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93
파리에 가기 전에는 이런 기사들이 불편했다.
아직 그곳에서 이룬 게 없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내외인>이 안겨다 준 영예.
심 교수의 말대로… 즐겨 볼 만하지 않은가.
* * *
김미소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영화 <내외인> 수상을 축하해야 하지 않겠냐고.
어버버 하는 사이에 자리는 뚝딱 만들어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강남역의 한 이자카야.
나는 지훈과 함께 들어섰다.
“이상 작가님!”
날 알아본 현민상 시인이 외쳤다.
김미소 작가, 한지온 작가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여기는 송지훈 평론가.”
“안녕하십니까.”
지훈이 넉살 좋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돌아가며 지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평론가님도 함께 오신다고 해서 기대하던 중입니다, 하하.”
“반가워요. 한지온이에요.”
“김미소예요. 어서 앉으세요.”
우리 다섯 명은 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들도 방금 온 건지 안주들에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현민상 시인과 한지온 작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앤솔로지 심사는 잘 끝나셨어요?”
“그럭저럭요. 어려운 심사는 아니었어요. 소설 투고가 많아서 지온 누나가 고생 좀 했죠.”
“말도 마세요. 어휴.”
한지온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사란 거, 말만 들어도 피곤한 일이다.
“수상작 골랐으니 발표 후에 바로 책 나올 거예요. 워낙 온라인 반응이 좋은 앤솔로지니까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자, 일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이상 작가님, 정말 축하드려요.”
한지온 작가가 나와 지훈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상 받은 건 영환데.”
“원작이 기깔 나야 영화도 기깔 나게 뽑히는 거 아닙니까.”
현민상 시인이 킬킬대며 말했다.
“아~ 부러워. 내 시는 누가 영화로 안 만드나?”
“오빤 시집 꽤 잘 팔리지 않아? 한 5위 되나?”
“몰라. 더 떨어졌을걸? 순위 안 쳐다본 지 오래다.”
“난 아직 책도 못 냈으니 날 보고 위안 삼으슈.”
김미소 작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작가님 원고 많이 모이지 않았어요? 단편집 내실 때도 된 것 같은데.”
내 물음에 김미소 작가가 음― 하고 말을 끌었다.
“저는 필드가 좀 독특하니까요. 제 책은 노동서적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해서요. 그런데 그런 곳들은 좀 영세하니까… 쉽지 않죠.”
그것도 또 그렇군.
마이너 중의 마이너 문학의 현실일까.
그래도 김미소 작가는 잘 감당하는 것 같지만.
현민상 시인이 새삼 진지하게 말했다.
“이상 작가님, 저희가 진짜 감사드리는 거 알죠?”
…뭘?
내가 어리둥절하자, 현민상 시인이 픽 웃었다.
“역시 이런 쪽은 둔하시다니까.”
한지온 작가가 덧붙였다.
“저희 대한문학상 심사 포기했잖아요. 그 뒤로 별일이 다 있었거든요.”
“지온 누나는 워낙 이미지가 좋으니까 그나마 소신 있다는 소리 들었지만… 저는 미친놈 소리 들었거든요.”
“미친놈 소리를 왜 들어요? 대한문학상 그것 좀 포기했다고?”
지훈이 발끈해서 물었다.
“젊은 작가 주제에 건방지다 이거죠. 이상 편에 붙는 거냐, 그런다고 쿨해 보일 줄 아냐, 문단을 무시하고도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아냐….”
“그런 소리까지 들었다고요?”
그건 좀 심각한데?
…그렇군.
내게 오는 비난들은 그나마 눈치를 좀 본 거였어.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요. <내외인>이 프랑스 베스트셀러가 되고 몽테뉴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난 뒤로.”
한지온 작가가 흥분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현민상 시인이 덧붙였다.
“맞아요.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를 먹은 작가를 한국 문단이 예선 탈락을 시켰다? 체면 제대로 구긴 거죠, 대한문학상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대한문학상 쪽도 답답한 노릇 아닌가.
“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돼도 국내 문학상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건데. 작품이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럴 때일수록 대한문학상이 권위를 지켜야 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김미소 작가가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그게 상식이지만… 애초에 상식적이지 않게 작가님 작품을 떨어뜨렸으니. 이제 와서 권위가 살겠어요?”
하기야 그렇지.
대한문학상이 날 떨어뜨린 것.
보는 눈이 너무 높거나, 특별해서 생긴 일은 아니니.
사실, 상 따위야 알 바 아니다.
다만, 문단 돌아가는 꼴이 애처로운 게 문제지.
“아무튼! 이제야 저희들이 좀 이해받는 느낌? 그런 거죠.”
“민상이 말이 맞아요. 작가님 덕이 커요.”
“제 덕은요. 제가 뭘 했다고.”
과감하게 대한문학상을 포기한 건 이들이다.
욕을 먹을 거란 리스크를 감당한 것도 이들이고.
이들이 문단에서 잘 버텨 준다면….
한국 문단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전생의 ‘구인회’가 떠올랐다.
그들 모두 뛰어난 작가들이었다.
그 척박한 시대에서 피어났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시대가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요절을 했고, 납북을 당하거나 월북을 한 이들도 있었다.
짧고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같던 그들.
이번 생에 찾은 내 동료들은, 부디 오래 타오를 수 있길.
“자, 기쁜 일이 많으니 한잔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었다.
그들도 차례로 잔을 들었다.
“건배사는 뭘로 하죠? 베스트셀러 축하? 유럽 진출 축하?”
지훈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베스트셀러는 기록일 뿐이다.
“다들 새 작품 쓰고 있죠?”
세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너는?”
“쓰고 있죠, 평론.”
“그럼 지금 쓰는 글이 잘 되길 기원하죠.”
내 경우에는 <등>이겠지.
부디, 별 탈 없이 신라문학이 책을 내주길.
“좋아요. 다음 작품을 위하여!”
김미소 작가가 신이 나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우렁차게 따라 외쳤다.
“위하여!”
우리는 신나게 잔을 부딪쳤다.
* * *
며칠 후.
이준환 편집위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먼저 영화 <내외인>의 수상을 축하하더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 내부심사 결과, <등>을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편집위원님.”
내줄 거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툭툭 벌어지는.
그래도 이번에는 별탈 없이 책을 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조금 주저하듯 말했다.
― 저, 작가님. 혹시 신라문학에 한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간 발간에 대해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만.
90화
신라문학 이준환 편집위원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난 살짝 놀랐다.
“박조운 편집장님….”
“이상 선생, 오랜만이구만.”
“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모처럼 박조운 편집장이 와있었기 때문이다.
신―문학 사업이 잘돼서 그런가.
호랑이 같던 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얼굴만 좋아. 몸은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안 본 사이에 스타가 됐던데? 뉴스에서 지겹도록 틀어 주더만.”
루브르 얘기구나.
이쯤 되니 부담감도 안 느껴진다.
이젠 김미소 작가가 ‘루브르의 남자’라고 놀려도 웃을 수 있을 지경.
“과찬이십니다. 앤솔로지 심사를 마쳤다고 들었는데요. 책은 언제쯤 나오나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대답했다.
“지금 표지 들어갔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나올 겁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 그리고 <등> 말인데요.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편집위원님.”
라고 말은 했지만… 그는 뭔가 꺼려 하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물으려 할 때였다.
박조운 편집장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 난 그 소설 너무 좋았어. 강렬하고, 마초적이고, 천재의 광기가 느껴지는데… 그 와중에 섬세한 부분이 있단 말이지.”
“…다행입니다. 완성본이 아니라 좀 불안했습니다.”
“무슨 소리. 좋은 글은 초고만 봐도 아는데. 그건 그렇고…”
박조운 편집장이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등>에 대해 신라문학이 제안한 게 있어서요.”
제안?
그러잖아도 통화할 때 이준환 편집위원이 그랬지.
<등>에 관련해 상의할 게 있다고.
“뭐, 긴장하진 마세요. 좋은 일이니까. 사실 신라문학에 대한 이상 선생의 팬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예?”
내가 책을 내는 유일한 출판사에?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는데…?
이준환 편집위원이 말했다.
“이상 작가가 신간을 내는데, 신라문학이 뭔가를 해 줬으면 하는 거죠.”
“뭘 그렇게 돌려 말하나. 프랑스 출판사는 루브르 앞에서 낭독회까지 시켜 줬는데, 신라문학 니들이 이상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 이 말이지. 껄껄껄!”
박조운 편집장이 호쾌하게 웃었다.
음… 사과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박조운 편집장은 오히려 즐거운 듯했다.
“틀린 말이 아니긴 해요. 상황이 상황이긴 했지만, 이렇다 할 행사 하나 없이 책을 내왔던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연말이고 하니 일을 벌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발간 기념회를 열자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박조운 편집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등>의 출간 시즌에 북콘서트를 열면 어떨까 합니다.”
북콘서트.
작가가 지인과 팬을 초대해서 여는 작은 파티.
발간 기념회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좀 더 격식 없는 분위기로 즐긴다는 장점이 있지.
가수나 다른 예술가를 초청하는 경우도 있고.
“어떻습니까? 해 보시겠습니까?”
하면야 당연히 좋았다.
연말 콘서트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신라문학 쪽에서 제 매니저와 함께 진행을 맡아 주신다면 할 의향이 있습니다. 아니, 아주 재밌을 것 같습니다.”
발간 기념회가 언론을 상대하는 자리라면.
북 콘서트는 팬들을 상대하는 자리다.
‘이상’의 팬들을 만나 볼 좋은 기회.
“잘 됐군, 안 그래?”
박조운 편집장이 이준환 편집위원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준환 편집위원은 뭔가 꺼림칙한 얼굴이었다.
“그 얘길 해 드려야지. 중요한 얘기잖아.”
“아이고, 이 사람아. 그거 신경 쓰지 말라니까.”
“제가 더 알아야 할 게 있는 겁니까?”
“아, 그게. 별 건 아니고.”
이준환 편집위원의 얼굴은 별 게 아닌 게 아닌데?
“<등>의 출간은 아무래도 연말을 넘기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지금 신라문학에서 연말까지 행사가 가능한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그게 언제입니까?”
“12월 마지막 주 일요일. 그러니까 28일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내 알 것 같았다.
한 해의 마지막 주 주말.
모든 예술 문화계에서 상 나눠 주기에 열을 올릴 시기.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고….
“대한문학상 시상식과 겹치는군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걱정했던 거였군.
괜한 소란이 일어날까 봐.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애초에 그날에 행사 일정이 비어 있던 것도, 대한문학상 시상식과 겹치지 않게 하려 했던 겁니다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눈치 보지 말고 하자 이거요. 이상 선생도, 연말에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하는 게 좋을 것 아니오? 뭐… 연초로 미루고 싶다면야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아니요.”
난 딱 잘라 말했다.
“연말에 하고 싶은데요. 발간도, 북콘서트도.”
처음부터 연초에 발간될 일정이라면 모를까.
대한문학상 시상식을 피해 발간을 미룰 이유?
전혀 없지.
“음… 박조운 이 사람은 상관없다 하지만, 난 말리고 싶어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말했다.
“우리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아요. 이미 신라문학은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고, 대한문학상 심사에 참여하지 않은 지도 오래니까.”
“북 콘서트를 걱정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대한문학상의 권위가 아무리 예전 같지 않다 해도, 대부분의 문단 사람이 그날 그곳에 다 모일 겁니다.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생각하시는 것보다 콘서트가 초라해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