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암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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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쪽의 전력을 알고 있는 파라몬이었다. 그의 눈에 띄지 않은 건 이브와 아리아 정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고려하면 이유도 없이 거절해 봤자 의심만 살 게 뻔했다.
“그나저나 이브, 넌 뭘 그렇게 보고 있지?”
“이곳과 이곳의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이브가 가리킨 건 미리 작성해 둔 지도의 일부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건축 도면.
“구조적인 결함으로 보입니다. 무리한 증축 공사로 견딜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선 것 같군요. 지하 수로까지 건드릴 정도니까요.”
그러고 보니 마물을 수용하기 위해 헬름 지하를 더 팠다고 했던가. 갤포드의 말을 떠올린 카인이 고갯짓했다.
“무너질 수 있다는 거야?”
“확률은 낮습니다. 잘못 지어졌다고 한들 노후된 시설은 아니니까요. 다만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갈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에 하나를 예방하자. 이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대책은?”
“우회하는 게 확실하겠죠. 조금만 돌아가면 됩니다.”
이브가 점찍어 둔 곳은 지하 수로 옆, 무기고였다.
* * *
“……이게 제가 모은 정보예요.”
“역시 괴도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군, 잘 들었네.”
카인과 거래한 카르비나가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풀자 콜몬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루드니아가에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뛰어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짧게 혀를 차며 이기죽거렸다.
“왜 더 깊숙한 곳으로 가 보지 않았지? 물체를 통과하는 건 특기일 텐데?”
“궁성이 기거하는 곳에서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니라니, 차라리 죽으라고 말씀하시죠.”
“고깝게 듣지 마라. 다 네게 기대하는 게 많으니까 이리 말하는 거지 않나.”
“하긴 생각해 보니까 저는 당신에게 할 말이 없네요. 기대하는 게 없으니까요. 단 하나도.”
광성의 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우받는 바울이었다.
그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신기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하등 쓸모도 없는 짐 덩어리.
하지만 가져가는 건 또 많았다.
좋게 보려야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상이었다.
카르비나가 말쑥하게 노려보자 바울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거기까지만 하게. 이렇게 편히 루드니아가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이니까.”
두 사람의 논쟁을 중재한 콜몬도가 단안경을 닦았다.
신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밝혀졌고, 그곳에 가는 방안까지 마련되었다.
실행에 옮기는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
잡음이 이는 건 그가 용납할 수 없었다.
콜몬도는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딱 잘라 말했다.
“일단 낮에 잠입하겠네.”
“낮에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실로 대담한 발상이었기에 카르비나는 저도 모르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지당한 지적이었으나, 콜몬도도 아무 생각 없이 추진한 건 아니었다.
“카르비나, 자네는 내일 헬름에 간다지?”
“네, 궁성의 초대를 받았으니까요.”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카르비나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 그의 일정이 확인되는 유일한 시각이지.”
“저는 궁성의 눈길을 끌면 되겠군요.”
“바로 보았네.”
파라몬이 부담되니 그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시간을 노리겠다는 소리였다.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달랐다.
신기를 모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카타스트로피의 쓰임새를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확인만 하는 거라면 콜몬도와 바울, 두 사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제가 없으면 불편할 텐데요.”
“걱정할 거 없네. 빠르게 둘러보고 나올 거니까.”
사전에 카인과 입을 맞춘 게 마음에 걸렸지만 카르비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콜몬도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인의 얼굴을 떠올린 카르비나가 한숨을 흘렸다. 어쩐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말해 줘야 해? 말아야 해?’
* * *
갤포드가 몽롱한 표정으로 카르비나를 쳐다보았다. 사심이 가득 담긴 눈빛은 덤. 어제부터 저 상태였기에 카인은 그러려니 했다. 새삼스럽지만 카르비나는 대륙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였던 것이다. 공작가의 후예라고 선망하는 이가 없을 리 없었다.
파라몬은 무언가 생각할 게 있는 듯 갤포드의 추태에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을 때부터 눈을 감고 있어, 자고 있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갤포드 영식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영식과 친하게 지내면 여기 질투하는 분이 계시니까요.”
카르비나가 카인의 팔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자, 갤포드의 입에서는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구책으로 자신을 끌어들였다는 걸 아는 바, 카인은 카르비나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개수작은 적당히 부리지?”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게 신사의 도리일 텐데, 혹시 몰랐어?”
“아무 데나 도리를 붙이지 마라. 나는 신사지만, 자원봉사자가 아니니까.”
“태도를 보니 그 신사마저도 아닌 것 같은데?”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티격태격 말다툼했다. 하지만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 갤포드에게는 그 모습마저도 색다르게 비춰졌다. 마치 사랑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가가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 같아 갤포드는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른 나이에 찾아온 상사병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증세는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카인은 갤포드의 병세가 진행되기 전에 서둘러 화두를 돌렸다. 마침 좋은 주제가 눈앞에 있었다.
“오늘 경기 구성을 보니 예정과 다르더군. 마물이 나오는 건 다음 주라고 하지 않았나?”
“시범 경기입니다. 무턱대고 진행하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요. 거기에 이 자리에는 특별한 손님이 두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언제 가실지 모르는데 이 정도 추억은 만들어 드려야죠.”
갤포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카르비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는 뻔했다.
구태여 걸고 넘어가는 것도 우스운지라, 카인은 경기에 집중했다.
마물.
형이상적인 존재의 총칭이었다.
제대로 이름이 붙은 건 하나같이 괴악한 특징을 지닌 것들뿐이었다. 구분해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녀석들에게 꼬리표를 붙인 것이다.
투사의 상대로 나온 마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가발.’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마물이었다. 막 태어났을 때도 일반 기사는 우습게 도륙할 수 있을 정도.
수명이 밝혀지지 않아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는 난점이 있지만,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땅 속에서 조용히 사는 개체였기 때문이다.
‘억지로 데려오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끼이이이, 끼이이잇!”
꼬리로 보이는 기관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게 척 보기에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대범람 이후에 잡혔다고 했으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높은 게 아닐 터.
아니나 다를까, 놈과 대치한 투사는 그 맹공을 막는 데 급급해 보였다. 관중들은 그런 모습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면서 탄성을 터트렸다.
인간과 마물, 이종 간의 혈투는 당겨진 줄처럼 팽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무게추가 기울었다. 투사가 긴장의 끈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수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나빴다.
가가발이 경기 중에 탈피했으니까.
아무래도 매년마다 돌아오는 탄생일이 오늘인 듯싶었다.
우드득, 우드득.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투사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보고 잡아먹혔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그저 자극적인 경기로 끝났을 거다.
하지만 녀석은 연달아 탈피했다.
해마다 한 번씩 껍질을 벗어던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극히 이례적인 일.
아차 하는 사이에 놈의 크기가 점점 불어났다. 처음엔 송아지만 했던 녀석이 어느새 코뿔소만 해지자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파라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
좌중에 있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저 한 번.
자그마한 몸짓에 불과했지만, 그 결과까지 자그마한 건 아니었다. 파라몬이 검지로 녀석을 가리킨 순간, 창처럼 가늘고 긴 폭풍이 쏘아졌던 것이다.
갤포드가 일으키던 바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투쾅!
폭풍은 그대로 가가발을 꿰뚫고 지나갔다. 살아날 여지조차 주지 않는 압도적인 폭력. 폭풍이 지나간 자리엔 분쇄기로 간 것처럼 거친 자국이 만연했다.
“아, 아버지.”
갤포드가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파라몬이 고개를 저었다.
“온다.”
미간을 일그러뜨린 파라몬이 나지막이 읊조린 순간, 헬름 저 밑바닥에서 마물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게 누가 댐을 폭파한 것만 같았다.
끼리리릭!
끼아아악!
쿠우으으!
장내는 단번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하에 갇혀 있어야 할 녀석들이 어째서인지 풀려났던 것이다.
“기사단 전원 호출해라! 투사들은 기사들이 오기 전까지 무기를 들고, 전선을 형성해라! 죽고 싶지 않다면, 어서!”
파라몬이 부르짖는 것과 동시에 대열이 형성되었다. 정신을 차린 갤포드는 황급히 나가 관중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인도했다.
두 부자가 빠르게 결단을 내렸기에 시작은 그 어느 때보다 순조로웠지만, 마물이 그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건 아니었다.
불길한 소리가 헬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여러 종류의 마물이 난립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덩어리였다. 오직 녀석만이 죽어도 죽어도 제 숫자를 채웠기 때문이다.
‘알롱아라?’
거미 혹은 도마뱀처럼 보이는 촉수 괴물.
능력 자체는 높지 않았다. 기사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 개체 수였다. 알롱아라는 물에 닿으면 증식하는 마물이었던 것이다.
뭍으로 나오면 얼마 살지 못하기에 내륙에서는 보기 드문 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만한 수라면 루드니아 공작령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테니까.
웨이트를 쥔 파라몬이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쏘았다.
쾅, 쾅.
손가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사가 이어졌지만, 알롱아라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헬름 밖으로 나가는 녀석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파라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수준이라면 일대를 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루드니아 공작령, 그의 영지였다. 선조들이 쌓은 전통과 영광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하물며 아직까지도 도망가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함부로 오의를 남발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자네들도 어서 도망치게,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니까.”
파라몬이 급하게 번진 불길을 끄기 위해 여기저기 전전긍긍하는 사이, 카인은 제자리에 앉아 카르비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마물을 활용한 전술.
그녀와 상의해서 확립한 방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확산은 청사진에 없었다. 그저 한순간 시야를 돌릴 수준에서 그칠 예정이었던 것이다.
“지하 수로까지 터트려서 알롱아라를 증식시킨 건가. 루드니아 공작령을 없애려고 마음먹은 거군.”
“우리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