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고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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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는 변수. 아무래도 세레나데를 열심히 부른 게 독이 된 듯했다.
얼른 옷매무새를 정돈한 카르비나가 의뭉스럽게 물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괴도 케이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나 보죠?”
파르발도 남자라 걱정이 된 걸까?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카르비나에게 진심으로 빠진 걸 수도 있었다.
“그래, 날짜가 지났는데도 보고된 피해는 없으니까. 뭐, 소문의 괴도도 별거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모두 카인의 착각에 불과했다. 파르발은 의도적으로 카르비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보물 창고에 찾아오도록. 보다 확실한 흔적을 잡을 수 있도록.
이제 보니 공적에 미친 녀석인 것 같았다.
하긴 어젯밤에는 리벨리온을 만나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 보고 도망친 카르비나였다. 그대로 보물 창고에 남아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취를 남겼을 터. 그런 의미에서 파르발의 도발은 적절한 해답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먹을 말아쥔 카르비나가 어깨를 잘게 떨고 있었다. 여태까지 말한 걸로 보아 하건대,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높은 긍지를 지니고 있었다. 빈말로도 긍정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을 터.
“그래도 조심하는 게 어떨까요? 괴도 케이는 한번 노린 먹잇감은 놓치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다음 기회를 노릴지도 모르잖아요?”
딴에는 경각심을 부추겼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괴도라는 걸 아는 파르발에겐 차기 예고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 증거로 파르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마를 탁 친 카인이 고개를 저었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카르비나가 말릴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뒤엎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파르발 왕자님.”
“하아, 공작님.”
대화의 맥을 끊는 난입에 파르발은 어정쩡하게 침음을 흘렸다.
상대는 일국의 공작.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지라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저는 공작님이 이런 분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임자가 있는 여인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하다니요. 아무리 카르비나를 흠모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나 무례한 게 아닐는지요.”
“오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군요. 저는 왕자님이 더 이상 카르비나를 사랑하지 않은 건 줄 알았거든요.”
“무슨 소리를 늘어놓는 건지 당최 모르겠군요. 저와 카르비나의 사이는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합니다.”
“그렇습니까? 얼마 전, 청향관의 꼭대기 층을 왕자님이 이틀 내리 독점했다는 소문이 들리길래 저도 모르게 오판을 한 것 같군요. 연인과 이별하지 않았다면 갈 만한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향관. 그건 특별한 접대를 위해 준비된 회관의 이름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해 남자라면 덥석 물 수밖에 없는 미녀들이 즐비한 유곽이었다.
파르발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리벨리온은 이러한 정보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가 네메시아의 왕자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곳 또한 리벨리온이 세력을 확장하며 내놓은 전진 기지였으니까.
주도권은 저절로 카르비나에게 넘어갔다.
“왕자님, 이게 무슨 말이죠?”
“진정해, 다 사정이 있으니까. 노운 영식은 카르비나, 당신도 알고 있지?”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그 때문에 친한 이들끼리 모여서 한잔한 것뿐이야. 당신이 염려하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았어.”
말이 이어질수록 구차해지는 건 자신뿐이라는 걸 파르발은 잘 알고 있었다.
카르비나는 못내 의심을 떨쳐 내지 못하면서도 그런 그의 말을 믿어 줄 수밖에 없었다.
묘한 기류가 흐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카인은 능청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사적인 대화가 오갈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이라.”
뻔뻔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해서, 분위기를 헤집어 놓은 건 카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우스웠다. 카인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파르발은 어서 그를 보냈다.
떠나가는 카인을 보며 카르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파르발이 난입해 못다 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때, 주머니에 거슬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린 그녀는 한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밤 9시, 뒤샹트 호텔.]누가 넣은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머리를 묶고, 챙이 긴 모자를 착용한 카르비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뒤샹트 호텔에 들어간 그녀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 보면 엔지니어에 연락해 도움을 구하는 게 상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르비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면 발전하지 못할 테니까.
카인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건 지극히 어려울 테지만, 성사되기만 한다면 앞으로의 괴도 활동이 순탄해질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인사를 끝내고, 카인이 한 말에 카르비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봐야 했다.
“파르발 왕자는 네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제삼자. 그것도 이제 세 번 본 게 전부인 사람에게서 들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다.
오는 말이 곱지 않은데 가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대체 어떤 반응을 원하는 거야? 설마 네 말이 사실일까 봐 벌벌 떨어야 하는 거야?”
몇 번 들어본 말이었다. 시기와 음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그래서 연애 초기, 저런 음모론에 종종 휩싸이곤 했다.
“네가 괴도라는 걸 미리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네게 무덤의 위치를 알려 준 것도 그일 텐데 왜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거지?”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킨 카르비나가 쾅, 하고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그래, 왕자님이 내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쳐. 그게 뭐 어때서? 나를 배려하느라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 애당초 그런다고 왕자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
“네가 속한 단체, 그러니까 엔지니어라고 했던가. 그곳과 비슷한 집단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순간, 카르비나의 머릿속에 한 곳이 떠올랐다. 목적도 목표도 알 수 없고 그저 탐욕스럽게 음지를 어지럽히고 다니는 거대 집단.
“……조직.”
“그래, 파르발 왕자는 그곳에 소속된 귀신이다. 어때? 이제 그에게 무슨 이득이 생길지 예상이 가나?”
“왕자님은 롤랜드 왕가의 직계 자손이야. 굳이 그런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그런데 귀신이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도 그 점이 풀리지 않더군. 그래서 자세히 조사해 보았지.”
결과는 어렵지 않게 도출되었다. 네메시아의 왕, 톨란이 마힌을 얻게 된 경위와도 맞닿아 있었다.
“파르발 왕자는 어렸을 때, 한 번 납치되었던 적이 있더군. 그것도 암시장에서.”
척하면 척.
카인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깨달은 카르비나가 선수를 쳤다.
“그러니까 그때 사람 자체가 바뀌었거나, 조직에 충성을 맹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지?”
“그래.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허황된 얘기네.”
“조직이 어떤 식으로 귀신을 부리는지 알고 있다면 그 말은 내뱉을 수 없을 텐데?”
그 말대로였다. 카르비나가 귀신과 맞부딪친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들의 본질을 알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걸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주제를 꺼낸 당사자, 바로―
“너를 믿을 수 없어. 의도를 알 수 없거든. 신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막 절실한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네메시아에 원한이 있다고 보기엔 미적지근한 태도만 보이고.”
“나는 조직이 무너지는 걸 꼭 보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다른 건 다 부차적인 문제지.”
거침없는 발언에 카르비나는 탄성을 터트렸다. 한 나라의 공작인 카인이 리벨리온을 설립한 이유를 언뜻 알 것 같았다. 구태여 음지에서 허우적거리는 원인도.
복수심.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감정의 편린이었다.
“소중한 거라도 빼앗겼나 보지?”
“뭐, 그렇다고 해 두지. 애당초 내 것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씁쓸하게 웃는 카인의 얼굴엔 회한이 가득했다. 잃은 게 없다면 결코 저런 표정은 짓지 못하리라.
카르비나는 첨언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세력이나 권력에 미친 괴물로 보였는데 대화해 보니, 조금 괜찮은 사람 같았다.
“나도, 오래전에 부모님을 잃었어. 어느 날 갑자기, 전조도 없이 마을 하나가 불탔지. 그때는 몰랐지만, 엔지니어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 수 있었어. 그게 신기가 주는 힘에 취한 사람이 벌인 범죄라는 걸.”
“그래서 신기를 모으고 다니는 건가. 너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건 기만이지. 내가 괴도로 활동하면 할수록 무고한 피해자가 쌓일 테니까.”
다른 때 같으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마음속에 있는 말이 술술 나왔다.
“그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알기에 이 짓을 하고 다니는 것뿐이야.”
“그럼, 가희로 활동하는 건?”
“어머니의 꿈.”
“효녀였나.”
“비아냥거리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러다 한 대 맞는다?”
성난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카르비나를 보며 카인은 피식 웃었다. 회귀 전으로 돌아간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녀는 저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뜻깊은 시간을 나눴으니,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야지.”
“어떻게 할 건데? 계획은 있는 거야?”
“네가 오기 전에 예고장을 보냈다. 그게 없으면 너도 마음에 걸릴 테니까. 아,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쯤 이런 놀이도 해 보고 싶었거든.”
“예고장이라니? 대체 누구 이름으로?”
“내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너무 적이 많더군.”
케케묵은 원한의 동창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네 이름을 빌렸다. 굳이 말하자면 괴도 케이, 사상 최초 두 번째 도전! 쯤 되겠군.”
카르비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술이 확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해?”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 않나. 나는 부수고, 너는 훔친다. 이보다 더 명확한 공조가 어디에 있지?”
“콱, 죽어 버려.”
카르비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조금 전까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 * *
“또 왔어! 또!”
집기를 던진 톨란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제 케이가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그는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여태까지 케이는 한 번 실패한 장소엔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일컬어 괴도의 자존심이라 평가하는 이도 있었고, 괴도의 변덕이라 일갈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톨란에게는 어느 쪽이든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왕궁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 줄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톨란은 즉시 파르발을 불렀다.
“파르발.”
“네, 아바마마.”
“그 조직이란 곳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느냐?”
지금까지 그들이 받아 간 자금만 해도 소국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
그만큼 투자했으면 조금이나마 받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