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1110
1109화 시험 당일 (4)
“아이가 혹시 열은 안 나나요?”
척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척수…….
뇌척수액이라는 액체로 찬 곳이고, 그곳에 감염이 생겼다면 당연하게도 머리로 번질 수 있었다.
열이 안 나기 어렵다는 얘기.
‘열도 안 재 봤을까……?’
[수혁도 겪어 봐서 아시지 않습니까. 인프라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간단한 것도 대응이 쉽지 않은 법입니다.]‘하긴 그렇지.’
코비드 사태가 한창일 때.
대한민국은 다행히 인프라가 무너지지 않았다.
거리마다 즐비하게 위치한 병원들이 위력을 발휘해 준 까닭이었다.
거기에 더해 좁은 국토에 비해 상당히 잘 짜인 행정력 또한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다시 말해 대강의 치료만 받아도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 나갔다.
원래 한계 수용력을 벗어난 환자들이 오게 되면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아…… 열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의료 기관도 아니었던 곳은 아무래도 더했다.
수혁의 말이 있고 나서야 헐레벌떡 뛰어간 상대가 돌아온 것은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죄, 죄송합니다. 체온계가 몇 개 없어서.”
“아닙니다. 열이 납니까?”
“아, 아뇨. 열은 안 납니다. 알고 보니 이미 저희가 수용할 때도 한번 쟀었나 본데, 그때도 열은 없었다고 합니다.”
“열이 없어요?”
“네.”
“음.”
기다리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열이 나겠지 하고 있었다.
헌데 안 난단다.
심지어 한 번도 난 적이 없는 거 같았다.
‘뭐지, 시발? 진짜 정신과인가?’
[아뇨. 하지에 힘이 빠졌다면……. 그건 정신과 질환일 가능성은 적습니다.]‘하긴, 그런데…….’
PTSD로 인한 증상을 하나로 요약할 수는 없기 마련이었다.
트라우마의 종류에 따라 또 그 트라우마를 입게 된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에 그랬다.
하지만 적어도 힘이 빠져서 걸음이 불안정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건 기질적인 질환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열이 나지 않는다면, 종양일까요?]‘그럼 지금은 진단이 어려워.’
[영상 의학적 검사를 요청합니다.]‘요청한다고 바로 되겠냐……? 지금 영상 통화도 제대로 안 되는 곳이야.’
[그래도 해야 합니다. 정 안 될 거 같으면 여기로 오라고 하든가요.]‘이 새끼.’
추론만으로 그걸 유추하는 건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아니, 애초에 어떤 질환인지 진단이 되더라도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가긴 해야 했다.
“혹시 그 근처에 영상 의학적인 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있나요? MRI 정도?”
“음……. 있긴 합니다. 차 타고는 한 20시간?”
“아.”
20시간이라…….
땅이 넓어서 그런가?
아니면 병원이 그만큼 적어서 그런가.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높을 터였다.
“문제는 지금 당장은 좀 어렵습니다. 주변 치안이…….”
“아.”
심지어 그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종양이거나 혹 열을 동반하지 않는 감염이거나……. 진단을 일단 서둘러야 할 거 같은데.’
[그렇죠. 이미 신경이 파괴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만약 눌리고만 있는 상황이라면, 그거만 해결해 줘도 좋아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음…….’
‘소말리아.’
[소말리아.]바루다는 갑자기 소말리아를 띄웠다.
말 그대로 그 지도를 띄웠다.
‘이건……. 이건 왜 데이터화를 해 둔 거야?’
[풍토병 때문에.]‘아. 그런 거라면 인정.’
[아무튼, 여기서 이……. 두바이가 그렇게 안 멀지 않습니까?]‘아덴만 건너면 바로지.’
[우리 왕자님 거기 계시지 않습니까?]‘아…… 왕자님……. 근데 이런 부탁을……?’
[맨날 부탁 안 한다고 불평불만이 많지 않습니까. 한번 해 보시죠. 안 된다고 하면 진심이 아니었던 거지, 뭐.]그러곤 왕자를 언급했다.
확실히…….
이렇게만 보니까 상당히 가까워 보이긴 했다.
가깝다고 해 봐야 서울에서 대만보다도 살짝 더 먼 거리긴 했지만…….
하여간 20시간 이상 걸리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렇게 도착한 병원이 정말로 좋은 병원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수혁의 지식이 대단히 얕기 때문에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뭐가 되었건 두바이에 있는 태화 의료원에 비해서 좋을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저기, 잠시만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현지 병원을요?”
“아뇨, 두바이요.”
“네? 두바이로 가려면 헬기로 가야 합니다! 여기 활주로가…….”
“그러니까요.”
“아니.”
뭔 소리야.
유니세프 직원은 이 사람이 뭔 소리를 하나 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뉴욕에 갔던 직원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사람……. 태화라는 그룹의 숨겨 둔 자식일 수도 있대.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거지.
설마.
설마 진짜 그런가?
그냥 하는 말일 수는 없었다.
사실 유니세프와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면 입이 좀 무거워지는 편이기에 그랬다.
왜?
그는 여기서 일하면서 세상에 스파이라는 족속이 진짜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단체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감시 체계가 느슨할 수밖에 없지 않나?
게다가 어떤 지역에서는 단체에서 행하는 일이 사실상 첩보 활동을 방불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삥 뜯기지 않고 약이나 백신을 전달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또 기본적으로 현지인들을 돕는 일이니만큼 정보도 고이기 마련이고.
‘허튼 소리는 아닐 거야. 와……. 정말로?’
뭣 모르고 떠들다가 피 보는 경우가 생긴다는 얘기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지내던 군벌이 갑자기 너네가 불었지! 하면서 야단법석을 피우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애써 길 뚫어 놓은 군벌이 뜬금없이 나가리 나는 경우도 봤다.
그런 것을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다들 신중해지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요주의 지역에 들어가는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이제 단체 차원에서 교육도 이루어졌다.
‘진짜 헬기가……?’
직원이 그렇게 나름대로 아는 정보를 짜 맞추면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이어 나가는 사이, 수혁은 왕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혁아, 안부 전화 정도는 해라. 그래야 해. 이번 학회에 아이브도 불러 주신다잖아. 나 안유진 진짜 팬인데…….
신현태 때문인지 덕분인지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그리 어색한 일은 없었다.
“아, 왕자님. 안녕하세요. 저 이수혁입니다.”
“오, 수혁. 웬일이지?”
무엇보다 수혁은 좀 뻔뻔한 편이었다.
상대 입장에서 수억이 들어갈 수도 있는 일에도 일단 요구는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얘기였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그런 식의 도움을 아낌없이 뿌려 왔기 때문도 있었다.
그보다는 그냥 사회화가 덜 되어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요구가 오히려 기꺼울 수도 있는 법이었다.
“오……. 드디어!”
특히 왕자는 기꺼운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기뻐 날뛰고 있었다.
“드디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요청이 왔구만. 그래, 도와주지.”
“근데 거기가 좀 위험하다고…….”
“괜찮아, 괜찮아. 거기 군벌 애들 다 알지.”
“네?”
“자세한 건 알면 안 되고. 아무튼, 5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해.”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이 정도는 뭐…….”
그러더니 걱정 말라고 하고 시간까지 공지해 주었다.
“와……. 정말요?”
“네.”
그걸 전해 들은 직원은 이제 확신하게 되었다.
이수혁은 태화의 막내아들이라고.
아니, 어쩌면…….
‘제일 이뻐하는 자식일 수도 있어. 여기에 헬기를 보낸다고……?’
제대로 된 대공 방어 시스템이 있는 곳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쪼개진 채 존재하는 군벌들 사이에서 헬기는 일종의 보물 창고 같은 존재였다.
물론 이따금 날아다니는 미군 헬기들이야 무주공산처럼 돌아다니지만…….
그게 아닌 경우엔, 재수 없으면 RPG에 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걸 모르진 않을 거야. 위험 지역이니까……. 그렇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거라는 거다.
그것도 5시간 내에.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현지에서 닳고 구른 직원으로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타다다다다
해서 반신반의했다.
정말 나타날까.
나타난다고 해도 안전할까.
헌데 정말로 딱 시간 맞춰서 헬기가 나타났다.
아니…….
‘편대……?’
헬기들이 나타났다.
수송용 헬기 양옆으로 위치한 것들은 누가 봐도 군용헬기.
‘뭐야, 이 사람……?’
몰라, 무서워…….
직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헬기가 내려앉았다.
안에서 내린 이들은 의료진과 특수 부대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여기 보호자입니까?”
“아, 네.”
“같이 가시죠.”
“어……. 네.”
그런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안 갈 건데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여기 책임지고 있어야 됩니다 라는 말도 안 나왔다.
같이 온 헬기 중 구호물자를 내려놓는 것도 있어서 그랬다.
생색내기용은 결코 아니었다.
상황이 바뀔 정도로 많은 양의 그리고 시기적절한 물품들이 줄줄이 쌓이고 있었다.
‘와……. 이게 꿈인가, 생신가.’
아이를 봐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직원은 그야말로 묘한 기분으로 아이와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이게 어느 정도로 신기한 경험이었냐면,
“와…….”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했던 아이의 입에서조차 감탄이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 아이가 대체 언제 하늘을 날아 보겠나.
“바이털은?”
“괜찮습니다. 들은 대로입니다.”
“좋아. 다행이구만. 일단 이수혁 교수님 진료에 아무 불편이 없어야 해. 가면서 가능한 모든 조치는 다 취하는 거야, 알았어?”
“네!”
거기에 더해 호화롭다고까지 할 수 있는 진료가 이어졌다.
이게 정말 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진료인가 싶을 정도였다.
‘에어 앰뷸런스……. 그중에서도 이런 건 진짜 처음인데…….’
아이도 아이지만 오히려 알 만큼 아는 직원이 더 놀랐다.
에어 앰뷸런스라는 게 원래 다 좀 좋긴 한데, 이건…….
“어우.”
방금 금인가?
이거 금이야?
사치스럽다.
“곧 내립니다!”
아무튼, 헬기는 곧 병원 옥상에 내려앉고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
-도착했어요?
그와 동시에 태화 의료원 두바이 센터 원격실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 중이던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바로 받았다.
-네, 이제 바로 찍으러 갑니다.
-아이 상태는 어때요?
-괜찮습니다. 바이털은 좋아요.
-소변하고 다리는요?
-그건……. 전해 들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다리 힘은 더 빠졌고요.
-진행하고 있군. 바로 찍고 영상 보내 주십쇼.
-네!
상대는 이미 이동 중이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주변으로 들려왔다.
곧이어 MRI 찍는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쪽은 아무래도 통신 상태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와 거의 동시에 영상도 넘어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종양……!”
“아……. 안 돼…….”
대부분의 이들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혁?
수혁은 좀 달랐다.
‘이거 종양 아닐 수도 있어 보이는데.’
[네. 환자가 소말리아 사람이라는 걸 감안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