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환자는 봐야지 (3)
“바이옵시(Biopsy: 조직 검사) 도 나갔고. 일단 내 의견은 크론이야. 다르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거의 99%?”
소화기 내과 의사는 대장 내시경을 통해 상행 결장(Ascending colon)까지 확인한 후,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내시경이 아주 수월했던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무척 어려웠다.
[횡행 결장(Transverse colon)에 협착이 있었어요. 거긴 소아용 내시경으로 통과하던데. 실력이 좋군요.]‘그러니까 태화에 있지. 여기가 뭐 아무나 받아 준 데냐.’
[근데 왜 아선이랑 칠성에 밀리지.]‘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수혁은 꼭 한마디씩 미운 소리를 해 대는 바루다의 입을 다물게 한 후, 소화기 내과 의사를 바라보았다.
“제 의견도 그런데……. 그럼 일단 약을 좀 쓸까요?”
“약? 결핵이면 대박 날 텐데.”
여기서 말하는 대박은 결코 좋은 의미의 대박은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수혁이나 소화기 내과 의사가 의심하는 크론은 자가 면역 질환이지 않은가.
치료제로 쓰이는 약들은 대개 면역 억제제나 항염제였다.
그에 반해 결핵은 감염 질환의 대표 격.
거기다 면역 억제제를 때렸다간, 결핵이 확 번져 버리는 대참사를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될 터였다.
물론 수혁도 다 생각이 있었다.
“메살라진 정도면 어떨까요?”
“아, 메살라진. 음.”
소화기 내과 의사는 당연하게도 크론과 같은 염증성 장 질환 또는 결핵에 관해서는 도사였다.
약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방금 수혁이 언급한 메살라진은 상당히 영리한 초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좋네. 그렇게 하면 될 거 같아.”
“감사합니다.”
“아니, 아냐. 어차피 처방 나면 해야지. 내려와서 물어보니까 오히려 좋네. 따로 오해도 안 생길 거고.”
“주치의가 가능하면 내려와야죠.”
“좋은 마인드야. 너 치프 되면 교육 좀 해 주라. 요새 전공의들 무서워서 못 살겠어.”
소화기 내과 의사의 표정엔 정말이지 회한이 서려 있었다.
그가 한창 수련 받을 때만 해도 솔직히 의국 내 분위기는 엄하다 못해 살벌했더랬다.
일단 4년제였을 때였고, 내과가 아직 스테디셀러 정도의 인기는 유지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패는 일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좀만 싫은 소리 해도 1년 차가 눈을 홉뜨는 경우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래, 다 너만 같으면 좋겠다, 아주.”
그에 비하면 수혁은 로열임에도 불구하고 예의도 바르고 똑똑했다.
수혁은 소화기 내과 의사의 진심을 느끼며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환자가 깨기 전에 검사실을 빠져나왔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대훈과 하윤을 대동한 채였다.
“크론 직접 보니까 어때?”
나름 2년 차라고 질문도 던졌다.
[출혈 경향이 꽤 심했어요.]‘응, 내시경상에서도 출혈이 있었지.’
[아까 협착 있는 부위는 무리했으면 진짜 큰일 났을 겁니다.]‘실력이 있어서 망정이지.’
물론 바루다와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내시경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습니다. 절대 못 잊을 거 같아요.”
“저도요. 이제 크론 소견은 확실히 기억할 거 같습니다.”
애초에 둘의 대답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는데.
그럼에도 대훈과 하윤은 수혁의 팬클럽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라고 데리고 온 거야.”
수혁은 겉으로 계속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었다.
[뭔가 다른 원인의 출혈 경향이 있는 게 분명해요. 아무래도…….]‘피부랑 연관이 있을 거 같지?’
[네. 출혈 경향과 늘어지는 피부……. 음.]‘이건 내가 공부한 적이 없는 거 같아.’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제 바루다가 수혁의 뇌에 익숙해진 것만큼이나, 수혁도 바루다의 데이터베이스 접근에 익숙해진 마당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없다는 건 애초에 쌓은 적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호. 솔직하게 실토하네요?]‘실토가 아니라, 이건 사실 너 잘못이지?’
[네? 아니……. 수혁이 모르는 게 왜 내 잘못입니까?]‘네 가이드대로 공부했는데, 지금 금시초문인 게 나왔잖아.’
[와……. 이…….]‘억울해할 필요 없어. 나 진짜 너가 시키는 대로 매일 공부한다?
[허.]바루다는 수혁의 말에 진심으로 빡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지는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요새 수혁은 정말이지 성실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할 때 말고는 늘 정해진 양만큼 공부하고 잠들었다.
그 덕에 데이터는 순조롭게 쌓이고 있었고, 또 진료도 순조롭게 이루어져 왔더랬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렇잖아. 새꺄.’
[그건…….]‘그러니까 네 잘못이야.’
[으…….]‘뭐 공부해야 해. 골라.’
수혁은 계속해서 바루다를 압박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대훈과 하윤도 그의 뒤를 따라 서둘러 올라탔다.
“그럼 저 환자 메살라진만 쓰면 될까요?”
대훈은 그와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명목상 주치의는 대훈이지 않은가.
실질적으론 수혁이 같이 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환자 계획에 관해서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응? 아, 아니. 일단 경과 봐야지.”
“혹시 크론 말고 다른 병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너 CDAI 알지? 크론 인덱스.”
“어……. 알긴 아는데, 공식까지 알지는 못해요.”
안대훈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죄책감이 잔뜩 깃든 얼굴을 해 가지고서였는데.
사실 그럴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무려 항목이 8개인 데다가, 항목마다 점수도 달라서였다.
“뭐, 있다는 것만 알아도 1년 차는 훌륭하지.”
해서 수혁은 일단 칭찬부터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점수가 상당히 낮아. 근데 내시경 소견을 보며 출혈 경향이 있고……. 또 어렸을 때부터 출혈 경향이 있었다고 하잖아? 이건 뭔가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 봐야 해.”
“아.”
“피부가 늘어지는 거랑 연관이 있을 거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거……. 저도 어차피 오후에 병동 회진 준비만 하면 되니까,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그럴래?”
“네. 저야 영광이죠.”
수혁의 칭찬에 안대훈은 귀까지 빨개진 채 헤헤하고 웃었다.
외모만 좀 받쳐 주었으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하필 고개를 숙여서 정수리가 보였다.
그저 처량해 보일 따름이었다.
“저, 저도 도울 수 있을까요?”
그때 하윤 또한 손을 들며 나섰다.
“괜찮겠어? 너 그러다 죽어.”
인턴 스케줄을 잘 아는 수혁은 그런 하윤을 말리고 나섰다.
대강 하루 스케줄이 보이는 레지던트와는 달리, 인턴은 그날 콜을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시간 있을 때 자 두거나, 먹어 두거나 해야 했다.
잠깐 방심했다가 훅 가는 수가 있다 이 말이었다.
“괜찮아요. 무리 안 할게요. 궁금해서 그래요.”
“음.”
하지만 하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는 갔다.
인턴이면 분명 의사는 의사였다.
멀쩡한 의사 면허증이 있는.
하지만 막상 대학 병원에서는 환자의 진료에 가담한다기보다는 거의 허드렛일이나 하는 수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이런 진짜 진료에 참여할 일이 생기면 눈이 뒤집히기 마련이었다.
특히 하윤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해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셋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병동에서 멈추었다.
대훈은 혹시 몰라 교수님 오셨었냐고 물었지만, 간호사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알지 않냐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오겠냐.”
수혁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늘 들고 다니는 노트북을 옆에 탁 하고 펼쳐 놓으면서였다.
보통 이렇게 스테이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지만.
수혁에게는 감히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일단 백이 대단한 데다가.
어찌 되었건 거의 반드시 성과를 냈으니까.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저도요!”
“어, 그래. 해보자.”
그렇게 셋은 동시에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구글링을 해도 좋겠지만, 수혁은 펍메드라는 사이트를 좀 더 애용하는 편이었다.
학술 논문을 찾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최고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뭐로 검색하지? 피부를?’
[Cutaneous laxity. 이게 적당한 단어 같아요.]‘아, 늘어짐. 음. 그렇네.’
수혁은 역시나 바루다가 짱이란 생각을 하며 검색창에 해당 단어를 쳐 넣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세상에는 해당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 많고도 많았다.
그중에는 수혁이 전에 진단했던 질환들도 들어가 있었다.
‘여기에 출혈 경향? 음. 이상한데. 잘 안 떠.’
거기에 현재 환자에게서 가장 문제가 되는 출혈 경향을 더해 보았지만, 소득이 없었다.
상당히 좌절되는 상황이었지만.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었다.
[이 환자는 크론이 같이 있어서 발생하는 증상일 수도 있어요. 그거보단……. 일단 다른 환자의 특성을 같이 검색하는 게 좋겠습니다.]‘어떤?’
[환자 영상 출력합니다.]바루다는 환자의 생김새를 수혁의 머릿속에 띄워 주었다.
어마어마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지는 않을 터였다.
이건 숫제 그냥 사진이었다.
‘아, 그래. 피부가 늘어져서 눈에 안 띄었는데. 노랗게 도돌거리는 게 있지?’
[yellowish papular lesions 추가로 입력할 것을 요청합니다.]‘오케이.’
이렇게 검색어를 바꾸자 아까보다는 뭔가 좀 나오는 게 있었다.
‘음. 이거……. 느낌 좋은데.’
[Pseudoxanthoma elesticum(탄력 섬유성 위황색종).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질환입니다.]‘리뷰 논문부터 볼까.’
[네. 일단은 배경 지식부터 쌓는 것을 추천합니다.]그중 수혁의 눈길을 끈 진단명은 탄력 섬유성 위황색종이었다.
일단 이름 자체가 어려웠는데, 당연하게도 상당히 드문 질환이었다.
‘피부의 늘어짐……. 시력 악화, 출혈. 소화 기관의 출혈?’
[여기까지는 맞아떨어지는군요. 더 읽어 보죠.]‘알았어.’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아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하도 많은 논문을 봤더니 속도가 늘어난 데다가, 바루다가 동시통역 수준으로 읊어 주어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크론에 의해 악화될 수 있어.’
[오. 이건 상당히 주요한 사인 같은데.]‘그리고 비타민 K의 결핍을 일으키는구나. 아, 이거네.’
수혁은 어느 지점까지 읽고는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성치도 않은 몸을 빠르게 일으키면서였다.
그럼에도 바루다는 비아냥대지 않았다.
수혁의 기쁨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선배.”
“벌써 알아내셨어요?”
그런 수혁을 돌아보는 대훈과 하윤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 번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셋이 질환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게 불과 20분도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벌써 진단명을 찾아냈다고?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드르륵.
그때 내시경실에서 환자가 올라왔다.
보호자와 함께였는데, 둘 다 거의 울상이었다.
계속 뭔가 검사는 하는데 답은 안 해 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수혁은 그 상황이 오래가게 둘 생각이랑 전혀 없었다.
“일단 환자한테 가자. 설명해 줄 때, 같이 들어.”
– 15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