문단에서도 저렇게 사이다 팍팍 먹이던데.
-나 한국 소설 1도 안 보는데 이 작가 글은 봐야겠다.
-필명도 이상이래. 닉값 오지네.
-본명도 김혜경이래.
-김혜경이 왜?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 이상의 본명이 김해경이거든.
-대환장. 환생한 거 아냐?
-소름끼치네. 전생체험 해봐야 할 듯.
-야, 일단 홈페이지 주소 남긴다. 사이다 먹었으면 돈 내고 소설 좀 봐라. 이천 원이다. www.strange2021.net.
“마지막 댓글은 제가 남겼어요.”
“넌 정말 준비된 영업 인재구나.”
“기본이죠.”
그런데 저 기자회견을 이렇게 좋아해줄 줄이야.
커뮤니티에는 내 인터뷰와 내 소설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한국 소설가와 소설에 대해 저렇게 열띤 이야기를 이어가다니.
게다가 웹소설이나 장르소설도 아니고, 순문학으로.
퇴근 후,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인창 교수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인후 감독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혹시 문병을 가도 되겠느냐는 문자를 남겼다.
의외로 답은 바로 왔다.
-지금 아버님의 치료로 정신이 없습니다. 면회가 가능하게 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치료로 정신이 없다고…
어쩐지 마음에 걸렸지만 나로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그날 밤,
지훈과 나는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헐.”
지훈이 입을 틀어막았다.
<부활>의 한국어와 일본어 페이지의 결제수가 엄청나게 뛴 것이다.
“한국어 페이지는 그렇다 쳐도, 일본어 페이지는 왜?”
“…이것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방금 확인한 건데…”
지훈이 재일교포 커뮤니티를 열었다.
그곳 역시 내 이야기가 종종 보였다.
한 게시글을 누르자, 사이타마에서 재일교포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고마 신사로 간 모습이 점수를 딴 모양이에요.”
“하지만 고작 그걸로?”
“하긴. 그렇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문득,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핸드폰으로 일본 대형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이거다, 지훈아.”
“이게 뭔데요? 제가 아직 일본어가… 이상… 한국…? 모르긴 몰라도 형 얘기 진짜 많은데요?”
“지금 얘네 싸우는 중이야. 자국 기자를 엿 먹인 한국 작가를 두고.”
정말이었다.
글들을 딱 두 패로 나뉘어졌다.
-기자가 잘못했네. 저게 작가한테 할 말이냐?
-꼬우면 한국에서 책 내던가. 한국에서 쫓겨나서 일본으로 온 거 아님?
-분명히 일본 문학을 동경해서 온 거야. 뻔하잖아.
-헛소리 하지 마라. 니네 저 사람 소설 보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히루키랑 도마크 출판사가 ‘초대’해서 온 거라고.
-아… 나의 히루키 상이… 말도 안 돼. 한국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고개를 숙이다니? 니 뇌는 그렇게밖에 안 돌아 가냐? 우정 몰라?
-하. 대체 어떤 글을 쓰는데? 두고 보자. 별 것 아닌 거면 가만 안 둬.
-책 나오면 확인하면 되잖아. 다들 흥분하지 말라고.
나는 거기까지 보고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훈에게 말했다.
“지훈아, 내가 아무래도 일본에서 ‘어그로’를 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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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1)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1
정신없는 와중에도 할 일은 넘쳐났다.
새로운 소설에 대한 고민,
간간히 오는 강인춘 PD의 사소한 대사 수정 부탁,
‘잡문’ 아니 이제는 ‘에세이’ 퇴고,
그리고 한국대 특강.
일본에서 돌아온 후,
한국대 인문대 지하 대강당은 인산인해가 됐다.
자리가 가득 찬 건 물론,
계단은 물론이고 단상 앞 바닥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대학생이 아닌, 나이가 너무 적거나 많은 사람들.
듣기론 외부 사람들도 도강을 하러 온 것 같다고 했다.
차 조교는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편하시면 저희 측에서 학생증 검사해서 들여보낼게요.”
“아니에요. 강의 도둑은 도둑도 아니죠. 학점 나가는 정식 수업도 아니고 특강이니까, 학교 측에서 허락만 해주면 진행할게요.”
“조인창 교수님이랑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조인창 교수도 당연히 이렇게 말했겠지.
그러고 보니 조인후 감독에게서 좀처럼 연락이 없다.
“배우러 오신 분들 내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죠. 수업 전에 정숙 부탁드린다고 안내나 한 번 해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차 조교는 약속대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공지를 했다.
“지금 학사팀에서는 특강 수강 인원의 두 배에 달하는 청강생 분들이 계신다는 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정숙을 약속해주시고 강사님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신다면 따로 학생증 검사 없이 수업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수강 신청을 하신 학생들을 배려해야 하는 관계로, 다음 주부터는 지정좌석제를 실시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공지가 나가자,
도강생들과 수강생 모두 서로를 이해한다는 듯 가벼운 박수를 쳤다.
“그럼, 이상 강사님을 모셔보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쏟아지는 듯했다.
부담은 느끼지만, 역시 긴장은 되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이상입니다.”
나는 바라보는 눈들이 빛난다.
요즘 난 느낀다.
한국 사회는 분명, ‘문학’에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문단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문학의 붐’을 일으킬 기회일 테니.
“그럼 오늘의 수업은…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바쁘게 필기를 시작한다.
“소설이라는 예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느리고 간접적입니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 운동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하죠. 그래요, 소설가는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가난하죠.”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정신적인 영역에서 소설이 남기는 각인은 참으로 효과적입니다. 한 권의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을 왕왕 볼 수 있죠. 그것은 소설이 말해주는 인간성 혹은 미학들이 독자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여러분도, 저도, 위대한 그 누구라도 소설이라는 예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요. 덧붙여…”
그렇게 오늘도 특강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업이 끝난 후, 피곤한 몸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훈에게서 톡이 왔다.
-형. 미쯔하루 편집장님한테서 메일이 왔어요. 히루키 작가님이 추천사를 다 쓰셨대요. 소설 원고가 올 때까지 못 기다리시겠다나요.
-벌써? 알았어. 내일 아침에 볼 테니까, 혹시 인쇄해줄 수 있어?
-물론이죠.
히루키의 추천사는 물론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홉 시.
도착하면 아슬아슬하게 열 시였다.
추천사를 보면 기쁜 마음에 잠이 달아날 게 뻔했다.
어떤 경우에도 내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
요즘같이 바쁜 시기에는 유난히 지키기 어렵다.
***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한 시간가량 맨몸운동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가방 안에는 어제 지훈이 뽑아놓은 히루키의 추천사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추천사를 읽었다.
그즈음 되니, 더는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작가로서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성을 가진 이가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그가 적어 내린 글을 보고 있으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정신이 공명함을 느낀다. 그렇게 빠져드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는 나의 형제와 텔레파시를 나누듯.
그의 에세이는 그가 작가가 되기 전후의 생각을 다루고 있다. 작가라면 이 글을 보라. 작가가 아니어도 이 글을 보라.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이 글을 보라. 천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면, 당신의 의식의 지평도 한껏 넓어질 테니.
…최고의 추천사였다.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그는 나를 ‘형제’이자 ‘천재’로 칭하며, 세상 모든 이에게 나의 에세이를 권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이나 히루키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를 태그하여 짹짹이에 글을 남겼다.
-최고의 추천사,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언젠가 돌려드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상 배상.
물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국어와 일본어로 말이다.
잠시 후, 국제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이제는 익숙한 미쯔하루 편집장의 번호였다.
“네. 편집장님.”
-아, 이상 작가님. 히루키 작가님 태그한 글 확인했습니다. 추천사를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새 봤구나.
역시 빠르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더할 나위 없어요.”
-다행입니다. 저기… 그렇다면 에세이 원고는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 확인을 마치고 오늘 안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빨리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은 얼마나 걸릴까요?
“음… 이제 곧 시작할 생각입니다만 얼마나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다음 달 안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소설 집필은 며칠 내에 들어갈 수 있겠다.
아직 무엇을 쓸지는 좀 막연하지만…
-그럼 표지는 미리 만들어놓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느낌이 있으신지요?
내 첫 책의 표지.
생각해놓은 바가 있었다.
“앞면과 뒷면의 색이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뒷면은 회색이었으면 합니다.”
-아… 회색이요? 에세이집인데 너무 어둡지 않을까요?
“앞표지는 어떤 색을 쓰셔도 상관치 않겠습니다. 아마 무채색은 피하시겠지요. 그럼 너무 장례식 같은 느낌이 될 테니까요. 하하… 앞 색은 알아서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네, 뭐. 좋습니다. 그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또, 생각해 놓은 제목이 있으신지요.
“예. 있습니다.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오, 무엇입니까?
“<다시 사는 일>입니다. 괜찮은 것 같나요?”
-다시 사는 일… 다시 사는 일… 평범한 삶에서, 작가로 다시 사는 일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런 셈입니다.”
‘김해경’에서 ‘김혜경’으로 다시 사는 삶이기도 하고.
-좋습니다. 일본어 발음으로도 아주 간결하고요. 한국어로는 어떻습니까?
“한국어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일단 내부 회의를 좀 더 거치겠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이상 작가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진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회의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아마 날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그는 내가 어떻게 김혜경의 몸을 얻었는지 모르니까.
에세이.
그것은 나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글이다.
그 책에 담길 잡문 50편은 작가가 되기 전후의 글.
다른 말로 하면… 김혜경의 몸으로 들어 온 직후의 글들.
책의 뒷면이 1930년대 이상의 불행한 삶을 의미한다면, 앞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상의 밝은 미래다.
그것이 내가 ‘책’이라는 것으로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내 삶의 모습이다.
***
그렇게 도마크 출판사와 합을 맞춘 날 저녁,
나는 일본어 원고를 갈무리해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신라문학’ 출판사였다.
신라문학.
가라사대와 자웅을 다투는 대형 출판사.
동시에 나에 관한 이슈에 대해선 내내 침묵했던 곳.
하지만 조인창 교수가 꾸준히 글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