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38
138. 단 한 사람을 위한 (1)
정녕 멋진 일이다.
······라고 프랑코는 생각했다.
그의 등장에 단원들은 기립하여 그를 반겼고.
여전히 파가니니의 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관객들도 뒤늦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다.
달궈질 대로 달궈진 용광로 같은 열기 속에서 나지막이 감탄하던 프랑코.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남은 곡들을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를.
각자의 스타일이 확고하게 담겨있지만, 그들에게 영감을 준 피사체는 결국 하나인.
모두가 단 한 사람을 위해 쓴 헌정곡.
‘······대가들은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그 질문 하나를 띄워놓고 연구를 거듭했다.
하나의 곡을 뜯어보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렇게 마침내 도달한 연구의 성과는 솔직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9곡에는 한 사람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었고.
그에 대한 존경심과 감탄.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같은 것들이 모두 혼재해 있었다.
마치, 이 악보만으로도 브리너 백작.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유추할 수 있도록 대가들이 혼신을 쏟은 것 같았다.
‘음악의 예언가라고 했나······.’
음악과 예언가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를 연결시킨 그.
이름 하나하나가 음악사에 선명히 남아있는 전설적인 대가들을 후원하고, 조언까지 했으며, 그들의 존경을 받은.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을.
······내가 납득시킬 수 있을까?
무대 뒤에서 니콜라이와 일별한 뒤, 지휘대에 올라선 그가 단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한서호의 눈과 마주쳤다.
‘제가 도울게요.’
미소가 지어진다. 부담도 조금 덜어지는 것 같다. 과연 든든하달까.
알버트가 왜 저 소년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자신이 더 좋아하게 됐을는지도.
물론, 저 천재 소년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협주(協奏)잖나. 그리고 소년에게 모든 짐을 맡길 만큼 자신은 무능력하지 않으며, 욕심이 없지도 않다.
음악의 예언가 브리너 프리드리히 백작과 가곡의 왕 슈베르트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200년 후의 한 지휘자가 당신들을 기리고 있으니 지켜봐달라고.
그리고.
‘이 프랑코가 납득시켜 보이겠노라고.’
한서호가 이전 공연에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들었듯이, 프랑코도 자신이 가진 최고의 악기를 들어 올린다.
천천히, 지휘봉을 들었고,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을 들었다. 그리고 한서호를 들었다.
그의 손끝에 그들이 모였다.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현대에 이들보다 좋은 연주자들은 없을 거라고.
지휘자에게 이들보다 대단한 악기는 없을 거라고.
그렇게 가장 거대한 악기를 손에 든 프랑코가 천천히 움직였다.
슈베르트의 헌정곡, 를 연주하기 위해.
임박의 순간.
프랑코는 자신의 지휘봉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렇담, 슈베르트에게 브리너 백작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불과 며칠 전에 본 기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슈베르트는 음악의 예언가가 자신의 스승이라 말했다고 한다.]그 문구를 떠올리며 프랑코는 입꼬릴 올렸다.
나의 스승은···.
‘고전(古典).’
바로, 당신들이기에.
#
‘고맙다.’
피아노 앞에 앉아, 저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프란츠에게 속마음을 풀어냈다.
파가니니의 헌정곡을 연주하며 어떤 확신이 들었기에 의미 없는 독백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분명, 저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란 확신이었다.
‘죽음 너머를 응원해줘서. 어쩌면 내가 이렇게 한서호로 살게 된 건 네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지.’
프란츠는 항상 나를 응원해줬었다.
참······ 여러모로.
우리는 사실 그리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음악가보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었지.
거기엔 음악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10대 소년에게도, 그리고 30대 아저씨에게도 흥미롭고 간질거릴 수밖에 없는 주제.
짝사랑.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누가 알겠나.
나와 프란츠가 우연히 잘못 보내진 편지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나의 연애편지였다는 걸.
적어도 이쪽 방면으로는 프란츠가 나보다 선배였지. 암.
그는 나에게 음악이 뭔지 물었고, 나는 그에게 짝사랑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었다.
더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려 했으나, 연주가 시작되려 하기에 훌훌 털어버렸다.
······뭐, 이 얘긴 다음에 하기로하고.
두두둥——!
곧이어 시작을 알리는 팀파니가 요란을 떨었다.
그 위로 현악이 눈보라를 불러일으켰고.
관악의 음압 가득한 소리가 쩍쩍 갈라지는 빙판을 그려냈다.
그 사이에서 나는 걸음마를 뗄 준비를 마친다.
40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남자를 연기하는 건 내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애초에 연기라고 할 수가 없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서 연주에 합류한다.
그렇게 브리너는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음악 속에서나마.
······그리고 현재.
피아노 앞에 앉아있기에 자유로운 걸음을 보여줄 순 없지만.
——.
페달을 꾹 밟는다.
그리고 다시 떼었다가, 또다시 힘차게 밟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이겠지.
음악 속의 브리너처럼.
나는 지금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이렇게나 자유롭다고.
너의 바람이······.
이루어졌노라고.
#
무대 아래.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기에 자연스레 밀도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출근길 전철마냥 빽빽이 서서 연주를 감상했고.
뒤쪽으로 멀어질수록 여유가 생겨 나름 자유롭게 연주회를 듣는 게 가능했다. 물론 가까이서 보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마치 무대가 바로 앞인 양 눈을 부릅뜬 남자가 있었다.
재단 이사장인 자신의 형을 졸라 베이노프 심포니의 단원들과 함께 이곳에 온, 파벨이었다.
신들린 듯 피아노를 치는 한서호를 바라보며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괴물 같군.’
이 생각을 한 건, 윤짜르트라는 한국 영화 속 장면에서가 처음이었다. 대역으로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굉장했지.
두 번째는 SJ 문화재단과 지원사업을 함께 하기로 협약을 맺고 찾아갔던 후원자의 밤에서였다.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괴물이 있다며 감탄했었다.
그 뒤로도 녀석과 러시아에서 만나 똑같은 생각을 여러 번 했었고.
지금. 이 거대하고 역사적인 무대 위를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려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케스트라 전체와 비교해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한서호.
“······정말, 대단하네요.”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고 있는 단원 중 하나가 낮게 감탄했다.
파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내 파벨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만다.
한서호의 대척점에 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균형을 이루는 지휘대 위의 노인.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악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하여 철저하게 연주해나가는.
현시점,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인 프랑코.
‘저쪽도 만만치 않아.’
협주곡이란 게 어려운 건, 독주 되는 하나의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비해서 결코 존재감이 부족해선 안 된다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수십,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가 마치 한 명의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기에 더욱 어렵다.
그리고 지금 마에스트로 프랑코는 그걸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는 한서호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면서도, 슈베르트 특유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음악’을 표현해낸다.
‘이런 연주를 내가 보고 있구나···!’
가슴 벅찬 실감과 함께, 저릿한 자극이 밀려든다.
슈베르트가 만든 헌정곡에 대한 경외감과 연주에 대한 감탄이 한데 어우러져 파벨의 심장을 세차게 때린다.
···연주는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지나가는 한음 한음이 아깝다.
‘저들도 느끼고 있을까?’
느끼고 있겠지. 자신들의 연주가 앞으로 어떤 의미가 될지.
연주되고 있는 모든 곡들이 당장 내일부터 클래식계···아니, 음악계를 송두리째 바꿀 것이란 것을.
‘미치도록 부럽다!’
고전을 사랑한 노인과.
그를 믿는 최고의 단원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슈베르트가 원하던 그림을 만들어내는 천재 소년.
그들은 미래를 보며 과거를 연주했고.
그렇게······.
————!
현재가 요동쳤다.
#
끼이익——.
낡은 경첩이 요란하게 소릴 질렀다.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펍.
월간청중 소속 기자, 최성령은 근처에 가장 가까운 펍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듯 빈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텅 빈 가게 안을 가로질러 카운터에 무책임하게 놓인 깡통에 유로 한 장을 쑤셔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캔 음료수 하나를 가져와 테이블에 앉았다.
“흐아···.”
노트북이 펼쳐졌다.
핸드폰으로 적어 내려간 대가들의 신곡과 연주에 대한 감상을 노트북에 옮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회가 열리는 공터에선 인터넷이 조금도 터지지 않으니까.
라이브를 위한 생중계차가 와 있었지만, 그곳에서 랜선을 빼다 쓸 수도 없는 노릇.
결국, 가게 주인마저 음악회를 간다며 홀라당 사라진 작은 펍에서 최성령은 혼자 타이핑을 쳤다.
타닥타닥—.
적어도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 만큼은 한서호 뺨치는 그녀가 순식간에 작성한 기사.
[······그렇게 전 세계가 기다리던 음악회의 3막을 앞두고, 사람들의 흥분이 만개하고 있다.]마지막 줄을 타이핑한 그녀가 곧장 월간청중에 있는 동료에게 퇴고를 맡기고 문서 프로그램을 내렸다. 그러자 이전 인터미션 때 잠깐 훑어봤던 라이브 채널이 떠오른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점점 더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이건 미쳤다, 진짜!
-200년 만에 공개되는 클래식이라고 해서 그냥 한번 들어와 봤는데, 대체 내가 뭘 들은 건가 싶네요······.
-얼마가 들든, 회사에서 짤리는 한이 있어도 이건 갔어야 했다. 고작 노트북 화면과 싸구려 스피커로 이걸 듣고 있는 내가 밉다ㅜ
-왘! 코인은 못 샀어도 이건 갔어야 했는데!!
-이렇게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음악회가 또 있을까?
-하이든에서 가슴 벅찼고, 파가니니에서 전율했고, 슈베르트에서 뭔가 슬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어. 이제 다음은 또 어떤 음악일지 기대되면서도 아쉬워. 이제 두 명 남았잖아···!
-아, 그런가? 누구누구 남았더라?
-누구냐니. 클래식하면 딱 떠오르는 이름 둘이 남았잖아!!
탁—!
채팅창을 바라보다 도리어 가슴이 벅차 버린 최성령이 노트북을 거칠게 덮었다.
마지막 채팅을 읽고 퍼뜩 정신이 돌아온 거다.
그래. 둘이 남았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악가들.
악성(樂聖) 베토벤.
신동(神童) 모차르트.
······그녀가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서 가방을 어깨에 멨다.
“휴. 다시 돌아가 볼까.”
이 짓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