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21
221. 피날레 (1)
—————!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음압이 무대 아래를 짓눌렀다.
묵직한 엔진과도 같았고, 비상하는 새와도 같았으며,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소리들의 향연이었다.
동시에 정교하기까지 해서, 마치 수억 원 하는 시계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80개의 소리는 가장 거대한 악기가 되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몇 번이고 클라이맥스를 두드리는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왔고. 그것을 비웃듯 오케스트라는 더욱 격동했다.
누가 저들을 오늘 처음 공식적으로 무대에 오른 이들이라 하겠나.
그들은 오늘 데뷔했지만 진짜 클래식을 알았고, 그것을 무수히 연습해온 장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이든이 영감을 받은 영국의 거대한 시계가 되기도.
천재적인 모차르트가 바라본 인간의 비애가 그려지기도.
베토벤이 유일하게 들을 수 있었던 한줄기 소리가 되기도 하며 고전을 재현해냈다.
음악에 수준이 있든, 없든.
클래식과 밀접했든, 거리가 있었든.
그런 건 아무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저 들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옛 대가들의 영감을.
그것이 너무 강렬해, 그저 전율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무대.
백한길 회장은 그 무대에 감탄했고.
그 무대를 이끄는 소년을 보며 울었다.
그 감격은 소년에게 처음 위로를 받았을 때보다 더욱 커다랬고.
옛 가족을 만났을 때보다도 진했다.
이리도 멀고, 저리도 작은데.
자꾸만 커다랗게 느껴지는 인형(人形).
자신처럼 과거에서 왔고.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견뎌냈으며.
자신이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옛 주인이.
······그곳에 있었다.
손을 휘두르며.
음악을 직조하며.
휠체어에 앉아, 하이든의 지휘를 보며 끝없이 전율하던 소년이.
그저 듣는 것에 만족하고 위로를 받던 소년이.
지금 저기서 지휘를 하고 있다.
200년의 시간을 모두 쏟아내듯이.
하다못해 그저 돌덩이가 쌓인 산 하나를 보면서도 우리는 감탄할진대, 영감이 산을 이룬 모습을 보고 어떻게 전율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백한길 회장은 비로소 마냥 기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백작님은, 과거의 자신이 간절했던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한서호는 그 기억에 사로잡혀 미련을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저것을 보며 어떻게 그리 생각할 수 있을까?
······모두 쏟아내고 있다.
그가 느꼈던 고통과 갈증과 염원을, 예전 그가 부러워하고 좋아했던 대가들의 음악으로.
그러니 아마도, 이 무대가 모두 끝나고 나면······.
그의 미련은 전소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 일페르소의 미련 또한 마찬가지.
‘그의 바람은 늘, 내 바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백작님께선···.’
‘우리의 후원자는···.’
‘그 친구는···.’
우리의 바람이었으니까.
순간, 백한길 회장의 기억 속에 있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쳤다.
홀로 연회를 열었던 그때.
둥그런 원탁을 사이에 두고, 그들이 함께 있었다.
“마왕이란 곡··· 지난번 라이바흐에서 들었습니다. 전 아버지나 동생처럼 음악을 듣는 귀는 없지만 그럼에도 소름이 끼치더군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모차르트의 장남이 옆에 앉은 청년에게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으로 손을 데우던 청년, 슈베르트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는 그저 괴테의 시와 백작님의 조언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것뿐입니다.”
“원래, 그런 걸 작곡이라 하지요.”
대답한 이는 하이든의 동생, 미카엘이었다.
그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슈베르트가 문득 그 너머로 보이는 테이블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쪽에 앉으신 분들은······.”
“예? 아, 저분들은 아버지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셨던 단원분들입니다.”
슈베르트가 더욱 눈을 빛내며 눈을 굴렸다.
“그렇군요. 혹시 하프를 연주하시던 분도······.”
“아실리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기 계십니다. 오른쪽 끝에 검은 모자를 쓰신 여성분.”
미카엘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한창이라 이쪽의 관심을 눈치채진 못한 듯했다.
슈베르트가 주억이며 그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슬퍼 보이는 표정이라 다행이기도······.”
그러다 고갤 저으며 말끝을 흐린다.
“근데, 그러면 백작님이 슬퍼하실 것 같아 안타깝기도······.”
“예?”
“···아닙니다.”
한편, 슈베르트의 중얼거림을 들은 일페르소가 잠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씁쓸한 표정이 번졌고, 이내 그것을 흩트리며 입을 뗀다.
“종종, 만약 백작님께서 몸이 성하셨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의미 없는 가정일지 모르지만······.”
어느새 원탁 위에 가득 쌓인 헌정곡 악보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잇는다.
“필시, 음악을 하셨겠지요.”
일페르소의 뜬금없는 말에도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끄덕이거나 침음성을 흘리고 입술을 깨물며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만들고, 때론 가족 앞에서, 때론 우리들 앞에서, 그리고 때론···세상 앞에서 음악을 하셨을 겁니다.”
“그랬겠죠. 그 친구는······.”
일페르소의 말에 은은하게 빛나는 술잔을 보며 군침만 삼키던 파가니니가 툭 답했다.
“그러고 보니 종종 왜 음악을 하냐고 묻곤 했었죠. 누구보다 음악이 하고 싶은 얼굴로······. 아마 그 답을 찾았을 겁니다. 본인이 직접 음악을 하면서.”
자신이 말하면서도 퍼뜩 정신이 드는지 술잔을 멀리 밀어버리는 그.
녀석에게 자신의 영혼이라 말했던 바이올린까지 뺏기고 음악을 놓았었던 자신이 여전히 술의 유혹에 마음을 주는 게 화가 나는 그였다.
녀석은 그토록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음악인데······.
푹 가라앉은 파가니니의 말을 루드비히가 받았다.
“운명이 그것을 가로막았을지 모르지만, 구름이 달을 가린다고 해서 월광이 없어지는 건 아닌 법이죠.”
그에게도 브리너 백작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후원을 오랫동안 받진 못 했지만, 그럼에도.
단 하루뿐이었지만, 그의 위대함을 알기엔 충분했지. 고작 하룻밤이라고 해서 달이 밝다는 걸 모르지 않듯이.
그 밤에 느꼈던 수많은 영감들이 지금도 음악에 녹아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를 동조하듯, 모차르트의 장남이 기억을 곱씹었다.
“아버지께선 늘, 그렇게 말씀하셨죠. 음악의 신이 질투한 거라고. 백작님은 자신에게 그 어떤 것보다 진한 영감을 주는 존재. 영감 그 자체라고요.”
하지만 그러한 이가.
정작 자신의 음악은 하지 못했다.
······잠시, 공허한 침묵이 흘렀다.
덩달아 다른 테이블도 적막에 휩싸였다.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이 모였지만, 모두가 없는 것과 같았다.
모두, 한 사람을 위해 모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없는 한 사람.
그때였다.
“여기······ 그분께 영감을 받은 악보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잖습니까.”
말없이 훌쩍이던 피아노 제작자.
토마스 브로드우드가 말했다.
“어쩌면, 그분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비가 오던 날.
런던 거리 모퉁이에서 피아노를 만들던 자신에게.
그분이 ‘그대는 이미 음악을 하고 있다’ 말해주었던 것처럼.
······기억을 떠올린 백한길 회장의 시선은 저 멀리 거대한 공연장에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진짜 고전이라서일까.
옛 기억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과거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향수가 느껴지듯. 아니, 그보다 더 진하게.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음악······.”
기억의 끄트머리에 있던 말 하나가 잔상처럼 남았다.
그 잔상이 시선 끝에 있는 소년과 겹쳐졌고.
비록 인종도, 외모도, 그리고 가진 병까지 달라졌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곳에 오롯이 브리너 백작께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목도한다.
이렇게 수백 년의 시간을 딛고, 삶과 죽음을 넘나들어 저토록 강렬히 연주되고 있지 않나.
백한길 회장이 힘껏 웃었다.
경탄할만한 음악이 흐른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그의 긴 생에선 고작 음표 하나, 마디 하나란 걸 알게 된다.
“영광입니다.”
그렇기에 백한길 회장은 그가 해낼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제가 당신의 2악장에서도 함께라서.”
#
—————!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피날레.
손끝에 닿아 있던 소리들이 매듭이 풀린 밧줄처럼 느슨하게 풀어지더니, 이내 단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의 소리를 잠시 빌려 음악을 만들어낸 나는, 손을 내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연주하는 내내, 대가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였다. 편지 대신,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대부분과 재회했고.
마침내 단 하나의 곡만을 남겨두고 있다.
단 한 명과의 재회만 남겨두고 있다.
“······.”
생각의 끝을 줄이며, 천천히 무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반응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적막. 하지만 그것조차도 음악의 연장선인 양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운에서 벗어난 어떤 이가 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외침은 순식간에 번졌고, 이윽고 무대 위까지 차오를 정도로 큰 울림이 되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재회를 준비했다.
그 사이, 무대 옆에서 뚜벅뚜벅 누군가 올라온다.
양복이 헐렁하게 남을 정도로 빼빼 마른 남자.
사람들은 어느새 조용해졌고, 그는 무대에 올라서서 나에게 인사했다.
뒤이어 그가 관객들을 향해 고갤 숙이자, 사람들의 표정에 떠올랐던 의문이 놀람으로 바뀌는 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의 정체가 한국 최고의 성악가라 불리는 남자였기 때문.
“앙코르 곡은 오페라나 가곡인 건가···?”
누군가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에 답하듯 다시금 팔을 들어 올렸다.
‘전 제 곡만 아니면 됩니다.’
‘제가 뭘 듣고 싶냐면 말이죠······.’
‘전생에 끝내 듣지 못했던 곡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백한길 회장의 목소리가 연달아 귀에 아른거리고, 단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손을 내리그었다.
두두두두두두———.
동시에, 말들이 땅을 박차고 달라기 시작했다.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심장을 잘게 다질 듯이 두드린다.
기괴하게 흔들리는 현악(絃樂) 위로, 성악가의 목소리가 넓고 고르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하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게.
【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누가 밤늦게 말을 타고 가는가. 이토록 바람이 심한데?】
그것은 괴테의 시로 시작되어.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아버지가 그의 아이를 데리고 가고 있다——.】
브리너 백작의 마지막 편지로 완성된 곡.
······마왕(魔王)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