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소문 2
* * *
풍문이 일어나기 전에 카인은 한 소문을 퍼트렸다. 흑기사가 도와줬다고, 그의 무위는 이미 십좌에 달해 있다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변수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믿는 사람 반, 믿지 않는 사람 반.
워낙 목격자가 적기에 뜬소문으로 치부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카인은 느긋하게 대응했다. 소문이란 점진적으로 쌓아 가는 거니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 * *
못 본 사이에 슈발체베인 공작령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성부터 차이가 났다. 꼭 얼음을 조각한 듯 외벽을 얼려 놓았던 것이다.
테마파크도 구색을 갖추고, 그에 합당한 어트랙션도 늘어났다. 막바지에 다다라 최종 점검만 앞두고 있는 상황.
“네가 분발해 준 덕분에 수월하게 개장할 수 있을 것 같군.”
“제가 나선 이상, 당연한 결과예요.”
그렇게 한 차례 자신 있게 성문이 새겨진 가슴골을 내민 로이나가 부채를 펼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늦어진 감도 없잖아 있잖아요. 책임지려면 그만큼 노력해야죠.”
“기특하군.”
카인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자 로이나는 부채로 그 손을 쳐냈다.
“혹시 제가 연상인 걸 잊고 있지는 않나요? 좀 더 경의를 갖추세요.”
“누가 뭐라고 했나?”
로이나와 몇 마디 더 나눈 뒤, 카인은 등을 돌렸다. 겨우 며칠 외유했을 뿐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돌아다닌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붕괴되는 방사선만 쫴서 그런지, 뼈를 찌르는 한기가 푸근할 지경이었다.
역시 고향이 최고였다.
“어서 오십시오, 가주님.”
집사 로잔의 환대를 받으며 슈발체베인 성에 들어선 카인은 짐을 풀었다.
호른과 비에나는 저마다 맡은 일이 중하기에 아직까지도 소렌스에 남아 있었다. 아리아는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는지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드러누웠다.
이브는 마소에 대한 연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제 방에 틀어박혔다. 카인으로서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 얻은 휴식.
푹신한 의자에 앉아 턱을 괴려던 찰나―
웅, 웅.
시계가 잘게 떨렸다.
이브와 막 헤어진 참이다. 그녀라면 이런 식으로 호출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카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로원.”
아니나 다를까,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마탑에 대한 소식은 들었다. 큰일이었던 것 같군.]“왜 남 일처럼 말하지? 엄밀히 말하자면 마탑은 네 보금자리나 마찬가지일 텐데. 보아하니 유사시에 영구 기관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뿌리내린 것 같은데 말이야.”
[…….]정돈되지 않은 잡음이 들려온다. 아마도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일 터. 무리도 아니었다. 영구 기관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는 건 헤브니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테니까.
[설마 조직의 귀신이었나.]“그럴 리가. 나는 우연치 않게 세상의 이면을 알게 된 일반인에 불과하다.”
천년동자에게 붙잡혀 있는데도 정보 수집력이 극한에 달한 제로원이었다.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저 유능한 재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래된 신의 인형이든, 마법을 창제한 마신이든,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아는 게 많아질수록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선 천년동자보다 더한 녀석을 풀어 주는 걸 수도 있었다. 당연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닿지 않은 사이, 많은 일을 겪었나 보군.]“네 상상 이상으로. 그러니 진실을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도와줄 수가 없다.”
[진실이라….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거지?]“네가 보고 듣고 느낀 시대의 흐름 일체.”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런데도 듣고 싶다.”
아무리 제로원이라고 해도 전생하거나, 회귀한 건 예측하지 못할 터. 카인이 제로원에 대해 모르듯 제로원 또한 카인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었다.
둘 다 동등한 선에 선 셈.
[네가 진실과 마주하고도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봐라.]“증명?”
[이 시대에 증명이라 함은 곧 힘. 십좌가 되어라. 누구보다 높은 자가 되어라. 그러면 나도 기꺼이 말해 주겠다.]* * *
십좌 결정전, 줄여서 십좌전.
아직 소문에 불과하지만, 근 시일 내에 벌어진다는 말이 왕왕 나돌았다. 암성 자베론이 은퇴한다는 소식이 대륙에 널리 퍼졌던 것이다.
이번에 죽은 법성 제노바까지 합치면 빈자리는 총 넷.
십좌전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숫자였다.
리벨리온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은 카인이 대륙 회의 때 만났던 후딘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 주최자인 건가.’
야심만만하고, 제 실력에 자부심이 가득했던 야수. 그가 전면에 나섰으니 십좌전도 예정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제로원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그때.
‘십좌가 되어라.’
사실 돌려 말한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진실을 말할 테니, 너는 정체를 밝히라고.
코를 꿰려다 코가 꿰이고 만 상황. 그렇다고 마냥 나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었으니.
“생각할 게 많은 얼굴입니다.”
“너야말로.”
가까이 다가온 이브가 자리에 앉자 카인은 너스레를 떨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쏟은 골드만 해도 자그마치 수백만. 한적한 곳에 있는 성은 사고도 남았다.
슬슬 그 결과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결론이 나왔어?”
“안타깝지만.”
“긍정적인 반응인지 부정적인 반응인지 알 수 없네.”
“너무나 명료해서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만만한걸.”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한번 말해 보라는 듯 고갯짓하자 이브가 입을 열었다.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가설은 오래전에 수립되었습니다. 다만 그걸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죠. 하지만 제노바, 그가 영구 기관을 억지로 가동시켜 준 덕분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구 기관이라…….”
“공작님은 영구 기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무한대에 가까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발전 기관 아닌가?”
“그 말도 맞지만 본질은 열역학 법칙을 깨부수는 데 있습니다. 무한한 에너지는 그다음에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에 불과하죠.”
“그래서?”
“세상에는 절대적인 법칙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엔 열역학 제1법칙이 있습니다.”
“에너지는 어떤 식으로든 보존된다는 거지?”
그거라면 카인도 알고 있었다.
“네,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 내부에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영구히 불변합니다. 그저 형태와 모습이 바뀔 뿐입니다.”
이는 영구 기관이 성립할 수 없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미래를 갉아먹어 현재를 구성하는 건 본말전도였으니까.
“하지만 마탑에서 보았던 제1종 영구 기관이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주적으로 고여 있는 에너지를 임의적으로 늘리는 게 가능하니까요.”
“잠깐만.”
카인은 소름이 돋는 듯했다. 아까 전부터 알 수 없는 개념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의 직관은 이미 정답에 어느 정도 도달한 상태였다.
‘마소는 완벽에 가까운 에너지원입니다. 공해가 없고, 범용성이 높으며, 그 한계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개발한 게 틀림없습니다.’
언젠가 이브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는 건 마소는…….”
“제1종 영구 기관을 사용해 이 우주의 바깥에서 끌어온 힘입니다. 때문에 이 우주를 구성하는 법칙과 이치가 통용되지 않죠.”
어안이 벙벙했다.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가까스로 도달한 진리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과거는 아직도 현재로 이어지고 있었다.
헤브니아야말로 신의 시대가 있었다는 증거.
인류 문명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소는 제1종 영구 기관의 잔재. 그러니까 타임머신이 작동되면서 생긴 여파입니다.”
* * *
아휀은 몇 주째 같은 악몽을 꾸고 있었다.
시작은 언제나 같았다.
어두컴컴한 밤. 퀴퀴한 악취가 감도는 골목길. 모든 게 낯선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목이 떨어진 남자를 앞에 두고.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운이 좋군요. 마스터 코드를 보유한 자를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니. 이게 있다면 제 바람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이미 죽었는데 뭘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그런 아휀의 의지와는 별개로 꿈은 진행되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남자를 다시 보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유선형 캡슐 안에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목은 붙어 있는 상태였다.
반투명한 유리 때문에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겉으로 드러난 윤곽만으로도 남자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높게. 설령 무신이라고 해도 제 앞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벌써 수십 번이나 본 광경.
아휀은 꿈속의 자신이 누구보다 오만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질책할 수만도 없었다. 이따금씩 보여 주는 무위는 지금의 그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돌연 꿈속의 자신과 시선이 마주친 아휀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악몽이라고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바로 이것.
꿈속의 자신은 발작을 일으키듯이 반문했다.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겁니까?”
분명 저 멀리에서 호통치고 있건만, 소리는 귓속에서 들려왔다.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굉음이 반복되자 아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하.”
다행히 악몽 속 백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한 박자 늦게 꿈에서 깨어났다는 걸 자각한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 악몽을 꾼 건가.”
고개를 돌리니 서 있었다. 무늬 하나 없는 가면에 단출한 차림, 그리고 검 한 자루.
“알파, 당신입니까.”
“특정 인자의 적성률이 높으면 폭력적인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다고 하더군. 악몽은 그것을 억누르기 위한 방어 기제고. 나도 들은 것뿐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말이야.”
“어찌 되었든 잘 적용되었다면 불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힘이었으니까.
두 주먹을 불끈 쥔 아휀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활력이 전신에 용솟음쳤다. 악몽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조직과 손을 잡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