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저희 방송 분량만큼이라도 저희 측 편집팀과 함께 상의하며 편집을 진행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편집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편집에만큼은 보험을 두고 싶었다.
“네? 편집을요?”
“네.”
정 PD가 놀란 목소리로 되묻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희 방송 제목이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이기는 한데, 엄밀히 말해서 저 혼자 하는 방송은 아니거든요.”
“아, 그럼 다른 분이라도 함께 출연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일까요?”
“출연도 좋아요. 하지만 출연도 출연이지만.”
나는 손을 들어 올려 고희범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편집에는 꼭 이 친구가 꼭 있어야 해요. 그리고 또 제 방송을 도와주시는 몇몇 제작진분들도요.”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싱어송라이터 김한영 채널은 내 개인방송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주역으로 등장할 뿐, 고희범의 기획과 편집 그리고 디마의 음향까지 여러 방면에서 협력이 빠질 수 없다.
이 모든 게 함께해야 비로소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이었다.
“번거로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꼭 필요해요. 저희 제작진의 도움 없이는 김한영 방송의 포텐셜이 평소의 반도 안 나올 거예요.”
확신할 수 있다.
내 방송의 재미에서 이들의 지분은 절대적이다.
“흐으으음.”
이 모든 말을 들은 정 PD가 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래 이럴 때 편집은 방송국에 맡기는 게 맞는데.”
“그래도요.”
“저희 제작진들 일 잘해요.”
“그래도 이 방송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요.”
사실, 이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찌 보면 더 큰 이유.
‘악의적인 편집 문제도 막을 수 있겠지.’
편집 문제를 막는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섭외한 연예인을 뒤틀리게 조명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농담 하나로 사람 쓰레기 만드는 거 일도 아니지.’
오죽하면 어느 가수는 자기가 방송에 출연하는 대가로, 공연 하나를 편집 없이 통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을 정도.
더욱이 미튜버는 일회성 소모품으로 볼 때가 더더욱 많다고 했다.
그래서 채널 테슬라 측에서 미리 주의하기도 했지.
[자기가 주역인 줄 알고 출연했다가, 방송이 나온 뒤에야 조롱거리 단역이 됐다는 걸 깨달은 사람도 있어요.] [전 그냥 마니아를 소개하는 방송이라고 해서 출연했는데, 정신병자처럼 자막이 붙었더라고요.]이게 내가 방송국 출연을 꺼렸던 이유 중 하나였다.
‘괜히 나갔다가 안 나가느니만 못하게 되는 건 사양이다.’
그렇기에 중간에 보험 하나는 걸고 싶었다.
그 보험이 고희범.
방송국에서 장난을 치려면 어떻게든 치겠지만, 적어도 우리 편집팀이 보는 눈앞에서는 못 치겠지.
물론, 이 정도만 해도 굉장히 어려운 요구인 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일개 미튜버인 게 사실이고, 편집권은 방송국의 고유 권한이니까.
“흐으으음.”
내 제안을 들은 정 PD는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없는지 신음을 늘어뜨렸다.
한편, 고희범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왜 저렇게 사람을 뻔하니 쳐다보나.
알겠다.
‘고맙다는 거구나.’
별말씀을.
너 또한 내 방송의 또 다른 주인이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려니 고희범의 시선이 계속해서 강렬해졌다.
눈에 병 걸렸나.
그런데 이번에는 오 작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규정 같은 거라서요. 전용 장비와 규격 문제도 있고, 예외를 두면 방송을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아무래도 선을 긋는 눈치였다.
말은 부드럽지만, 양보 안 하면 방송 섭외 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돌리겠다는 의도가 돋보였다.
하지만 그래서 뭐.
‘내가 TV에 안 나온다고 굶어 죽을 사람인가.’
코웃음만 나올 뿐.
내게는 방송국 출연 또한 그냥 흔한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목맬 필요 없는, 그냥 선택지 중 하나.
‘내가 욕심을 안 가진다면, 저쪽에서 내게 제시할 수 있는 카드도 없어지지.’
보통 사람들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두고 사람들은 고민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세 번째 답이 있었다.
‘굳이 선택할 필요 없어.’
관두고 물러서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내 방송에서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 않나.
‘본업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내가 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나.
지금이야 재미 때문에 하지만, 그전에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게 싫었던 것.
지금도 그 마음에는 큰 변화가 없다.
TV 방송의 기회가 왔다고 해도, 고개를 숙여 가면서 할 이유는 없었다.
“편집에서 안 된다면, 저도 어려울 것 같아요.”
두 번째 선이 그어졌다.
“…….”
“…….”
서로가 서로에게 큼지막한 선을 하나씩 그었다.
동시에 말이 사라졌다.
미팅 분위기는 언제 화기애애했냐는 듯, 흡사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전선처럼 고착된 상황.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만 했다.
아니면 이대로 갈라서던가.
‘뭐, 안 풀린다면 어쩔 수 없지.’
방송국의 콧대가 마냥 낮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다소 친절해진 것 같다만,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도야 나도 알았다.
‘그럼 이쪽도 그냥 거절하면 되겠지.’
출연이야 해도 그만, 안 하면 그만.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조금 더 증명한 다음에 출연하면 장땡이다.
굳이 방송에 목을 맬 필요라고는 없다.
생각을 확실하게 굳힌 순간이었다.
“어렵군요.”
굵직한 목소리가 상념을 뚫고 들려 왔다.
누군가 하니 정 PD였다.
“후우.”
그가 한숨을 내쉰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끝났군.’
이번 협상은 끝났다.
이쪽은 물러나고 싶지 않고, 저쪽 또한 물러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끝이었다.
우리 양쪽은 서로 얻은 게 없는 대신, 잃은 것도 없다.
굳이 뭔가를 잃었다면 여기까지 오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잃어버린 시간 정도일까.
‘됐어, 이럴 수도 있지.’
속으로는 놓아 줬지만, 살짝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이게 지금의 내게 최선이다.
이미 끝난 일, 나가는 길에 배웅이라고 해 줄까 하는 순간이었다.
“흡.”
정 PD는 호흡을 굳세게 삼키더니, 각오했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는 제 권한에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권한에서 가능하다.
무슨 말인가 하는 순간이었다.
“구체적인 업무 범위는 상의를 나눠 봐야겠지만, 그쪽 편집 인력과 협력하며 진행하는 데 동의하지요. 이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저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
‘지금 양보한 건가?’
저쪽에서 선을 넘어 양보했다.
다름 아닌, 방송국 측에서 먼저 양보한 것이었다.
‘진짜로?’
이번에는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게 되네.’
이게 되네.
그냥 질러 본 건데.
‘이걸 허락해 준다고?’
편집에 참여하게 해 달라는 게 쉬운 제안인가.
절대 아니다.
내가 방송국 눈치를 안 봐서 그렇지, 보통은 최소 A급 가수 정도는 돼야 이야기라도 꺼내 볼 일 아닌가.
그런데 왜 선까지 그어 놓고 물러섰는가. 방송국에서 내가 그리도 욕심이 나는 대상이란 말인가.
‘내 몸값이 언제 이렇게 올랐지.’
나도 몰랐던 내 숨겨진 힘에 은근히 놀란 참인데, 정 PD의 옆에 앉아 있던 오 작가가 화들짝 놀라서는 말했다.
“PD님! 그러다가 나중에 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어쩌기는, 내 방송에서 내가 하고 싶다는데 뭐 어쩔 거야.”
“잘못하면 뒤에서 불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미쳤어요?”
그녀는 오죽 놀랐으면 우리 앞에서 말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했다.
“아이, 불만이 한둘이야. 불만 나올 때마다 수그리면 일은 언제 하게. 내 짬이 얼만데, 수틀리면 사표 쓰고 딴 데 가지.”
그건 정 PD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직 외부인인데 말을 하나도 안 가리신다.
제대로 다혈질이시구나.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일 터지는 거 아닌가.
혹시 모르는 마음에 나는 재차 대답을 요구해 보기로 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작가님 말씀대로 일이 어려울 수 있는데.”
정 PD는 슬쩍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말했다.
“가수님이 요구하신 일이잖아요.”
“그건 맞죠.”
그렇지.
내가 요구해서 그쪽이 감수한 거지.
“어지간하면 저도 안 물러나는데, 가수님이라서 받아들인 겁니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제가 그만큼 한영 씨 방송을 재밌게 봤거든요. 제 방송에 꼭 올리고 싶을 정도로. 그럼 시청자분들 눈에도 재밌을 거예요.”
“…….”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사람이 한 말인데, 그 뭐시기, PD 위에는 시청자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시청자한테만 재밌으면 뭐든 됩니다.”
내 방송을 재밌게 봤으니까, 무리한 수를 둬서라도 섭외하고 싶단 말이었다.
그게 방송에서 정답이니까.
과할 정도로 솔직하게 나온 정답에 나는 멋쩍어져 말했다.
“그렇다면 감사하지만요.”
“그래도 특혜는 특혜가 맞습니다. 그만큼, 다른 분들에게는 최대한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니까, 밖에서는 아무도 알면 안 됩니다.”
그가 내게 기밀 엄수를 요구하듯 말했다.
비밀, 그래, 비밀 좋지.
나는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거 그냥 하는 말 아닙니다. 최대한입니다. 이거 말하면 안 돼요. 진짜 큰일인 겁니다.”
몇 차례고 반복하는 걸 보니 진짜로 큰일이 맞나 보다.
어찌 되었든 내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 같아, 옆을 돌아보자 고희범과 성민아의 표정이 기이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희도 놀랐구나.’
역시 우리는 한 팀이다.
나는 작은 동질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럼 구체적인 계약은 중간에 업체 하나를 하나 두고 진행하고 싶은데, 저희가 소속된 MCN에 대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소속사 말씀이시죠?”
“네, 그쪽 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꼭 통할 필요는 없다.
채널 테슬라의 계약 조건 자체가 그러니까.
하지만 그럼 중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피곤해지리라.
그 대신 수수료를 조금 주고 보험을 들 수 있다면 썩 괜찮은 거래겠지.
이것 또한 내 보험이었다.
“그것도 더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지만, 덤으로 알겠습니다.”
화끈하시네.
그렇게 잠시 뒤.
정 PD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런데 그, 정식으로 진행하기 전에 공연하는 것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시험 같은 건가요?”
“그건 아니고, 인터넷에서 영상을 조금 봤는데 괜찮아서 말입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아, 그런 이유.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맨손으로 돌려보내기는 그렇지.
하지만 그냥 곡 하나 들려주는 것보다는 더 세련된 방식이 있다.
“잠시만요.”
나는 구석에서 기타를 들고 오며 말했다.
“안 그래도 지금 막 방송 키려는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방송하는 모습까지 같이 보여 드릴게요. 희범아.”
“응.”
“민아도 모처럼 한 곡 칠래?”
“타이밍 봐서.”
그렇게 잠시 뒤.
방송 시간 20분이 흘렀을 때, 이 둘의 표정에는 헛웃음만 가득했다.
“오 작가 말이 맞네. 실물이 더 나아.”
“내가 말했잖아요.”
“모처럼 하나 맞았네.”
그렇게,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번 방송은 그저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만 알았다.
본격적인 일 이야기가 나누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성과 신인 가수가 만난다고 했죠?”
“예,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나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거물들만 섭외했거든요.”
“그럼 저랑 매칭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내심 궁금하던 참이었다.
전설이라.
나랑 매칭될 사람이라면 과연 누가 있을까.
솔직히 기대됐다.
“아, 물론 알아봐 뒀죠. 김한석이랑 아주 친했던 사람이 하나 있죠.”
다소 익숙한 이름 세 글자.
그게 정 PD의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함재원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아시죠?”
함재원.
한국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자, 내 옛 지인 중 한 명.
그의 이름이 정 PD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함재원과 김한영, 김한석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선배와 후배의 열연. 어때요. 궁합이 좀 맞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맞았다.
함재원과 나는 선배와 후배 관계가 맞기는 하다.
물론,
내가 선배지만.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