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206
“여긴가?”
나는 하성이가 적어 준 주소를 찾아 차를 몰았다. 동해안 근처의 작은 항구. 바다의 짠 냄새가 시시각각 바람을 타고 흐르는 곳이다.
“계세요?”
그리고 커다란 물류 창고 단지로 보이는 곳. 커다란 창고 세 개가 일렬로 쪼르륵 서 있었다. 주먹만 한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는 문. 나는 건물 사이를 걸어가며 사람을 찾았다.
“누구?”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돌아보니 젊은 남자가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거친 느낌이 물씬 나는 사람이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하성이의 신분증을 꺼냈다.
“여기 물건 맡긴 놈 친구인데요. 대여 기간이 다 됐다 그래서 정리하려고요.”
“아아. 연락이 없어서 죄다 버리나 싶었는데.”
남자는 하성이의 신분증을 보더니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제일 안쪽의 창고.
“양이 좀 될 텐데, 혼자되겠어요?”
“하나만 찾으면 돼서요.”
“잘됐네. 안 그래도 우리 영감님이 눈독 들이고 있던 물건이 많거든요.”
철컥-
그는 창고 관리자일 뿐, 주인은 아닌 것 같았다. 영감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실질적 물주인가 보지. 남자가 수십 개의 열쇠 꾸러미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문을 오른쪽으로 민다.
드르르륵-
거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는 창고 문. 나는 안쪽의 풍경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따라오세요.”
사람 둘이 지나갈 정도의 길만 터놓고,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일층부터 오층까지 정갈하게 쌓여 있었으니. 남자가 벽에서 스위치를 찾아 누르자, 창고 안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쪽 컨테이너가···. 삼층인가 그랬을 거예요.”
오른쪽으로 두 번, 쭉 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 남자는 일층 컨테이너 앞에 걸린 푯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삼층. 열쇠는 여기. 나 밖에 있을 테니까 끝나면 불러요. 창고 대여 기간은 내일까지니 천천히 하시고.”
그러면서 작은 열쇠를 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컨테이너 다섯 개가 쌓여 있는데, 직각의 사다리만이 그걸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으니.
‘이래서 주 사장님한테는 말도 못 꺼냈군.’
그 몸으로는 카메라를 찾기는커녕 올라갈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사다리에 올라라 탔다. 손바닥만큼 난 작은 틈에 발을 걸치고, 겨우 자물쇠를 열 수 있었다.
딸깍-
컨테이너 안에 난 스위치를 누르니 누르스름한 전구가 켜진다.
“와. 이 미친 새끼.”
절로 나오는 감탄. 팔 평 남짓의 박스 안에 온갖 잡동사니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 그 작은 카메라를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나는 속으로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으며 하나씩 물건을 헤쳐 갔다.
‘모피 코트, 시계, 가방, 지갑, ···이건 뭐야?’
작은 통 여러 개. 나는 그중 하나를 열어 봤다가 기겁했다. 모양이 일그러진 금니가 잔뜩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훔쳤다던데, 확실히 이쪽 방면으로는 재능이 있는 놈이다. 이 많은 걸 어떻게 옮겼는지 감도 안 오는데.
“하아.”
얼마나 뒤집었을까. 나는 먼지 구덩이 사이에서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하성이가 꼭 찾아 주고 싶다는 그 카메라. 이쯤 되니 점점 오기가 생긴다.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그놈이 이러는지.
“보자. 보자. 빨리 나와 보자-”
나는 의미 없는 노래를 중얼거리며 한 박스를 찾았다. 일반적인 종이 상자가 아닌, 철제 케이스로 된 상자. 보통 이런 곳에 음향이나 영상 기기 따위를 넣어 두지 않던가. 나는 신나는 마음에 바로 뚜껑을 열어젖혔다.
‘뭐가 있긴 있는데, 이게 다 몇 개야.’
각각 천으로 감싸진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카메라들. 나는 하나씩 벗기며 필름이 들어가거나, 건전지가 들어가는 곳을 열어 봤다. 메모지가 들어 있는 게, 하성이가 찾던 카메라니까.
“아.”
그리고 드디어 발견한 카메라 속 쪽지. 아주 오래된 필름 카메라는 무겁고, 겉면이 죄다 일어난 상태였다. 렌즈도 박살 난 상태. 기기 자체의 기능보단 오래된 가치 때문에 전당포에서 받아 준 것 같다.
부스럭-
쭈글쭈글, 필름과 뚜껑 사이에 접혀 있는 메모지.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펼쳤다.
[은희는 보소. 내 벌써 머나먼 타국으로 온 지 반년이 되었구려.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히 말해 줄 수가 없소. 당연시되던 모든 것들이 어긋나는 세상이니. 아비 없이 태어난 명주는 잘 있는지 궁금하오. 손가락 발가락은 다 붙어 있는지, 옹알이는 하는지.]작은 메모지에 빽빽하게 적힌 글자. 흐리고 날려 써서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지만, 나는 천천히 편지를 읽어 갔다. 아무래도 베트남 전쟁 때 참전한 상황 같은데···. 뒷장에 겹쳐 있던 또 다른 종이가 있었다.
[모두가 보고 싶소. 본적도 없는 명주의 얼굴이 앞에 아른거리며, 항상 당신 꿈을 꾸어. 사랑하는 은희.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나는 하나만을 약속하고 싶어. 내 한평생 그대 옆에서 울며 웃겠소. 그대는 그저 웃기만 하소.]절절한 사랑 편지였다. 컨테이너 조명 아래에서 읽는 타인의 사랑 고백은 시대를 초월해 마음을 간질였다. 저절로 떠오르는 미소. 하성이 놈. 사람 마음은 안 훔치고 어쩌고 하더니,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정확히 녀석이 찾고 싶던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이 쪽지였다.
“으쌰.”
나는 카메라와 편지를 잘 챙긴 다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창고 밖으로 나가보니 구석에 앉아 뻑뻑 담배를 피워 대고 있는 남자.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뜬다.
“벌써 끝났어요?”
“네. 이것만 찾으면 됐거든요.”
나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나머지는 여기서 처리해 주세요. 하성이도 상관없다 그랬으니까.”
“노 났네. 알겠어요.”
그는 담배꽁초를 가볍게 튕기며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부지 입구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올라타서, 바로 시동을 걸었다. ‘은희’라는 사람에게 갔어야 할 편지.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카메라 속에 담겨 있었으니.
‘전당포 주인이 주 사장님이랑 같은 동네라 그랬지. 그럼 용산으로 가야겠군.’
나는 조수석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액셀을 밟았다.
***
“미친놈.”
오랜만에 만난 주 사장은 뿔이 단단히 난 것 같았다. 멀쩡히 잘 있던 아들이 탈옥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지.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자진해서 형량을 늘렸다는 하성이의 행동에 혀를 끊임없이 차 댔다.
“카메라 주인을 찾아 주고 싶어서?”
“정확히는 여기 메모지요. 월남전에서 쓴 편지인데, 부인한테 전달이 안 됐나 봐요.”
주 사장은 휠체어를 끌고 내게 다가왔다. 투박한 손이지만, 카메라를 가져가는 손길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그는 안경을 곧추세우며 메모지를 읽어 갔다.
“생각보다 감성적이죠?”
“감성은 개뿔이 염병이다.”
“나쁜 애는 아닌 거 알고 있었는데, 좀 의외에요. 자발적으로 찾아 주겠다고 저 난리 피우는 걸 보면.”
전생에서 하성이는 이 편지를 찾아 줬을까? 여기에 관해서 들은 게 없다 보니 전혀 힌트가 없는 상황이다. 주 사장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희, 제 엄마 이름이야.”
“네?”
“하성이 친모 이름이라고.”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부모님 말씀이에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용산 할아범. 맞아. 하성이는 친부모님 성함을 알겠구나. 먼 친척이 주 사장님이니까. 순간 나처럼 고아 출신이라고 착각했다.
“쓸데없이, 쯧.”
이제야 살짝 이해가 된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편지에서 부모님의 향수를 느낀 것이다. 편지 주인처럼 닿지 않을 친모의 이름. 주 사장은 괜히 안쓰러운지 휠체어를 돌린다.
“그나저나 그 전당포, 역시 하성이 놈 짓이었단 말이지. 참나. 기가 차서야 원.”
“모르고 계셨어요?”
“어림만 잡고 있었지.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털어 댈 놈이 그놈 말고 또 누가 있겠냐마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붙어 있더니 퇴원하니까 또 바람처럼 사라져서 물어볼 타이밍이 없었다. 정신 차리니 전당포는 망해서 없어지고.”
그는 굽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살짝 뿌듯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이려나. 나는 메모지를 주섬주섬 챙기며 물었다.
“어쨌거나 이거 주인 찾아 주려면 전당포 명단이 필요한데, 사장님은 그 주인 아시죠? 죽었다고 해도 뒤처리해 준 사람은 있을 거 아니에요.”
“정신 차리니 방 뺐다니까. 이름하고 주소는 알려 줄 수 있다. 평생 가도 못 잊으니까.”
그는 서랍에서 볼펜과 종이를 꺼내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주인 이름과 가게가 있었던 주소. 그리고 대충 사건이 있었던 날짜를 기록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됐다. 너 아니었으면 내가 이 허리 붙잡고 했었어야 하니까. 고맙다.”
나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 사장의 사무실. 여긴 언제 와도 똑같은 풍경이다. 온갖 기계와 잡동사니가 어둠 속에서 쌓여 있는.
“진심이야. 하성이 그놈, 친구도 뭣도 없이 떠도는 생활 해서 이럴 때 도와줄 만한 놈이 없을 거다.”
“제가 뿌려 놓은 일이 있어서 그래요.”
나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어서 가 보라는 듯 손을 흔드는 주 사장. 나는 계단을 내려오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특수대는 텅 비어 있을 테니, 다른 쪽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십니다. 저 특수대의 고지훈인데요.”
정보과 사무실. 수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아하니, 곧 퇴근을 앞두고 있겠군.
-간단히 부탁합니다. 오늘 축구 보면서 치맥해야 해요.
“지금 불러 줄 인적사항 친인척 확인 좀 해 주세요. 사망했는데, 가족이 없다 하더라고요. 아마 수습해 준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나는 주 사장이 적어 준 정보를 불러줬다. 잠시 기다리라는 경찰의 말. 허나 오 분이라는 시간이 흐를 동안 대답이 없었다. 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겨우 들려온 답장.
-나라에서 처리한 것 같은데요.
“그래요?”
-무연고자 사망으로 떠요.
이런. 그렇다면 당연히 남아 있던 장부나 자질구레한 것들은 폐기 처분되었을 것이다. 나는 알겠노라, 고맙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용산 상가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모래에서 알갱이 하나를 찾는 기분이 든다.
‘못 찾으면 그냥 카메라만 들고 있으라 했지만···.’
형량도 늘어나, 하성이가 가져간다고 찾을 수 있을 거란 장담도 없지. 그때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전광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 천지가 그런 광고판이다. 저거라면···. 나는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익숙한 번호를 찍었다.
“김 실장님? 바빠요?”
-아니요. 말씀하세요.
“사람 좀 찾게, 우리 광고 하나 때립시다.”
***
그리고 얼마 후,
주름이 곱게 진 얼굴. 흰 머리의 한 여자가 쓸쓸하게 저녁 하늘을 쳐다본다. 가족과 함께 귀가하는 다른 행인들 모습을 눈에 담는 할머니. 그리고 옆에 떠오르는 한 문구.
‘은희 씨는 오늘도 당신을 기다립니다.’
장면 변환이 되면서 그녀의 등 뒤로 그림자가 진다. 가로등 빛을 담을 여자의 눈이 반짝이고, 이내 반갑게 내뱉는 말.
뒷모습으로 보이는 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는 은희 씨. 그들을 잡고, 주택 안으로 이끈다.
[아버지도 기다리고 있어. 배 많이 고프지?]그리고 멀리 페이드 아웃되면서 불이 켜진 저녁 집을 비춰 주는 영상. 하늘 위로 다시 문구가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은희 씨, 그저 저희 곁에서 웃기만 하세요. 언제나 함께해 드립니다.’
다시 장면 전환. 고광의 로고가 떠오르며 ‘고광실버보험’ 글자가 나타난다. 나는 소파에 기대 그걸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예쁘네요.”
“이번에 새로 출시된 보험 상품이랑 콘셉트가 잘 맞더라고요. 은희라는 부모님과 명주라는 자식 관계면 보험료를 안 받는 이벤트를 열었어요. 제보해 준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리고요.”
“좋습니다. 얼마나 돌리는데요?”
“공중파며 지상파며 빵빵하게 넣을 거라서요.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 실장의 똑 부러지는 대답.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와인을 한입 머금었다. 전국으로 터지는 광고니까, 곧 입질이 오겠지.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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