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손님 3
* * *
한탄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
현장을 덮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면 그만이니까.
카인이 손짓하자 가면을 쓴 무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공터 주변을 둘러쌌다. 인원 배치는 빠르게 끝났다.
“오늘 상대할 녀석은 제프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일명, 바람잡이로 통하지.”
“잔챙이 같은 명칭이네.”
“하지만 이름과 다르게 수완이 남다른 마약상이지. 간간이 환약이나 비약을 취급할 정도로. 녀석과 손을 잡은 신관도 몇 명인가 있더군.”
국내는 물론이고, 인근 국가와 연결된 유통망을 꽉 잡은 무리의 수장이었다. 결코, 쉽게 볼 녀석은 아니었다.
“그렇게 잘난 녀석이 이런 곳엔 무슨 일이래?”
“영역 확장. 뻔한 이유지.”
그러잖아도 라프만의 공백에 슈발체베인 백작령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곳간을 넘나드는 좀벌레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니 여기에서 싹을 도려내야 했다.
두 세력이 모여 있는 지금이 적기.
난간을 박찬 카인은 그대로 낙하했다.
쿵.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거래 현장에 불청객 하나가 난입하자 범죄자들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누구냐는 물음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챙.
무구를 꺼내며 전방을 주시한다. 하나같이 숙련된 모습이지만 ,카인에게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이 둘 중 절반은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이 가벼웠나 보군.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는 금한다고 일렀을 텐데 말이야.”
그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챈 한 사내가 어깨를 잘게 떨었으나, 이제 막 슈발체베인 백작령에 발을 들인 제프는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는 거야.”
당연히 나오는 대답 또한 곱지 않았다.
“처리해.”
사람을 처리하는 게 익숙한 듯 제프의 부하들은 별다른 구호 없이도 진을 형성했다. 나머지 범죄자들도 따라 움직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라는 듯한 생각이 역력했다.
점점 자신을 향해 포위망이 좁혀오자 카인은 비릿하게 웃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결국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범죄자들에게 자비는 사치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이 검을 휘두른 건 그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격이었으나 카인은 허리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펄럭이는 코트 자락을 따라 검이 스쳐 지나간다.
때로는 창, 때로는 해머.
때때로는 화살.
잘 짜인 연극처럼 순환되는 공방 속에서 카인은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검 앞에서.
모두 손가락이 잘릴 거라 예상했다.
살과 철.
둘 중 무엇이 베일지는 자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들려온 소리는 정반대.
팅.
귓가를 먹먹하게 울릴 정도로 강렬한 쇳소리에 목구멍을 타고 신음이 올라왔다.
베긴커녕, 두 손가락 사이에 낀 검은 미동도 하지 못했다.
“피 묻은 검집을 정비하지도 않고, 무딘 날을 갈지도 않았군. 푸줏간에서 쓰는 칼이 더 날카롭겠어.”
우지끈.
마른 나뭇가지가 꺾이는 것처럼 검이 부러졌다.
허망하게 무기를 잃은 사내가 물러서려고 하자, 카인은 그 뒤를 추격하며 빠르게 주먹을 내질렀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목이 뒤로 꺾였다.
일말의 여지도 없는 즉사.
카인은 다른 먹잇감을 찾아 등을 돌렸다. 쓰러진 녀석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었다.
“죽여!”
“떨어뜨리라고 어서!”
“좌우, 동시에 공격해!”
달려오는 놈들을 하나씩 배제한다. 격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가볍게 휘두른 팔짓에도 범죄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차가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카인은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은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건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다.
들러붙는 녀석을 발로 걷어찬 카인은 드디어 염원하던 이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름이 뭐지?”
“마, 만타입니다.”
제프와 결탁한 세력의 우두머리. 쉽게 말하자면 변절자였다.
아마, 녀석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터. 리벨리온이 아무리 크다 해도 사소한 정황은 파악하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했으리라.
하지만 그건 멍청한 생각이었다. 리벨리온의 모티브가 되는 집단은 조직이었으니까. 목록에 들어 있지 않으면 또 모르되, 있는 녀석의 행적을 놓칠 리 없었다.
“오늘부터 네 세력은 갈기갈기 찢어질 거다. 일찍이 브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잠깐만…….”
만타가 서둘러 손을 뻗었지만,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입이 열리는 것보다 먼저 목이 돌아간 것이다.
“변명은 듣지 않겠다.”
카인의 방침은 일벌백계. 예나 지금이나 그건 변치 않았다. 그러니 더 대화를 나눌 것도 없었다. 만타는 선을 넘었고, 카인은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우두머리를 잃은 녀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면을 쓴 무리는 그들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일망타진했다.
오리올과 호른이 제프를 따르는 무리까지 처리한 상황.
공터에 서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아니, 적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걸.”
카인이 다가가자 제프가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이내, 그 위협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화살을 쏘았다.
쿠쾅, 뒤편에 있는 박스 더미가 화려하게 비산했다.
화살이 아니라 마차라도 들이받은 듯한 광경이었으나 카인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마나의 고리, 경환이 드러나지 않은 걸 보면 마법은 아니었다.
절기의 일종일까 싶어 제프를 자세히 쳐다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녀석에게 그만한 마력은 없었으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과연 무엇일까.
자연스레 놈이 들고 있는 활을 쳐다본 카인은 침음을 흘렸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무구.
그게 어렴풋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보구.
역사와 기록이 켜켜이 쌓이며 생긴 ‘의념’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구.
특정한 행위와 현상이 반복되면서 돌출된 의념은 마법 도구와는 차원이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반적인 마법 도구는 횟수에 제한이 있거나 수시로 보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구는 그에 합당한 대가만 잘 치른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능력이 뛰어날수록 치뤄야 하는 대가가 급증하지만 효과는 확실했기에 무인이라면 누구든지 탐내는 보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제프에겐 과분한 물건이었다.
“알고 있다고. 검은 코트에 귀신을 닮은 가면. 이곳에서는 엠이라고 불린다지?”
“날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미리 말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야.”
“잘난 척하지 마. 누구라도 죽는 건 한순간이니까.”
조소한 제프가 불시에 활시위를 놓았다. 벼락처럼 쏘아진 화살은 카인의 관자놀이를 훑고 지나가 벽을 꿰뚫었다.
“이 거리라면 너도 피하지 못해.”
확실히 실용적인 보구였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벽에 꽂힐 때까지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아마 표적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빛을 발할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런 걸 보란 듯 쏘고 있으니.’
카인이 차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제프는 이죽거렸다.
“보구는 처음 보는 건가? 하긴 그러니 얼어붙어 있는 거겠지.”
카인이 움직이지 않은 건 반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 번 맞아보고 싶어서였다.
애매한 효과에 적당한 위력의 보구.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맞아보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일방적인 기대일 뿐이었다.
제프의 활솜씨가 형편없어 맞지 못했다. 보구를 가지고도 저만한 실력이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가만있는 과녁도 맞히지 못하다니, 네놈은 애꾸인가?”
“닥쳐. 방금 건 위협사격이었으니까. 다음엔 진짜 맞출 거다. 목숨이 아깝다면 물러서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데려온 녀석들하고 같이.”
상재는 출중할지 몰라도 무재는 바닥을 치는 녀석의 말이다.
아마, 노리고 쏜 게 맞지 않아 되도 않는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일 터.
“이번에는 잘 맞춰봐라.”
경고를 무시하고 카인이 달려오자 제프는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아무리 실력이 형편없다고 해도 거리가 줄어들면 명중할 수밖에 없었다.
쿠쾅.
쏘아진 화살은 카인의 어깨에 명중했다.
강력한 충격에 기우뚱하고 자세가 흐트러진 건 당연지사.
뒤로 넘어간 허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 휘자 제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카인이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자 그의 입꼬리는 저절로 내려갔다.
“피라미가 가지고 다니는 보구답게 엄청난 건 아니군.”
애당초 보구가 소리를 지우면 뭐 하겠는가, 주인인 제프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데.
대비하기 싫어도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잘.”
지면을 박차며 뛰어오른 카인은 제프의 얼굴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 * *
싸움이 끝난 뒤, 카인은 제프가 가지고 있던 보구를 회수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른이 짧게 탄성을 터뜨렸다.
“역시 이거구나. 카탈로그에서 본 적 있어.”
어디에서 발간된 카탈로그인지는 묻지 않았다. 보나 마나 시답잖은 암시장에서 구한 걸 테니까.
“어떤 물건인지 아나 보지?”
“그럼. 이 녀석의 이름은 하늘바라기. 먼 옛날, 가뭄에 시달리던 한 마을에서 기우제 때 사용했던 물품이야.”
내력을 듣고 나니 위력이 낮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구보다 제구에 더 가깝다는 거군. 어쩐지 이름도 무구답지 않게 낯간지럽더라니.”
“비바람을 부르는 용도로 화살에 소망이 담긴 쪽지를 걸고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고 해.”
“소리가 나지 않은 건?”
“폭풍전야가 표현된 게 아닐까 싶은데.”
흔히들 폭풍이 오기 전에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하다고 하니, 하늘바라기도 그와 비슷한 전승을 따라 의념을 형성된 듯싶었다.
“폭풍을 부를 정도는 되지 못해도, 폭풍이 올 거라는 걸 알리는 나팔수 정도는 된다는 건가?”
보구는 절기의 개념과 비슷했다.
특정한 반복 행동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나, 마소가 불러온 초자연적인 힘이라는 점 모두.
“그런데 한낱 마약상이 지니고 다닐 정도로 보구의 가치가 떨어졌나?”
제프가 아무리 잘나가는 범죄자라 해도 이만한 물건을 들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카인의 의문에 답한 건 의외로 호른이 아니라 오리올이었다.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지만, 시중에 풀린 게 많을 겁니다. 3차 대륙 전쟁의 여파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대륙 각지에서 모인 보구들이 전장에서 소비되었으니까요. 레서 왕국은 모르겠지만, 베리타 제국에서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법 도구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지만요.”
“그런가?”
그제야 카인은 보구가 어디에서 온 건지 알 수 있었다.
대륙 전쟁은 모든 국가의 총력전.
나라의 안녕을 위해 보구라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긁어모았을 게 뻔했다.
일부는 드넓은 전장에 파묻혔을 거고, 일부는 군 간부들이 빼돌렸을 터.
나라를 위해 쓰였다는 명분으로 흔적을 지울 수 있으니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을 게 분명했다. 다 눈먼 돈이요, 꼬리표 없는 장물이었을 테니.
“주인 없는 보구, 라는 건 확실하군. 팔릴 때까지 암시장을 돌아다녔을 테니까.”
어떻게 처분해야 처분을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카인이 가면을 긁적이기가 무섭게 구석에서 나타난 나이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바로 내가 가져가고 싶구나. 부디 허락해줬으면 한다. 어차피 활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더냐.”
오리올은 상관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고, 호른은 이미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카인도 두 사람과 비슷한 처지였다.
다다익선이란 말도 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정련정심은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연마하는 성절.
유용한 물건이 몸에 있으면 효율이 극감했다.
보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카인의 표정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본 나이아가 히죽거렸다.
“후후, 아무래도 주인은 정해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