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83
183. 기회
“한국에서도 관심이 엄청나요.”
호텔 핸드폰에 코를 박을 듯 시선을 내린 막내 기자의 말에 최성령이 고갤 돌렸다.
“지금 포털 사이트가 전부 퀸 엘리자베스 얘기뿐이에요. 무슨 연예인 대형 스캔들이라도 터진 것보다 더해요!”
“누가 덕질하던 애 아니랄까 봐. 비유가 왜 그래?”
“헤, 아무튼 엄청나죠? 처음 봐요, 이런 거. 선배님은 기자 생활 시작하신 이후로 본 적 있으세요?”
“없지. 아마, 편집장님도 처음일걸. 이 정도의 파급력은 한국 클래식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거야.”
사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지금껏 결선 진출자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심지어 여러 부문에서 우승자를 배출해왔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화제성이 대단하진 않았다. 클래식과 대중성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결코 마주 볼 수 없었으니까.
······그걸 제대로 깨 부순 건, 한서호가 유일했다.
“결승은 역시 한서호와 레오의 경쟁이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그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건···.”
“아무래도 신수아가 몇 등을 할지에 대해서겠지.”
“오 맞아요. 이번에 수아 연주자님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떠서······.”
끄덕이던 막내 기자가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깜빡, 깜빡—.
웬 꼬마 아이가 근처에 서서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외모로 봐선 한국인 같은데······.
그 뒤엔 갓 20대가 되었을 것 같은 여학생과 어쩐지 귀티가 좔좔 흐르는 중년 남녀가 함께 서 있었다.
요즘 클래식 공부를 시키려는 부모들이 한서호의 공연 일정을 따라다닌다는 얘기가 있던데. 이게 그 조기 교육의 현장인가?
그때 아이가 씩 웃는다. 어쩐지 음흉스럽게.
“동생.”
“응?”
“신수아. 신수아 동생.”
그 우쭐한 표정을 보며 그녀가 멍하던 찰나, 뒤에 있던 최성령 선배가 놀란 목소릴 냈다.
“어머, 서호 어머니! 한 대표님!”
시선을 올렸다. 눈을 끔뻑였다. 그러니까, 저 귀티 나는 두 분이··· 덕모, 덕부렸다?
그러면······.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는 꼬마.
그러고 보니 신수아 연주자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가 동생 둘이 있다고 말했었다. 한 명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난다고 했었지.
“진짜 수아 연주자님 동생이구나?”
말꼬릴 올리자마자, 뒤에 있던 여학생이 꼬마에게 말했다.
“너 ‘우리 언니가 신수아’라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니까~.”
지금 본인이 더 크게 얘기 중인데. 심지어 신수아라는 이름엔 더욱 힘줘서 또박또박.
동생을 타이른(?) 여학생이 싱긋 웃으며 막내 기자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저희. 언니 동생들.”
······.
“이제 정말 결선이네요.”
한서호 엄마의 말에 최성령이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리고 슬쩍 물었다.
“떨리세요?”
“조금···.”
옆에서 한기준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떨리다 더니.”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여기 오니까··· 정신이 없네.”
그럴 수 있다며 빙그레 미소지은 최성령이 이번엔 한기준 대표를 보았다.
“서호가 대표님은 오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다행이네요.”
“하하, 아예 휴가 좀 길게 냈습니다. 서호 쇼팽 콩쿠르까지 보려고요.”
“와! 정말 좋은데요? 서호도 좋아하겠어요.”
싱긋 웃은 최성령이 두 사람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3관왕 기대하세요?”
차이코프스키에 이은 퀸 엘리자베스, 그리고 쇼팽. 세계 3대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쥐는 미래를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악기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클래식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일이었다.
“기대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글쎄요.”
한기준 대표의 말을 그의 아내가 받았다.
“그냥 서호가 원하는 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서호 연주자님은 3관왕을 원하는 게 아닌가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막내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러자 막내 기자가 허리를 홱 접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서호 연주자님께 꿈에 대한 질문을 드리는 기사를 쓴 월간 청중의 기자로···.”
“어디 면접 보니?”
최성령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묻자, 막내 기자가 능글맞게 한기준에게 작게 속삭였다.
“혹시, 사운드 필름은 홍보팀 필요하시지 않나요? 그때 제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어. 사운드 필름은 내가 먼저 갈 거야.”
두 사람의 이직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동안, 마치 콩트 보듯 웃던 한서호 엄마가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풀어냈다.
“몰라요. 워낙 저희도 종잡을 수 없는 애라. 하지만······ 콩쿠르를 나간 이유가 3관왕이니 그랜드슬램이니 하는 타이틀을 위한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20년 넘게 봐온 바로는요.”
한기준 대표가 동감한다는 듯 끄덕거렸고, 이내 최성령도 주억였다.
“그러네요. 서호는··· 서호라면 정말 그런 걸 원해서 콩쿠르에 참가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답한 그녀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막내 기자 뒤편에서 여학생과 꼬마가 기대어린 얼굴로 얘기 중이었다.
“누나 언제 와?”
“곧. 몇 시간 안 남았어.”
“누나 엄청 놀라겠지?”
“그럼!”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자 한서호 엄마가 설명해주었다.
“서호가 부탁했어요. 올 때 저 아이들도 함께 데려와 주면 안 되겠냐고. 동생들에게도 연주 보여주고 싶대요.”
“와, 역시 서호 연주자님······.”
막내 기자가 감동한 눈빛으로 덕심을 키웠고.
최성령이 감탄했다.
“한서호 사단, 복지 좋은데요?”
#
이른 아침부터 짐을 쌌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처럼 캐리어에 보스턴백, 그리고 바이올린까지.
한가득 양옆에 끼고 1층으로 내려와 모두를 만났다.
부산한 분위기의 거실. 곧 이곳을 나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참가자들의 얼굴엔 꽤나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그때 거대한 캐리어를 두 개씩이나 가져온 레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경연장에서 봐요, 다들.”
그를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넸다. 곧 경연장에서 만나겠지만, 거기서 이렇게 웃고 떠들 순 없을 테니까.
“함께 연습하는 거, 끝내주는 경험이었어. 고맙다.”
맷이 엄지를 치켜들며 내게 말했다.
“많이 배웠어. 고마워. 네 강호행을 응원해.”
그리고 왕웨이.
내 강호행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응원해준다니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도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인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참가자였다. 독일의 막시밀리언.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감사 인사를 해왔다.
“고마워요. 독일인으로서··· 헌정곡에 대해서만 물어봤지 정작 브리너라는 인물의 진짜 가치를 되찾아준 걸 고맙단 얘기 못 한 것 같아서.”
“······.”
어쩐지 모두에게 고맙다는 얘길 듣는 것 같네.
내가 천천히 입꼬릴 올렸다.
그리고 전생의 후예에게 말했다.
“결선 끝나고 썸머 페스티벌에서 보게 되면, 그땐 고맙고 이런 거 말고 우리 모두 친구로 만나요.”
“네. 그러죠!”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이와 인사하려 몸을 돌리는 걸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게 그리웠으니.”
과거의 친우들을 떠올리며 느릿느릿 시선을 돌리는데, 언제 옆에 와있었는지 신수아가 보였다. 내 얘길 들었는지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모른 척 씩 웃으며 캐리어를 끌었다.
바트에게 돌려받은 핸드폰을 켜자 진동이 끊이질 않는다. 밀린 연락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주최측에서 준비한 차량에 올라탔다. 나와 신수아는 같은 호텔이라 그녀도 함께 차에 올랐다.
엉덩이가 닿자마자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신수아. 뭐, 뻔하지.
“어어, 호찬이는? 잘 지냈지? 지금 집이야? 나 지금 나왔어. 지금 차 타고 호텔로 가. 호찬이는 자? 아, 그래?”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진다. 신수아 동생이 연기를 잘 해줘야 할 텐데 말이지.
밥은 잘 먹었냐, 별일 없었냐, 호찬이는 누나 안 보고 싶어 하냐 등등의 걱정들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야 신수아가 전화를 끊었다.
꿀꺽. 왠지 긴장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장 떨리게.
“얘,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모, 모르죠.”
······아예 대답을 하지 말걸. 말이나 더듬고.
밖에 구경하는 척이나 해야겠다.
다행히 호텔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수아도 피곤한지 딱히 말을 걸지 않았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드르르륵——.
밴의 문이 옆으로 열리자 오랜만에 보는 SJ 직원이 한달음에 다가와 신수아의 짐부터 받아들었다. 그리고 내 짐을 가지러 오는 척하면서 슬쩍 눈치를 준다.
“와플 가게에 계세요.”
직원의 속삭임을 듣자마자, 남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서 호텔로 들어가려던 참인 신수아를 불러세웠다.
“누나.”
“응?”
“저 와플 먹고 싶어요.”
피식 웃는 그녀.
“맞다. 나도 나오면 먹으려 그랬는데. 그래, 가자.”
우리는 가지고 있던 짐을 직원에게 맡기고서, 길 건너 골목으로 향했다. 이미 건너편에서부터 물씬 풍겨오던 노릇한 냄새를 따라서.
그리고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그녀를 다시 불렀다.
“누나.”
“응?”
“숨겨서 미안해요.”
“뭐가?”
비스듬히 기운 그녀의 눈이 슥 돌아갔다. 가게 안으로. 그리고 무언가를 본 순간.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간다.
눈은 두 배쯤 커지고, 선홍빛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그녀를 보며 내가 덧붙였다.
“누나 연주를 실제로 보여주고 싶어서요.”
다음 순간, 그녀는 집에 있다던 두 사람을 13시간이나 떨어진 나라에서 마주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동생들이 그녀 앞에 선다.
“누나! 놀랐어? 놀랐지? 헤헤, 누나 오면 먹으려고 와플 아직 안 시켰어! 같이 먹자!”
“······.”
“언니. 수고했어.”
“······.”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못 했다. 그저 말없이 두 사람을 안았다.
그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부모님과 눈을 맞췄다.
흐뭇하게 웃는 두 분을 보며 나도 입 끝을 올렸다.
#
-잘 다녀와라.
윤 교수의 담담한 듯하지만 바싹 긴장한 목소리에 내가 웃었다.
“우스운 이야기로 만들고 올게요. 클래식이 죽었다는 얘기 따윈.”
그러자 음?’ 하고 되묻던 윤 교수가 이윽고 기억났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가 이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면, 그건 자연스레 될 게다.
···늘 이런 식이었다.
그는 날 믿었고, 그렇기에 나는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었지.
‘그러고 보면 나는 이번 생도 인복이 많은 것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곧장 로비로 내려왔다. 기자들을 피해 재빠르게 차량에 올라탔다.
기다렸다는 듯이 출발하는 차.
신수아는 먼저 올라타 악보를 훑는 중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내 일을 하려는데—.
“고맙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들 얘기라는 걸 알기에 옅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별말씀을.”
“이번엔, 네가 원하는 게 이뤄졌으면 좋겠네.”
내가 원하는 거?
그게 뭘까 하고 갸우뚱했다.
아, 콩쿠르 우승을 얘기하는 건가. 하긴, 매스컴도 온통 3관왕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 뿐이잖나.
근데 정작 난 그걸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보단······.
“그리웠다며.”
이어지는 말에 신수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네가 뭘 그리워하는진 모르지만. 그게 채워졌으면 좋겠어. 일단··· 나부터 네 친구 할게.”
“······.”
······그래, 나는 여전히 그립다.
내가 사랑했던 음악가들 모두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리고 잔인한 얘기지만, 그들의 공백이 다른 것들로 충족될 순 없다. 그들이 전설의 대가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인물들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그들이기 때문.
퍼즐의 모양이 달라서, 빈칸이 채워질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더욱 후회스럽다.
좀 더 나아갈걸. 더 가까워질걸.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워할걸.
음악을 하지 못한 건 한(恨)이 되어 남았지만.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은 건 후회가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신수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뭐, 왜. 뭐?”
이번 생이 내게 준 기회는.
어쩌면, 음악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마워요.”
내 대답에 픽 하고 웃은 신수아가 다시 악보를 보며 말했다.
“그럼 좀 살살해.”
내가 정색했다.
“그건 안 되죠.”
183. 기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