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54
054화 수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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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는 무사히 성사되었다.
인부는 리벨리온 측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범죄자만 선별해서. 에렌디아 부족은 그들을 감시하기로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순탄한 시작이었다.
본디 금광이 발견되면 나라에 보고하는 게 우선이었다. 왕가의 직인이 찍히지 않은 황금은 모두 밀수품으로 추정되었으니까.
하지만 슈발체베인 가는 무시할 수 있었다.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암흑가를 통해서 유통시키면 되었다.
여러 지역을 거친다면 조직의 추적을 뿌리치는 것도 쉬울 터. 어렵지 않게 눈먼 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소르래기 한 마리가 내려와 호른의 어깨 위에 앉았다.
금광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온 탓인지 깃털 사이사이에 눈이 가득했다.
푸드득, 푸드득.
놈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온몸을 흔들자 호른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지, 옳지. 수고했어, 아리아.”
“아, 아리아?”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 흘러나오자 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둔 사람의 이름이었다. 더구나 그 사람은 성녀였다. 훗날 신성 모독이 될 수도 있었다.
“어째서 그런 이름이지?”
“아리아, 좋잖아. 부르기도 쉽고.”
소르래기, 아니 아리아를 보는 호른의 눈빛엔 따뜻한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기실 아리아라는 이름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흔한 이름이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아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막 지어도 되는 건가?”
“아, 그렇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호른이 머리를 두드렸다.
예상보다 쉽게 수긍하니 김이 빠졌지만, 잘된 일. 카인은 더 이상 첨언하지 않았다.
“아리아 투, 그래 넌 아투다.”
‘그러면 그렇지.’
아리아라는 이름은 버릴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지?”
“엄청나게 커. 물론, 정확한 매장량은 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말야. 예상의 절반만 맞아도 백작령을 지탱하는 건 일도 아닐 거야. 축하해, 도련님은 부자가 됐어.”
소르래기, 아투에게 먹이를 주던 호른이 자그맣게 눈살을 찌푸린 건 그때였다.
금광이라 하니,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에렌디아 부족을 감싸주기로 한 거야? 금광을 그대로 삼키는 게 더 편하지 않았어?”
“황금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그러니까 나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다.”
받으면 받은 대로 주면 준 대로. 돈거래란 그런 것이었다.
“황금을 숭상하는 만큼 그걸로 바꿀 수 있는 가치도 존중한다는 거네.”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인데.”
“아니, 도련님답다고 생각하던 참이야. 등가교환, 좋잖아?”
금방에라도 올라갈 듯한 입꼬리를 보니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지만 본인이 그렇다니까. 이에 어깨를 으쓱인 카인은 등 뒤에 서 있는 로건을 쳐다보았다.
“총관, 들어서 알겠지만 앞으로 더 바빠질 거다.”
“도련님이 오신 뒤로 일거리가 늘어나는군요.”
로건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살림살이가 늘어나는 건 그도 환영하는 바였다. 그러잖아도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던 참이다. 금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내가 왔을 때 가장 싫어한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 가장 좋아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신 겁니까. 섭섭하군요.”
“섭섭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야.”
슬며시 카인을 바라본 로건이 가지런히 기른 턱수염을 쓸어넘겼다.
“하지만 저는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겁니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따르는 것만큼 우둔한 짓은 없을 테니까요.”
“절대로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않는군.”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질릴 정도로 대쪽 같은 성품이었다. 차라리 아버지인 로잔 쪽이 더 융통성이 있어 보였다.
“자, 자. 한풀이는 그쯤 하라고, 도련님. 꼬장꼬장한 게 로건 님의 매력 포인트니까.”
로건이 흘겨보자 호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괜히 아투의 몸을 콕콕 찌르는 행태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은 로건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면 어떤 거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도련님의 의향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겠습니다.”
할 거야 차고 넘쳤다. 규모도 확장해야 하고, 조직원도 양성해야 했다.
영향력을 넓혀 주변 왕국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엠이 백작령 출신이라는 걸 모르도록 정보를 조작해라. 아니, 아예 출신을 특정할 수 없게 교란하는 것도 재미있겠지.”
아리송한 명령에 호른이 끼어들었다.
“의미 있는 지시야?”
“그럼.”
아울이 죽었으니 조직은 자연스럽게 엠의 뒤를 쫓을 거다. 그 과정에서 리벨리온이 발각되는 건 상관없었다. 애당초 그럴 용도로 만든 집단이기도 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엠이 카인 슈발체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정체가 드러나면 조직은 무차별적인 보복을 가할 게 틀림없었다.
본격적으로 반격하기도 전에 쓰러질 순 없었다. 앞으로 엠과 카인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아. 하프문도 처리해서 이제 좀 쉬나 했더니, 다시 바빠지겠네.”
호응을 원한 호른이 카인과 로건을 쳐다보았지만, 둘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 * *
첨탑에 오른 카인은 눈 내리는 거리를 쳐다보았다. 요 며칠간 잠이 오지 않았다.
조직의 꼬리를 잡고, 한 단계 성장한 것도 모자라 금광까지 얻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
‘나이아.’
그녀는 어째서 노예가 된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구심이 들었다. 카인이 밟고 있는 길은 언젠가 아휀도 한 번 밟은 적이 있는 길이었다.
신의 무덤을 찾은 아울이 하프문을 데리고 에렌디아 부족을 습격하는 건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라프만의 제자 자리에 카인이 있든 아휀이 있든 그건 결정된 사안이었다.
‘조직을 알고 있는 내 쪽이 기민하게 대처했겠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같을 거야.’
아휀이 몰랐더라도, 루오와 베오를 데리고 백작령에 도착한 나이아가 라프만에게 도움을 청했을 터였다.
‘그런데 나이아는 노예가 되었다.’
소식을 듣고도 라프만이 나서지 않았을 리 없었다. 비록 젊은 시절의 열정은 사라진 그였지만, 정도(正道)가 무엇인진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중간에 개입한 게 틀림없었다. 라프만이 그녀의 호소를 듣지 못하도록.
‘대체 누가?’
순간, 아휀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당연했다. 바뀐 건 라프만의 제자 자리뿐이었으니까. 적어도 깊이 관여한 건 부정할 수 없을 터.
무언가 가슴에 걸렸다. 불쾌한 감각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죽었을 당시를 떠올렸다.
아휀은 갑자기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저 고맙다고만 생각했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1급 마귀가 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놓쳤어.’
물론, 1급 마귀에서도 경지의 고하가 나뉘는 건 알았다. 고작 아울과 싸우고 나서 모든 걸 재단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카인의 이야기였다.
‘백기사 아휀이라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십좌의 일각인 그가 고작 1급 마귀밖에 되지 않는 조무래기를 놓쳤을 리 없었다. 일부러 놓아주지 않았다면.
‘어째서?’
아휀에게 이득이 될 리 없었다. 1급 마귀를 놓친 그가 다음에 한 행동은 고작해야….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날 죽이기 위해서 놓쳤다고?’
절로 웃음이 나온다. 망상도 이런 망상이 또 없었다. 한낱 2급 살귀를 죽이기 위해 십좌가 판을 짠다니.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웃음은 얼마 가지 못하고 멎었다. 섣불리 판단하는 건 죄악이라는 걸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으니까.
신의 무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했다.
‘일단 조심한다.’
그게 합당한 선이리라.
‘그나저나 아휀은 어떻게 됐을까?’
본래 그는 슈발체베인 가에 들어올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운명을 차지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다른 운명을 찾아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았을 터.
어쩌면 평생 범부로 살다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십좌의 자리까지 오른 재능이었다. 좋든 싫든 정상에서 보게 되리라.
* * *
열심히 눈삽을 움직인다. 더 열심히 눈삽을 움직인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되면 더 될 때까지.
신의 무덤이 있었던 자리에 온 카인은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삽질에 열중했다. 하지만 밑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파면 팔수록 더 깊이 매몰될 뿐이었다.
사실 이런다고 무너져 내린 신의 무덤이 나올 리 없었다.
“아깝다, 아까워!”
조직이 눈치챈 시점에서 효용은 다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자리에 있는 한 몇 번이고, 침범할 테니까.
녀석들에게 양도하느니 차라리 묻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도―
“아깝다.”
더플백에 한가득 짊어지고 나왔지만, 모자랐다. 어느 것 하나 쓸 게 없는 잡동사니였던 것이다.
“하룻밤만 더 있었어도.”
시간을 들여 자세히 살펴보면 쓸만한 물건이 나올 게 분명했다.
신의 시대가 어떠했을지 대강 알고 있는 카인에게 신의 무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걸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모르고 좌절하는 것보다 알고 좌절하는 게 백배 나았다. 문명의 이기라는 건 그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때, 저 멀리에서 기다란 귀가 쫑긋거리는 게 보였다. 설송나무 뒤에 숨어 있지만, 주기마다 튀어나와서 존재감을 과시하니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야, 나이아.”
“크흠. 나를 불렀느냐.”
삐그덕, 삐그덕.
기름칠이 덜 된 인형처럼 걷다가 멈췄다가. 요란스럽기도 했다.
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아는 예정대로 백작가에 오게 되었다. 알브라고 할 수 없으니, 라프만이 아끼던 기사의 딸이라고 소개할 생각이었다.
마침 대륙 전쟁에 참전했던 라프만이었다. 그와 마주친 기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름을 빌리는 건 쉬웠다.
“호른에게 마법 도구를 받았을 텐데? 그건 착용하지 않는 건가?”
“긴 귀를 감춰주는 귀걸이 말이더냐. 효과는 확실하지만, 착용감이 신통치 않더구나. 계속 착용하면 가려워서, 성에 가면 착용할 생각이었다만.”
“그래, 마음대로 해.”
눈삽을 들고 다시 삽질을 개시한다. 그때, 귓가에 부끄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무슨 소리야?”
“오빠에게 들었다. 네가 나를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고민했을지.”
“거래였어.”
“그래도 변함없다. 알브에게 이만한 친절을 베푸는 인간은 드물지 않더냐. 금광도 그렇다. 네가 말도 없이 가져가도 우리는 뭐라 할 수 없는 처지니까.”
순간, 삽질을 멈춘 카인이 나이아를 쳐다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나이아는 이렇게 솔직한 타입이 아니었다.
새삼스러웠다. 에렌디아 부족이 온전하기 때문인지 독기가 가득했던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자니, 나이아가 다가와 눈삽을 가리켰다.
“무엇을 그리 찾는 것이더냐.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는 거냐?”
“신의 무덤 안에 신기한 물건이 많잖아. 파다 보면 나올까 해서 말이야.”
“그거라면 하나 있다. 기념품 삼아 가져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