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22
222. 피날레 (2)
‘최고의 공연이었다.’
논란의 시작점이었던 하이든의 교향곡부터,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고전을 떠받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들보 같은 곡들이었다.
숱하게 많은 연주자들이 수없이 연주하고 녹음했던 곡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들려준 그들의 연주는 어떤 전례와도 닮아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논란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진짜임을 알게 된 상황.
‘그 시대의 오케스트라는 저 곡들을 저렇게 연주했는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곡의 완성도는 대단했다. 그러니 필리온을 비롯한 평론가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아니면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질 것만 같았을 테니까.
윤 교수의 시선이 이젠 정말 지휘자 같은 면모를 보이는 한서호에게 멈췄다.
지휘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젊은 청년.
하지만 옛 대가들은 전부 비슷한 나이에 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저렇게 지휘했겠지.
······변주의 반복 사이로 짧은 푸가가 이어진다.
음악인들이 궁금해했던 부분이었다.
멜로디의 자기복제를 병적으로 싫어했던 베토벤이 왜 이 부분에선 타협을 했는지.
브리너 백작과 베토벤 간의 편지가 한 통 뿐이라 그 해답은 편지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한서호는 지금 지휘로 보여주고 있었다.
베토벤은 언젠가 만들어지는 멜로디에 한계가 생길 것을 예상하고, 하나의 멜로디가 어떻게 편곡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들릴 수 있는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
마지막 베토벤의 교향곡마저도 완벽한 피날레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논란의 여지야 있겠지만, 더 이상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비난할 때 꿋꿋이 진실에 다가간 한서호인데.
이로써, 한서호와 한 필하모닉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로서 완벽한 데뷔 무대를 치렀다.
‘그리고 어쩌면······.’
스윽. 윤 교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얼굴들이 즐비했다.
알버트, 프랑코, 발터, 그리고 최근에 책을 절판한 일리야 로이드. 그밖에도 수많은 지휘자들과 연주자들까지.
이토록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모두 몰려 있는 곳에서 최초로 선보인 ‘진짜 클래식’.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고 완벽히 녹여내 들려주고야만 한서호.
이제 다악의 천재가 다룰 수 있는 악기에 오케스트라마저 포함되지 않을까.
더는 누구도 한서호의 지휘를 이르다고 평가할 수 없지 않을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 한 번의 무대로······.
‘저들과 나란히, 정상의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겠군.’
앙코르—! 앙코르——!
함성과도 같은 관객들의 바람이 들려온다.
윤 교수 또한 내심 그것을 간절히 원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클래식은 완성되었다. 앙코르를 요청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완벽하게.
대체 어떤 곡이 이 위대한 곡들의 뒤에 울려 퍼질 수 있을까!
그때였다.
무대 위로 한 남자가 나타나 관객들 앞에 선 것은.
자연스레 앙코르 요청이 잠잠해진다.
윤 교수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국내 최고의 성악가. 물론 그의 등장 자체에는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었다.
지금 당장 고개를 돌려 훑어보기만 해도 성악가로서 최정상에 오른 이들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국내 유명 성악가가 이 큰 무대에 올라선 것이 무슨 깜짝 놀랄 일일까.
다만, 이토록 기대감이 널뛰는 것은······.
‘가곡인 것인가?’
대체 어떤 곡을 앙코르로 들려줄지. 그것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예감에 대답이라도 하듯, 잠시 후 연주가 시작되었다.
— — — —!
윤 교수는 곡의 정체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흉흉한 바람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저토록 기괴히 들려오는데!
가곡의 왕,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그가 고작 19살에 만든 걸작.
마왕.
— — — — — — —!
첫 만남에서 이게 누구의 곡이냐고 묻던 소년이······.
【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누가 밤늦게 말을 타고 가는가. 이토록 바람이 심한데?】
지금, 그 곡을 지휘하고 있다.
윤 교수가 지금껏 들은 어떤 마왕보다도 간악하고, 소름 끼치게.
그리고, 처절하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를 잠식한 두려움과 아버지의 긴박한 처절함.
그리고 마왕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비정함을.
저렇게나 훌륭히 표현해낼 수 있을까.
—————!
온몸의 털이 전부 곤두서는 듯한 기분에 감탄을 하며 이 모든 광경을 만들어내는 한서호가 스크린에 확대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음?”
윤 교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앞선 곡들과는 달리 화면에 나오는 한서호가······.
‘눈을 감고 있어?’
말 그대로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깐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계속, 한서호가 눈을 감고 지휘하는 모습이 화면에 걸렸다.
그럴수록, 윤 교수의 입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
“······”
한편,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 발터는 화면에 스치듯 지나간 한서호의 모습을 되새기며 헛웃음을 삼켰다.
민망했다. 한서호가 지휘자로서 빛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던 생각들이.
‘내가 한서호 저 아일 너무 과소평가 했구나······!’
누군가는 하루면 깨달았을 텐데!
저 녀석의 재능이 대단함을 넘어서 위대하다는 걸 누군가는 하룻밤의 대화로도 느꼈을 텐데!
가령,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옛 대가들이라면 분명 그랬을 텐데!
자신은 한서호라는 아이를 한 달이나 봐놓고,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녀석은 다르다는 걸. 녀석이라면 다음에 만났을 때 이미 이만큼이나 성장해 있으리란 걸.
‘그나저나, 눈을 감아버릴 줄이야······.’
그렇게 지휘를 하는 지휘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조차도 어떤 순간엔 음악에 깊이 빠져들어 눈을 감기도 한다.
하지만 곡 하나를 통째로 그렇게 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총보처럼 어렵고 방대한 양의 악보를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뜻하니까.
또한, 그뿐만이 아니다.
연주자들과의 호흡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어야만 했다.
모두가 자신을 제대로 따라줄 것이란 자신감.
눈감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길도, 막상 눈을 가리면 앞에 뭐가 있을지 불안해지기 마련인데, 한서호는 지금 그런 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뜬 이들보다 거침없이, 정확하게.
발터는 전율하며 그 모습을 틈나는 대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렇게 시야를 가리고 지휘를 하며 녀석이 보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대체 뭘 떠올리기에······.’
음악이 이토록 소름 끼치게 들리는 것인가.
#
······어떤 음악은 타임머신과도 같아서 듣는 것만으로 잠시 옛날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게 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전생에 마왕을 들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현대에 와서도 유일하게 끝까지 듣지 못한 곡이지요. 심장이 저려서 도저히 힘들더군요.’
그렇기에 백한길 회장. 아니, 일페르소는 이 곡을 차마 듣지 못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
희대의 명곡이지만, 아주 개인적인 경험으로서는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었을 테니.
쇼케이스를 준비하며 나는, 백한길 회장에게 그 이유에 대해 들었다.
‘마왕은 슈베르트의 걸작이지만, 제 기준에선 백작님의 유작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무수히 많은 감정을 내보이는 백한길 회장을 보며 내가 답했었다.
‘무섭죠.’
윤 교수 앞에서도 그렇게 말했었지. 계산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
아주 무서운 음악이었다. 특히나 내겐 더더욱.
그것을 알아챈 건 내 음악적 재능의 영역도 있었을 거고, 이미 슈베르트와 고민했던 내용이 담겨 있어서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죽음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아서.
그것이 내 목을 조이기까지 얼마나 간악하게 쫓아오는지 경험해봐서.
“······.”
내가 그렇게 죽었으니까.
내 반응에 백한길 회장이 흠칫 놀라며 말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그 곡은 백작님께도 힘들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빙그레 웃었다.
‘아녜요. 슈베르트는 역시 대단해! 하고 환호했었던걸요.’
그래서 더욱 위대한 걸작임이 분명하다.
바다를 보지 못한 화가가 바다의 느낌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처럼.
눈을 보지 못한 작가가 펑펑 내리는 눈의 느낌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것처럼.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진짜 죽음을 만들어냈으니까.
과연 원작자인 괴테도, 작곡한 슈베르트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가만, 괴테도 전생을 기억했었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멀뚱멀뚱 날 바라보는 백한길 회장의 시선을 느끼고 푸스스 웃었다.
‘그거 좋네요. 마왕. 마지막 곡으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지금.
——————!
나는 슈베르트가 그린 죽음을 연주한다.
눈을 감고서, 내가 느꼈던 죽음들을 그린다.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Den Erlenkönig mit Kron’und Schweif!
아버지, 당신은 마왕이 보이지 않나요? 마왕이 왕관을 쓰고 수행원들을 데리고 오잖아요!】
괴테는 음악을 글보다 아래의 학문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틀렸다.
슈베르트가 그린 죽음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어떤 낭독보다 처절하고 무서웠다.
이것만큼은 내가 오히려 증언할 수 있었다.
‘죽어봤으니까.’
【-Mein Vater, mein Vater,und hörest du nicht, Was Erlenkönig mir leise verspricht?
나의 아버지여, 그런데 들리지 않나요? 마왕이 나에게 부드럽게 약속하는 것이?】
나는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타들어 가듯 검게 물드는 시야.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지휘를 이어나간다.
한 필하모닉이 거대한 숲이 되었고, 그 사이를 위태롭게 내려가는 마차가 된다.
그리고, 성악가의 목소리는 아들을 잃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두려움에 떠는 아들을 연기한다.
【Mein Vater, mein Vater, jetzt fasst er mich an!
나의 아버지여, 이제 움켜쥐네요, 그가 나를!】
절규와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뒤덮었다.
곡의 정점(頂點).
숨이 넘어가는 아들을 부여잡는 아비의 절규와.
‘백작님! 백작님!’
달려와 나를 부르짖는 일페르소 절규가 겹쳐지며·········
——————!
나는.
“백작님, 이번 분기 피후원자들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내 죽음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