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사명 1
* * *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평상시라면 그게 해답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르발은 섣불리 보고할 수 없었다. 신기 수색이라는 명목하에 퍼스널 네임, 크롬이 직접 파견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쌓인 성과를 한 번에 터트리기 위해 신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동안 감춰 왔다. 이제 와서 증원을 바라며 진실을 밝히면 승급은커녕 목숨도 위태로울 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수가 있었다.
“어쩌면 다른 자의 농간일 수도 있습니다. 괴도 케이는 두 번 도전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요즘 리벨리온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의 계략일지도 모릅니다.”
“괴도 케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속셈이라는 건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지만요.”
톨란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예고장이 왔다는 건 보낸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어떤 놈이든 내 앞에 데려오거라. 얼마나 잘난 녀석인지 보고 싶으니까.”
“아바마마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톨란의 고개가 돌아간 건 그때.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마힌을 보며 일갈했다.
“그리고 마힌.”
“네, 전하.”
“이번에도 놓치면 남은 귀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 * *
“네가 저번에 내게 화살을 날린 장본인이지?”
“엔(N)이라고 부르거라, 특별히 허락해 주마.”
“그래, 부를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엔과 손을 맞잡은 카르비나가 헛웃음을 흘렸다. 방금 전에 인사했던 오(O)도 그렇고, 리벨리온에 소속된 간부들은 하나같이 그 기량이 출중했다. 당장 독립해도 한 구역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직접 그들의 추격을 뿌리친 카르비나였기에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성절, 귀귀영보를 익히지 않았다면 꼬챙이가 되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을 테니까.
“그보다 못 보던 장비가 있군.”
카인은 카르비나가 짊어진 백팩을 향해 고갯짓했다. 아타셰케이스처럼 군데군데 합금으로 보강한 물건.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아, 이거 말이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내 비장의 무기니까.”
회수할 신기가 너무나 커 처분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던가. 아마 백팩은 그와 관련된 물건일 터. 그녀 나름대로 고심한 계획이 있다는 거겠지.
“오. 파르발의 위치는 발견되었나.”
“왕궁 내에는 없는 걸로 밝혀졌습니다.”
“역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건가.”
파르발이 있을 만한 장소는 뻔했다.
“곧장 신의 무덤으로 향한다. 너희들은 남아서 왕궁을 점령해라.”
고개를 끄덕인 나이아와 오리올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E), 너는 우리와 같이 갈 거야.”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후드를 눌러쓴 이브가 가까이 따라붙었다.
* * *
그림자 셋이 해자를 뛰어넘는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왔을 때도 들키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들킬 리 없었다. 전보다 더 능숙하게 기사들을 따돌린 카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로 몸을 돌렸다.
이브는 카인이 한 행동을 그대로 답보하며 그를 뒤따랐다. 그녀의 사전에 실수와 오차는 없는 단어였다. 한 번 관측한 이상, 그걸 고스란히 따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 할 수 있었다.
“만약에 변수가 생기면 너는 도망치는 것만 생각해.”
이브는 안드로이드. 신관이 치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부서지면 어떻게 수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그녀를 데려온 이유는 명약관화했다.
‘필요한 신기가 있다면 선점해야 해.’
카르비나가 지닌 신념은 존중해줄 만하지만, 카인에게는 아리아가 더 소중했다. 그가 손대지 않기로 약속한 건 어디까지나 거인의 팔. 그 외의 것은 하나하나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르비나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는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네. 혹시 이거?”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꺼라.”
세 사람이 보물 창고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다재다능한 괴도와 능수능란한 귀신이 함께 이뤄 낸 기록이었다.
전에 보았던 자리에 선 카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에게서 마력을 새어 나오자 카르비나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잠깐, 잠깐!”
“뭐지?”
“설마 부수고 들어갈 작정이야?”
“그렇다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검지를 댄 카르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목표까지 족히 3미터는 되는 깊이였다. 카인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물리적인 한계까지 뛰어넘는 건 불가능할 터.
“그새 내 성절을 잊은 거야?”
“귀귀영보라고 했던가.”
“그래, 그 안에 장애물을 피하거나 벽을 넘는데 특출난 개념이 있어. 환영 뛰기라고.”
“너 혼자밖에 쓰지 못하는 거 아니었나?”
“그러면 장비를 달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렇군. 너만 뛰어넘을 수 있다면 건너편에 나오는 건 네 알몸뿐일 테니까.”
“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지극히 객관적인 개념 고찰이다만.”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웃고 있는 듯한 음색이었다. 카르비나는 카인이 쓸데없는 말을 하기 전에 소리를 높였다.
“아무튼! 마력 소모가 엄청 심하겠지만, 두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같이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처음부터 힘 빼지 마.”
그렇게 말한 카르비나가 손을 내밀었다.
“그런 건 미리미리 말하라고.”
카르비나를 잡은 카인이 짧게 혀를 찼다.
“갑자기 나선 건 너거든?”
곧이어 이브도 그를 따라 카르비나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떨어지지 않게 두 사람을 붙든 카르비나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 그럼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야가 일변한다. 발밑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에 등골이 간질거리려던 찰나, 두껍고 커다란 격벽이 카인의 눈에 들어왔다.
왕궁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 신의 무덤에 들어왔다는 걸 인지한 카인이 손목을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계에 제대로 된 명칭이 갱신되었다.
[특수 목적 격납고 SSS―023.]격납고란 단어는 둘째 치더라도 특수 목적이라는 말이 가슴에 걸렸다. 카인이 고민하는 게 느껴졌던지라, 카르비나는 백팩을 고쳐 메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어서 앞장서기나 해라.”
“싱겁기는.”
괜히 괴도란 이름을 달고 다니는 건 아닌지 카르비나의 동선은 카인이 시계를 보며 구성한 루트와 비슷했다.
최적, 최단, 최고.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녀의 안내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본 이브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묘하군요.”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게 있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건 분위기입니다.”
“분위기?”
“시신이 한 구도 없습니다.”
“그야…….”
무어라 말하려던 카인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대로 신의 무덤에서 시체를 발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사라진 거겠지, 하고 넘어간 게 패착이었다. 선입견이 낳은 괴리에 빠져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생각해 버렸다.
“신기는 나노 마테리얼의 특징 때문에 사라졌다고 가정할 수 있어도 시신은 그렇지 못합니다. 더구나 시설은 보존되어 있지 않습니까. 다분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무언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카인의 상념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예측이 맞는다면 저 기척의 주인은 카르비나와도 연관이 있을 터.
온 김에 겸사겸사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카인은 그녀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누군가 오고 있다. 너는 숨어 있어라.”
“차라리 같이 숨는 게 낫지 않아?”
“파르발일 경우엔 내가 직접 그가 쓴 가면을 벗겨야 하지 않나.”
“아직도 그 소리…….”
“쉿, 잔소리는 나중에 들을 테니까 지켜보기나 해라.”
카르비나가 광학위장을 펼친 것과 보구를 치렁치렁 걸친 금발의 사내가 나타난 건 거의 동시.
카인은 사내의 뒤에 도열해 있는 무리를 쳐다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통로를 꽉 채우고 있는 게 네메시아에 상주하는 귀신들이 전부 모인 것 같았다.
순간, 파르발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엠이냐.”
“보다시피.”
“역시 예고장을 보낸 건 괴도 케이가 아니라 너였어.”
카르비나를 현행범으로 엮을 수 없다는 게 참담할 따름이지만, 그래도 한창 떠오르고 있는 엠이라면 그에 걸맞은 대체재가 되어 줄 터. 파르발이 속으로 성과를 계산하는 동안, 카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단정 짓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닐 텐데. 혹시 모르지 않나, 내가 괴도 케이와 함께 왔을지.”
“아니, 그녀는 절대 그렇지 않아. 장담할 수 있어.”
그 모습에 카인은 낮게 웃었다.
어째서 카르비나가 파르발에게 걸리지 않은 건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저번에도 그는 신의 무덤에 있었을 테니까.
몇 마디 주고받으니 알 것 같았다. 파르발은 카르비나가 귀귀영보를 익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녀의 능력을 모르니, 눈 뜨고 코를 베인 거겠지.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이지.”
“그녀는 나의 종달새, 아니 종이야.”
“휘유~, 엄청난 자신감인데.”
“그래, 더러운 시궁창을 돌아다니면서 금 부스러기나 찾는 너는 알 리 없지.”
비릿하게 웃는 파르발의 가슴속에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은 과시욕이었다.
저 보잘것없는 들개에게 말해 주고 싶다. 뒤에 있는 귀신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 주고 싶다.
덧없는 욕망이 파르발의 입을 충동질했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평생을 바쳐도 가질 수 없는 보석이 그의 손 안에 있었던 것이다.
카인은 파르발의 반응을 보고 그에게 광증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도 꽤나 귀찮고 거치적거리는 거로.
덕분에 구구절절하게 입씨름하지 않더라도 결판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괴도는 네가 가지고, 가희는 날 주는 게 어떻지?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가지는 건 불공평하지 않나.”
“불가! 너같이 뒷골목을 전전긍긍하는 녀석에게 넘길 것 같아? 내가 그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버릇부터 습관, 취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녀에게 맞췄어. 같잖은 관심 좀 얻겠다고!”
“좋아서 한 게 아니었나?”
“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판을 준비했을 뿐이야. 그녀에게 비밀이 없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어.”
“아이고, 무서워라. 자기 연인도 팔아먹는 녀석이 여기에 있었잖아?”
“하, 마음대로 지껄여라. 패배자의 넋두리를 들어줄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말이지. 과연 그 사람의 말도 무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들어줄 가치도 없는 개소리는 거기까지만 하도록 해.”
팔을 번쩍 든 파르발이 휘하의 귀신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직전, 숨어서 그의 고해성사를 듣던 카르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그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건 몰랐을 터.
아니나 다를까, 경악한 파르발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충격이 큰 건지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번개에 맞은 사람처럼 어버버거릴 뿐.
“제가, 아니 내가 널 잘못 본 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