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백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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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절을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일 터. 아직도 올라갈 곳이 있다는 건 고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십좌전이 끝나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창밖을 쳐다본 카인이 몰려드는 군중을 바라보았다.
“벌써 4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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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라도 빨리 경기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경기장은 이른 아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맥시모스 공작령에 있는 이들은 전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압도적인 수.
진출하지 못한 무인들 또한 새로이 태어난 신성들의 활약을 똑똑히 봐 주겠다는 듯이 좌석을 하나씩 차지했다.
테디라우스 남매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카인과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그래도 느끼는 바가 있나 보군.’
악연으로 맺어진 사이였으나, 이미 우열이 가려진 상대였다. 가타부타 논할 것도 없었다. 흥미를 잃은 카인은 테디라우스 남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비명 소리에 가까운 함성이 들려온 건 그때.
자세히 보니 저 끝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준미한 청년이 여성진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세트.’
그는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십좌라는 이름을 무색케 할 정도로 초월적인 미모가 그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카인에게는 그리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엔지니어의 수장.’
오직 그 사실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런 위치에 올랐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세습제일 테지.’
어쩌면 선출되는 게 아니라 선출되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아무튼 궁금한 게 많은 상대였다.
카인의 시선을 느낀 세트가 여성진을 향해 흔들던 손을 내렸다.
“좋은 표정이네요.”
“뭐가?”
“나는 질 리 없다는 표정이잖아요. 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이야, 다시 봐도 정말 좋은 표정이네요. 망가뜨리고 싶어질 정도로.”
속이 시꺼멓다는 카르비나의 평가는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표정은 순진무구했지만, 입에 문 건 칼이었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 카인이 대답했다.
“그런 것까지 보이나?”
“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게 보이는 걸요. 아마 저보다는 아휀이 더 보고 싶은 걸테죠.”
“그렇다면?”
아휀에게 당한 오리올이 카인의 사람이라는 건 세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용납되는 건 아니었다.
“카인, 당신이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지?”
“저를 뛰어넘지 않으면 아휀과 결판을 낼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에 힘쓰지 말고, 저랑 같이 노는 게 어떨까요?”
이기죽거린 세트가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다.
당연히 카인은 그의 도전을 거부하지 않았다.
“부디 그 자신감만큼 버틸 수 있길 바라지.”
쾅!
단번에 세트의 턱밑까지 치달은 카인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경계하고, 관찰하는 건 예전에 끝냈다. 애당초 여력을 남겨 둘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카인은 시작부터 전력을 퍼부었다.
발파 오백십이중첩.
일순 대기가 밀려나며 공간이 어그러졌다.
손과 손이 교차하며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는 건 한순간. 하나 카인은 웃을 수 없었다. 그 파열음의 근원지는 세트가 아닌 그였던 것이다.
급속 회생에 의해 상처가 깊어질 틈도 없이 회복되었지만, 위화감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충격이 되돌아온 건가.’
주도권을 잡고, 연격을 이어가는데도 카인의 얼굴은 풀어질 줄 몰랐다.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상대와 싸워 왔다.
골목길 불량배부터 대륙을 누비는 십좌까지.
하지만 단언컨대 세트보다 더 괴이한 상대는 없었다. 일단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촉부터가 남달랐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던 것이다.
정녕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지 의심될 지경.
더구나 그는 한 번씩 상궤에서 벗어났다.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방어하더니, 오른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격했다. 제멋대로 뛰다니는 두 다리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지가 따로 놀아 발작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으나, 놀라우리만치 효과적이었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반사 신경이요, 신체 능력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듯한 인상이 강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추측을 한 건 아니었다.
‘역시.’
자신에게 피격된 부분이 잿빛으로 물들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런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카인은 보다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페이스를 올렸다.
걷는 걸음걸이마다 지면이 울리고, 쏟아내는 일격에 하늘이 격동했다. 경기장이 무너져 내릴 기세였지만, 세트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뚫리지 않아요.’
그의 몸 안에 이식된 건 반응성 장갑, 아이기스. 외골격 장갑인 전투 기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의 집약체였다.
피부는 물론이고, 장기와 골격 그리고 혈관에 이르기까지. 나노미터 단위로 신체를 보호해 주는 아이기스는 일종의 요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뚫리지 않는 방패 앞에 선 카인이 손가락을 폈다.
십검, 내상을 장전한 것과 눈앞에서 섬광이 스쳐 지나간 건 거의 동시.
간발의 차로 피한 카인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세트는 놀랐다는 듯이 능청을 떨었다.
“그걸 이때 꺼내는 건 위험하잖아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보다 더 놀란 건 카인 쪽이었다. 섬광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챈 것이다.
‘포톤 블레이드?’
세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온 건 틀림없이 플라스마의 응집체였다. 어찌 보면 단분자 커터보다 더 악질적인 병기였다. 이렇다 할 형체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세트는 그런 물건을 아무런 장치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안에 마력까지 섞여 있었으니까.
한 번에 많은 정보가 쏟아지다 보니 카인은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후천적으로 나노 마테리얼을 다룰 수 있게 신체를 조정한 건가.’
이브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도 머리카락에 흐르는 나노 마테리얼을 이용해 신기를 제작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신의 인형은 마소를 사용하지 못했으니까. 병기는 병기에서 그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주체가 인간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신의 인형과 다르게 마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여태껏 현대 문명과 헤브니아의 경계는 뚜렷했다. 결코 다른 영역을 넘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질적이었던 탓에 넘보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카인은 그 가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혼종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신기를 개조해 마석을 동력으로 삼았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어.’
테레나브스가에 있는 백년해로를 떠올린다. 그때 당시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엔지니어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샘플을 모으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성절이 신기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마소라는 힘에 근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트의 존재는 그러한 전제 조건을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
가만히 두면 추후 돌이킬 수 없는 대적이 될 게 뻔했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죽인다.’
다행히 무대는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십좌전 한가운데였던 것이다.
엔지니어의 수장을 정당하게 없앨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지다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어디 있겠는가.
[정련정심 – 개수일촉]되든 안 되든 우격다짐으로 오의를 쑤셔넣는다.
세트를 두른 방벽이 충격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지만, 카인은 개의치 않았다. 두 주먹이 부서지는 것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남은 건 난타뿐.
차륜처럼 돌아가는 팔은 이윽고, 빛줄기가 되어 세트를 강타했다.
자상, 창상, 열상, 화상, 동상, 교상, 관통상, 타박상, 내상, 파열상.
십검의 연격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터지는 굉음만은 확실하게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미증유의 힘이 낳은 후폭풍이 경기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찌나 강렬한지 관객석에 앉은 이들 또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했다.
“빌어먹을 새끼.”
“칭찬 감사해요.”
겉으로 보기엔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정반대. 세트를 짓밟은 만큼 카인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그가 상대하는 건 현대 문명과 헤브니아가 낳은 괴물.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더구나 마력이 담긴 신기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고통을 그에게 선사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카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역경조차 발판으로 삼아 나아갔다.
손날로 포톤 블레이드를 가른 카인은 세트의 품 안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꺾었다.
그렇게 십검을 꽂아넣으려는 순간―
쿠아아왕.
구름이 갈라지며 하늘길이 열렸다. 폭발적인 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때리자 사람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카인도 다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창공을 자유로이 누비는 거대한 기체가 들어왔다.
‘전투기?!’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카인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대로 넋을 놓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행대대를 이룬 전투기 무리가 무거운 짐을 털어 낸 건 바로 그때.
머리 위로 폭탄의 비가 내리자 카인은 서둘러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다른 이들은 저게 얼마나 위력적인 병기인지 모르기에 경계만 하고 있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핵병기보다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는 걸.
지상에서 터지기 전에 미리 터트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카인은 폭탄 더미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지자마자 합장했던 손을 활짝 펼쳤다.
[정련정심 ― 일파만파]순간, 하늘을 꽉 채운 폭탄 더미가 하나도 빠짐없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카인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투기가 토해 낸 짐덩어리들은 폭발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불꽃을 흩뿌렸다.
시작은 불티처럼 조그마했으나, 지상에까지 내려온 녀석들은 아차 하는 사이에 몸집을 크게 불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관중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살갗을 태우고 뼈를 녹이는 불꽃은 그들이 어떤 짓을 해도 꺼지지 않았다. 맨바닥을 뒹굴고, 물을 퍼부어도 마찬가지. 그저 열기에 열기를 더해 갈 뿐이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은 눈처럼 스며들며 타들어 갔다.
일대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보니 효과는 배가되었다.
카인은 망연자실하게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백린탄.’
효과가 끔찍해 전쟁에서도 사용을 금한다는 무기가 시대를 뛰어넘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