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이번 강릉 여행은 일정을 일부러 넉넉하게 잡았다.
방송 촬영도 촬영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임의 MT도 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오디션이 하나 끼었으니 일정이 딱 맞게 됐다.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려고 했는데.’
식구들한테 살짝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에 홍윤서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실망은 기대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
“지금까지 너랑 여행 갔다가 결과적으로 일했던 것만 두 번이었다. 너 혼자서 밖에서 일한다고 밤에 혼자 싸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응원인지 돌려 까는 건지 모르겠다.
조은솔도 말했다.
“중요한 일이지?”
“네.”
“그럼 노 저어야지.”
이 둘은 처음부터 각오하고 온 모양이었다.
성민아는 지난 숲 뮤직과의 시합 이후로 부쩍 서먹해진 눈치였는데, 이번만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회 사 줘.”
“나는 회사 줘.”
“……”
갑작스러운 홍윤서의 개입에 분위기가 가을 바다처럼 차갑게 시들었다.
“형, 사과하세요.”
“미안하다, 윤서야. 두 번 다시 그러지 않을게.”
이렇게 해서, 우선은 방송을 앞당겨서 처리하고 저녁에 노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네 명의 사람을 게스트하우스로 소집했다.
말이 게스트하우스지, 공연시설을 겸해서 촬영장으로 쓸 수 있게끔 개조한 곳.
갑자기 모인 네 사람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중 한 명, 박유동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거 진짜죠?”
“네, 이미 촬영 중이에요.”
“……성실하게 살다 보니까 저한테도 이런 날이 다 오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착한 거랑은 상관없고, 그냥 실력이 괜찮아서 눈에 익어서 불렀다만.
애초에 실력이 안 따라 주면 탈락이니까 의미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말해서 초를 칠 필요는 없으니 말을 삼갔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대놓고 말했을 텐데.’
요즘 사회성이 부쩍 좋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박유동을 제외한 나머지 셋 중 한 명.
유독 어린 티가 나는 여학생이 긴장한 기색으로 정좌 자세를 유지했다.
“저, 이름이.”
“저, 저, 김소연이요.”
강릉시장에게 소개받은 그 학생이었다.
소개받아서 온 것치고는 본인부터가 한참 더 놀란 모양.
“방송하신다고 했죠?”
“네, 그 구독자는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어제 다 봤어요. 잘하시던데요.”
“정말로요?”
김소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앞서 한 말마따나, 나는 그녀가 그간 방송했던 분량을 대체로 다 확인했다.
[강릉 여자 김소연] [구독자 수: 7천 명]아예 없다고 하긴 뭐하지만 저조한 구독자 수가 돋보인다.
하지만 컨텐츠의 양이 꽤 풍부했다.
강릉의 맛집을 소개하는 영상,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영상, 노래를 부르는 영상 등등.
전체적으로 10대 여학생의 감성이 한껏 묻은 방송들.
나는 그걸 다 확인하고서야 결론을 내렸다.
‘포텐셜은 있어.’
김소연.
그녀에게는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있었다.
나름의 캐릭터도 있고.
강릉시장이 마냥 이유 없이 추천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열아홉입니다!”
“네, 제가 그 나이였을 때보다 학생이 훨씬 낫던데요.”
당연하지만, 아니다.
그때 난 이미 현역으로 활동할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이니까 립서비스 삼아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그간의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최근 노력하고 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본 방송 화면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 그때 음악 안 했잖아 무친놈아]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해해 주기로 하며 말을 이었다.
“보니까 금방 느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막 크게 외치고 안 그러셔도 돼요. 적당한 볼륨으로 말해도 마이크에 다 담겨요.”
“명심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되게 크다.
굳이 말하자면 대관령 호랑이처럼 쩌렁쩌렁했다.
긴장해서 저러는 건지, 목청이 원래 큰 건지. 어찌 됐든 캐릭터는 있다.
[ㅋㅋㅋㅋㅋ 목소리 되게 커!] [음량 좀 낮춰야겠다] [학생이,,,, ㅎㅎ,,, 귀엽네~~]나머지 둘은 그냥 평범했다.
어제저녁부터 급하게 신청을 받아서 모은 사람들인데, 말 그대로 무색무취했다.
‘일단은 이렇게 넷이다.’
검증된 인재가 한 명.
포텐셜은 보이는 인재가 한 명.
무난한 사람이 둘.
일단 첫인상은 이렇게 됐고, 자세한 건 현장 긴급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확인해야겠지.
그리고.
뽑을 방법은 진즉 구상해 두었다.
“이동하죠.”
* * *
강릉은 종합 관광도시다.
2000년대 초반, 강릉은 도시의 콘셉트 자체를 관광으로 밀어붙이며 관광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 모든 일을 도입했다.
커피.
빵.
서핑.
음악, 하이킹, 한옥까지 어지간한 관광 컨텐츠는 모조리 존재하는 도시, 강릉.
그런 강릉이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컨텐츠를 시 차원에서 도입한 건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역시 강릉이 이런 건 좋네.’
강릉 원주대학교 앞, 교동 하슬라로(거리).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그곳에는 이미 내게 필요한 모든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하슬라로 길거리 노래방]길거리 노래방이었다.
몇 년 전부터 방송계의 뜨거운 콘텐츠로 자리 잡은 그것이 강릉의 심장, 교동에도 당당히 존재했다.
다소 왜소한 사이즈로.
“동네 공원이네.”
“그러게. 좀 좁네.”
툭 튀어나온 성민아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홍윤서가 안면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아니, 진짜로 동네 공원 맞잖아. 공원도 아니고 놀이터잖아.”
“형, 그건 말이 너무 심해요.”
“심한 건 놀이터를 공연장이라고 추천한 강릉시고. 왜 여기가 안 유명한지 좀 알겠네. 구색부터가 없잖아.”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덩그러니 놓인 노래방 기계 뒤로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작 어린이는 없고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끽연을 만끽하고 있는 놀이터가.
‘사람도 별로 없고.’
아무래도 평일 낮이라서 그런가 보다.
제대로 된 오디션을 진행하기는커녕, 방송을 진행하기에도 한참 모자랄 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그냥 주택가 한복판 느낌.
아쉬운 일이다.
사전 조사를 게을리한 건 내 잘못이다. 시에서 알아서 장소를 추천해 주겠다고 나섰을 때 한 번은 걸렀어야 했다.
“으음,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른 장소를 알아봐야 하나?”
고희범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낮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고, 그림이 안 살 것 같은데. 차라리 저녁 될 때까지 기다려 볼까?”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아무리 평일이라고 한들, 저녁이 되면 사람이 좀 모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저녁까지 구태여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거절한다.”
“왜?”
“저녁에는 조개구이 먹을 거야.”
“…….”
어제저녁에 못 보낸 식구들과의 시간을 오늘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감수하고 넘어가야 할 일.
더욱이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했다.
‘사람이 없다면, 모으면 그만이지.’
뒤를 슬쩍 보자, 참가자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서 있기만 했다.
“회사원이요? 진짜요?”
김소연만 제외하고.
“와, 그럼 서울에서 쭉 자란 거예요?”
“아뇨, 부산에서 자랐는데.”
“진짜요? 와, 부산도 바닷가잖아요. 거기 광안리에 볼 거 많다던데. 해안가라 카페도 많고, 수산시장도 있고.”
“사람 너무 많아서 별로예요.”
“광알리 띵킹 드나스는요?”
“……그거 요즘 같은 시대에는 논란될 말인 거 아시죠?”
“진짜로요?”
그녀는 박유동을 붙잡고 일방적으로 호기심을 풀기 바빴다.
일단, 저 사람들한테 무대를 만들어 줘야겠다.
모처럼 내가 앞장서 볼까.
그동안은 만들어 둔 무대를 떠먹기만 했지만, 음악 인생 전체를 따지자면 나는 없는 무대를 만들 때가 더 많았다.
저벅저벅.
나는 앞으로 걸어가서 사람 없는 놀이터의 노래방 기기를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작게 발음해 보았다.
“아―――.”
아 발음으로 시작해.
“이―――.”
이 발음으로.
다음으로는 ‘에’ 발음으로.
그다음으로는 다시 ‘우’ 발음으로.
최대한 곧게, 일정하게 발음을 뽑아냈다. 낮은 음역부터 높은 음역까지 한음 한음 꼼꼼히.
깔끔하게 스케일을 짚어 냈다.
“아, 이, 에, 우.”
아이에우 스케일.
잼에서 목 상태를 점검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몇 번 발음을 토해 냈을 무렵, 어느새 주위 이목이 내게 쏠려 있었다.
미끄럼틀 뒤에 숨어 있던 어린이도.
사이 좋게 담배를 물던 어른들도.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지나가던 젊은 사람도.
산책하던 아줌마도.
그들의 이목이 불과 30초 사이에 내게 깔끔히 쏠렸다.
숙련된 발성 체크에는 그 자체로 이목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이 정도면 기본은 됐고, 시작해 볼까.’
고개를 돌리자 고희범의 방송 카메라가 내게 향해 있었다.
평일 낮.
일단, 가볍게 100명 정도 모아 보자.
* * *
어느 방송이든 낮에는 방송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낮 방송 뭐임?]대다수 시청자는 저녁에 보기 때문이었다.
지상파 방송에서 점심 드라마의 시청률이 저녁 드라마보다 훨씬 낮지 않나.
그래서 재방이나 틀어 줄 때가 태반이었다.
이건 인터넷 방송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낮에는 쉰다.
저녁에 사람들이 퇴근하면 그때부터가 장사 시작.
하지만.
[뭐야, 김한영 낮부터 방송함?]김한영의 오늘 방송은 조금 달랐다.
[???] [나 지금 회산데] [?????] [아니, 이거 볼륨 틀 수도 없고]시청자들이 보고 싶어도 못 볼 시간에 당당하게 방송을 틀었다.
그것도 꽤 보장된 컨텐츠를 들고 와서 말이다.
길거리 노래방.
실패하고 싶은들, 실패할 수가 없는 컨텐츠였다.
마이크를 손에 쥔 김한영이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철저하게 요즘 유행하는 인기곡만 골라서 말이다.
[저 샛기 평소에는 안 부르더니 저걸 이 시간에 부른다고?] [방제 뭐임? ‘호호호, 오늘은 다시보기 없는 날?] [이 샛기가 우리 놀리나 ㅠㅠㅠㅠ 니땜에 반차 낸다 개샛갸!] [ㅋㅋㅋㅋㅋ 그들이 일하러 갈 때, 우리가 깨어난다] [아니 왜 낮에 방송하냐고!!!] [화장실 간다고 몰래 거짓말하고 나왔는데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진짜 시청자들 괴롭히냐?] [근데 얘는 왜 남들 냅두고 지만 노래 부르고 있음?] [나 가게 문 닫고 지금 달려간다] [ㅋㅋㅋㅋ 나 옆에 학교 다니는 사람인데 지금 수업 째고 달려감] [아 ㅋㅋㅋ 학교는 1년 200일 갈 수 있지만 김한영 노래는 오늘밖에 못 듣는다고 ㅋㅋㅋㅋ]시청자들의 불만 아닌 불만이 쌓인다.
그럴수록 교동의 주택가 놀이터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아 개부럽다] [저 사람들은 저기 사는 주민들이겠지?]방송의 시청자들이 모일 시간이 아니다.
저들은 그저, 평범하게 김한영의 노랫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흡사 서유럽 전설 속 세이렌의 노래가 뱃사람을 꾀어내듯.
술렁이던 인파가 불어났다.
점으로 시작되어 면이 되어 간다.
작지 않은 공원이 비좁은 공원이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저거 김한영 아니야?”
“김한영이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
“실물 쩐다…….”
저녁에 번화가에서 노래를 부르면 일대 교통 마비를 일으키는 김한영의 노래가 주택가를 무자비하게 덮쳤다.
[주택가 소음 공……] [형 닥쳐] [지금 소음 공해가 중요해?] [김한영이 내 윗집 사람이면 층간 소음도 즐길 수 있어]처음 목표 인원 100명.
김한영이 여섯 곡을 불렀을 무렵, 그러니까 약 30분이 지났을 때.
교동의 평화로운 주택가에 모인 사람의 인원은.
“사람 많네.”
500명을 넘어섰다.
“슬슬 방송 진행해도 되겠다.”
김한영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차마 그렇지 못하였다.
박유동과 김소연.
그리고 그 외 두 사람.
김한영의 뒤를 이어 노래해야 할 처지가 된 사람들이었다.
‘이틀 연속으로…….’
박유동이 가슴속으로 눈물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