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임선우가 방송에 참여하고 불과 몇 분.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빙하기를 마주한 공룡들처럼 바뀌었다.
‘얘가 좀 유명해지기는 했네.’
주위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놀란 표정으로 힐끔힐끔 바라보는 건 기본, 대놓고 뚫어지도록 쳐다보는데 레이저빔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나마 사전에 주의한 덕에 핸드폰 카메라나 사인지를 안 들이미는 게 아닌 중 다행일까.
‘나도 이제 슬슬 유명해진 것 같은데, 선우의 인기랑은 방향성이 많이 다르단 말이지.’
임선우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은 말 그대로 스타를 바라보는 그 반응이었다.
[ㄹㅇ 임선우임?] [와 개미쳤네] [대존잘] [선우야 제발 한 번만 웃어 주라. 내 인생 일대의 소원이다.]누가 봐도 흥분과 동경에 차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김한영은 고마운 줄 알라고 ㅋㅋㅋㅋㅋ] [뭐지? 왜 아무런 말도 안 하지? 또 다른 피해자를 몰색하는 중인가?] [저걸 봐! 살인마의 눈이야!] [문제: 김한영이 다섯 명 있으면?] [정답: 다섯 명이 죽는다]……생각하기도 싫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지? 어째서 한숨을 쉬는 것이지?] [시청자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인가?]이미지를 바꿔 보려고 요즘 노력하는데, 좀처럼 안 풀리는 느낌이다.
김한석 시절에는 나도 임선우가 받는 저 시선을 좀 받았는데.
이번 생은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모두의 스타를 꿈꿨는데, 모두의 탱탱볼이 되어 가는 이 기분은 대체 뭘까.
[그러니까 김한영이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게, 그 사람에게는 실례일 수 있잖아요.]가관이네.
내친김에 임선우의 얼굴을 지그시 훑어봤다.
확실히 잘생겼다.
안 꾸몄을 때도 고양이상 외모가 튀었는데, 이제 카메라 마사지를 좀 받았는지 대놓고 후광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외모라는 게 과연 그렇게 중요한 걸까.
“왜 그래?”
사색에 잠겨 있으려니, 그가 걱정에 찬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별거는 아니고.”
나는 생각난 김에 그에게 물어봤다.
“YTG에서 안 보내 주려고 했을 것 같은데, 용케도 여기까지 왔다 싶어서.”
“억지를 좀 부려 봤지.”
“억지?”
“응.”
다음 순간 임선우가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방송 안 보내 주면 은퇴하겠다고.”
그의 입에서 은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채팅창이 말 그대로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우 은퇴각 뭐냐고 ㅋㅋㅋㅋㅋ] [포브스 선정 가장 빠르게 은퇴한 아이돌] [속보: 임대경 오열]아무래도 저 은퇴라는 단어를 농담으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아니다.
임선우를 잠깐이나마 실물로 겪어 본 내가 판단하기에, 저 은퇴 협박은 예능이 아닌 진심일 가능성이 컸다.
‘대경이도 고생이 많네.’
자식 교육이 쉽지 않구나.
하지만 내 자식이 아니니까 즐거울 따름이다.
나는 측은지심을 사고의 저편에 묻어 두고 임선우에게 물었다.
“밥 먹었어?”
“아니, 저녁 촬영만 끝내고 지금 막 바로 왔어.”
“참치 먹지? 시켜 놨는데.”
“요즘은 식단 관리한다고 기름진 거 잘 안 먹는데, 오늘 먹어야겠다.”
“그래, 너도 먹자. 치킨도 시켜 줄까?”
* * *
그렇게 중간에 이벤트 하나를 마치고 24시간 합숙 촬영이 끝날 무렵.
우리 방송에는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이걸 탈주하네.’
참가자 중 한 명이 방송 포기를 선언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24시간 참는 게 그렇게 어렵나? 요즘 사람들은 인내심이 별로 없어서.”
작은 실망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려니 고희범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다른 건 몰라도 탈주는 너 때문에 한 것 같은데.”
“내가 뭘 했다고?”
“인격 살해.”
“무슨 살해?”
“다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했잖아. 안 도망가고 버티겠냐?”
그랬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사람의 웃는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안병선이었다.
“진짜 한 번 발렸다고 도망간 건가.”
“쪽팔리겠지. 앞으로도 방송에 계속 나와야 할 텐데. 그걸 어떻게 버텨.”
“도망간 게 더 쪽팔릴 텐데.”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비브라늄 멘탈이 아니란다.”
내가 멘탈이 튼튼한 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너무 약한 거 아닐까.
사소한 의문을 품고 있으려니 고희범은 발끝으로 괜한 바닥을 차더니 말했다.
“그렇다고 괜한 동정심은 가지지 말고. 정식 방송에서는 다 편집해서 쓸 거야. 어쨌든 이것도 다 방송이니까.”
“편집은 알아서 해. 그건 네 분야니까.”
나도 고희범의 말마따나 괜한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게 동의했다.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면 그리 배려할 이유 또한 없었다.
애초에 굳이 따지자면 내가 피해자이기도 하고.
“그럼 일단 남은 사람들 일어나면, 바로 녹음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다음 단계.
이번 방송의 승패가 걸려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슬슬 선우를 활용해 볼까.’
임선우를 굴리는 것이었다.
방송에 본격적으로 화제성을 끌어올 차례가 됐다.
남자 아이돌의 특징이 무엇일까.
이것에 관해 최근 강도수 사장에게 일장 연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 충성도가 미쳐 돌아가거든요. 숲 뮤직에서 자료를 보고 놀랐는데, 남돌은 매출이 여돌과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충성도였다.
팬들의 수 대비 벌어들이는 금액이 아주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나.
동급 여자 아이돌과 비교해서도 몇 배는 된다고 하였다.
그만큼 팬덤 규모를 확장하기 어렵고, 동시에 활용하기도 어렵다는 난이도는 있지만 말이다.
임선우는 아이돌이다.
엄밀히 분류하자면 복고풍 포크 가수겠지만, 대중이 그를 소비하는 방식은 아이돌임이 분명했다.
YTG에서도 그 방향을 유도했고.
그 말인즉슨.
‘선우만 잘하면 이번 방송을 배로 띄울 수 있다는 거지.’
유리는 나중에 합류할 테고.
나는 임선우에게도 역할을 하나 주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과 함께 등장할 때 위력이 극대화될 컨텐츠를.
그게 무엇인가 하면.
“방송에서 이상한 말 안 하게 조심해.”
심사 위원을 시키는 것이었다.
‘일단 데려왔으니까 최대한 분량을 뽑아야 한다.’
일반 참가자로 굴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공평성부터 파괴될 테니까.
반대로 뭔가 특별 대우를 하자니 방송에 어우러지질 못한다.
차라리 따로 빼서 심사 위원으로 굴리는 게 최선이었다.
“나한테 과연 저 사람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을까.”
임선우가 은근히 자신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누구 하나 잘하고 싶어서 나왔을 텐데.”
자기 말 한마디로 저 사람들의 향후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
사람이 좀 변했다.
예전에는 남들한테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연예계에서 활동하다 보니 측은지심이 생겼나 보다.
절실한 사람들을 많이 봤을 테니까.
그에 나는 말했다.
“반대야.”
“반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너는 칭찬만 해.”
“……칭찬만?”
“맞아, 칭찬만 먹여.”
임선우는 내 말이 의아했는지 좀처럼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심사잖아. 그래도 돼?”
“그야 당연히 되지.”
나는 엄지를 들어 올려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는 까기만 할 거거든.”
“……깐다고?”
그 순간, 임선우의 얼굴에 의문의 그림자가 한층 짙게 드리워졌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내가 마음 편하게 까려면, 반대로 칭찬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
심사에도 역할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칭찬할 수는 없다. 반대로 다 비판만 할 수도 없었다.
이 둘은 빛과 어둠과도 같은 관계였다.
다른 한쪽이 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다른 한 방향을 맡아 줄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선우는 어중간하게 남 비판하려고 시도하면 말실수할 게 분명한 캐릭터다.’
나는 임선우를 잘 안다.
눈치라고는 인스턴트 라면에 들어간 야채 부스러기만큼도 없어서 분위기를 못 읽는 게 기본.
자유롭게 심사하라고 내버려 두면 오히려 폭탄을 터뜨릴 게 분명했다.
‘팬들도 그런 거 안 좋아하겠지.’
기껏 방송에 불러 놓고 이미지만 깎아 먹을 길이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역할을 나누는 게 안전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임선우가 심사석에 서서 말을 많이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니까.
“하지만 그건 편파 심사잖아.”
“아니야, 선우야, 로지컬하게 띵킹해 봐.”
나는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
“네가 뭘 하든 어차피 나는 깔 거야.”
“왜?”
“왜가 아니야. 못 하면 양파처럼 깔 거고, 잘해도 호두까기 인형처럼 깔 거야. 까고 싶으니까.”
“……하지만 심사라는 건.”
“그런데 모두가 까기만 할 수는 없어. 내가 까는데 너까지 동참하면 저 사람들이 과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선우야, 네가 신념을 갖고 올바르게 심사하는 게 과연 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행동일까? 오히려 선량한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행동 아닐까?”
“…….”
“너 정말 이기적이구나.”
설득이 이어지기를 한참.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졌던 걸까. 임선우는 말없이 눈을 깜빡거리기를 잠시.
대낮에 빈 허공에서 별이라도 봤는지, 우주와 통신이라도 했는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나, 할게.”
“옳지.”
일단 한숨은 돌렸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딘가에서 뾰족한 시선이 느껴졌다.
살짝 떨어진 거리에서 한 남자가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임선우의 매니저, 그러니까 신 팀장이었다.
그가 마치 경호 대상을 두고 범죄자를 경계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쪽이랑은 대화를 거의 안 나눴지.
나는 그와도 좋은 관계를 구축할 생각으로 물었다.
“사인해 드릴까요?”
“……예?”
신 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거듭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저만 바라보시길래요. 혹시 사인받고 싶으신가 해서.”
“괜찮습니다.”
“사양 안 하셔도 괜찮은데.”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사진?”
“그것도 아닙니다.”
그는 언제 나를 주시했냐는 듯 홱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이상한 사람이네.’
하지만 괜찮다.
임대경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해 보면 저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됐다.
그보다는 이제 본격적으로 지난 24시간 동안의 성과를 확인할 순간이 왔다.
“슬슬 깨우고, 밥 먹이자.”
* * *
게스트하우스 지하에 있는 휴게실.
평소라면 파티 용도로 썼겠지만, 우리는 이곳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청자 서바이벌을 시작하겠습니다.”
공연장이었다.
심사 위원은 나와 임선우 및 정의선 세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나머지 팅 식구들은 관중석에서 리액션 담당.
“왜 내가 심사 위원석에.”
뜬금없이 심사 자리에 선 게 부담스럽다는 듯 떠는 정의선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짧게 답했다.
‘응, 평범하니까.’
정의선은 동아리 내에서 실력은 모자랄지언정, 딱 일반적인 사람 수준의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제일 일반적인 시선으로 균형을 잡아 주리라고 판단했다.
한편,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이 덜 깬 것 같은데…….”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감이 다 날아간 것 같아.”
“아, 미치겠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24시간 연습을 마친 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잠을 깰 만큼의 시간도 줬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대로 못 살렸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아마 순수 연습 시간으로 따지면 12시간도 안 되는 사람이 부지기수겠지.’
성실하게 시간을 채운 사람은 많아야 두셋 정도일까.
그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 사람.
정호영이 이번 심사 무대의 첫 타자였다.
“후우.”
그녀는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차분하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습한 소감은 어떠셨나요?”
내 질문에 그녀가 담담히 대답했다.
“졸렸습니다.”
무난한 대답이다.
큰 의미 없이 절차상 물어본 것이기에, 대충 넘기고 본 심사로 진행하려는 찰나였다.
임선우가 대뜸 말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
뭐지.
분명 칭찬만 하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설마 칭찬만 먹이라는 말을, 맥이라고 들은 건가.’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